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트라빈스키 마사 그레이엄

modest-i 2020. 2. 9. 19:02

蛇足1) 얼마전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 벙개를 가면서 마음 한편으론 평일날 야외로 놀러나 다니는 한가한 사람 취급을 받을까

        많이 꺼림직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사의 도입부를 들어가는데 아프리카는 피해 갈수 없는 관문 이었기에 감히 실행을

        했었죠. 저는 솔직히 거기에 있던 많은 전시물보다는 한시간 가량의 공연이 더 좋았습니다. 물론 많은 부분이 연출되고

        전문가들에 의한 공연이었지만 그들 검은 피부의 아프리칸들이 내뿜는 열정과 땀, 공연이 달아 올랐을때 신들린듯 뿜어져

        나오는 그들 안의 어떤것들에 감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19세기말,,20세기초 유럽의 화가들도 제가 느꼈던 그런것에

        감전 되었을겁니다.

        마티스도, 피카소도.. 아프리칸의 열정과 원시성과 야수성,,그리고 순수함,,

        문명의 선구자이자 개척자라고 자부하던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의 원시성과 순수성에서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열게 된것은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蛇足2) 참,,우연하게 제가 이글 쓰기전에 게츠비님이 <봄의 제전>이라는 글을 우미갈 문화리뷰에 올려주셨죠.

          그래서 참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글을 통해 게츠비님께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배경으로 나오는 음악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봄의 제전 Le Sacre du Printemps에 들어가있는 곡입니다.

 

 

 

30일 재생기간 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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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umn Control
 

 

Alexandra Ansanelli as Princess Aurora and David Makhateli as Prince Florimund in a Royal Ballet

production of Sleeping Beauty, 29 April 2008.

 

 

리가 서양 춤의 고전을 생각할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것은 바로 고전 발레 입니다.

고전 발레는 많은 시간동안 관례의 중첩과 형식의 반복과 구체화로 인해 생긴 유럽 문화의 자존심이라고 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 <관례>라는 것이 형성 당시에는 유효하고 또한 필수적이기 까지 했지만

영원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고전 발레의 의상이나 자세, 움직임, 행위등은 예술 형식으로서의 무용을

궁중 또는 민속무용으로부터 점차 분리 시켜온 관례들로서, 이러한 관례들의 대부분은 19세기에 형성 되었습니다.

 

 

Loie Fuller (also Loïe Fuller; (January 15, 1862 – January 1, 1928)  로이 풀러 [Loie Fuller, 1862.1.15~1928.1.1]  

 

러한 고전적 관례에 충실했었던 시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미국 출신의 한 여성 무용수는 파격을 일으키게 됩니다.

르와 플러(로이 풀러)는 1890년대에 인간의 행위가 아닌 채색된 베일의 소용돌이를 이용하여 추상무용을 성공 시켰습니다.

넓고 긴 스커트에 여러가지 색채의 전기 조명을 쏘아서 이른바 '스커트 댄스'라는 것을 선보였는데 그녀는 이후에 그녀의 스커트에

나비나 뱀, 용등의 무늬를 넣어 큰 인기를 모으게 됩니다.

 

그녀의 이런 공연 장면과 공연 포스터등은 많은 화가들의 소재로도 사용되었습니다.(로트렉과 같은)

 

그녀는 이사도라 덩컨과 함께 종래의 무용음악에 따르지 않고 베토벤, 멘델스존, 드뷔시등 코서트 음악에 따라 춤춘 최초의 무용가로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사도라 덩컨 [Isadora Duncan, 1877.5.26~1927.9.14]

 

시 미국 출신인 덩컨은 전통무용을 배격하고 창작무용을 창조적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무용가라고 할수 있습니다.

자연과 고대 그리스 예술에서 영감()을 찾았으며, 내적 표현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때까지 무용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음악작품을 처음으로 무용에 도입하였습니다.

 

이사도라 덩컨도 1900~1920년대에 신체의 표현적인 움직임 만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바 있습니다.

