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걸음 양보함

modest-i 2015. 2. 24. 15:01

 

1980년대 초반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역임한 盧信永 (81)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와 인터뷰
 
노신영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너그러운 데가 있다. 재임 당시 아침에 보고 들어가면
당시 경제부총리 등으로부터 뭘 배우고 있다.
그래서 내가 '뭘 배우셨습니까?' 하면 '아! 총리, 내가 무식하잖아.
내가 경제를 모르니까 배운다.
알아들을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 힘들다.'고 했다.
또 저녁에 군인들이 오면 '너희 무식하지,
나도 무식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엘리트 관료에 대한 신임이 컸다고 대답했다.
이 증언에서 전두환은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배울 줄 아는 진정한 유식자였고 겸허한 지도자였고
지혜로운 통치자였음을 감지하게 된다.
 
또 "전 전 대통령이 한때 후계자로 생각했다는 얘기도 있는데…"라는
기자의 질문에 노신영 전 안기부장은
"지금도 내가 전 대통령과 가깝게 지낸다. 그런 것 포함한 것 아니겠나.
전 대통령은 나더러 그랬다. 이북 출신이니 더 좋지 않소.
경상도, 전라도로 치우치지 않고. 그런데 언젠가 나보고
농담 삼아 그러더라. 총리보다 더 높이 했으면 안 좋을 뻔했다고"고
대답했다. 전두환의 지역주의 초월의식을 느낄 수 있다.
"외무장관 시절 전두환 대통령의 외무부 직원 숙정 요구에
당시 68명을 자르라고 했는데 이들 중에 군인 출신은 다 자르고,
외무부 출신은 다 살렸다"는 노신영의 대답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외무부에서 군인들을 숙정해도 수용하는 실용주의자"임을 증언한다. 자만에 빠진 김대중이 자기 패당을 숙정하면, 수용했겠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도 인연이 각별하다고 들었다"는 기자의 질문에

노신영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70년대 초, 인도에서 근무할 때 젊은 친구가 왔기에 누군가 했더니
반기문이라고 하더라.
그때 그가 자기는 미국에 갈 수도, 유럽에 갈 수도 있는데 나를 따라왔다고 하더라.그래서 데리고 일했는데 참 부지런하고 요령있게 일을 잘했다.
내가 일 가르쳤다. 1980년 외무장관으로 오는데 따라오겠다고 해서 데리고 왔다.또 국무총리 됐을 때도 같이 가겠다고 해서 총리 의전비서관으로 삼았다.우수하고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 10명만 있으면 나라가 잘 된다"고 대답했다.이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전두환 정권과 노신영 밑에서 자란 인물이라는사실을 말한다. 군인들은 민주팔이들보다 더 인사에 합리적이고 진보적이다.이상의 대답들에서 시사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박정희와 전두환이 한국의 경제를 지키는 애국자가 되고,
김영삼과 김대중이 한국경제를 말아먹은 매국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증거가 위의 대답 속에 있다.
스스로 경제를 잘 모른다고 자랑한 전두환은 전문가들을 존중하여
결국 한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지식과 판단을 가진 겸허하고 지혜로운
통치자였던 것이다.
 
전두환을 머리 나쁘다고 매도하는 것은 시기와 증오에 찌든
김대중 패당의 거짓선동일 뿐이다.
반면에 전체주의적 군중 선동꾼 김대중은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들을
잘 아는 체하면서 한국의 경제와 금융을 국제금융세력에게 똥값으로
팔아넘긴 무식한 매국노의 역할을 했다.
 
