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덕(상호 이타)

modest-i 2014. 12. 9. 14:41

법질서

경쟁력평가지표(2008)에서 한국은 OECD 26개 국가들 중 22위로 최하위권이며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공공부문경쟁력조사에서도 50위권으로 나타났다.

 

 

부끄러운 공공실상을 반영하듯 공익창출을 위해

선공후사해야 할 공직사회에서 부패와 비리가 쉼 없다.

 

의당 맑아야 할 윗물 공직세계에서 법치를 빙자한 권력남용이나

                                                                   전관예우를 당연시한다.

 

사회지도층 역시 공익수호 의지가 박약하다.

 

민의무시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와 원리조차 망각한 채

폭력과 탈법으로 공익가치를 훼손해도 책임감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정치권의 공맹수준은 단연 최고다.


 

 

무릇 공익은 불특정다수의 이익이기에

특정 개인의 사익과 구분되어야 한다.

 

하지만 공ㆍ사의 한계가 상대적이고 유동적이기에

 

공익이면서 사익 같은,

공익에 사익이 가미된 또는

그 반대의 상태가 상정될 수 있다.

 

그럼에도 공익은 사익의 총합,

집단 간 상호작용의 산물이나

정의, 형평, 인간존중 등 도덕적 가치를 지닌 실체로 이해된다.

 

어떤 경우든 공익은 합리적 사고와 명확한 통찰,

                          그리고 공평무사한 행동의 토대에서

                          사회성원 다수의 이익을 반영해야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지금껏 공익은 제도화된 정치기구나 정부에 의해 추구되었다.

이에 공익보호와 창출에 필요한 권한, 수단과 함께 책무가 자연인이 아닌 기관에 주어졌다.

 

그렇기에 정부는 공익의 보루이며 모든 공직자는 공익경영자로 기능하면서

사사로운 일이나 이익보다 공사(公事)나 공익(公益)을 앞세워야 한다.

 

본연의 작용이 일탈, 망각되는 경우

지성이나 언론의 가차 없는 비판과 질책이 요구된다.

 

까닭인즉 지성은 사회적 양심으로서

언론은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공익수호의 사명과 기대가 천부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치행정현상에서 포퓰리즘에 빠진 정치인이나

                                                                   부패한 관료에 의해

 

공익이 추구될수록 불특정 다수국민의 편익 극대화는커녕

공익훼손이나 사익위축을 드러냈다.

 

 

사회공동체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평안이나

최대다수 행복의 상징으로서 공익이

정작 심리적 만족은커녕

사회적 불만을 야기하는 해독(害毒)으로 작용하면서

공익추구의 패러독스를 보여주었다.

 

지난날 집권층의 무책임, 공익사업의 확대가

서민을 도박과 사행성의 바다에 빠져들게 했던 바다이야기,

 

무분별한 국정홍보,

 

공직사회의 도덕적 해이,

 

관료의 직권남용 등은

 

이미 재정적자란 공익훼손국민부담 가중이란 사익침해를 야기하였다.

 

 

안타까운 점은 과거의 문제들이 현재에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예: 무상급식, 대규모 관공서 건물 (모디스티 첨삭)

 

 

 

KERI(한국경제연구원) 대한민국 선진화, 공맹(公盲)퇴치에 달렸다  에서 발췌

 

 
 
 

^ 도덕(상호 이타)

modest-i 2014. 12. 9. 12:06

<제1회 자유기업포럼 - 2000.12.11>
♣ 주제발표자 :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자유주의, 시장 경제 그리고 민주주의


 

1. 자유주의의 기본 원리

 

① 개인주의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을 사회 분석의 기본 단위로 삼는다. 오직 개인만이 선택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진다. 자유주의는 권리와 책임의 주체로서 개인 각각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존엄성이 여자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나 다른 민족을 비롯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보적으로 확장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서구의 위대한 자유주의의 승리 가운데 하나이다.

 

② 개인의 권리

 

개인들은 도덕적 행위자이기 때문에, 그들은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지킬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권리는 정부나 사회가 준 것이 아니다. 그 권리는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것이다. 개인이 이러한 권리를 안전하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타당하다.

 

③ 자생적 질서

 

개인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회 질서가 필요하다. 질서는 우리가 우표 수집이나 축구팀에 순서를 부여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중앙의 권력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사회 분석가들의 위대한 통찰에 따르면 사회의 질서는 그들 각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행동과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는 수많은 개인들의 행동에서 나왔다. 인류 역사가 진전되면서 우리는 점차로 더 많은 자유를 선택하게 되었으며, 얽히고 설킨 조직을 가진 복잡한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제도인 언어, 법, 돈, 시장과 같은 것은 모두 중앙의 지시 없이 자생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사람들 사이의 결합과 연결의 복잡한 그물망인 시민 사회는 자생적 질서의 다른 한 가지 예이다. 시민 사회 내부의 단체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형성되었지만 시민 사회 자체는 하나의 조직체가 아니며 그 자체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④ 법의 지배

 

자유주의자는 방임주의자나 쾌락주의자가 아니다.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행할 수 있으며, 하고 싶은 말이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자는 그 안에서 개인들이 다른 사람들의 동일한 권리를 인정하는 한, 그들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법 아래서의 자유로운 사회를 제안한다. 법의 지배는, 개인이 임의적인 명령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자생적으로 생성된 법적 규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규칙은 어떤 특정한 결과나 성과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개인들의 권리를 보호해야만 한다.

 

⑤ 제한적인 정부 (Limited Government)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은 정부를 형성한다. 그러나 정부는 위험한 기관이다.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액튼 경의 말에 나타나 있듯이 자유주의자는 중앙집중적인 권력을 혐오한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은 권력을 나누고 제한하려고 한다. 이것은 시민이 성문법에 의해 정부에 위임한 권력을 제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입헌적 정부는 자유주의의 기본적인 정치적 함축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유럽에서 권력이 분산되면서 개인의 자유가 확장되고 경제 성장이 이룩되었다고 생각한다.

 

⑥ 자유 시장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 개인은 경제 활동을 해야만 한다. 재산권은 상호 동의에 의해 재산을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함축한다. 자유 시장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경제 체제이고, 그것은 부를 창조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시민들의 경제적 선택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최소화될 때 시민들은 더 자유롭게 되고 더 번성한다고 믿는다.

