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재(창의적 공부)

modest-i 2017. 3. 29. 15:39

장량이 고제를 따라 촉땅에 들어가지 않은 것을 논함



논의하여 말한다.

“예전에 항우(項羽)고제(高帝)를 위협하여 한중(漢中 파촉(巴蜀))에 봉하였는데 장량(張良)이 포중(褒中)까지 전송하러 왔다가 떠나 동쪽으로 돌아갔다. 대개 당시에 항우가 재할(宰割)의 권세를 잡고 천하에 승세를 차지하자 보잘것없는 파촉(巴蜀)으로는 일을 도모할 수 없다고 여겨서 떠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장량은 고제에게 휴척(休戚 행복과 불행)과 사생을 함께하여 배반하지 않는 의리가 있었다. 그가 패상(霸上)에서 대치할 때에 승패가 이미 결정되어 목숨이 순식간에 달려 있었지만 오히려 ‘남이 위급할 때 도망을 가는 것은 의(義)가 아니다’고 말했으니, 유독 이때에 기세가 꺾였다고 해서 떠났겠는가. 이와 같다면 누가 감히 장량을 어질다고 하겠는가.”
“그렇다면 장량이 진(秦)나라에 원수를 갚는 이유가 한(韓)나라를 위한 것이고 한나라의 후손 중에 아직도 살아있는 자가 있으니, 그가 한나라의 후손을 구하여 회복을 도모하는 데에 급해서 떠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천명과 인심이 이미 돌아가는 바가 있어서 잠시도 굴신(屈伸)할 수 없다. 그 성패를 논의하자면 범증(范增) 같은 무리도 이미 고제가 천자의 기상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는데 장량만이 몰랐겠는가. 더구나 한나라의 후손 중에는 함께 일을 도모할 만한 인물이 없었는데도 고제를 버리고 한나라에 종사(從事)했다면 또한 누가 감히 장량을 지혜롭다고 하겠는가. 그가 고제를 떠나간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논의를 바란다.”
“대저 천하를 잘 취하는 사람은 반드시 천하의 형세를 먼저 얻는다. 천하의 형세를 얻으려면 반드시 요충지에 웅거해야 한다. 진실로 요충지가 있는데 남들은 알지 못하고 자기만이 안다면 몰래 엿볼 것이니, 밤낮으로 도모하는 것이 그 형세와 그 땅을 얻는 것으로 계책을 삼지 않음이 없다. 굴욕을 피하지 않고 약점을 먼저 보이니, 남이 나를 헤아리지 못하게 하려는 사람은 마땅히 못할 짓이 없는 것이다. 그런 뒤에야 남이 나에게 펼친 것이 나의 땅이 될 수 있고 내가 남에게 굽힌 것이 마침내 그 형세와 그 땅을 얻는 데에 이르러 천하가 나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천 리 옥토(沃土)의 비옥함이 있기 때문이다. 홍하(洪河)와 태산의 견고함과 사마(士馬)의 정예와 창고에 쌓인 것이 모두 그 땅에서 나오는데 천하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상유(上游)의 형세에 웅거하는 것이 진(秦)의 고도(故都)만한 것이 있겠는가. 없다. 그래서 관중(關中)을 얻은 자는 천하를 얻고 관중을 잃는 자는 천하를 잃는다.
관중을 얻느냐 잃느냐가 실로 천하를 얻느냐 잃느냐의 근본이 되는데 항우와 범증은 몰랐고 고제와 장량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의제(義帝)가 관중으로 들어가는 고제를 전송할 때 스스로 이미 천하의 형세와 땅을 얻은 것으로 여겼다. 진법(秦法)을 없애고 삼장(三章)을 약속하였으며 재물을 조금도 범하지 않았으니, 민업(民業)을 안정시키고 민심을 얻을 방법을 다했다고 이를 만하다. 불행히도 항우가 잇달아 들어와서 약속을 어기고 공격을 가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이때를 당하여 고제가 만일 군대를 거느리고 관중을 빠져나가 그 예봉을 피했더라면 유방과 항우는 애초에 원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반드시 무기를 가지고 그 뒤를 밟아야 했겠는가.
그가 굴욕을 꾹 눌러 참고 호랑이 같은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의 성루에 나아가 사죄한 것은 오히려 항우의 노여움이 풀려 약속한 대로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고제와 장량이 바쁘고 위급한 사이에 나아가고 물러나며 주선한 것이 어찌 일찍이 관중으로 계책을 삼지 않아서이겠는가. 끝내 항우는 고제에게 악지(惡地)를 주었으니, 검외(劍外)는 스산하여 용병에 알맞은 곳〔用武之地〕이 아니다. 고제가 봉지(封地)에 나아가고 싶지 않았으나 진실로 알맞은 곳이었다. 장량만은 진실로 한때에 굴욕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필부(匹夫)의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항우와 겨루면 부딪치자마자 부서질 뿐이라고 생각하였으니, 일에 무슨 어려움이 있었겠는가. 더구나 파촉(巴蜀)은 삼진(三秦)과 인접하였으니 파촉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관중을 도로 평정하는 근본이다. 이에 고제를 권하여 봉지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항우가 관중으로 한나라 군대를 방어하는 곳으로 삼을까 우려하여 명장과 정예병〔勁卒〕으로 하여금 진(秦)과 농(隴)의 사이를 지키게 하였다면 한왕과 장량은 민아(岷峨)의 서쪽에 갇힌 두 사람에 불과했을 뿐이다.
만약 항우로 하여금 한나라를 정벌하는 것으로 일삼지 않고 한나라는 우려할 만한 것이 없다고 여기게 하려면 그 방도는 무엇일까? 나의 약점을 보여 상대의 마음을 교만하게 하는 데에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고제에게 잔도(棧道)를 태워버리라고 권한 것이다. 잔도가 태워졌으니 상대의 뜻을 교만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 반드시 ‘왕을 보좌하는 신하를 제거하여 군정(群情)이 흩어진 형세를 보여주는 것만 못하다.’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예전에 항백(項伯)이 밤을 틈타 위급함을 알려주고 장량과 함께 돌아가고자 했던 일이 항우에게서 나오지 않았음을 어찌 알겠는가.
고제가 술자리에서 도망할 적에 홀로 장량을 남겨 사죄하게 하여 초나라가 감히 움직일 수 없었으니, 본래 장량은 초나라의 군신들에게 탄복(憚服)의 대상이었다. 이때를 당하여 소하(蕭何)는 명성이 드러나지 않았고 한신(韓信)은 능력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초나라가 탄복하는 사람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장량을 놔두고 그 누구이겠는가. 이것이 장량이 고제를 떠나 동쪽으로 돌아간 까닭이다. 항우의 군신들은 어리석어 이것을 모르고는 장량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유방(劉邦)이 이미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 떠났으니 한나라는 우려할 만하지 못하다고 여겼다. 패왕의 기세에 둘러싸여 일찍이 한 번도 동쪽으로 머리를 돌려 바라보지 않다가 마침내 고제로 하여금 한 번 거병(擧兵)하여 삼진을 평정하게 하자 천하가 초나라에 돌아가지 않고 한나라에 돌아왔던 것이다.
그가 기틀을 기묘하게 하고 생각을 은밀하게 하여 나의 약점을 보여 상대의 뜻을 교만하게 한 것이 어떠한가.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소하가 도망하였다고 이르자 망연자실한 마음을 가졌으면서 유독 장량이 떠남에 일찍이 그가 떠나는 것을 저지하는 말이 한마디도 없었겠는가. 그래서 ‘고제가 촉에 들어간 것은 장량의 계략이고, 장량이 따라가지 않은 것은 고제의 마음이다.’고 말하는 것이다.