그녀는 일화적 요소나 무대 장치를 배제하고 코르셋을 벗은 자유로운 신체만으로인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할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러한 작품들을 발표 하였습니다.

 

잘 알려진것 처럼 그녀는 프랑스 니스에서 50살의 나이에 달리던 자동차 뒷바퀴에 스카프가 걸리면서 질식사 하고 맙니다.

그녀의 무용은 일회성과 즉흥적인 성격이 강하여 일정한 체계가 없어기에 계승되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수많은 젊은 무용가들을

자극하고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20세기의 모던 댄스는 그녀를 시조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Le Sacre du Printemps

 

 

<봄의 제전>은 러시아의 디아길레프 발레단 이 전통 발레를 농민무용이나 원시적인 무용 형태와 결합해서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물론 처음 무대에 올려 졌을때 수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에게 야유를 받았지만..

 

이러한 데뷔의 광경은 인상주의 작품들의 첫전시 할때와 아주 많이 비슷하다는것은 재미있는 사실 입니다.

전체적인 구성은 특별한 스토리 텔링 없이 오랜 옛날 러시아의 이교도적인 종교의식을 연상케 하는 장면의 반복으로서

다분히 이교도 적이고 성적이며 집단적인 힘이 느껴 집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고전 발레와는 확연히 다른(음악부터 무대 장치 안무에 이르기 까지 거의 대부분이) 시도였고

그들의 의도는 선사시대에 행해졌던 무용을 다시 부활 시키려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Le Sacre du Printemps /봄의 제전 1913년, 파리 샹젤리제극장.

 

스트라빈스키의 동명의 음악을 바탕으로 디아길레프가 제작한 발레.

원어명 Le Sacre du Printemps
장르 발레
음악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대본 바슬라프 니진스키
초연안무 바슬라프 니진스키
초연연도/장소 1913년, 파리 샹젤리제극장

태양신에게 처녀를 산 제물로 바치는 태고의 의식을 무용으로 표현하고, 

음악적으로는 리듬이 지닌 원시적인 에너지를 생생하게 표현한 것에 큰 특징이 있다.

 

[제1막] 1.봄의 소리─청춘남녀의 춤 2.유혹의 식전 3.봄의 론도(Rondo) 4.패권을 다투는 부락의 경기 5.성자의 행렬 6.대지에의 찬양 7.대지의 춤.
무대는 원시시대의 황폐한 고원, 춤을 추는 남녀들, 차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흥분한 청춘남녀들은 제각기 짝을 찾아 론도의 춤판을 벌인다. 이어서 경기가 시작되고 이때 부락의 장로격인 수장이 나타나 이를 진정시키고 대지를 찬양하는 의식이 있은 뒤, 대지의 춤을 추게 된다.

 

[제2막] 1.서주(overture) 2.젊은이들의 신비로운 모임 3.선택된 젊은이에 대한 찬미 4.조상의 출현 5.조상의 의식풍인 움직임 6.신성한 춤 7.선택된 처녀.
어둠이 짙은 한밤중, 언덕 위의 대리석 성전에서 젊은 남녀들의 신비로운 춤판이 벌어지고 봄을 맞이하기 위해 처녀를 희생으로 바치는 의식이 거행된다. 이어서 처녀들 가운데서 순결하고 아름다운 처녀를 선택하고 그 처녀를 중심으로 봄을 찬양하는 춤을 춘다. 이때 처녀들은 증인으로 이 의식을 축하하고 지켜본다.

이 작품은 고도로 복잡화된 예술을 파괴하는 의미를 지니는데 니진스키의 안무에 의한 파리의 샹젤리제극장에서의 초연은 비난과 칭찬이 엇갈리는 가운데, 거센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배경음악스트라빈스키의 대표작인 동시에 20세기 음악의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로 손꼽힌다.

