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향기, 비움

modest-i 2013. 9. 8. 13:25

Why] [한성희 박사의 女子 토크] 혼자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입력 : 2013.09.07 03:38


	한성희 박사의 女子 토크 일러스트
지은씨는 퇴근할 때면 언제나 물먹은 솜처럼 몸이 피곤하다. 어제도 오늘도 같은 일상 속에 하루가 간다. 딱히 다급한 고민도 걱정도 없는 나날이건만 반복되는 일상에 함몰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지루하고 우울하다. 복잡한 하루의 업무가 끝나고 혼자임을 느끼는 순간 공허함이 밀려온다. "시원한 맥주 같이 마시고 싶은데 누구 없을까?" 지은씨는 여기저기 전화를 건다. 목이 아닌 관계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약속을 만든다.

1년 전 결혼한 28세 여성 선아씨. 가냘픈 얼굴에 스타일리시한 옷차림이 돋보이는 젊은 여성이다. 그녀는 한참 행복해야 할 신혼임에도 반복되는 자살사고와 자해로 병원에 오게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던 선아씨에게 열 살 연상의 남편은 꿈속에서 그리던 백마 탄 왕자였다. 사실 선아씨의 증상은 오래전 시작되었다. 사춘기 이후로 누군가가 옆에 없으면 견딜 수 없었다. 예쁜 외모 덕에 곁에 늘 남자친구들이 있었지만 혼자 있으면 무언가 텅 빈 느낌이 들고, 그럴 때면 손목을 긋고 폭음을 하곤 했다. 이런 선아씨에게 남편은 구세주 같은 이상적 대상이었다. 남편은 마치 아이를 다루듯 모든 것을 선아씨에 맞추어 주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곤 했다.

그러나 신혼의 단꿈이 사라질 무렵 달콤했던 환상적 관계도 추락하고 말았다. 남편의 사랑과 관심에 집착하는 그녀에게 남편은 너무 바쁜 사람이었다. 사업에 바쁜 남편이 늦거나 연락이 안 되면 선아씨는 자신이 버려진 느낌을 견딜 수 없어 술을 마시고 분노 폭발을 보이게 되었다.

선아씨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모습이고 지은씨는 보통 우리네의 모습일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유독 한국인들은 크고 작은 모임 속에 안주하고픈 심성이 강한 듯하다. 온라인상의 무수한 블로그·카페는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동호회·향우회·동창회·계모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마치 거미줄 같이 펼쳐 있다. 이 거미줄은 나를 받쳐주는 안전그물이기도 하고 나를 규정짓는 사회적 통로이기도 하다.

문제의 핵심은 혼자임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관계중독'은 다르다. 콘센트에 플러그가 연결되어야 작동되는 전자제품처럼 끝없이 타인과 연결되기를 갈망하고, 연결이 확인되지 않을 때 불안과 공허에 빠진다면 당신은 관계중독이다.

언제나 자신을 지켜줄 누군가와 연결된 끈을 찾아 헤매왔던 선아씨는 '끊어진 관계'에 대한 첫 기억으로 서울역에서 엄마 손을 놓친 순간을 떠올렸다. "우리 엄마는 모성이 선택적이에요. 나는 인내를 가진 엄마를 갖고 싶었어요." 그녀에게 엄마의 사랑은 예측 불가능의 일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엄마의 사랑을 필요로 한다. 엄마의 따뜻한 위안과 공감 속에 성장한 아이는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터득한다. 안정적 애착 속에 자존감을 키운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엄마가 옆에 없어도 분리불안을 겪지 않는다. 이미 건강한 모성이 아이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더불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잊으려 누군가에 의존하려 한다면 그 순간 외로움은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아직도 혼자 있을 수 없다는 어른이 있다면, 외부에 끝없는 위로와 지지를 갈구하기보다 스스로 자기 위안의 기능을 하나 둘 만들어 비어 있는 내면을 채우는 것이 현명하다.

사람을 사랑하고 인간관계를 좋아하지만 아무도 없는 자신만의 시공을 불안과 공허감 없이 잘 견뎌내는가? '혼자임을 견딜 줄 아는 능력.' 이것은 정신의학적으로 중요한 성숙의 기준이 된다. 관계중독에 걸린 사람은 '나'는 없고 '너와 나'만 존재하며 타인과의 심리적 거리를 용납하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혼자의 시간을 고통스러워하기보다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