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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st-i 2017. 2. 10. 11:12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

우리 조상들의 낙천성을 잘 보여주는 속담이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무엇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결국 어떻게든 해결하게 돼 있다는 긍정성이 담겨 있다. 이가 없으면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잇몸으로 씹어 넘길 수 있고, 스포츠 경기에서 뛰어난 선수가 빠진다고 반드시 지는 게 아니다. 주어진 상황이 나쁘더라도 할 수 있다는 ‘의지’와 ‘긍정성’을 가지라는 게 속담이 전해지는 이유가 아닐까.

2013년 계사년의 주인공인 ‘뱀’은 이 속담이 가진 의미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생물이다. 뱀은 애초에 다리 없이 태어나지만 네 발, 혹은 두 발 달린 다른 동물에게 뒤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 듯 다리 없이 껍질로 사는 법을 터득한 덕분이다.

뱀 껍질도 기본적으로 다른 동물의 피부나 털이 하는 역할을 한다. 온몸을 둘러싸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의 껍질은 단백질의 일종인 젤라틴으로 이뤄져 습도 변화에 대응하기 좋다. 젤라틴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몸 밖에서 들어오는 습기를 잘 막고, 몸에 있는 습기도 잘 뺏기지 않는다. 그 덕분에 뱀은 습도에는 큰 상관없이 서식할 수 있다.

언뜻 뱀 껍질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하나씩 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있고 비늘 사이에는 주름이 잡혀 있다. 자기보다 몇 배나 큰 먹이를 통째로 삼키면 비늘 사이의 주름이 늘어나서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소화시킬 수 있는 구조다. 비늘이 모두 연결된 덕분에 뱀이 벗어놓은 허물도 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뱀 비늘은 이동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리가 없는 뱀은 온몸을 지면에 밀착해 기어 다닐 수밖에 없는데, 이 때 땅이나 물에 비늘이 직접 닿는다. 효과적으로 이동하려면 각종 표면과 맞닿은 비늘의 마찰력을 조절해야만 한다. 또 늘 어딘가에 닿는 비늘이 잘 닳지 않도록 신경도 써야 한다. 뱀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미세한 표면 구조를 발달시켜 해결했다.

잘 이동하기 위한 첫 번째 비결은 몸통 각 부분의 마찰력을 다르게 만든 것이다. 뱀은 직진만 하는 성질을 가졌는데 이는 뱀의 배 비늘이 앞으로 갈 때는 마찰력이 가장 작아서다. 뒤쪽이나 옆쪽은 마찰력이 강해서 온몸을 움츠렸다가 펴면 앞으로 나가도록 이뤄졌다.

실제로 미국 조지아공대 데이비드 후 교수팀은 뱀 몸통의 마찰력을 측정해 2009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싣기도 했다. 연구진은 작고 온순한 뱀인 ‘퍼블란 밀크 스네이크’를 마취시켜 몸통을 앞과 뒤, 그리고 옆으로 기울여 각 방향의 마찰력을 측정했다. 그 결과 앞 방향의 마찰력이 가장 작고 옆 방향의 마찰력이 가장 컸다. 마찰력이 큰 몸통 옆쪽은 브레이크 장치처럼 작용해 뱀이 S자 곡선을 그리면서 이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뱀 비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 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일정한 형태의 무늬가 잘 발달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무늬는 뱀 비늘이 지표면에서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마찰을 최소로 줄이고, 최대한 덜 닳도록 도움을 준다.

이런 뱀 껍질의 구조는 사막에 사는 도마뱀인 ‘샌드피시’와 비슷하다. 샌드피시는 모래 속을 파헤치고 다니면서도 반짝거리는 껍질을 유지하는데, 이는 껍질 표면이 마이크로미터(μm·100만 분의 1m) 에서도 매끄럽고 미세한 칸막이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미세한 작은 칸막이에는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 등이 담기는데, 이는 샌드피시나 뱀이 윤활제로 쓰게 된다. 이렇게 되면 뱀은 모래 표면에서도 부드럽게 지나갈 수 있고, 오랫동안 바닥에 닿아도 껍질이 쉽게 닳지 않는다.

[그림]뱀이 움직이는 힘은 껍질의 독특한 무늬에서 나오는데, 서식환경에 맞게 진화했다. 샌드피시(좌)와 보아뱀(우).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뱀이 사는 환경에 따라 표면 무늬는 조금씩 달라진다. 사막이 아닌 동남아시아처럼 습기가 많은 환경에 사는 뱀은 표면에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무늬뿐 아니라 나노미터(nm·1nm=10억 분의 1m) 크기의 작은 돌기도 발달시켰다. 이렇게 볼록볼록 튀어나온 표면은 물기를 머금게 되면 뱀 비늘과 물이 맞닿는 부분에 충격이 줄어든다. 그 덕분에 뱀이 이동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며 비늘도 덜 닳게 되는 것이다.


결국 뱀은 다리를 가지지 못한 대신 껍질의 마찰력을 조절하고 독특한 무늬를 발달시키는 쪽으로 진화했다. 다른 동물들처럼 날쌔게 달리지는 못해도 이동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껍질도 많이 상하지 않게 됐다. 이들이 ‘다리 없음’을 극복한 지혜는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한다.