 

드뷔쉬는 이 유명한 공연의 초연에 참석 하였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이작품을 평합니다.
" 유례없이 야만적인 공연(중략) 모든 현대적인 설비에 위한 원시적인 공연"
 

위의 캡쳐 사진은 게츠비님께서 우미갈 문화리뷰에 올려주신 자료 화면중의 하나입니다.

 

봄의 제전 초연 장면을 영국 방송국의 드라마중에서 재연 한것인데 무대 세트와 의상 그리고 댄스등 많은 부분이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수작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초연 당시의 관중과 평론가들의 여러가지 반응도 무척 재미있구요.

 

 

Nicholas Roerich's 1913 set design for Part I: Adoration of the Earth.

 

위의 그림은 봄의 제전의 최초 제안자중의 하나인 러시아의 화가 니콜라스 레리히의 1913년 초연을 위한

무대 디자인 초안중 하나 입니다. 위의 다큐 드라마의 무대 세트와 비교해볼때 거의 동일함을 알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니콜라스 레리히가 1930년 미국에서의 봄의 제전 공연을 위한 무대 디자인 그림입니다.

아래 사진을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American stage premiere of Igor Stravinsky's Le sacre du printemps   Stage setting and costumes by Nicholas Roerich
Martha Graham: above center & below     April 1930

 

미국에서 1930년에 공연된 봄의 제전에서는 미국이 낳은 걸출한 모던 댄스의 선구자인  

마사 그레이엄이 주인공 역할을 하였습니다.

미국 모던댄스의 선구자로서 군무와 독무작품 120개 이상을 남겼고

이사도라 덩컨과 더불어 20세기 무용계의 독창적 무용가중 한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마사 그레이엄 [Martha Graham, 1894.5.11~1991.4.1]  

 

 

의 제전은 이미 과거속의 작품으로 기억 되지만 모던댄스의 첫단추를 끼웠다는 무용사적 커다란 비중과는 별개로

작품안에 내재해 있는 독창성과 생명력과 파격으로 인해 그후 수십년간 오늘날 까지도 많은 안무가들과 실험적인

무용가들에 의해 리메이킹되고 현재도 무대위에 자주 올려지곤 하는 작품중 하나 입니다.

 

기획자 또는 안무가들에 의해 재해석 되어지는 봄의 제전은

이전의 고전적 발레의 관행과 관례에 대한 반항이자 도전 이었다고 할수 있을 겁니다.

이는 미술분야에 대비해 보자면 인상주의자들의 태동기의 혼란과 비판에 버금가는 파격이었습니다.

 

이러한 파격과 도전이 미술분야는 물론 이고 음악과 무용계까지 파급되어지는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세계대전전의 어수선한 시대 상황이나 물질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 또는 세기말적인 사상등과도

연관이 있을것이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좀더 명확하게 이러한 예술 활동이 태동하게 되는 계기를 살펴 보는것이 좋을듯 합니다.

이는 비단 봄의 제전이라는 이상한 모던 댄스 또는 덩컨등 특이한 몇명의 무용가들에 의해서만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닌것이 틀림 없기 때문 입니다.

 

 

 

원시로 돌아가다 - 순수와 본질에 대한 탐구

 

 

위의 사진은 봄의제전을 소재로한 영국 BBC 방송국의 작품중 한 장면입니다.

 

원무는 어떤 형태이든 동서양을 불문하고 나타나는 춤의 형태이지만 원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는 원시적이면서도 에너지가 넘쳐 나는것을 느낍니다.

(우리나라의 강강술레나 농악무 또는 칼춤, 장구무등을 보면 항상 원무가 빠지질 않죠,,^^ 저는 원무가 나올때가 가장 므흣합니다,ㅋ)

 

 

 

The Dance (second version), 1910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러시아의 실업가 슈츠킨은 1909년에 마티스의 작품을 여덟점이나 구입 합니다.

이때 그는 특별히 그의 모스크바 저택 계단에 걸어 놓을 두점을 주문하게 되는데 위의 대작 <댄스>가 그중 한점입니다.