김대중은 김일성과 같은 부류의 겉똑똑이였다.
김대중이 매국노가 된 것은 그가 모든 분야에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전문가들보다 더 잘 안다는 자기체면에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망한 것은 김일성의 교시 때문에 성공했다는 전지전능의
우상화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김대중이 만약 전두환처럼 "아! 총리, 내가 무식하잖아.
내가 경제를 모르니까 배운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면,
IMF사태 당시에 한국 경제와 금융을 수십 년이나 후퇴시키지 않았을 것이다.김영삼과 김대중이 허풍스러운 겉똑똑이라서 IMF사태를 당했다.
이런 전문가 존중정신으로 경제를 살린 지혜로운 통치자였던
전두환을 조선일보나 네이버가 마치"나도 무식하고, 너희(군인)들도 무식하지"라고 선동하는 것은 김대중식 선동에 불과하다.
 
김대중-노무현 좌익정권 당시에 한국의 언론계에
호남지역주의자들과 좌익선동꾼들이 많이 침투함으로써,
자신의 무지함을 자랑하던 전두환의 지혜와 겸손을 이해할
능력을 가진 기자들이 거의 없다.
한국의 경제, 안보, 치안 등에 관해 겉똑똑이인 김대중은
깊은 퇴보를 한국사회에 몰고 왔다.
 
반면에 전두환은 한국의 경제를 민주화가 작동되도록 발전시킨
간접적 민주투사였다.전두환의 최고 미덕은 "아! 총리, 내가 무식하잖아.
내가 경제를 모르니까 배운다.알아들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 힘들다"고 말한 '자기한계에 대한 솔직한 긍정'이다.
 
김대중-노무현-김영삼 세력이 전두환과 박정희의 실리주의를
감사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겉똑똑이 민주팔이들에 의해서
망해갈 것이다.
 
한나라당의 김성식이라는 저질 민주팔이가
"특권층만의 보수가 아닌 건강한 보수 향해야"라며
보수 세력을 '병든 특권세력'으로 매도하는데,
그런 민주팔이야 말로 오히려 병든 정치의식에 찌든 것이다.
광신적 민주팔이들을 진압한 전두환은 김대중과 같은
거짓메시아가 군중선동으로 사회혼란을 조장할 때에 단호하게
질서를 유지시킨 역설적 민주투사다.
 
김대중이나 김영삼이 1980년에 집권했다면,
하버드의 보겔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사회는 어렵게 되었을 것이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화를 가능케 만든 경제적 여건을 마련한
전두환에게 감사해야 한다.전두환은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경제전문가였다.
김대중이 경제를 말아먹은 결정적 이유는자신이 경제에 무지했기 때문이다.한국에 경제학자들이 많지만, 서울대 경제학 교수들을 비롯해서,
모두 좌파적 프로파간다에 빠져서, 김영삼 정권 말기와
김대중 정권 초기에 IMF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가
바로 한국 경제학의 수준이었다.
 
김대중 정권이 갓 출범했을 때에, 김대중은 전 세계에서
IMF의 실체와 그 공격수법을 아는 한국계 경제학자를 찾았지만,
단 한 명도 없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만큼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국제금융에 무지한 상태에서
IMF를 맞이했다고 한다.그런데 김대중처럼 자신을 구제자로 착각한 통치자는전문가의 진단을 경시하다가, 결국 무지하고
무능한 매국노로 전락한다.
 
김대중의 악덕은 점차 불거지고, 거칠지만
솔직한 전두환의 미덕은 점차 확산될 것이다.
경제에 관한 한, 전두환이 김대중보다 더 유능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무지를 얼마나 고백했느냐 하는 측면에서
전두환이 김대중보다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우월했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자신의 무지를 자랑할 정도로 지식과 양심이 충만했던 것이다.
전문분야가 아닌 영역에 대한 정치인의 잘못된 지식이 도그마로
둔갑하면, 그 정치인은 맹목적인 정치광신도가 되면서,
결국은 무지한 군중인간으로 전락되는 것이다.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적 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가 거짓 전문가에
의해서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교만한 군중선동가가 통치자로 설치면 앞은 화려한데
뒤론 골짝으로 빠지는 사회가 된다.
김정일이나 김대중의 지배영역(북한과 호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 조영환 편집인 http://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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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올리고, 누구를 폄훼할 생각을 가지고 이글을 펌한 것은 아니다 

 

