수염論 한승필 수염을 꼭 지저분한 남자의 表象으로 생각지 마라 임꺽정이 같은 산도적의 수염과는 근본이 다른 근대의 안창호 선생 같은 김좌진 장군 같은 수많은 애국선열의 지도자들 같은 그분들의 수염을 한 번 보라 얼마나 서슬 퍼런, 적들을 압도하는 威風堂堂한 장부의 모습인지 ..
바둑 한승필 바둑판에 우주가 담겨있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 바둑알의 우주는 바둑판이니까 누구는 한판의 바둑에 삼라만상(參羅萬像)이 펼쳐진다고 나는 모르겠던데 솔직히 말해서 중급 실력 정도면 상대의 속마음을 잣대로 재듯 읽어내는 훔쳐보려는 그런 수작 정도는 부릴 줄 아는 ..
염소의 수염 H S P 사자는 수사자만 수염이 난다 수염이 잡초처럼 무성하다 염소는 수염에서만큼은 남녀평등이다 그런데 사람도 사자처럼 남자에게만 수염이 난다 버려두면 지저분한 그래도 잘 다듬어주면 그럴듯한 구레나룻이며 카이저수염 이런 것을 여자는 꿈도 꾸지 못하리 수염이 ..
월드 뉴스 한승필 태평양인가 대서양인가 좁쌀보다 작은 어느 섬나라 가난한 토후는 월드 뉴스에 차마 믿기 어려운 메시지를 띄웠네. 서기 200×년 ○월 ○일 친애하거나 존경할 수 없는 국민 여러분 짐은 더이상 권좌를 지킬 수 없게 되었노라 이제 짐을 떠나 망명을 해도 좋고 매국을 해..
단군을 기다리며 한승필 지구에 홀로 남은 한 사내의 이글루에 북극곰이 찾아와 문도 없는 입구를 똑똑 두드린다. 저는 북극의 웅녀랍니다 지구가 무서워요 사내는 어딘가로 뚜뚜 급히 무전을 치며 웅녀라고? 난 북극의 이누이트가 아닌데 하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핵폭발의 분진으로 해..
고래가 된 돈키호테 한승필 고등어 등결 같은 바다 한 자락을 뚝 잘라 건져온다던 돈키호테는 바다로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뒤숭숭한 소문에 부둣가 목선들은 발이 묶이고 어느 날인가 소문의 바람이 잠잠해진 날 청태처럼 애가 마른 아낙 가슴으로 해초에 엉..
화분 한승필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이 먼저 피는걸 깜박 잊었다. 한눈을 파는 사이 얼굴 없는 솔바람이 가슴에 파고들어 잠들었던 기억들을 깨우고 간다 누가 벌건 대낮에 연애라도 하는가, 나와는 상관없는 이런 상황은 먼 산을 보듯 가볍게 털어내야 하는데 지나쳐 갈 수 없는 병적인 ..
우박 한승필 이름도 들은 적 없는 이상한 나라에서 날 도깨비 같은 사람들이 쳐들어온다. 그들과 나는 초면이고 외계인처럼 전혀 말이 안 통한다. 손짓 발짓의 대화는 너무도 답답하다, 무슨 오해가 있었을까, 그들은 처음부터 내게 주먹다짐이다 나는 정신없이 뭇매를 맞고 집 안으로 도..
십 원짜리 동전 한 닢 한승필 지금은 세금이나 낼 때 주고받는 꼬랑지 돈 얼마 전엔 애인과 공중전화도 하고 극장 구경에 꽃놀이 시내버스도 탔던 주머니에 넣기에도 불편한 동전 그래도 홀로 남아 꿋꿋하게 살아가는 너의 삶이 기특하다 쓸모없는 존재면서 쓸모가 있는 일원 짜리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