 

⑦ 생산의 덕

 

다른 사람들의 생산적인 노동으로 먹고사는 군주와 귀족에 대한 반발은 17세기 자유주의의 추진력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의 결과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려고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노동과 생산에 대한 존경 특히 귀족들이 멸시한, 증가하는 중산층에 대한 존경으로 발전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미 마르크스 전에 사회 계층을 두 계급 곧 부를 생산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으로부터 힘으로 부를 빼앗는 사람으로 구분하였다. 예를 들면 토마스 페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에는 두 가지 구별되는 계급이 존재한다. 세금을 내는 사람과 그 세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한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1824년에 제퍼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필요 이상의 정부 기구를 가지고 있다. 너무나 많은 식객들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 먹고산다." 현대 자유주의자들은 생산자의 권리를 지켜주려 한다. 곧 생산자가 생산한 것을 정치가와 관료로부터 지키려 한다.

 

⑧ 이익의 자연스러운 조화

 

자유주의는 정의로운 사회 안에서 평화롭고 생산적인 사람들의 이익 사이에 자연스러운 조화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취직, 사업, 집을 사는 것과 같은 한 개인의 계획은 다른 사람의 계획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시장은 많은 사람들의 계획을 바꾸게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자유 시장이 운영됨으로써 번영할 수 있다. 농부와 상인, 제조업자와 수입업자 사이에 필연적인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정치적 압력을 근거로 보수를 분배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집단 갈등에 빠져들고, 조직을 만들고 다른 집단과 싸우게 된다.

 

⑨ 평화

 

자유주의자는 항상 전쟁과 싸워왔다. 자유주의자들은 전쟁이 대규모의 죽음과 파괴를 초래하고, 이산 가족을 만들고, 경제 활동을 파괴하고, 지배 계급의 손에 더 많은 힘을 준다고 믿는다. 이러한 사실은 통치자들이 항상 평화에 대해 보통 사람들과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물론 자유로운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사회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역사가 보여주고 있듯이 전쟁은 항상 평화를 사랑하고 생산하는 사람들의 公敵이었다.

 

 

2. 시장 경제 (market economy)

 

▷ 수많은 기업과 가계가 시장에서 상호 작용하면서 분산된 의사 결정에 의해 자원 분배가 이루어지는 경제 체제를 시장 경제라 부른다. 시장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자원 분배를 하는 좋은 수단이다.

 

공산주의 국가 : 중앙집권적 계획 경제 체제

 

정부의 경제 계획가들이 경제 활동을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경제를 운영해왔다. 국가의 계획담당자들은 어떤 물건과 서비스를 누가 생산하고, 또 얼마나 생산해야 하며, 누가 소비해야 하는가를 모두 결정하였다. 계획 경제는 오직 정부만이 국가 전체의 경제적 후생을 가장 잘 증진시킬 수 있다는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시장 경제 체제에서는 경제 계획 담당자가 결정할 사항들을 무수히 많은 기업과 가계들이 대신한다. 기업은 누구를 고용하고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한다. 가게는 어느 기업에서 일을 할지, 어느 제품을 구입할지를 자유롭게 결정한다. 기업과 가계는 시장에서 상호 작용한다. 시장에서는 가격과 사적인 이윤이 그들의 의사 결정을 좌우한다.

 

시장 경제의 우수성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수백만 가계와 기업들이 각각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이다. 그 동안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시장 경제가 경제 활동을 조직화하여 경제 복지 수준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가장 유효한 수단임이 입증되었다.

 

아담 스미스는 1776년 그의 저서 '국부론'에 경제학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발견을 기술하였다. 그것은 바로 가계와 기업들이 시장에서 서로 작용하는 과정에서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끌리는 것처럼 행동하는 바람직한 시장 성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 활동을 조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바로 가격이다. 어떤 재화의 가격은 그 재화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재화를 생산하기 위한 비용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가계나 기업은 물건을 사고 팔 때 가격을 고려하기 때문에, 이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행동이 초래하는 사회적 이득과 사회적 비용을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수요 공급의 변화에 따른 가격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의 조정 기능을 제약하는 것과 같다. 이로부터 우리는 세금의 부과가 왜 자원의 분배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세금은 가격을 왜곡시키고 가계와 기업의 의사 결정을 왜곡시키게 된다.

 

 

3. 민주주의

 

▷ 민주주의의 정당화

 

① 전제정치의 방지

 

민주주의는 잔인하고 포악한 독재자에 의한 통치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② 본질적 권리들

 

민주주의는 그 체제에 속한 시민들에게 비민주적 체제가 허용하지 않고 또 할 수도 없는 일정의 기본권을 보장해 준다.

 

③ 일반적 자유

 

민주주의는 그 시민들에게 가능한 어떤 대안적 체제보다도 광범위한 개인적 자유의 영역을 보장해 준다.

 

④ 자기 결정

민주주의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기본적 이익을 보호할 수 있게 해 준다.

 

⑤ 도덕적 자율성

 

민주적 정부만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결정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 자기 자신이 선택한 법 아래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 최대한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⑥ 인간 계발

 

민주적 정부만이 도덕적 책임감을 행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⑦ 본질적인 개인적 이익의 보호

 

다른 어떤 가능한 대안보다도 민주주의는 인간의 발달을 완전하게 할 수 있도록 해준다.

 

⑧ 정치적 평등

 

민주적 정부만이 상대적으로 높은 정도의 정치적 평등을 도모해 줄 수 있다.

 

추가하여, 현대 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⑨ 평화의 추구

 

현대 대의제 민주정체들은 상호간 전쟁을 하지 않는다.

 

⑩ 번영

 

민주적 정부를 지닌 국가들은 비민주적 정부를 지닌 국가들보다 더 번영하는 경향이 있다.

 

▶ 민주주의에 우호적인 조건은 무엇인가?

 

민주주의에 필요불가결한 조건들

 

① 선출된 공직자들의 군대 및 경찰에 대한 통제

 

②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정치 문화

 

③ 민주주의에 적대적인 강력한 외국에 의한 통제의 부재

 

민주주의에 우호적인 조건들

 

④ 현대적 시장 경제와 사회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과 민주적 문화 발전은 시장경제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기업을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시장경제는 민주주의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시장자본주의 경제는 불가피하게 다른 시민이 접근할 수 있는 정치적 자원에 대하여 불평등을 발생하게 한다. 곧 정치적 평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경제적으로 평등하지 않은 시민은 정치적으로도 평등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사이에는 영원한 긴장 관계가 있다.