단지 한 걸음 물러나고 양보하는 것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현대사에서 사례를 검토할 뿐이다

 

자만이 얼마나 위험한지 사례를 보는 것 같다

 

약 20년 전 김대중 대통령은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것에 대하여

" 국민이 믿어주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 준비된 사람이라고 자신을 지칭했다

  그가 위에처럼 이야기 했기에 머리가 띵했다

  대통령은 국민이 믿고 안믿고 간에 경제를 살릴 책임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자기가 못 한 것을 국민에게 핑계되다니......>

 

 

 

                                                      2015.2.24    모디스티

 

 

 

 
 
 

# 한 걸음 양보함

modest-i 2014. 11. 10. 01:34

조성택 고려대 교수의 '경계와 차이를 넘어'(下)

경청은 곧 공감 -

나의 옳음과 너의 옳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게 화쟁

대화가 가능하다면 갈등은 문제가 아닌 기회

인문학의 역할 -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이 인문학이 있을 자리…

지역·계층·좌우… 서로 다른 것을 이어줘야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가 '경계와 차이를 넘어 함께 사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한 강연을 지난주에 이어 소개한다.

 

 

대화란 얼마나 중요한가.

 

지난해 5월 영국 런던에서 휴가 나온 군인을 살해한 흑인 청년에게 다가가 자수를 설득한 주부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자.

이 주부는 "무섭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범인이 흥분했지만 술이나 약물에 취해 있지 않아서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섭지 않았다"고 답했다.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무서울 게 없다.

길에서 개나 호랑이를 만나면 무서울 수 있다.

술 취한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대화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화가 된다면 우리는 상대방이 무섭지 않다.

원효의 화쟁(和諍)은 바로 대화의 철학이다.

지난해 5월 영국 런던에서 휴가 나온 군인을 살해한 흑인 청년에게 다가가 자수를 설득한 주부 사진
조선일보 DB

 

 

 

논쟁과 대화는 다르다

논쟁은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반면 대화는 저 사람의 옳음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저 사람 얘기에 공감하면서

저 사람 눈에 비친 나를 보는 것이다.

 

 

 

논쟁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논쟁은 반드시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주장만 하지 말고

대화하면서 상대 관점에서 자기를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환경이냐 안보냐 티격태격하는데 어느 한쪽을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안보와 환경, 둘 다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왜 양극단에서 양자택일 논쟁만 할까.

이 사회가 민주화 시대를 관통하면서 중요하게 여긴 가치 중 하나는 사회적 정의다.

그런데 정의란 정의 그 자체뿐 아니라 해결과 화해의 과정에서 의미가 커진다.

 

 

최근 국민대통합위원회 콘퍼런스에 갔는데 제주 4·3사건에 대한 발표 부분에서 보수 단체 인사들이 진행을 제지했다.

처음엔 언짢았는데 30분 정도 얘길 들었더니 경청할 내용이 있더라.

4·3사건 정의를 세우는 과정에서 또 다른 아픔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델라가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든 것도 그런 취지다.

화해하기 전 진실 규명이 먼저라고 얘기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진실 규명이 아니라

화해가 전제된 진실이라면 좀 더 승화된 화해·진실이 가능하지 않을까.

일러스트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경청은 화쟁적 대화의 과정

앞서 얘기한 원효의 화쟁, 개시개비(皆是皆非)는 양비론이 아니다.

의견이 다르고 논쟁하더라도 상대를 미워하지는 말자.

 

내가 옳으면 네가 그르고, 네가 옳다고 인정하면 내가 틀린다고 생각하는 이분법을 지양하자.

각자 주장은 나름대로 옳음이 있다.

'나의 옳음'과 '너의 옳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게 화쟁이고, 민주 시민의 지혜다.

 

 

경청은 화쟁적 대화의 과정이다.

 경청은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그냥 듣는 게 아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 마음을 비우고 듣지 않으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경청도 그렇다.

상대방 얘기의 약점을 찾기 위해 경청하는 건 의미가 없다.

