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 인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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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2016. 2. 27.

인현동은 한때 인천의 최고의 번화가였다

제물포고와 여고 3개를 비롯해 초·중학교 10여 개 학교가 반경 300m 안에 있었고

경인철도 동인천역과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지하상가가 있어

항상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다

 

 

오늘의 출발점인 동인천역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할 때는 청과물시장에 '축현역'이 생겼다

1926년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역명이 상인천역, 다시 1955년 동인천역으로 개명했고 1957년에 역사를 새로 준공한 후

1989년 오랫동안 정들었던 역사를 허물고 민자 역사를 지으면서 인천백화점이 자리했다

인천백화점이 운영난에 문을 닫고 '엔조이쇼핑'이 다시 재기를 노렸으나

다시 문을 닫고 지금은 새로 리모델링 중이다

 

 

 

 

일제강점기 때 마쓰다양조장 건물이었던 빨간 벽돌건물 뒤로

좌측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우측 뉴 아파트가 보인다

 

 

 

 

인현동지하상가

1972년 인천에 최초의 지하상가가 생겼다

동인천역에서 답동사거리까지 길게 늘어선 지하상가는 1972년 새동인천을 시작으로

1974년 동인천, 1977년 중앙로, 1980년 인현, 1983년 신포까지 모두 5개의 지하상가가 조성됐다

차량의 원활한 소통과 보행을 위해 개통되었지만

실제로는 민방공대피용으로 활용할 목적이 더 강했다

 

 

 

 

인천 호프집 화재 희생자 추모비

1999년 10월 30일 시내 몇 고등학교에서 축제가 끝나고

그 기분을 이어가기 위해 학생들은 동인천역 부근 호프집으로 몰렸고

한 호프집 화재로 인해 57명의 학생이 희생됐다

화재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뒤뜰에 있다

 

 

 

 

인현동 화재 학생 희생자

인천 시내 거의 모든 고등학교 학생이 한두 명씩 포함되어 있었다

1971년 대연각화재 165명, 청량리대왕코너 88명 이후

건국 이후 세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대형 화재였다

 

 

 

 

위령비 하단에는 당시 광성고 교사였던 시인 조우성 선생이 지은

"우리 모두 듣는다'라는 제목의 추모시가 적혀있다

 

 

 

 

인현동 전자상가

서울이 세운상가라면 인천은 인현동 전자상가였지만 지금은 한가하다

일제강점기 때 마쓰다 양조장 건물이었던 빨간 벽돌건물은

한때 디스코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인현동 전자상가 골목

한때 100여 개 가깝던 상점도 지금은 30여 개 남짓으로 줄었다

 

 

 

 

서울에 종로서적이 있었다면 인천엔 대한서림이 있다

1953년 처음 문을 연 대한서림은 몇 해전 1,2층은 빵가게에 내주고 3,4층만 운영하고 있다

맞은편에 있던 동인서관도 휴대전화가게에 자리를 내주고 위쪽 학생회관 앞으로 옮겨갔다

 

 

 

 

동인서점

대한서림 맞은편 동인서관이 학생회관 앞으로 옮겨왔다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축현초등학교가 2001년 연수구 옥련동으로 이전한 자리다

학생들이 마음껏 즐길 장소가 없어 이런 불행을 맞았다는 어른들의 자책과 자성으로 마련된 공간이다

 

 

 

 

회관에는 만화방, 보드게임실, 보컬연습실, 노래방, 당구장 등이 있다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야외공연장

 

 

 

 

대동학생백화점

인천에 백화점이 없던 시절 '학생백화점'이 있었다

1층 문구점과 화방, 체육사와 레코드점 2층에는 DJ가 있는 분식집이 있었다

지금도 50년이 넘게 여전히 영업하고 있지만 1층에 문구점과 화방만 운영하고 있다

 

 

 

 

동인천 삼치거리

전국구 명성을 얻고 있는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뒷길 삼치거리다

이 골목길이 삼치거리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966년 '인하의 집'이 현재의 자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삼치와 막걸리를 팔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인천집

예전 이곳에는 일제강점기에 '후까미양조장', 광복 후에 '소성주'라는

인천막걸리의 토대가 된 '대화주조'라는 양조장이 있었다

 

 

 

 

동인천 삼치거리의 원조 '인하의 집'