 

⑤ 하위문화의 온건한 다원적 공존

 

▶ 왜 시장자본주의는 민주주의에 우호적인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갈등을 겪긴 하지만 서로 결별할 수 없다. 양자의 관계는 적대적 공생 관계이다. 서로 참으면서 이혼하지 못하고 지내는 부부와 같다.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다섯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① 다두 민주주의 (polyarchal democracy)는 시장자본주의가 압도적으로 지배적인 국가에서만 지속되어 왔다. 그리고 비시장경제가 압도적인 국가에서는 다두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사례가 절대로 없다.

 

② 이러한 엄격한 관계가 지속되는 이유는 시장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어떤 성격들이 민주주의 제도에 우호적인 조건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역으로 압도적으로 지배적인 비시장경제의 어떤 기본적인 성격들은 민주주의의 전망을 훼손시키고 있다.

 

▶ 왜 시장자본주의는 민주주의에 해가 되는가

 

③ 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는 각각 서로를 수정하고 제한하는 지속적인 갈등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

 

정부는 효율성과 공평성을 높이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정책은 떡을 크게 하고자 하는 것과 떡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라는 두 종류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대부분의 경우 시장으로 하여금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도록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경제학에서는 시장이 자유롭게 기능하는데도 효율적이지 못한 자원 배분 상태가 초래되는 경우를 시장 실패라 한다.

 

시장 실패의 이유 중의 하나는 외부효과이다. 외부효과란 한 사람의 행위가 제삼자의 경제적 후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공해는 외부효과의 고전적 사례이다. 어느 화학 회사가 자기가 내뿜은 매연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초래되는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이 회사는 매연을 계속해서 뿜을 것이다. 이 경우 정부의 환경 규제를 통해 경제적 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다.

 

시장 실패의 또 다른 이유는 시장지배력 (market power)이다. 시장 지배력은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사람들이 시장 가격에 임의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마을에 우물이 하나밖에 없다고 하자. 이 우물을 소유한 사람은 물 공급에 대한 시장 지배력(독점력)을 가지고 있다. 이 우물의 경우 보이지 않는 손이 개인의 이기심을 통제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는 수단인 경쟁에 노출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경우 독점사업가가 부과하는 가격을 정부가 규제함으로써 경제적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

 

경제적 풍요가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데에 보이지 않는 손은 더욱 무력하다. 시장 경제는 사람들이 구입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비례하여 사람들이 보상을 받도록 하는 체제이다. 세계에서 농구를 제일 잘하는 선수가 세계에서 체스 게임을 제일 잘하는 선수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이유는 사람들이 농구 경기를 보기 위해 지불하려고 하는 금액이 체스 게임을 보기 위해 지불하고자 하는 금액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모든 사람이 좋은 음식과 좋은 옷, 충분한 의료 혜택을 누리도록 보장하지는 못한다. 소득세와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제도들이 바로 경제적 후생을 보다 공평하게 누리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책들이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 성과를 개선할 수 있다는 말이 항상 개선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공공 정책은 천사들이 만드는 정책은 아니다. 정책들은 매우 불완전한 정치적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다. 종종 정책은 오직 정치적으로 막강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도 불완전한 정보에 의존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효율성을 높이거나 공평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들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④ 시장자본주의는 불가피하게 불평등을 초래하여, 정치적 자원을 배분하는 데 있어서 불평등을 발생시킴으로써 다두 민주주의의 민주적 잠재성을 제한한다.

 

⑤ 시장자본주의는 다두 민주주의의 수준에까지 이르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크게 우호적이다. 그러나 정치적 평등을 거스르는 반대의 결과 때문에, 시장자본주의는 다두제의 수준을 벗어나 민주주의의 발전에 비우호적이기도 하다.

 

참고 문헌

 

Robert A. Dahl, {민주주의}, 김왕식 장동진 정상화 이기호 옮김 동명사, 1999.

N. Gregory Mankiw, {맨큐의 경제학}, 김경환 김종석 옮김, 교보문고, 1999.

David Boaz, Libertarianism, Free Press, 1997.

<읽을 거리>

 

1.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

 

체계화된 이념으로서 자유주의는 근대의 정치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중요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다른 이데올로기와 구별된다. 자유주의자들은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직업의 자유, 최근에는 성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유주의자들이 무조건 이러한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이라는 단서 조항을 달고 이러한 요구를 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한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에만 국가가 개입할 수 있다. 자유주의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이론적으로는 깔끔하고 분명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라고 할 때 어떤 경우를 여기에 포함시켜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무엇으로 그 내용을 채우느냐에 따라 국가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경계가 서게 된다.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는 16세기 유럽에서 중요한 운동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20세기 말에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이후 자유주의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의 발흥에 대한 설명에는 2가지가 있다.

한 가지 입장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관용이 종교 전쟁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인식에서 나왔다. 무수히 많은 종교 전쟁을 겪은 뒤에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은 국가가 단일 신앙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과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는 국가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유주의는 이 원리를 종교의 영역에서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갈등하는 시민들의 사회 생활의 영역에까지 확장하였다. 자유주의 국가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시민들이 좋은 삶에 대한 그들 나름의 다양한 생각을 추구할 수 있는 '중립적' 틀을 제공하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유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다원주의와 다양성에 대한 인간주의적인 응답이다.

한편 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발흥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로 나타났으며, 자율적인 개인이라는 이미지는 시장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찬양하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자유주의는 종족과 종교가 다른 사회와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상호 의무의 그물망을 경쟁과 원자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사회로 대치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설명은 각각 그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비록 오늘날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정의는 기회의 평등과 심지어 富의 평등을 확보하기 위해 시장의 규제를 요구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유주의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하이에크나 노직과 같이 계속해서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을 고전적 자유주의자 또는 자유우선주의자(libertarian)로 부름으로써 롤즈와 도워킨과 같은 복지 자유주의자 또는 자유 평등주의자와 구별할 수 있다. 유럽에서 '자유주의'라는 말은 자유 시장의 옹호자를 지칭하고, 북미에서는 복지국가 옹호자를 지칭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 정신의 시작과 발전은 훨씬 더 오래되었다.