 

위의 그림을 볼때 우리는 마치 문명을 떠나 선사시대의 최초의 무용이나 기원을 목격하는듯한 착가에 빠져 들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봄의 제전>은 바로 디아길레프가 이끈 러시아 발레단에의해 1913년 초연되었는데

<봄의 제전>은 마티스의 그림이 슈추킨의 계단에 걸린해인 1912년 작곡되어1913년 초연되었습니다.

 

마티스가 후에 디아길레프 발레단을 위해 무대디자인을 해준것으로 보아서 그는 처음부터 그들에게 흥미를 가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마티스는 그들의 무용 보다는 이들의 영감의 우너천이 되었던 민속무용에 더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 집니다. 

 

 

Le bonheur de vivre, 1905-6, Barnes Foundation, Merion, PA

 

위의 The Dance (second version), 1910 보다는 먼저 제작 된 삶의 기쁨이라는 이작품에서도(댄스 보다 크기도 작지만)

원무를 추고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댄스>에서 보여지는 원무의 축소판(거의 일치 합니다)이라고도 할수 있는 부분에서

이미 마티스의 원시적 에너지에 대한 열망과 스스로 찿아낸 방법론을 알수 있습니다.

 

이사도라 덩컨 역시 1909년 파리에서 그녕의 춤을 초연하며 호평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지만

분명한것은 그녀의 이러한 실험적인 춤이 마티스에게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점입니다.

덩컨은 나름대로의 원시주의에 대한 열망을 가진 표현주의자 였으며 그녀에게서 마티스는 영감을 받았을 것입니다.

 

리는 이 시점에서 여러가지 과제를 부여 받고 있습니다.

크게 볼때 하나는 크게 낮설지 않은 전통과의 단절의 문제 입니다.

조금더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단절이라는 표현 보다는 반항과 거부가 더 맞는 말일수도 있겠군요.

 

다른 하나는 원시주의 입니다. 지금까지 미술사를 공부하며 거의 나오지 않았던 단어중 하나 입니다.

지금까지 미개한 문명이나 과학 기술을 개척하고 문화의 계승과 발전만을 도모하던 인간들이 뜬금 없이 원시를 열망한다는것은

아이러니컬 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홈볼트나 푸생, 다비드등이 고대 로마나 그리스의 정신과 문화를 배우고 재현하려는 과거로 부터의 문화 혁명을

도모한적은 있었지만(르네상스도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원시로의 열망은 지금까지 볼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부터 차근히 하나씩 살펴 보도록 하죠.

 

 

 

통과의 단절은 이미 다비드와 들라크루아와의 대립적인 현상에서 이루어 졌다고 할수 잇을 겁니다.

그후의 많은 작가들은 바로 이러한 전통과의 결별 또는 새로운 현상의 발견의 선구자의 지위를 원하고 있음을 알수 잇습니다.

 

 

 

르비죵파의 신화와의 결별이 그러햇고

인상주의 자들은 빛을 찿아 형상을 포기 햇으며

고흐는 고유색을 포기 함으로서 오히려 색으로서 자신의 감을 표현하는 길을 찿았고

(물론 생명까지 포기한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고갱은 자신의 그림에서 친절한 안내를 포기한 덕분에 상징의 방식을 찿았죠.

그 이후의 많은 작가들 또는 작가군들이 기존의 것들을 버리는 대신 무엇인가를 획득 하려고 노력 했음을 우리는 지금까지의

미술사 공부를 통해 알수 잇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그들을 이러한 험난한 길로 인도 했던 것일까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인간과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기 위해 끝없는 논쟁을 벌려왔던것 처럼

20세기 초 작가들은 예술의 본질과 순수함을 찿는게 주요 화두 였던 겁니다.