경청은 자기를 비우고 상대방의 옳음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공감하는 것이다.

 

 

요즘은 공감을 심리학에서 많이 쓰지만

원래는 시 창작 이론에서 나왔다.

 

꽃에 대한 시를 쓸 때 꽃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꽃이 되어볼 때 시가 나온다.

공감이란 '바라보기'에서 '되어보기'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이것만으로 물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출발점은 여기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 갈등과 분쟁을 중재하거나 해결하는 데 참여했던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한결같이 경청하는 데서 합의의 실마리가 잡힌다고 한다.

 

 

미국 미주리주에서 낙태 문제를 놓고 대립이 벌어졌다.

낙태 시술 병원에 방화가 발생하는 등 격렬한 논란 끝에 낙태를 불법화했다.

그리고 낙태 반대론을 이끌었던 주민이

지역 신문에 기고해 "낙태를 하지 못해 태어난 한 부모 가정 아이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다음엔 낙태 찬성론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찾자고 요청했다.

낙태를 찬성하건 반대하건 둘 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열망은 비슷하다. 방법이 다를 뿐이었다.

 

 

경청과 공감이 사랑의 에너지

대화가 가능할 때 갈등과 분쟁은 문제 상황이 아니다.

사실 갈등과 분쟁이 없는 단일 의견만 존재하는 사회는 전체주의다.

간디는 "갈등과 분쟁은 진리를 드러내는 에너지이고 기회"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 갈등과 분쟁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발전의 기회와 에너지로 만들지 못하는 행태가 문제다.

대화는 영어로 'dialogue'다. 둘 간(dia)의 논리(logue)라는 말이다.

둘 다 말이 되는 논리라는 의미다.

그리스 비극에서 안티고네는 국왕인 삼촌 명령을 거역하고 반역을 저지른 오빠 장례를 강행한다.

왕은 국법을 어긴 반역자는 적절한 장례를 허용할 수 없다는 통치 논리를, 안티고네는 가족의 윤리를 얘기하고 있었다.

화해할 수 없는 비극에서 안티고네는 "우리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말을 남긴다.

성경도, 불경도 결국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이게 인문 정신의 본질이다.

오규원 시인의 '무법'이란 시에는 '사랑에는 길만 있고 법은 없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랑하는 데 무슨 방법이 따로 있겠는가. 사랑하는 길만 있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경청과 공감은 결국 사랑의 에너지다.

예컨대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갈등에서 법률적 완결성과 합법성이 쟁점이 되긴 했지만,

사실 여기서 결여된 건 '사랑'이었다.

법 논리가 중요하지 않거나 틀린 게 아니라 아이 잃은 부모 심정을 그 논리와 법이 담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체념은 포기가 아니라 희망

체념(諦念)도 중요하다.

체념은 포기하는 게 아니다.

체(諦)는 사실 진리 '체'자다.

불교의 사성제(四聖諦), 네 가지 진리 할 때 그 글자다.

국어사전에도 희망을 버리고 단념함과 더불어,

                   두 번째는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란 뜻이 나와 있다.

 

대화에 있어서나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 입장에서 체념은 중요한 덕목이다.

주관을 단념하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게 체념이다.

포기하는 마음이 아니라 '희망을 만들어 가는' 적극적 마음이다.

체념하지 못하는 마음은 '희망'이 아니라 미련일 뿐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 교수는

"글이란 글 밖에 있는 걸 글 안에 담고자 하는 것"이라면서

사물을 온전하게 객관적으로 그린다는 게 가능한가라는 문제 제기를 한다.

저기 있는 나무는 자기 공간을 점하고 있고,

나는 내 공간이 있다.

내 인식의 공간을 뜻한다.

내 의식이란 캔버스는 이미 그 자체로 주관적 세계를 창조하고 있기 때문에

온전하게 저기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는 게 얼마나 가능한가.

결국 글쓰기라고 하는 건 주관의 체념이다.