레인보우 보아뱀 껍질을 마이크로미터와 나노미터 크기에서 관찰해 표면의 무늬를 찾아낸 문명운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계산과학연구단 선임연구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런 표면을 자동차 엔진 등에 적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자동차 엔진에 있는 실린더는 마찰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 표면을 뱀 비늘에 있는 무늬처럼 만들면 마찰이 작고 마모가 거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의 한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 엔진의 실린더 부분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서 비슷한 효과를 얻기도 했다.

1년에 2~3차례 허물을 벗으며 아예 새로운 껍질을 가지게 되는 원리도 새로운 영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새로운 표면을 만들어내 벗겨낼 수 있다면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고, 닳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은 ‘이 없으면 잇몸’이라는 전략으로 살아남은 뱀이 주인공인 해다. 올해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의지와 잘 될 거라는 긍정으로 헤쳐 나갈 수 있길 빌어본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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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st-i 2017. 2. 9. 13:38

뱀 이미지 1

지혜와 의술의 상징 ‘뱀’.

십이지 동물 중 여섯 번 째 동물이자 유일한 파충류.


뱀은 헤엄칠 수 있는 지느러미, 달릴 수 있는 다리, 날 수 있는 날개가 없어도 세계 어디서나 서식한다.

산, 들, 사막, 바다, 강…. 어느 곳이든 뱀은 살고 있고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뱀은 어떻게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을까.

2013년 계사년 뱀띠 해를 맞아 볼수록 놀라운 동물 ‘뱀’을 파헤쳐 본다.




이야기 속에서 가장 오래된 뱀은 무엇일까.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게 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뱀이 아닐까.

그렇다면 뱀의 캐릭터는 원래부터 남을 해하는 것일 테다.


또다른 의문은 뱀은 처음부터 다리가 없었을까라는 것.


몸보다 훨씬 두꺼운 먹이를 어떻게 한입에 삼키고 소화할 수 있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뱀은 징그럽거나 무섭기보다는 오묘한 동물이다.

뱀은 정말! 무섭다

이야기 속에서의 뱀은 대체로 두려운 존재로 묘사된다.




‘영리함’,

‘남을 해하려는 성격’,

‘욕심’…. 옛 사람들이 뱀 하면 떠올린 이미지다.


먹잇감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다가가 자르거나 물어 뜯지도 않고 한 입에 꿀꺽 삼키는 장면이 뇌리에 선명하게 와 닿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강원도 치악산 상원사에는 뱀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훗날 ‘은혜 갚은 까치’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야기다.

‘한 나무꾼이 산길을 가다가 뱀에게 잡아먹히려는 꿩을 구한다. 그 날 밤, 나무꾼은 길을 잃고 젊은 여인의 외딴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된다. 젊은 여인은 낮에 나무꾼이 죽인 뱀의 원수를 갚으려는 암컷이었다. 나무꾼에게 암컷 뱀은 절의 종이 울리면 살려준다는 조건을 거는데, 그 순간 울린 종 덕분에 나무꾼은 목숨을 건진다. 낮에 구해준 꿩이 몸을 던져 종을 울리고 죽은 것이다.’


전래 동화 ‘흥부 놀부’에서도 뱀이 등장한다. 흥부 집 처마에 집 지은 제비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역할이다. 작고, 연약한 새끼를 한 입에 삼켜버리는 모습 때문인지 탐욕스럽고, 욕심이 많은 성격으로 묘사된다.




왜 뱀을 무서워할까?

그런데 인간은 왜 뱀을 무서워할까.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2011년 11월 13일 온라인 판에는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가 실렸다. 사람의 DNA에 뱀에 대한 공포가 각인돼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아그타 족이 뱀을 사냥한 모습. 이처럼 거대한 뱀은 아그타 족을 공격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토마스 헤드랜드 미국 댈러스 닐 국제연구소 연구원과 해리 그린 미국 코넬대 연구원은 초기 인류가 뱀에 대한 공포를 얻게 된 경로를 찾기 위해 필리핀 원주민인 아그타 네그리토스 족의 사냥 기록을 분석했다. 아그타 족은 원시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초기 인류와 뱀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뱀에 대한 공포가 DNA에 각인될 정도라면 그만큼 많은 공격을 받은 흔적을 찾아야 한다. 초기 인류 연구를 통해 증명하기는 어려워 초기 인류와 유사한 생활을 하고 있는 아그타 족의 사냥 기록을 분석한 것이다.


연구 결과 아그타 족은 뱀이나 뱀의 먹이를 사냥할 때 뱀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뱀과 먹이 경쟁을 하느라 자주 공격을 당해 두려움이 반복되었고, 뱀은 두려운 존재라는 기억이 원시 인류에게 각인되었다는 의미다. 연구 결과가 맞다면 사람이 뱀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뼛속까지 새겨진 공포 때문일 것이다.




뱀은 원래 다리가 있었다?

뱀의 체형은 신비하다. 닮은 동물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길쭉한 몸뚱이가 특히 그렇다. 태어나서 뱀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뱀을 보여주면서 어디 사는 동물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생김새만을 놓고 보면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몸의 형태만으로 보면 갈치나 뱀장어, 곰치 같은 길쭉한 물고기와 닮았다. 하지만 지느러미가 없다.


머리를 보면 도마뱀과 닮았지만 다리가 없다. 그렇다고 날개의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땅 속에서 살기에는 땅을 파기조차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뱀은 바다에 사는 바다뱀종류까지 포함하면 극지방과 섬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살고 있다.

뱀의 분포지역. 뱀은 바다에 사는 바다뱀종류까지 포함하면 극지방과 섬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살고 있다.