 

우리는 이미 낭만주의 시기 이전부터 많은 화가들이 동양에 대한(물론 훨신 이전에는 고대 그리스에 대한 탐구가 유행이었지만)

신비로움과 호기심에 들떠잇던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러한 대부분의 지적 호기심과 노력은 다분히 낭만주의적 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다분히 낭만주의적이라고 감히 단언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점점 더 강하게 미술은 문학과 등을 돌리는 일들이 많아 졌기 때문입니다.

위에서도 잠깐 업급했던것 처럼 바르비죵 파들이 자신들의 그림에서 신과 신화를 지워나가는 이러한 일련의 작업 태도들은

고전주의적인 것의 핵심이라 할수 있는 문학과의 관계에서의 단절 현상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이제 미술가들은(자신이 모더니스트라고 생각하는) 더이상 신화를 읽지 않았고

자신의 그림에 천사나 바쿠스를 그리지 않았고 또한 그래야만 했습니다.(고리 타분 하다는 평론가들의 질타를 받지 않으려면)

심지어는 상징주의의 시인들이 그러 했던것처럼 문학가들 자신 조차도 이러한 고전에서의 탈출과 배반이

자신의 가야할 길이라고 믿었던듯 한 인상도 강하게 받을수 잇습니다.

 

 

러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두드러진 예술가들의 경향을

한마디로 요약해 보면 바로 원시주의로의 지향이라고 정리할수 있습니다.

 

즉 서구에서 지금까지 정통 또는 전통이라는 감히 범접할수 없을 정도의 지위를 구가하던

대부분의 형식과 관념들로 부터 등을 돌리게 된것이라 할수 잇을 겁니다.

 

일본의 목판화

아프리카, 남태평양,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부족미술,

페르시아와 인도의 회화,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등

 

 

 Located in Madhya Pradesh, India, the Bhimbetka rock shelters date back 9,000 years

 

이러한 요소들은 당시의 작가들이 지금까지의 구태한 예술로 부터 등을 돌리는데

좋은 계기이자 그들의 새로운 작업을 여는 좋은 소재거리이자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현상들은 18세기 부터 유럽인들을 지배해온 역사주의의 사고와 맞아 떨어져서

미술활동의 본질 적이고 영원한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예술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들은 최초의 예술의 형태.

원시인들이나 고대인들의 사고,

원시 동굴벽화에 남겨진 그들의 흔적.

사람이 만들어낸 인간 형상의 신이 아닌 하늘에 존재 할것 같은 정말 무서운 신들,

 

 

Fang mask used for the ngil ceremony, an inquisitorial search for sorcerers. Wood, Gabon, 19th century.

 

보다 근원적이고 순수하다고 느껴지는 것에 대한 탐구와 호기심이 예술가들을 유혹하였고

이러한 일탈은 새로운 예술을 이끌어 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바로 <봄의 제전>도 이러한 시대 상황의 결과물이라 할수 있다는 겁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Les Arbes Verts ou Les Hetres de Kerduel, Maurice Denis, 1893

 

리스 드니는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르네상스식 회화의 종말을 예견 합니다.

 

" 회화란 전쟁터의 말이나 나체의 여인 또는 어떤 일화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어떤 질서에 의해

배열된 색채들로 뒤덮힌 평평한 표면이라는 사실을 기억 하여야 한다"

 

드니는 이말 한마디로 지금까지 천 몇백년동안 수없이 많은 화가들이

그들의 작품에 표현하려했던 <암시 또는 묘사, 표현>에 대한 그들의 피나는 노력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렷습니다.

 

이말은 추상미술을 예단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기도 하며 즐거운 그리고 교육적 역할을 하는 일관된 방법과 양식에 의한

재현적 미술의 종말을 예견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앞으로 우리들이 보는 그림들은 보아서 즐겁지 않고 교육적 이지도 않으며

일관된 방식이 아닌 제멋대로이며 알아보기 힘든 미술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물론 문학적인 서술성도 당연히 볼수 없는것이구요.