양조장은 응봉산(자유공원)과 연결되는 수맥에 지하수를 뚫어

약수로 술을 빚어 술맛이 좋았기 때문에 술은 자연스럽게 막걸리가 나왔고

안주로는 인근 부두에서 싼값에 팔리는 삼치를 튀겨 내놓았다

 

 

 

 

동인천 삼치거리

이후 삼치를 곁들인 막걸리집들이 들어서더니 지금은 열대여섯 집의 참치거리가 되었다

 

 

 

 

전환국 터

주화를 제조하던 전환국 자리로서 종전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던 상평통보가 무거워

고종22년(1885)에 서울에 전환국을 설치 1887년부터 서양식 주화를 제조하였으나

주화 제조에 필요한 동을 일본에서 수입 사용한 관계로 원료 운반이 용이한 이곳으로  1892년 5월에 이전 조업하였다

경인철도가 완공된 후 1900년 8월 서울 용산으로 이전했다 

 

 

 

 

예전 전환국 사진

1892년 5월 착공하여 그해 12월에 준공했다

1,550평 대지 위에 벽돌조 3동 건물은 한국 정부 최초의 양식 건축이었는데

1908년 인천여고가 설립되어 교사로 사용되다가 1926년 교사 신축을 위해 철거되었다

지금은 내동, 경동, 용동, 전동, 인현동을 관할하는 동인천사무소와 중구문화원이 들어서 있다

 

 

 

 

우측이 동인천사무소와 중구문화원이 들어서있는 전환국 터고

좌측이 예전 뉴코아쇼핑센터가 있었던 뉴 아파트다

뉴 아파트 터엔 일제강점기 땐 양조장이 있었고 광복 후에는 대형 얼음공장이 있었다

 

 

 

 

인현동 술집 골목을 지난다

 

 

 

 

인현동은 구역은 좁지만 상업지역이라 상점이 많다

 

 

 

 

구 삼화고속 정류소

1970년 2월 23일 운행을 시작한 인천~서울간 고속버스 정류장이었다

예전 종로2가 사거리에서 출발했고 일제강점기인 1935년부터 택시회사가 있었다

 

 

 

 

구 대한천일은행 지점

대한천일은행은 구한말 대한제국 관료층과 상업자본가들이 주체가 되어 설립한 민족은행이다

현재 우리은행(상업은행→한빛은행→우리은행)의 전신으로 1899년(광무3) 1월에 설립했다

우리은행 인천지점은 1899년 5월 10일 개점한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지점이다

 

 

 

 

인천내동교회

현재 한국 최초 교회는 1887년 9월 27일 언더우드목사가 세운 정동장로교회(현 새문안교회)로 알려져 있지만

1922년 발간한 인천내리교회역사에는 내리교회가 2년 앞선 1885년 처음 예배를 드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골목을 걷다 눈에 들어오는 상점을 올려본다

 

 

 

 

지나온 골목을 돌아다 본다

 

 

 

 

헤어숍 BARA

 

 

 

 

커피숍

 

 

 

 

지하상가로 도로를 건넌다

 

 

 

 

SINCE 1972 인현통닭삼계탕

 

 

 

 

다시 지하상가를 통해 동인천역 방향으로 나오자

강냉이, 뻥튀기, 사탕 등 추억의 과자를 파는 가게가 있다

 

 

 

 

인현동 기찻길 옆 쪽방촌 골목

다닥다닥 붙은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140여 개의 집들이

철로를 따라 동인천역에서 배다리 가까이까지 길게 늘어서 있다

대낮인데도 앞을 막은 건물과 방음벽으로 인해 골목은 어둡다

 

 

 

 

'이길있음 ←'

길이 막혔다고 생각해 돌아갈까 그려놓은 듯하다

 

 

 

 

붉은 등이 켜있는 골목

그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일명 '똥골'이라 불린 사창가가 나온다

7, 80년대에는 낮이고 밤이고 역 광장에 포주들이 나와 있었다

 

 

 

 

이 사창가는 그 옛날 용동 기생집에서 일하던 여자들이 흘러 들어오면서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은 집창촌이라 하기에는 세가 많이 약해졌지만

아직도 홍등을 밝히는 집이 여럿 남아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人 어머니'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골목 집 벽에 써있다

 

 

 

 

오늘의 마침점인 동인천역 앞에서 본 인현동

대한서림,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뉴 아파트 등이 보인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거리 4k, 소요시간 1시간 5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