다양한 환경에 뱀이 적응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전문가들은 뱀의 ‘다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있지도 않은 다리 때문에 다양한 환경에 적응했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파충류의 진화 과정을 들여다보자.

뱀이 처음부터 다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뱀을 비롯한 파충류는 고생대 석탄기(3억 6000만 년~2억 8600만 년 전)에 등장한 원시 파충류에서 분화됐다.




최초로 등장한 파충류는 거북이다.


약 2억 년 전인 중생대 지층에서 거북의 상징과 같은 ‘등갑’ 화석이 발견됐다.




다음에 등장한 것은 도마뱀이다.





도마뱀과 뱀이 갈라진 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논란 중이다.


첫 번째는 중생대 말인 백악기에 도마뱀에서 뱀이 새로운 갈래로 갈라졌다는 주장이다.

사하라 사막의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된 원시 뱀인 라파렌토피스 데프렌네이(Lapparentophis defrennei ) 뼈 화석은 백악기에 뱀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다른 학설은 고생대 말 원시 도마뱀에서 아예 도마뱀과 뱀이 서로 다른 갈래로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어느 쪽이든 뱀의 조상인 고생대 원시 도마뱀에 다리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원시 도마뱀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처럼 다리가 사라져 바다와 들, 사막과 같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게 됐을까.


원시 도마뱀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도마뱀과

다리가 없는 뱀을 비교하면 다리의 유무 뿐만 아니라

머리뼈, 피부(혹은 비늘), 눈꺼풀, 귀에 이르기까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불필요한 다리를 ‘버렸다’


뱀의 진화에 대한 힌트는 도마뱀의 일종인 장지뱀, 지렁이 도마뱀을 통해 얻을 수 있다. 2011년 5월 19일자 네이처에는 독일 메셀 화석 유적지에서 뱀의 조상으로 보이는 도마뱀 화석을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이 지층은 4700만 년 전인 신생대 제3기 지층이다. 물론 신생대는 이미 도마뱀과 뱀이 갈라진 뒤다. 그러나 도마뱀처럼 생긴 장지뱀과 뱀처럼 생긴 지렁이 도마뱀의 화석 연구를 통해 뱀의 진화 경로를 살필 수 있다.




독일 메셀 화석지에서 발견된 뱀 조상 화석. 몸집에 비해 작은 다리가 특징이다. 오른쪽은 골격을 바탕으로 그린 복원도.



지렁이 도마뱀은 땅 속에 사는 도마뱀의 일종이다. 뱀처럼 긴 몸을 가졌으며, 다리가 심하게 퇴화되어 얼핏 보면 뱀처럼 보인다. 땅 속에서 주로 살았기 때문에 다리가 불필요해졌다. 땅속에 들어가 살게 되면서 퇴화한 기관은 다리만이 아니다. 귓구멍은 흙이 들어가기 때문에 없어졌으며 햇빛을 막기 위한 눈꺼풀도 없어졌다. 도마뱀이지만 현재 뱀의 특징적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셈이다.

반면 장지뱀은 뱀이라고 이름이 붙었지만 도마뱀의 일종으로, 중생대 말인 백악기에 등장했으며 비늘이 뱀과 매우 흡사하다. 메셀 화석 유적지에서 발견한 화석은 바로 장지뱀과 지렁이 도마뱀을 합친 형태였다.

전체 몸길이가 7cm 정도 되는 이 도마뱀은 현재 파충류보다 더 두꺼운 형태의 두개골을 가졌다. 또 지렁이 도마뱀처럼 바깥귀가 닫혀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앞다리와 뒷다리가 몸통에 비해 작다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요하네스 뮐러 독일 함부르크훔볼트대 박사는 이를 다리가 퇴화하는 첫 단계라고 설명했다.




‘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뱀은 강하다!


다리가 없는 뱀이지만 어떤 동물보다도 서식지 분포가 넓다.


어미를 잡아먹는다는 별명이 있는 살모사(물론 실제로 어미를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는 호주와 극지방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서식한다.


이미 살모사 한 종만으로도 전세계를 아우르고 있다.





뱀이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담겨 있는 신체의 비밀 때문이다.




뱀의 커다란 입은 제 몸 크기의 네 배가 넘는 먹이도 거뜬히 삼킨다. <출처: (cc) Alias 0591(frickr.com) from the Netherlands>




뱀의 커다란 입은 제 몸 크기의 네 배가 넘는 먹이도 거뜬히 삼킨다.

머리뼈와 턱뼈가 관절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유연한 근육과 인대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먹이를 목구멍으로 넘기면 어깨뼈가 없기 때문에 먹이가 수월하게 소화기관으로 넘어간다.

그동안 척추에 연결된 갈비뼈가 한껏 벌어져 먹이가 긴 몸을 지나가는 데 무리가 없다.


먹이 크기에 맞춰 위 또한 거대하게 늘어난다.

뱀은 가늘고 긴 몸에 맞게 대부분의 내장이나 기관은 길고 가늘게 생겼지만 소화와 관련된 위와 장은 신축성이 매우 좋다.


일단 커다란 먹이를 삼키면 오랫동안 다른 먹이를 먹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



땅 속에서 밖으로 나오면서 진화한 비늘도 다양한 환경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비늘이라고 말하지만 뱀 비늘은 피부에 더 가깝다.

물고기처럼 비늘이 하나씩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입부터 꼬리 끝까지 하나로 연결된 겉 피부가 비늘 모양으로 주름 잡혀 있기 때문이다.

