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향기, 비움

modest-i 2017. 2. 19. 21:41

한 제자 여쭙기를 금강경 가운데 사상(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의 뜻을  알고 싶나이다..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상에 대하여 고래로 여러 학자들의 해석이 많이 있는 모양이나 간단히 실지에 부합시켜 말하여 주리라.


아상아라 함은 모든 것을 자기 본위로만 생각하여 자기와 자기의 것만 좋다 하는 자존심을 이름이요,



인상이라 함은 만물 가운데 사람은 최령(최고)하니 다른 동물은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라 마음대로 하여도 상관 없다는 인간 본위에 국한 됨을 이름이요,



중생상이라함은 중생과 부처가 따로 구별하여 나 같은 중생이 무엇을 할 것이냐 하고 스스로 타락하여 향상이 없음을 이름이요,



수자상이라 함은 연령이나 연조나 지위가 높다는 유새로 시비는 가리지 않고 그것만 앞세우는 장노의상을 이름이니,



이사상을 가지고는 불지에 이르지 못하나니라. 






또 여쭙기를 이 사상을 무슨 방법으로 없애오리까...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상을 없애는 데는 내가 제일 사랑하고 위하는 이 육신이나 재산이나 지위나 권세도 죽는 날에는 아무 소용이 없으니 모두가 정해진 내것이 나다라는 무상의 이치를 알아야 될 것이며,


인상을 없애는 데는 육도 사생이 순환 무궁하여 서로 몸이 바뀌는 이치를 알아야 될 것이며


중생상을 없애는 데는 본시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

부처가 매하면(어둠)중생이요,

중생이 깨치면 부처인 줄을 알아야 될 것이며,



수자상을 없애는 데는 육신에 있어서는 노소와 귀천이 있으나 성품에는 노소와 귀천이 없는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니


수행인이 이 사상만 완전히 떨어지면 곧 부처니라...... 

 


 

사자산 적멸보궁 법흥사 카페에서 펌함







사상(四相)

4상은 중생이 실재한다고 믿는 네 가지 상,


라는 관념[아상],


사람이라는 관념[인상],


중생이라는 관념[중생상],


목숨이라는 관념[수자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아상을 자기중심적 사고,


인상을 사람 중심적 사고,


중생상을 동물 중심적 사고,


수자상을 생명 중심적 사고로 해석하기도 했다.

 





1) 아상(我相)- ‘라고 하는 것은 나의 육신, 나의 주장, 나의 직장, 나의 사회적 위치, 나의 능력 등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런 것은 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 변화하기 때문이다.


죽게 되면 모두가 해체돼버리고 육신도 결국 화장하거나

땅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에 이르러 보니

우주안의 모든 사물은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생각은 생주이멸((生住離滅)한다고 하셨다.


따라서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

 

부처님 당시

자아를 신[브라흐만]에게 종속시키는 범아일여(凡我一如)의 신 중심 사상으로서 인간이 신의 노예로 보고 있었다.

부처님은 깨달음 이후 인연의 법칙에 의해

아트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無我)의 진리를 펼쳤다.



아상이란 오온(五蘊), 나의 것이라는 상을 가지고 집착하는 것,

모든 괴로움이란 한 마디로 바로 오취온고(五取蘊苦)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은 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아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상대방이 생겨나고 그로부터 모든 만물이 생겨나

이 현상계가 만들어지게 된다.




다른 상()들도 모두 이 아상으로 인해 비롯된다.

, 인상, 수자상, 중생상은 아상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4상이 각기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아상(我相)이다.

 

라는 아상을 못 여읜다면 범부이고,

모든 상이 다 무너지고, 아상을 여의면 해탈 열반의 경계에 드는 것이다.

 

2) 인상(人相)

모든 법은 인연에 의해 조작된 허구임을 모르고

내가 인간이라는 마음의 인상(개아)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해탈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개아라는 생각 또한 결국에는 라는 상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와 상대에 대한, 혹은 내가 인간이라는 생각에 대한 분별로 보더라도 이것은 라는 상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아상(我相)의 연장이라 하겠다.

 

3) 중생상(衆生相) 넓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혹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나타내는 말로서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모든 생명체를 의미한다. 이 중생상은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가지는 본능적 집착. 중생상을 갖지 말라고 하신 것은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자기 비하적인 견해를 타파하기 위해서다.

부처와 중생을 분별해 자신을 중생이라고 생각하는 이것이 중생상이다. 모든 중생들은 그 자체에 불성을 가지고 있어 누구라도 수행을 통해 성불할 수 있다. 그것이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다.



4) 수자상(壽者相)

오온(五蘊)은 모두가 실체가 없어 한시도 머물지 못하는 무상한 존재인데,

오온은 사라져도 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여기는 그릇 된 착각을 한다. 그것이 수자상이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은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잘못된 견해

따라서 이러한 4상을 극복할 때 해탈 열반을 성취할 수

 

그렇다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아상 = 나라는 모습에 집착하는 것

인상 = 남이란 모습에 집착하는 것

중생상 = 나와 남이 어울려 만든 중생(기득권)이란 모습에 집착하는 것

수자상 = 아상, 인상, 중생상이 영원할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


주관은 나라는 모습에 집착하는 것이고,

 

 객관은 나를 떠나 상대방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나와 남이 어울려 공간이 생기며, 내 목숨이 영원할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을 시간으로 이해했다” -규봉종밀, 성철스님, 아상에서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나온다. 결국 아상이 문제이다.





지금 바로 부처하라 카페에서 펌함



--------------------------------------------------------------------------------------------------------------------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아상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