두 어진이를 군신(群臣)과 사졸(士卒)에서 얻었으나 군신과 사졸이 모두 알지 못하였고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역시 소하뿐이었다. 그래서 한신이 도망하자 소하가 좇아갔던 것이니, 반드시 이것으로써 깨우쳐 그를 되돌아오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하가 한신을 대장으로 추천하면서 ‘반드시 한중에서 오래 왕 노릇할 작정이면 한신을 쓸 바가 없을 것입니다…….’ 라고 말한 것은, 이것으로써 그를 깨우치지 않을 수 없어서이다.
고제가 관중으로 돌아오자 장량도 한(韓)에서 왔다. 지난날 세 사람이 주획(籌畫)했던 것이 지금에 꼭 들어맞은 것 같지만, 소하를 관중에 남겨두어 군사를 조련하고 군량을 운용하여 끊이지 않게 하였기 때문에 싸우면 반드시 패하였지만 위망(危亡)에는 이르지 않았으니, 대체로 관중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항우가 싸우면 비록 반드시 이겼지만 한 번 지자 돌아갈 곳이 없어서 멸망에 이른 것은 그 기반을 잃어서이다.



아, 항우가 관중을 버리려고 할 적에 한생(韓生)의 유세를 항우가 만약 받아들여 그를 채용했다면, 항우에게 있어서 한생은 고제의 장량이었을 것이다. 말이 겨우 입에서 나오자마자 끓는 물과 타는 불이 이미 갖추어졌으니, 항우가 대업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조짐이 이미 나타나자 고제와 장량은 가만히 서로 눈웃음을 쳤으리라.

범증(范增)이라는 사람은 항우의 모신(謀臣)이 되어 일찍이 하나의 계책을 내거나 하나의 일을 도모하지도 못하고,

천하가 이미 안정되었다고 생각하여 항우를 받들고 서쪽으로 갔다.

형편이 궁해지고 일이 지난 뒤에 바로 항우를 배반하고 떠났으니,

장량이 포중에 이르러 한제(漢帝)를 떠나간 것과 같은가 다른가.

삼가 논의하였다.”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에서 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