허물을 벗을 때 조각조각 벗겨지지 않고 통째로 벗을 수 있는 이유다.



뱀은 사막에서도 거뜬히 살아간다. <출처: gettyimage>




비늘은 습도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한다.

단백질의 일종인 젤라틴으로 된 비늘은 ‘밀봉코팅’한 상태기 때문에 습기 변화에 강하다.

외부에서 과하게 들어오는 습기를 막을 뿐만 아니라 몸속의 습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붙잡는다.

보통 동물이라면 수분 부족으로 말라버릴 사막에서도 거뜬히 살아가는 이유다.

파충류가 살기 어려운 극한 환경이 아니면 습도와 상관없이 8~35℃ 환경에서는 어디서나 살아간다.


비늘의 역할은 습도 조절에만 그치지 않는다.

일정한 방향으로 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환경에서 쉽게 움직일 수 있다.

비늘이 난 방향에 따라 바닥과의 마찰력이 달라져 꿈틀거리며 움직이면 마찰력이 적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머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400개가 넘는 갈비뼈는 뱀의 움직임을 돕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거대한 먹이를 먹었을 때 잔뜩 벌어지는 것은 물론 자신의 몸을 180°에 가깝게 꺾을 수도 있다.


유연한 몸을 스프링처럼 사용하면 하늘도 날 수 있다.

황금나무뱀은 갈비뼈의 탄성을 이용해 나무 위에서 뛰어 오른 뒤, 공중에서 몸을 S자로 움직여 날아간다.

날다람쥐가 팔다리에 난 넓은 막을 이용해 글라이더처럼 비행하는 반면

뱀은 자신의 몸을 꼬아서 글라이딩을 한다.

이렇게 날아가는 거리는 무려 100m.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뱀도 있을 정도로 가늘고 긴 몸으로 움직이는 데 한계가 없다

(물뱀은 바다뱀의 일종으로 강이나 개울에서 헤엄치는 뱀은 물뱀이 아니다).




400개가 넘는 갈비뼈는 뱀이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다.




유연함 속에 강함을 감추고 있는 뱀




뛰어난 환경 적응력 덕분에 뱀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이다.

물론 도심에서 보기 어려워졌지만 뱀은 분명 유연함 속에 강함을 감추고 있다.


수많은 신화와 설화에 등장했고,

때로는 두려움을 줬고

때로는 지혜의 상징으로 존경을 받기도 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뱀띠 해 계사년. 뱀이 지닌 변화무쌍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오가희 | 과학동아 기자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다가 더 많은 독자를 만나기 위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어려운 내용 보다는 일상 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가벼운 글을 쓰는 것이 목표.
사진
네이처, 위키피디아, P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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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st-i 2017. 2. 1. 11:41

21세기 新천재론

그동안 사람들은 보통 사람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신동(prodigy)’ 또는 ‘천재(genius)’란 말을 명확한 구분 없이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학자들은 이 두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신동이란 ‘타고난 능력’이 비범한 사람을 가리키고,


천재란 ‘업적’이 비범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역사에서 김시습과 이율곡 같은 이는 여섯 살 안팎의 나이에 경탄할 만한 한시(漢詩)를 지었고 예지가 번득이는 재치를 발휘했다고 한다. 이런 재주는 학습과 경험의 덕분이라기보다 타고난 능력의 특출함 덕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시기의 김시습과 이율곡은 천재라기보다 신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이에 비해 뉴턴이나 갈릴레이,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보통 사람이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어린 시절 그들의 타고난 능력이 어떠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단지 그들의 경탄할 만한 업적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을 신동이라 부르기보다는 천재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신동은 꽤 있었지만 천재는…

우리나라에도 신동은 많았다. 그러나 천재는 희귀했다.

어릴 적에 특출한 재주를 보인 사람은 꽤 있었으나 그 능력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는 TV나 신문 등 매스컴에 소개된 여러 신동을 기억한다.

기억, 암산, 한자, 영어 단어 등에서 놀랄 만한 능력을 과시한 어린이가 많았지만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위대한 업적을 낸 사람은 매우 드물다.

즉, 신동은 꽤 있었으나 천재는 없었다.




교육학의 긴 역사 속에서 천재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 카를 비테다.

1800년 독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였다.

한 살도 되기 전에 글자를 읽고 썼으며,

일곱 살 때까지 모국어(독일어)는 물론 라틴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실력을 바탕으로 아홉 살에 당시 독일 최고 명문인 라이프치히대에 입학했고,

열여섯에 법학박사가 되어 베를린대 교수로 취임했다.


분명 카를 비테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고 그를 신동이라 일컫는 데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능력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해 1000여 쪽의 ‘양육 노트’에 남겨 놓았다.


그럼 카를 비테는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

어떤 기록도 존재하지 않아 우리는 지금 그에게로 영광을 돌릴 어떤 업적도 알지 못한다.

자랄 때는 대단한 신동이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그를,

‘빛을 보지 못한 천재’라고 부를지언정 ‘천재’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 점은 아인슈타인과 대비된다.

열여섯 살 이전의 아인슈타인에게서 특출한 능력을 발견하거나 감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 과학의 전체 패러다임을 바꾸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신동은 아니었지만, 그가 성취해낸 위대한 업적은 결과적으로 그를 천재라 부르게 만들었다.