 

 

 

 

2. 자유주의의 발전과 상업

 

버트란트 러셀이 지적한 것처럼 자유주의의 발전은 상업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자유주의와 상업과의 관련을 알려주는 최초의 사례는 소아시아의 도시 이오니아였다. 이 도시는 이집트, 리디아와 교역하였다.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네에서 상업이 번성하였을 때, 아테네 사람들은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러셀의 설명에 따르면 자유주의 이념은 오랜 쇠퇴기를 거쳐 중세 롬바르드 시에서 되살아났으며, 16세기 스페인에게 정복을 당할 때까지 이탈리아에서 성행하였다. 17세기에는 상업을 발전시킨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자유주의가 번성하였다. 오늘날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포퍼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발전을 시장과 관련시켜 이해하고 있다.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처음 확립된 시기는 대략 기원전 507년이다. 아테네에서 손으로 베낀 책이 파피루스 두루마리 형태로 자유 시장에서 유통되기 시작한 때는 기원전 530년 경이다.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가 필사본 형태로 시장에서 유통되었다. 기원전 5세기에 작가, 역사가, 정치 사상가, 철학자, 과학자, 수학자들이 아테네로 몰려와 찬란한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투키디데스, 아낙사고라스, 헤로도투스와 같은 사상가들이 아테네로 이주하여 책을 출판하였다. 이들이 아테네로 몰려와 문화를 꽃피우게 한 활력은 무엇이었을까?

 

포퍼는 자유로운 도서 시장 (book market)의 발생이 아테네의 문화를 번성하게 한 요인이었다고 말한다. 도서 시장의 발생은 읽고 쓰는 기술이 확대되고, 호머의 시와 그 당시 위대한 작가들의 희곡이 널리 읽혀지고, 많은 새로운 사상이 활발하게 토론되고, 지적인 발전이 전개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발생이 도서 시장의 발생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흥미로운 대담한 가설이다. 포퍼는 유럽에서 15세기에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가 발명됨으로써 급속하게 도서 시장이 확장되었으며, 휴머니즘이라는 문화 혁명을 촉발한 역사적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쇄술의 발달과 책의 출판과 유통, 사상의 자유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책이 대량으로 유통되기 시작하면 사상 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사상의 교환과 전파를 막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인쇄소를 통제하고 책의 유통을 방해하였다. 독재자들은 예외없이 금서 목록을 만들어 사상의 자유로운 전파를 차단하려고 하였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중세의 금서, 최근까지 우리 사회에 존재하였던 이념 서적의 금지는 모두 사상의 자유로운 토론과 전파를 막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80년대 중반 이후 사무자동화와 더불어 복사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금서라는 정치적 사상 통제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도 포퍼의 가설을 지지해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복사기와 통신이 널리 보급된 사회에서는 사상의 통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러셀은 자유주의와 상업의 연관성을 흥미롭게 설명하였다. 사람들은 무역을 하면서 다른 종족의 관습과 만나게 되며, 이러한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풍습이 절대적이라는 독단에서 벗어난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관계는 자유로운 사람 사이의 교섭이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쌍방이 함께 가장 큰 이익을 본다. 파는 사람은 사는 사람을 동등한 관계로 대해야 한다.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통치자의 자리는 권력을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수출을 진흥시키고, 물류 소통을 원할하게 하며, 시민 사이의 분쟁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기능을 맡아야 한다. 통치자라기보다는 매니저 기능에 치중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여왕은 스스로 '국가 최고의 매니저'라고 말했다. 상업이 발달한 나라에서 국민들은 많은 자유를 누렸다. 자유를 누리는 국민은 자율성과 자주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국민 각자는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표현한다. 이런 사회에서 법은 국민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하는 시민들의 의식과 가치관에 맞추어 바뀌게 된다. 법은 전체 질서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시민의 권리를 보호한다. 개인이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경우 터부란 존재하지 않는다. 네덜란드 국민이 자율성과 자주성이 강한 이유는 바로 그 나라가 옛날부터 상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유주의의 신조는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더불어 살자는 신조이고, 공공 질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관용과 자유를 누리자는 신조이고, 정치적인 절차에서 광신을 피하고 중용을 지키자는 신조이다. 민주주의도 광신적인 성격을 띠게 되면 더 이상 자유주의적일 수가 없다. 민주주의에 대한 광신적인 믿음은 민주적인 제도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크롬웰 치하의 영국이나 로베스피에르 치하의 프랑스가 그러했다.

자유주의자는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하지 않고, '지금 상황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최선인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한다. 자유주의적인 전망의 본질은 어떤 의견을 주장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의견을 주장하는가에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어떤 의견을 독단적으로 갖는 것이 아니라, 잠정적으로 가지며, 자신의 의견을 반박하는 증거가 나타나면 그 의견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이론을 대하는 태도이며, 신학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방식과 대비된다. 불변적인 독단은 비과학적이다. 러셀은 과학적인 전망은 실제적인 측면에서 자유주의적 전망과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지식의 성격과 관련된 러셀의 자유주의에 대한 전망은 포퍼의 자유주의와 유사성이 있다.

 

 

자유주의에 대한 고전적인 태도는 밀의 다음과 같은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논문의 목적은, 사용하는 수단이 형사 처벌의 형태인 물리적 힘이거나 또는 여론에 의한 도덕적 강제이건 간에, 사회가 강제와 통제를 통해 개인을 다룰 때,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원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 원리는 인류는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어느 한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지만, 자기 방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개인에 대한 강제와 통제가 정당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한다라는 유일한 목적이 아니고,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서 문명화된 사회의 한 구성원에게 그의 의지에 반하여 권력이 가해지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 개인의 물리적이거나 도덕적인 행복을 위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 더 좋을 것이라든지, 그를 더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든지,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르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거나 더 정당하다는 이유로, 그에게 강제로 어떤 행동을 하게 하거나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이러한 것들은 그에게 충고를 하고, 그를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간청하는 좋은 이유는 될 수 있어도 강제력을 행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에게 해악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될 수 없다. 물리적 강제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경우는, 그가 하지 못하도록 제지해야 하는 행위가 타인에게 분명히 해를 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는 경우이다. 어떤 사람의 행동 가운데 사회에 책임을 져야할 유일한 행동은 다른 사람과 관련이 있는 행동뿐이다. 단지 자신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그의 독립성은 타당하고 절대적이다. 그 자신에 대해서, 그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대해서는 개인이 주권자이다."

 

밀은 개인이 국가나 사회로부터 어떤 형태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회의 구성 원리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옹호하기 위해 {자유론}을 저술하였다. 자유주의자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를 제외하고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어떤 제재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자유주의자는 개인의 자유를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 바로 고전적 자유주의의 출발점이다.