주관을 체념할 때 전체를 온전하게 그려내는 글쓰기가 완성된다.

 

사회적 갈등과 분쟁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경청과 대화를 통해 해결을 위한 작은 합의,

공통의 분모가 만들어지려면 자기주장을 체념하는 게 중요하며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태도다.

 

합의의 결과가 선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이 선해야 한다.

 

 

 

기원전 3세기 인도의 아소카왕은 불교에 귀의했지만,

통치자로서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교시를 남겼다.

"종교마다 기본 교리는 다를 수 있으며,

자기 종교는 사랑하고 남의 종교를 비판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자기 종교를 선전하느라 남의 종교를 비난하는 것은 어떤 의도에서든 오히려 더 큰 해악을 가져다줄 뿐이다.

다른 사람의 가르침에도 귀 기울이고 존경해야 한다.

그리하면 자신의 종교도 발전하게 되고 진리도 더욱 빛나게 될 것이다."

 

 

 

인문학에서 세계의 중심은 아픔이 있는 곳

인문학에서 바라본 세계의 중심은 어딜까.

우리 몸의 중심은 어딘가.

가슴? 마음? 아니다.

발가락이 아프면 발가락이 중심이 된다.

귀가 아프면 귀가 중심이다.

인문학에서 바라보는 세계의 중심은 이 세상의 아픈 곳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또 지금 우리 사회가 앓는 분쟁과 갈등의 현장이다.

인문학은 사회 가장 아픈 곳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또 인문학은 세상을 '이어준다'.

서로 다른 사람, 지역, 계층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 위아래, 남과 북, 서로 다른 모든 것을 이어주는 게 인문학이다.

흔히 좌우, 진보 보수, 왼쪽 오른쪽을 다르다고 한다.

다르기도 하고 서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들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왼손과 오른손은 구분되지만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태극의 음양도 구분되지만 분리되어 있지 않다.

 

 

분쟁과 갈등을 문제 상황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분쟁과 갈등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자.

그게 진리를 드러내는 더 큰 공동선을 만들어 가는 에너지가 되게 하자.

 
 
 

# 한 걸음 양보함

modest-i 2014. 11. 9. 18:52

8일 별세한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평소 검소한 생활을 했다.

9일 코오롱그룹에 따르면 이동찬 명예회장은 슬리퍼를 1947년부터 50년 넘게 신었다.

10여년 전 비서실에서 그 슬리퍼를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자 이 명예회장은 멀쩡한 것을 왜 버리느냐고 야단을 쳤다.

결국 쓰레기통을 뒤져 슬리퍼를 간신히 찾아냈다.

이 명예회장은 10년 넘게 맨스타 트렌치 코트를 입었다.

출장 시 수행 비서들과 한 곳에서 잠을 잤다.

등산이나 낚시를 갈 때에는 도시락을 지참하고, 9인승 승합차를 이용했다.

그룹 임직원들에게 옷을 물려주기도 했다.

고인의 점심메뉴는 주로 된장찌개와 칼국수, 수제비 등 '서민 음식'이었다.

다른 반찬이 남은 상태에서 추가 반찬을 시키는 일이 없었다.

삼복더위에도 부채와 선풍기만 있으면 됐다.

다만 '아낄 때와 쓸 때를 구분하자' 것이 고인의 생활철학이었다.

은혜를 갚는 일이나

신의를 지키는 일에는 알뜰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평소 검소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이동찬 명예회장은

장학사업과 마라톤 꿈나무 육성 등을 꾸준히 지원했다"고 전했다.

 

 

이동찬 명예회장은 1922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2년 수료했다. 고인은 1957년 4월 12일 부친인 고(故)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와 함께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창립하고 국내 최초로 나일론사를 생산해 한국 섬유 발전에 기여했다. 설립 20주년이 되던 1977년에는 코오롱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화학·건설·제약·전자·정보통신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이 명예회장은 1945년 신덕진(2010년 작고) 여사와 결혼해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을 비롯해 1남 5녀를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