카를 비테는 신동이지만 천재는 아니었고,

아인슈타인은 신동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론 천재였다.







 

   

김주리 양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토혈을 경험할 만큼 소리 연습에 매진했다.

신동의 재주와 재능은 그것만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없다.


그 재주와 재능을 어떤 목적을 향해 갈고닦고 몰입하고 노력했을 때 업적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에디슨은 “위대한 발명은 1%의 천재성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 것 같다.


천재는 재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 필수적인 요소다.







기네스북(1986~1989)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지능지수(IQ)를 가진 사람은 미국인 마릴린 사반트다. 이 여성의 IQ는 228로 알려져 있다.


그럼 그는 천재인가?

그는 신동도 아니었고, 이렇다 할 위대한 업적을 내지도 않았다.


단지 IQ가 높다는 것 외에 내세울 만한 재능이나 업적이 없다.

대학도 다니다 중퇴했고, 작가가 되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지만 그것도 이루지 못했다. 6

0세가 넘은 현재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

일요판 신문에 상담 칼럼을 게재하고 있을 뿐이다.





IQ의 위기

IQ가 높은 사람들만 가입하는 모임이 여러 개 있다.

멘사클럽에는 전체 인구의 IQ 분포에서 상위 2% 안에 드는 사람만 가입할 수 있는데 기준 IQ가 135 이상이어야 한다.


국제고도IQ소사이어티에는 기준 IQ가 124 정도이며 상위 5% 안에 드는 사람만 회원이 될 수 있다.


그 밖에도 프로메테우스소사이어티와 기가소사이어티가 있는데 가입 기준이 각각 상위 0.003%, 0.000000001%로 대단히 까다롭고,


기가소사이어티의 경우에는 기준 IQ가 190으로 확률상 세계적으로 10명이 채 안 된다.




그렇다면 IQ가 높은 사람들은 모두 천재인가.

그들은 모두 경탄할 만한 업적을 내고 있는가.

1996년에 발족한 한국의 멘사클럽에는 약 700명의 회원이 있다고 한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학창시절 학교 성적이 어떠했는지 물어보았다.

그 결과 최상위권에 속했다는 사람이 19%(254명 중 49명),

상위권에 속했다는 사람이 47%(254명 중 121명),

중하위권에 속했다는 사람이 23%(254명 중 61명)로 나타났다.

이들의 IQ는 최상위권이지만 학교 공부에서는 모두가 최상위권은 아니었다.


최상위권인 사람(19%)보다 오히려 중하위권인 사람(23%)이 더 많았다.



이런 결과는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IQ가 높은 사람이 학교 공부를 잘한다’는 믿음은 사실이 아니다.

IQ와 학교 성적의 연관성 정도는 기껏해야 20~25%다.

IQ 순서대로 학교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님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서 밝혀졌다.






IQ만 갖고 천재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낸 위인들을 살펴보면 IQ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


아인슈타인의 업적이 높은 IQ 덕분이었다면

그는 왜 초등학교, 중학교 성적이 낙제를 간신히 면하는 수준이었겠나.


 에디슨의 위대한 발명 능력이 IQ 덕분이었다면

그는 왜 초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할 수밖에 없었는가.


예술적인 천재들을 IQ로 설명하긴 더욱 어렵다.

모차르트, 베토벤, 피카소, 고갱, 고흐의 위대성을 IQ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날 IQ는 위기에 처해 있다.

IQ가 인간의 비범성을 재는 정확한 척도가 아닌 것 같다는 의구심이 계속 부풀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IQ가 인간의 잠재된 능력을 재는 지표로 활용된 지 100년을 넘어서고 있는데 그

간 IQ에 대한 비판은 계속 제기되어왔다.



그 비판의 핵심은 IQ검사 때 ‘인간의 수많은 능력 중 극히 일부를 재고는, 전체를 잰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머릿속에 잠재된 능력은 무한하다.

어떤 이는 이 능력의 개수를 2조1400억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능력 중에서 IQ검사 항목에서 측정하는 것은 기억력, 계산력, 지각력, 추리력, 어휘력, 언어유창성, 공간지각력 등 겨우 10여 개에 불과하다.

그러니 IQ가 사람의 다양한 성취를 설명하고 예언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IQ검사에서 측정하지 못하는 중요한 능력 중 대표적인 것이

창의력(creativity),

정서능력(emotional ability),

적성(aptitude)이다.


IQ검사로는 인간의 능력 중에서 아주 기초적이고 일반적인 인지능력인 기억력, 추리력, 지각력, 언어능력 등만 잴 수 있을 뿐

창의성, 정서능력, 적성을 재지 못하므로

학교 성적이나 출세와 성공 등 종합적인 삶의 성취와 업적을 예언하는 데는 효과적이지 못하다.





모차르트, 음악영역에서만 천재

요즘 교육학이나 심리학에서는 IQ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새로운 잠재능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IQ를 대신할 새로운 잠재능력으로 세 가지 개념이 대두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서지능(EI 또는 EQ·Emotional Intelligence),

                 성공지능(SQ 또는 SI·Successful Intelligence),

                 다중지능(MI·Multiple Intelligence)이다.


정서지능은 인간의 잠재능력을 기억, 지각, 계산, 추리능력 같은 사고능력만으로 한정하는 데 반대한다.

정서능력, 예컨대 인내심, 주의집중력, 충동조절, 몰입 등도 중요한 잠재능력으로 간주하자는 것이다.