 

19세기 후반부의 전위적인 작가들은

누가 최초로 <거기>에 도달 하여 진정한 추상적인 작품을 최초로 제작 하였나라는 달리기 시합을 하듯이

전통 미술의 정수를 무시하는것에 치중 합니다.

 

음전해 보이는 세쟌이 그랬었고  혼란한 정신세계를 지닌 고흐도 그랬었듯이

 

"감정이 우선하고 이해는 다음에 온다"는 말로 원시주의자인 고갱도 그러했습니다.

 

 

소설가인 샤를루 루이 필립은 당시의 이러한 고갱 신화에 대해 이런 말로 정의 내립니다.(1897)

 

" 고상함과 예술애호적인 태도의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가 지금 필요한것은 야만인들이다.

   정열의 시대가 오늘날 시작 되고 있다."

 

 

10년후 앙드레 지드는 다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1907)

 

" 고상함과 예술애호적인 태도의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가 지금 필요한것은 야만인들이다."

 

 

 

 

앙드레 지드가 이말을 한시기는 1906년 이미 죽은 고갱의 회고전이 파리에서 개최된 이후인것이라 의미 심장 합니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고흐, 고갱등이 낭만주의적 관점의 작가 들이었다면 

계산적이고 치밀했던 쇠라의 작품은 고전주의적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수 잇습니다.

 

점묘주의 또는 분할주의라고도 불리어지는 쇠라의 기법은 현대 미술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데

이러한 쇠라의 합리주의적인 기법은 몬드리안과 구축주의 미술을 거텨 오늘날 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반면에 세쟌은 그의 작품속의 문학성을 보면 고전주의적이었다고 할수 있지만

(실제로 그는 고전주의의 대가인 푸생을 항상 찬양하고 다녔습니다)

루벤스와 들라크루아를 따라가고 싶은 낭만주의자이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많은 평론가들이 세쟌을 모순에 가득찬 작가라고 평하기도 하며

이러한 이중적인 모호함과 다양성이 이후의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것 입니다.

 

 

 

Venus and Adonis - Nicolas Poussin - 1624 - Kimbell Art Museum, Fort Worth, Texas.

 

이러한 세쟌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중 한명이 마티스라고 할수 잇습니다.

그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가운데서도 세쟌의 '목욕하는 여인들" 소품을 한점 구입하고

향후 그의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세쟌의 그림에서 발견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Les Grandes Baigneuses, 1898–1905: the triumph of Poussinesque stability and geometric balance.

 

" 이그림은 내가 미술가로서 모험을 시도한 중대한 시기에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이 그림은 나에게 신념과 인내심을 심어주었다."

 

마티스는 세쟌의 이 소품에서 기하학적 특성이 아닌 <색채와 표면>을 발견 하였고

<흐르는듯한 선과 절제된 구성>을 찬양 하였습니다.

 

세쟌의 그림은 마티스로 인하여 어쩌면 진부하고 모호한 고전적 그림에서

진보적 영역의 새로운 미술로 복귀하게 되었던것 또한 사실입니다.

 

 

 

 Ferdinand Hodler

 

세쟌과 함께 또다른 진보적 고전주의적 작가라고 할수 있는 위대한 작가중 한명이 바로 페르디난드 호들러 입니다.

그는

종교적 조화와

인간사이의 유사성

웅장하고 단순한 조화를 위해

자연주의와 견고한 구성을 사용 합니다.

대칭적 병렬법과 엄격한 배열 형태와 선의 반복 사용 등으로 명확하고 사실적인 표현법을 사용 하였는데

마치 이집트 미술과 비잔틴의 모자이크에서나 볼수 있을 법한 이러한 방법은 <병렬주의>라고 불리워 집니다.

 

그의 작품의 영향력은 마티스, 뭉크, 몬드리안과 독일의 표현주의,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등에서 찿아 볼수 잇습니다.

 

 

 정말 무지하게 길죠? ^^ 감사합니다..

 

카페 미술관 즐겨찾기 에서 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