밀의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은 이미 고전 경제학을 발전시킨 아담 스미스의 인간관에 잘 나타나 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과 {도덕 감정론}에서 하나의 통일된 자연 법칙을 경제 세계에 적용하였다. 그는 이 두 권의 책에서 자연 질서에는 내재된 조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은 그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인류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개인은 그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본을 투자하여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가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실제로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높이려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아니 필연적으로 사회에 가장 큰 이익이 되는 곳에 투자하도록 그를 이끌어 준다."

 

"모든 개인은 보이지 않는 손의 이끌림을 받아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촉진한다.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여 사회에 나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사회의 이익을 위해 실제로 노력한 경우보다 더 효과적으로 빈번하게 사회의 이익에 기여한다. 나는 공공의 선을 위해 사업하는 체하는 사람이 행한 좋은 일은 결코 본 적이 없다."

 

밀과 스미스가 옹호한 고전적 자유주의는 각각의 개인들의 권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사유 재산은 엄격히 보호되고 정부의 역할은 제한되어야 하며, 자유 시장은 어떤 정부보다도 본질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3. 아담 스미스의 자유주의적 인간관

 

스미스는 특정의 문제들과 자료들을 검토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경제 질서에는 자연적 조화가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 이와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이러한 귀납적인 접근법을 통해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은 신의 섭리 가운데 하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말하는 이기심은 세속적인 재산에 대한 욕망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자기애를 의미한다.

그가 전제한 인간관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하나의 개인이고 협동적이라기보다는 경쟁적이다. 그는 쾌락을 추구하고, 도덕적 의무는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과 기질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야심적이며, 무엇인가를 갈망할 때 좋고, 게으르고 낭비할 때 나쁘다. 인간의 행동을 유인하는 요소는 사유 재산을 가지려는 욕망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유가 인간의 가장 소중한 소유권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적으로 강제를 불쾌하게 여기고 국가 권력을 의심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특성들은 신이 부여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들은 우주의 자연적 질서 가운데 일부이다. 스미스는 자유주의적 인간관을 근거로 근대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도덕적 근거를 제시했다. 한편 자본주의의 발전은 마르크스주의적 인간관과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비전이 나오게 된 한 계기가 되었다.

 

4.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적 인간관

 

마르크스주의는 개인의 복지보다는 집단의 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 곧 과학적 사회주의는 경쟁적인 경제를 계획 경제로 대치하려고 하였다. 과학적 사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사회 제도가 혁명적으로 변화하면 새로운 형태의 인간과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행위가 나오게 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탐욕적인 사회를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로 대치하려고 하였다. 시장에서의 성공의 보상을 노동하는 본능으로 대치하려고 하였다. 공공 봉사 속에서 인간은 자립과 자존심을 갖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고전 경제학에서 나온 경제 사회는 계급 사이의 갈등을 유발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사람들의 소유물의 정도에 따라 생산에서 맡는 역할이 달라진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어떤 사람의 사회적 지위, 갈망, 정신적 세계관과 그 사람이 받는 보상이 재산을 갖지 못한 사람과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였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계급 갈등은 사회의 혁명적인 재구성으로 끝을 맺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였다. 혁명을 통해 재구성된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안정되고 계급 없는 삶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스미르로프는 고전적 자본주의에 대비하여 마르크스주의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 계급은 개인주의적인 노력과 이익을 선언하였다. 따라서 그 사회의 전형적인 특성은 분명히 개인주의 심리학이다. 이 심리학은 사유 재산을 특징으로 하는 경제적 조건에서 나왔다. 부르주아지는 그의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노력을 인간 본래의 불변적이고 기본적인 성질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렇게 설명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본주의적 질서를 정당화하고 이 질서는 소위 말하는 인간의 타고난 이기적인 노력에 대응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실제로는, 자본주의 질서가 소위 이러한 인간의 타고난 경제적 노력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실제 상황은 그 반대이다. 인간의 개인주의 심리학은 자본주의적 질서에서 나왔으며, 이 질서가 없어진 곳에서는 이기주의적 노력이 결국 사라졌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개인적인 노력이 사회의 이익에 반대되지 않고 일치한다. 따라서 사적인 이익은 그러한 사회에서 억압되지 않고 반대로 충분히 표현되고 발전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회의 이익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이나 잠재 의식의 어두운 힘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세계를 분명하고 올바르게 반영하는 이성의 힘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성을 발전시키는 것을 교육의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다. 본능과 잠재 의식은 인간을 퇴행시키지만 이성은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그 자신의 개인적 이익보다 집단의 선을 우선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신조는 인간의 행동과 조화를 이룬다.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인간의 성격과 동기는 생물적이고 자연적인 충동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 사회가 인간의 전체 성격에 영향을 미치고 처음부터 그의 전체적 삶을 결정한다. 개인주의적인 행동은 사회적 조건의 영향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인간을 이렇게 개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 파악하고 설명하는 사회주의적 인간관은 당연히 반자유주의로 귀착된다.

 

5.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하이에크는 "자유주의란 자생적 또는 자발적 질서의 발견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질서는 중앙의 지령으로 만들어진 그 어떤 질서보다도 훨씬 넓은 범위에 걸쳐서 사회의 전체 성원의 지식과 기능을 유효화하는 질서이고 그 결과 그러한 강력하고 자발적인 질서를 형성할 수 있는 힘을 가능한 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질서다."라고 말한다.

 

자생적 질서에 기초한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하이에크는 자유주의를 진화론적 자유주의와 구성주의적 자유주의로 구별한다. 그는 "자유주의적 사회 질서의 원리들"에서 두 가지 '자유주의'를 소상하게 설명하였다. 첫 번째 자유주의는 영국에서 17세기 후반 구 휘그당 시대부터 19세기 말 글래드스톤에 이르기까지 걸쳐 발전하였던 바람직한 정치적 질서에 관한 개념이다. 이 자유주의는 법률 아래서 개인의 자유의 보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개념을 지지하는 대표자는 흄, 스미스, 버크, 머클레이, 액턴이다. 이들의 사상은 토크빌, 칸트, 쉴러, 훔볼트 등 대륙의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매디슨, 마샬, 틓스터를 통해 미국의 건국 정신으로 계승되었다.