   

김연아 양은 신체운동지능이 상위 10% 안에도 들지 않지만 엄청난 노력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성공지능은 IQ로 측정하지 못한 창의력응용력보완해 새로운 형태의 IQ검사안을 만들어 분석지능, 창의지능, 실천지능을 함께 측정하자는 것이다.


다중지능은 이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연구가 진척돼 이론적 깊이가 있는 종합지능이론이다.

여기서는 종래의 IQ 개념에 정서능력, 창의력, 적성 개념까지 포함시킨다.


다중지능이론에서는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 주로 사용되는 상징체계를 형태에 따라 8가지로 나눈다.

신체운동영역,

인간친화영역,

자기성찰영역,

논리수학영역,

언어영역,

음악영역,

공간지각영역,

자연친화영역이 그것이다.




각 영역은 나름의 독특한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다. 음악영역에서는 악보 기호, 논리수학영역에서는 숫자와 기호들, 언어영역에서는 말과 글, 신체운동영역에서는 신체 동작이 그것이다. 상징체계별로 유난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을 어릴 때는 ‘신동’으로,

                           그 능력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업적을 남겼을 때는 ‘천재’라고 부를 수 있다.




다중지능의 관점에서 보면 모차르트는 어릴 적엔 음악지능이 뛰어난 신동이었고,

자라면서 그 음악지능을 발휘해 음악 분야에 엄청난 업적을 남긴 음악의 천재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이 있는데, 모차르트는 모든 분야에서 천재가 아니라 음악영역에서만 천재라는 점이다.


모차르트의 비범함은 한 개의 독특한 지능영역, 즉 그의 강점지능에서 발휘된 것으로,

다른 영역의 지능 수준은 보통 사람과 별 차이가 없었다.





소질, 적재적소, 무대

사람은 누구나 8가지 지능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높낮이가 다를 뿐이다.



이 중 가장 높은 지능을 ‘강점지능’이라 하고


         가장 낮은 지능을 ‘약점지능’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동이란 강점지능이 유별나게 높은 어린이를 뜻하고,

          천재란 강점지능을 발휘해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사람(어른)을 가리킨다.



다중지능이론은 강점지능의 발견, 개발 그리고 발휘 과정을 중심으로

                      신동과 천재를 설명하는 데 적합한 이론이라 하겠다.





천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따른다.

이른바 IDF 조건이다.


한 사람이 훌륭한 업적을 이루려면 소질(I·Individuality)이 있어야 하고,

그 소질이 해당 영역(D·Domain)에서 교육·훈련·개발돼야 하며,

훈련 받은 소질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F·Field)에서 생업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볼 때 피카소는 천재 탄생의 세 가지 조건이 가장 이상적으로 충족된 사례인 반면, 장승업과 이중섭은 세 가지 조건 충족에 실패해 빛을 보지 못한 천재의 대표적 사례다. 피카소는 태어날 때부터 그림에 소질(I)이 뛰어났고, 아버지 덕분에 스페인의 왕립미술학교에서 제대로 된 미술 교육(D)을 받았으며, 평생토록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생업(F)을 보장 받았다.

그러나 이중섭은 그림에 소질(I)도 풍부했고, 도쿄미술학교(D)도 다녔지만, 불행하게도 그림만 그리면서 살 수 있는 화가로서의 생업(F)을 보장받지 못한 채 부산 역전에서 짐꾼 노릇을 하며 살았다. 그래서 천재다운 업적을 남기기가 어려웠다. 한편 장승업은 그림에 소질(I)은 출중했지만, 천한 신분 때문에 교육다운 교육을(D) 전혀 받지 못했고, 그림에만 전념할 생업(F)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역시 천재적인 업적을 남기기가 어려웠다.

오늘날 한국의 신천재들을 IDF 틀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학생의 소질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발견되었는지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어떤 소질과 적성을 보였는가. 그 소질을 부모는 어떻게 발견했고 그때 무슨 일을 했는가. 이런 질문들은 천재 탄생의 조건 중 하나인 소질(I)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이다.

둘째, 소질과 적성을 길러주기 위해서 부모와 학생 자신이 어떤 교육과 훈련(D)을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질과 적성이 발휘되려면 대체로 10년이 걸리는 것으로 다중지능학자들은 판단한다. 이 기나긴 세월에 일어난 일을 제대로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학생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어떤 노력과 희생을 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셋째, 개발된 소질이 발휘되는 장면과 상황(F)을 이해해야 한다. 경쟁자는 누구였고, 지지자는 누구였는가. 부모와 교사는 학생에게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가.

이런 점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학생이 능력을 발휘하는 데 소질과 재능뿐만 아니라 사회심리적 환경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아는 것이 많은 학생도 시험 불안증이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아는 답도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는 것처럼, 천재도 그가 처한 사회심리적 환경에 따라 재능이 발휘될 수도, 그냥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한국의 신천재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중지능의 IDF 측면을 소상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新천재들 분석

박태환 군을 가르친 지도자들은 그의 성공 요인이 정신력과 성실성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어느 나라나 기성세대와 차별되는 젊은 재능이 집단적으로 발현되는 시대가 있다.

랑스 작가 장 콕토는 이를 ‘무서운 아이들’이라며 ‘앙팡테리블’이라고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젊은 작가들이 현실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때는 이들을 ‘성난 젊은이’라는 뜻의 ‘앵그리 영맨’이라고 불렀다.


21세기 한국에서도 그런 젊은 재능의 집단 발현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무서운 아이들’도 아니고 ‘성난 아이들’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미쳤고

기성세대에 주눅 들지 않은 채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밝고 당당한 자신감으로 무장돼 있다.


그들은 불꽃처럼 환하고 정열적이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따뜻하게 하는 온기를 머금고 있다.



지난 여름 ‘동아일보’가 20회에 걸쳐 연재한 ‘21세기 신(新)천재론’의 주인공들이다. 


한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조기에 재능을 꽃피운 신천재들의 공통점과 특징은 무엇일까.


그들은 밝고 환하고 영민하다는 뜻에서 ‘브라이트 제너레이션(Bright Generation)’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한 우물 파는 연습벌레

한국의 신천재들은 모두 좋아하는 것에 미쳤다고 할 만큼 엄청난 열정을 지니고 고도의 집중력을 보였다.


10대 국수(國手) 윤준상 9단은 1000국은 두어야 1급 수준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밤낮으로 바둑을 둬 결국 1000국을 채워 주변을 놀라게 했다.


고등학생 나이로 세계로봇대회에 출전한 강태호 군은 다섯 살 때 그 나이에는 벅찬 조립식 완구를 만드느라 밤을 새우다 결국 천식에 걸렸다.


열한 살 때 장장 9시간20분의 판소리 완창에 성공한 김주리 양은 이미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소리꾼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한다는 토혈(吐血)을 경험할 만큼 소리 연습에 매진했다.



짧은 시간에 두각을 나타낸 신천재들도 경이로운 몰입의 힘을 보여주긴 마찬가지였다.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한 홍지현 양은 연극을 처음 보고 나서 1년간 한 달 평균 12편씩 150편에 이르는 연극을 보고 100여 편의 희곡을 독파한 뒤 처음 쓴 희곡으로 최연소 당선자의 영예를 안았다.



요리 입문 1년여 만에 5대 국가조리사 자격증 시험에 모두 합격한 노유정 양은 요리 관련 문제집과 책을 달달 외우고 서너 차례의 해외 요리 연수까지 혼자 찾아다니며 한 우물을 파고들었다.





다중지능이론의 국내 도입에 앞장서 온 문용린 서울대 교수팀이 개발한 대교심리진단센터의 다중지능 적성진로진단검사 결과에 따르면 신천재들은 다중지능 중 해당 분야에 필요한 지능의 점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수학과 과학 영재들은 하나같이 논리수학지능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문학·연극·영화 분야 신천재들은 한결같이 언어지능과 공간지능이 높았다.


바둑 분야 신천재인 윤준상 9단은 논리수학지능과 공간지능이 높은 것으로 나와,


바둑이 역시 수읽기와 포석의 게임임을 입증했다.





놀라운 점은 그들의 재능을 빚어내는 다양한 다중지능의 하모니에 있었다.

신천재들은 이과는 수학,

문과는 언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크로스오버 현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금상을 수상한 수학 영재 이석형 군은 논리수학 외에도

                                                                               언어와 음악 분야 점수가 고르게 높았다.



또 영화 시나리오를 통해 예일대에 입학한 구혜민 양과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자 홍지현 양은 언어 못지않게

                                                      논리수학지능도 높았다.



특히 IT 분야 신천재 남예슬 양은 자연친화·음악·신체운동·인간친화·논리수학·언어지능이 모두 상위 3%에 드는 진정한 다중 천재로 조사돼 모두를 놀라게 했다.




문용린 교수는 “다중지능의 매력은 해당 분야의 타고난 지능만으로 재능이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다중지능의 조합으로 빚어내는 무지갯빛 스펙트럼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자율적 교육 실천한 부모

다중지능 적성진로진단검사 결과가 반드시 신천재들의 타고난 재능에 부합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엄청난 연습벌레라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피겨스케이팅 스타 김연아 양은 신체운동지능이 상위 10.5%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엄청난 연습과 노력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빙상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 그녀의 유연한 근육은

원래 훈련을 조금만 소홀히 해도 위축되는 핸디캡이었다.


또 화려한 표정 연기는 수없이 거울을 보며 ‘천의 얼굴’을 빚어낸 연습의 산물이었다.


대신 그녀는 ‘실수 매니지먼트’라고도 불리는 피겨스케이팅의 필수 요소 가운데 하나인

대범함을 최대한 끌어냈다.




발레리노 이동훈 군은 두 다리를 180도로 벌리는

발레의 기본 동작 턴아웃을 하기에 불리한 체형인데다 평발이었다.


게다가 비보이를 하며 상체 근육이 발달하고

무릎이 튀어나온 바람에 발레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체형을 지녔지만

남보다 두 배에 가까운 훈련량으로 이를 극복해냈다.

   

로잔콩쿠르 1위의 영예를 안은 박세은 양은 어린 시절 무용 동작 순서를 잘 못 외우고 무용 기술도 떨어졌다.




반면에 발레리나로서 좋은 체형을 지닌 박세은 양은

어린 시절 무용 동작 순서를 잘 못 외우고

무용 기술도 떨어졌지만

발레에 대한 애정과

느리지만 착실한 훈련을 통해 로잔콩쿠르 1위의 영예를 안았다.