 

다른 자유주의는 유럽 대륙의 볼테르, 루소의 사상으로, 프랑스 혁명의 정신으로서 사회주의의 원조가 되었다. 하이에크는 영국의 공리주의는 이같은 대륙적 전통을 어느 정도 이어받았고, 자유주의적 휘그파와 공리주의적 급진파의 융합의 결과로 생긴 19세기 말엽의 영국 자유당도 이러한 전통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이 자유주의는 프랑스에서 지배력을 형성하였던 구성적 합리주의 정신에 따라 자유주의를 달리 해석하였다. 이 자유주의는 정부 권력의 제한을 옹호하지 않으며, 다수당의 무제한의 권력을 이상으로 삼는다.

 

우리는 때에 타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는 정부가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져야 하는가와 관련이 있고, 후자는 누가 권력을 가지는가와 연관이 있다. 자유주의의 반대는 전체주의이고, 민주주의의 반대는 권위주의라는 사실에 주목하면 양자의 차이는 잘 드러난다. 원리적으로는 민주적인 정부가 전체주의적일 수 있고, 권위주의 정부가 자유주의를 따를 수도 있다.

 

두 번째 자유주의는 민중주의가 되어 다수의 '무제한의' 권력을 요구함으로써 본질적으로 반자유주의적이 되었다. 하이에크는 두 자유주의의 철학적 기초는 다르다고 말한다. 첫 번째 자유주의는 모든 형태의 문화 현상과 마음 현상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며, 인간 이성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파악하고 있다. 두 번째 자유주의는 하이에크가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라고 부르는 입장에 근거하고 있다. 구성적 합리주의는 모든 문화 현상을 의도적인 설계의 산물로 간주한다. 나아가 미리 설계한 계획에 맞추어 제도를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자유주의는 전통을 존중하고 모든 지식과 문명은 전통에 의존하고 있다고 보는 반면에 두 번째 자유주의는 이성이 문명을 설계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전통을 멸시한다. 두번째 의미의 자유주의자들은 "만일 당신이 새로운 법률을 원한다면,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법률을 폐기하고 새로운 법률을 만들라."는 볼테르의 말을 신뢰한다. 두가지 자유주의를 염두에 둔 그레스피그니는 하이에크의 자유주의를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확실히 하이에크의 자유주의는 오늘날 미국에서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하이에크는 국가의 규제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고 매디슨이나 독크빌, 액턴과 동일한 전통 위에 서 있다. 그러나 현대의 자유주의적인 미국인들은 자유를 참여와 유효한 선택으로 간주하는 볼테르나 루소의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에 크게 접근하고 있다. 하이에크가 여러 가지 권력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그것에 대한 깊은 의심을 가진 한편으로 오늘의 미국의 자유주의는 국가통제론적이나 분배적 자유나 사회적 진보를 위한 민주적인 정부의 간섭을 기대한다. 하이에크가 버나르, 맨드빌, 애덤 스미스와 같이 진보와 자생적 질서의 사회적으로 유익한 효과를 강조하고 있는 데 반해 리버럴한 미국인들은 면밀한 계획의 기초 위에 사회의 기본적 재구축을 추구한다."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다른 정치적 이념을 의미하게 되었다. 양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폰 미제스는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의 자유주의를 전체주의적으로 경제 운용을 지지하는 입장과 같은 범주에 속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다음과 같은 글은 미국적인 자유주의와 고전적 자유주의의 차이점을 잘 보여준다. 그는 20세기 초에 국가통제주의가 위대한 자유주의 전통을 심각하게 침해했을 때, 고전적 자유주의를 옹호하였다.

 

"지성인들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계획주의자들은 개인 자유의 폐지와 정부 전능의 확립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주의적인 지성인들을 사회주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좌파와 민주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오늘날 그들은 자신을 통칭 '자유주의자'라고 부른다."

 

폰 미제스는 오늘날 자유주의는 국가 통제주의에 지나지 않으며, 고전적 자유주의와 대립된다고 주장하였다. 반자유주의는 참되고 진정한 자유주의로 위장하여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로 나선 사람들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원리와 완전히 반대되는 프로그램을 지지한다. 그들은 생산 수단으로서 사유 재산과 시장 경제를 손상한다. 그들은 경제 운용에 대한 전체주의적 방법을 열광적으로 지지한다. 그들은 정부의 전능을 갈구하고, 기회만 있으면 공무원과 정부 관료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려고 한다. 그들은 통제에 대한 그들의 선호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반동적이고 경제적 귀족주의자라고 비난한다.

폰 미제스는 사유 재산을 기초로 하는 자유 시장이 개인의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시장 경제 없이는 개인의 자유가 유지 보존될 수 없다는 관점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당국이 그들이 싫어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북극 또는 사막으로 추방할 수 있고 일생 동안 강제 노동을 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나라에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하나의 속임수이다. 독재자는 항상 공공 복리와 경제적 편의라는 명분으로 그러한 자의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독재자는 계획의 실행을 빌미로 모든 문제를 혼자 결정하는 최고의 조정자이다. 정부가 모든 제지 공장과 인쇄소, 출판사를 소유하고 통제하면서 출판해야 할 것과 출판해서는 안 될 것을 결정할 때 출판의 자유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모든 강당을 소유하고 그 강당을 어떤 용도로 사용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면, 집회의 자유는 공허하다. 다른 모든 자유도 동일하다. 명백한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는 사태를 실제적으로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일한 고용주가 국가인 나라에서는, 반대는 천천히 굶어 죽는 것을 의미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옛 원칙은 복종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는 새로운 원칙으로 대치되었다.'"

폰 미제스와 같은 전통에 서 있는 하이에크는 국가 개입을 제한하고 시장 기구를 작동하게 하면 경제적인 번영이 촉진되고 개인의 자유가 극대화된다고 주장한다. 참다운 자유는 국가에 기초한 자유가 아니라 시장에 근거한 자유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자유를 국가 권력과의 관계에서 이해하고 있다. 국가의 힘의 크기를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보자. 하이에크식의 자유주의는 가장 작은 정부가 가장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Most More Less Least

Government Government Government Government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최소화되고 자유 시장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포퍼가 국가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가 고전적 자유주의자인가 미국식 자유주의자인가, 아니면 다른 자유주의자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6. 거대사회와 시장경제

 

공동체주의적인 덕목은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인 부족 사회에서나 적합하다.