교육학자들은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선 아이를 박물관에 데려가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는지 관찰하라고 조언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앞장서서 아이의 관심을 유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 스스로 관심을 보이는 주제를 찾을 때까지 가만히 뒤에서 지켜본 뒤 아이가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천재의 부모들은 대부분 이 원칙에 부합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절대 ‘이걸 해라, 저걸 해라’ 강요하지 않고

자녀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관찰하며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빅뱅의 비밀’이란 장편 SF소설을 쓴 김활 군의 부모는 김군이 상상력을 최대한 펼칠 수 있도록 방 안이 장난감으로 난장판이 되어도 치우지 않았고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만큼 자유방임의 교육 원칙을 실천했다.


강태호 군과 구혜민 양, 홍지현 양도 학교 교과과정에는 충실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학원 다니는 시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부모들의 인성 교육도 한몫을 했다.

뉴욕 필하모닉 영아티스트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지용 군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이민 가 세탁소에서 힘겹게 일하면서도

아들에게 “네 재능은 네 것만이 아니니까 이웃을 위해 쓰라”는 말로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석형 군의 부모는 어려운 어휘를 많이 쓰는 이군이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지 않도록

학교에서 쓰는 말과 집에서 쓰는 말을 구분해줄 만큼 ‘평범한 아이’로 크게 하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문용린 교수는 “한국의 신천재들이 대거 출현한 것에는 역시 부모의 역할이 가장 컸음을 확인했다”며

“부모 개인의 노력으로 이런 신천재들을 키워내는 동안 공교육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와 사회의 역할 늘려야

천재의 재능이 빛을 보려면 어떤 조건이 만족돼야 할까. 문용린 교수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시카고대 교수와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교수의 ‘IDF 모델’에 입각해 3가지 요소가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첫째, 개인적 소질(Individuality)이 뛰어나야 한다.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는 에디슨의 말은 노력을 강조할 때 곧잘 인용된다. 다중지능이론에 따르면 1%에 해당하는 재능이야말로 99%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결정적 변수다. 문용린 교수는 부모의 역할이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둘째, 자신의 재능이 빛날 수 있는 영역(Domain), 즉 적재적소로 투입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조기 입문과 10년가량의 발효 기간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이 수학 성적 하나만 가지고 취리히공과대에 간신히 입학했을 때 16세였다. 수학과 이론물리학에 몰두한 그가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것은 10여 년 뒤인 27세 때였다.

셋째, 경쟁의식을 북돋워주면서 자신감도 불어넣는 심리적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분야, 즉 마당(Field)이 필요하다. 마당에는 관중도 있고, 코치와 감독도 있고, 라이벌도 있다. 운동선수가 경기장 분위기에 따라 발휘하는 기량이 달라지듯 천재들도 인적 환경의 역동성에 따라 발휘되는 기량이 크게 달라진다. 김연아 양에겐 아사다 마오와 같은 라이벌을 정해주고 박태환에겐 마이클 펠프스라는 넘어야 할 목표를 설정해준 것도 이런 마당이었다.

문용린 교수는 IDF 모델에 비춰볼 때 한국의 신천재들의 등장은, 부모에 의해 이른 시기에 소질이 발견되는 I단계의 첫 단추는 잘 꿰고 있지만, 학교와 사회가 담당해야 할 D단계와 F단계도 대부분 부모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천재의 소질 발현은 김치의 발효 과정과 같아야 합니다. 제대로 숙성될 때까지는 김칫독의 뚜껑을 자주 열지 말고 오랜 시간 항아리에 푹 담가둬야 합니다. 그걸 속성으로 발효시키려 설치면 김치 맛이 떫거나 빨리 시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평준화에만 초점을 둔 현재의 공교육에선 이런 과정을 밟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교육의 유혹을 떨치고 묵묵히 이런 발효 기간을 견뎌낸 부모들의 안목이 놀라울 뿐입니다.”






천재와 더불어 살기 위하여

한국의 신천재들을 접하면서 깨달은 또 다른 현상은 천재의 대중화다. 엄밀히 말해 천재는 8가지 다중지능이 모두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한국교육개발원 산하 영재교육센터에 따르면 영재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이스라엘에서조차 진짜 천재는 1년에 10명만 선발한다. 그러나 다중지능 중 몇 가지가 뛰어난 1.5% 안에 드는 수재와 다중지능 중 한두 가지라도 탁월한 3% 안에 드는 영재까지 별도의 영재교육을 실시한다.

한국의 영재교육은 0.9%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중 70~80%는 과학과 수학능력이 뛰어난 이공계 영재에 집중돼 있다. 영재교육센터의 김미숙 소장은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이공계에만 집중된 영재 육성 교육을 인문계와 예체능계로 확대해 최소 3% 수준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식 전환이 가져온 현재의 ‘18세 혁명’을 21세기 한국의 새로운 르네상스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천재 개념의 확산이 필요하다. 그것이 ‘천재의 대중화’에 담긴 첫 번째 의미다. 그런데 신천재들이 마음껏 활개를 펴기 위해서는 두 번째 의미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그것은 천재와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대중적 이해의 확산이다.

획일화한 한국 사회에서 다수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영웅이 되지 못하는 천재는 ‘저주받은 마이너리티’였던 게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 천재의 요절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에 의한 정신적 타살이란 말이 있다. 공부의 사슬에서 겨우 풀려난 천재가 다시 ‘왕따 문화’로 질식되지 않도록 할 책임은 우리 사회에 있다. 소수의 ‘모차르트’와 더불어 살 줄 아는 다수의 ‘살리에리’가 되기 위해 고독한 ‘모차르트’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통통티는 히피 블로그 에서 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