 

과학 기술의 발전, 산업 혁명이 초래한 사회 변혁과 생활 방식의 변화는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가져왔다. 인구 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기원전 1만 년경의 초기 농경 시대의 세계 인구는 대략 500만 - 1000만 이었다. 이 당시 인류의 조상들은 사냥이나 채집으로 생활을 영위하였고, 총 20-25명 사이의 네 가족 또는 다섯 가족으로 구성된 집단이나 혈족이 널리 흩어져 살았다. 인구 밀도는 1 평방 Km 당 한 명도 되지 않았다.

농경 기술이 도입되면서 인류는 정착 생활을 시작하였고 경작지를 개간하였다. 농경의 시작으로 인류는 단기적인 환경 조건의 변화에 구애받지 않게 되었으며 증가한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농경 사회는 신석기 시대 이전 보다 많은 식량을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정이 좋은 해에는 0.1-1%의 인구 성장을 보였다. 그 이후 1만 2000년 동안 세계 인구는 항상 균일하지는 않았으나 비교적 일정한 비율로 성장하였다. 산업 혁명 초기인 1750년 세계 인구는 6억 5000만 - 8억 5000만 정도였다.

 

산업 혁명의 결과 새로운 에너지 원천과 효율적인 생산 체계가 사용되고 의학과 위생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새로운 의약품의 개발, 개선된 위생과 보건 시설, 백신의 발견은 인구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1750 - 1850년 사이의 100년 동안 세계 인구는 12억으로 늘어났다. 그 뒤 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해 1950년에는 20억 5000만이 되었고, 현재에는 60억이 넘은 인구가 살고있다. 과학 기술의 발단은 인구 증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산업 혁명 이후 인류는 근대 사회 곧 거대 사회(great society)로 진입하게 되었다. 거대 사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전의 사회와 구별된다.

 

7. 거대 사회

 

하이에크가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근저에는 아담 스미스가 사용한 서구 문명과 '거대 사회'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는 문명의 중심부에 놓여있는 개인의 자유, 책임과 같은 모든 도덕의 기초를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가 갖는 강한 설득력은 자본주의에 대한 도덕적 비판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현실주의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인 관심이 결핍되어 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사회주의자들은 경제가 어떻게 조직되고, 사람들이 어떻게 경제적 행위를 수행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였다. 매우 높은 도덕적인 기초를 점거한 도덕적 사회주의의 전통은 도덕성을 무시하고, 개인의 이기심과 탐욕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자본주의를 정죄하였다. 사회주의의 도덕 경제학은 자본주의의 정치 경제학에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다.

 

사회주의에 대한 하이에크의 공격은 교묘하다. 그는 사회주의가 아무런 도덕적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사회주의가 비도덕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주의가 하나의 도덕적 원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하이에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는 거대 사회의 도덕 원리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인 원시 사회 곧 인류가 수렵과 채취를 하면서 지낸 오랜 기간 동안에만 적용될 수 있다. 사회주의는 격세유전이다. 사회주의는 거대 사회가 작동할 수 있는 기초를 위협한다. 사회주의는 비록 수렵 채취 시대에는 가치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거대 사회에서의 생활에는 완전히 적합하지 않은 표준과 기준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인간 역사와 진보에 대한 특수한 문명 개념과 거대 사회론을 통해 자신의 비판을 전개하고 있다. 하이에크는 아담 스미스가 기술한 거대 사회는 근대 사회라고 생각한다. 거대 사회와 다른 새로운 사회가 도래하지도 않았고, 그대에 대한 대안적 사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근대성은 명확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거대 사회는 있을 수 있는 여러 사회 가운데 어느 한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살 수 밖에 없는 유일한 사회이다. 거대 사회에 합당한 도덕, 경제, 정치적 규칙과 제도가 여럿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의 문제점은 아무리 그것이 근대적인 원리인척 하여도 근대적인 원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이에크는 끊임없이 사회주의의 허세를 폭로하려고 하였다. 사회주의는 정책에 영향일 미침으로써 실제적인 결과를 초래한 일련의 근본적인 지적 오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대단히 결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현대 문명의 기초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문명을 위협하는 정책을 제안하였다. 사회주의는 더 높은 문명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원시 사회의 도덕으로 퇴행하였다.

 

하이에크의 자유주의에서는 부족 사회인 원시 사회와 거대 사회에서 정점에 달한 문명화된 사회가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인류는 아주 오랜 시간을 원시 사회에서 보냈다. 지난 8,000년에 걸쳐 문명이 발전하였다. 도시 생활을 시작한 것도 불과 3,000년 전이다. 문명이 발생하고 발전한 것은 100세대 밖에 되지 않았다. 인류는 아주 최근에 거대 사회와 현대성으로 이동하였다.

 

문명화된 사회가 원시 사회보다 도덕적으로 더 나은가? 하이에크는 말하지 않는다. 아마 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우리는 수렵 채취 시대에 살았을 때가 더 행복했을 지도 모른다. 거대 사회에 대한 그의 정당화는 높은 도덕성이 아니라 그것의 결과 때문이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문명 사회가 원시 사회보다 더 좋은 이유는 그것이 많은 인구를 부양하기 때문이다.

 

8.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와 진화론적 합리주의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는 이성을 통해 "인간이 사회 제도들과 문명을 창조했기 때문에, 인간이 자신의 바람과 원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것들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곧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는 "모든 사회 제도는 (인간의 이성에 의한) 면밀한 디자인의 산물이거나 산물이어야만 한다"고 가정한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데카르트 철학이 모든 형태의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의 근원이다. "훌륭한 법을 원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법을 불살라 버리고 스스로 새로운 법을 만들라"라는 볼테르의 말이나 과학기술에 의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베이컨의 믿음은 모두 구성적 합리주의의 소산이다.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는 데카르트주의의 이원론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정신과 물질을 두 개의 독립적인 실체로 상정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따르면 자연과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은 인간에게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제도와 문화를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준다. 자연이나 문화에 대한 정신의 능동성을 인정하고, 정신이 자연과 문화를 자신의 의도에 따라 디자인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지금 우리의 행동을 규제하는 모든 제도와 규칙은 인간 정신이 디자인한 것이다. 인간의 문명은 인간 이성이 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는 하이에크가 지적하였듯이 사실적인 측면과 규범적인 측면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 존재하는 모든 제도가 이성에 의한 디자인의 산물이 아니며,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이 지극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디자인을 통해 사회 질서를 만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곧 이성의 한계에서 오는 사고 능력의 불완전성과 정보 입수의 불완전성은 사실적인 측면에서 범한 오류이다.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의 사실적인 오류는 이성에 대한 잘못된 관점에서 출발하였다. 데카르트 철학에서 이성은 '자연의 빛'으로 모든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성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이성을 경험적인 것이 아니라 선험적인 것으로 가정하였다. 그러나 데카르트와 달리 하이에크는 이성의 선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성 자체도 문화의 한 부분이며", "인간은 문화 이전에 이성을 소유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성과 문명은 함께 진화하였다는 것이다. 이성은 모든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생성되었고 앞으로도 변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인간의 이성을 언어와 같은 차원에 놓는다. 언어가 이성적인 존재에 의해 '창안되었다(invented)'고 믿는 사람은 없다. 이성과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전한다. 언어 뿐만 아니라 도덕, 법, 손재주, 사회 제도들은 인간 행동의 결과이지 인간의 마음이 설계한 것이 아니다. 곧 그것이 섬기는 목적을 위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막스 베버가 말하는 '목적합리적' 생산물이 아니다. 이성도 사회 질서와 같이 어떤 목적을 위해 디자인되거나 발명된 것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자들은 도덕, 법, 기술과 사회 제도는 오직 그것들이 미리 생각한 어떤 디자인과 일치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이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하이에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신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자연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에 대한 적응이며, 사회의 구조를 결정하는 제도들과 영속적인 상호작용을 유지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정신은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다. 반대로 정신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러한 제도들을 변경하여 사회적 환경을 만든 것은 아니다. 정신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발전시킨 결과이며 그가 살았던 집단의 존속 가능성을 높여준 습관과 관행을 획득한 결과이다. 사회 안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들을 디자인하는 것이 이미 충분히 발전한 정신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진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완전히 반대이다.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의 사실적 오류의 두번째 측면은 지식의 편재성에 기원한다. 하이에크는 인간의 이성은 구조적으로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구조적인 무지는 우리가 무수히 많은 타인들의 계획과 목적, 행동을 부분적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며 이것마저도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계획과 목적, 행동에 대한 지식은 그들 머리 속에 제각기 분산되어 있고, 이렇게 분산되어 있는 지식을 우리가 수집하여 이용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모두 수집하여 통괄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는 누가 어떠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머리 속에 가지고 있는 지식을 계량적인 방식으로 수집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 가운데 많은 부분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명시적인 것이 아니라 암묵적 성격의 지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이에크는 인간 이성의 무지는 구조적이고 영구적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과학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사회 현상을 지배하고, 인간의 의지에 따라 사회와 자연을 바꿀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생명이나 마음이나 사회의 현상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과학에 근거한 자신감은 인간의 자만심을 키워 이러한 복잡함을 사려깊게 살펴 볼 수 없게 하였다. 이것은 이성과 과학의 치명적인 실수이다.

 

관찰된 사실을 해석하는데 우리의 이론과 탐구 기법이 아무리 큰 도움을 준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완전한 설명이나 정확한 예측에 도달할 수 없다. 현상은 복잡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모든 현상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 현상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과학의 힘으로 어떤 특정한 사실에 대한 모든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오류이다.

만일 과학이 사회 현상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과학은 우리가 복잡한 사회 현상의 상호 관련을 이론적으로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거대한 사회의 복잡한 질서를 결정하는, 널리 퍼져있고 급격하게 변하는 시공간의 특별한 상황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는 없다.

 

과학의 진보가 우리에게 세계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줄 수는 없다. 과학이 그러한 지식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치명적 오류이다. 복잡한 사회 현상에 대한 완벽한 지식은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다.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지식은 집중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통합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불완전하고 때때로 모순되는 지식은 흩어져서 존재하며, 독립적인 개인들이 그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지식은 본질적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분산되어 있으며, 함께 모을 수도 없으며, 의도적인 질서 창조라는 과제를 떠맡은 권력자에게 전달될 수도 없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으로 제도를 디자인할 수는 없다. 일련의 규칙과 제도들의 집합체인 문화는 인간이 디자인을 통해 구성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들 자신의 환경을 통제하거나 더 좋은 사회를 디자인할 수 없다. 다만 인간은 아주 작은 개선을 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대한 규모의 개선을 계획한다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인간 사회의 미래를 이성을 사용하여 집단적인 목적을 위해 설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으로 계획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실제로 그렇게 하려는 것은 '이성의 치명적 자만'이다.

 

인간은 문화적 유산 안에서 태어나고, 문화적 유산은 행동의 관행이나 규칙의 복합체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복합체가 우세하게 된 이유는 그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채택한 것이 아니라, 인간 집단을 성공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서도, '경험을 통한 학습'은 주로 사고의 과정이 아니라,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우세하게 된 관행의 준수, 확산, 전달 및 발전의 과정이다. 관행이 성공을 거둔 것은 행동하는 개인에게 그가 인식할 수 있는 이익을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그들이 속해 있는 집단의 생존의 기회를 증대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는 명시적인 지식이 아니라, 비록 그것이 규칙에 의해 기술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개인이 말로 표현할 수는 없고 단지 실천으로 존중하며 따를 수밖에 없는 지식이다. 정신이 규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행동의 규칙, 규칙의 복합체로 구성되어 있다. 행동의 규칙은 정신이 만든 것이 아니지만 개인들의 행동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 규칙의 복합체에 따른 행동이 경쟁 관계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보다 더 성공적임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사상의 기초를 닦은 철학자로 흄을 지적하였다. 그는 사회적 형성물(문화, 법, 제도)의 성장에 관한 참된 이론의 기초를 닦았다. 그리고 흄의 이론은 아담 스미스, 아담 퍼그슨에 의해 '인간이 디자인한 결과가 아니라 인간 행동의 결과'인 현상에 대한 이론으로 발전하였다. 인간이 이성의 도움으로 문명 밖으로 나가 더 높은 곳에서 그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가 바라는 목적과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수단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그가 거의 알지 못하는 행동의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 이 행동의 규칙을 의식적으로 창안한 것은 아니다. 전체를 바꾸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전체의 재구성은 어느 단계에서도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자료만 사용해야 하고, 그것은 진화 과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이에크의 주장처럼 구성주의적 합리주의가 잘못된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면, 그것에 근거하고 있는 과학 사상과 정치 사상도 역시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법실증주의, 무제한적 주권의 필요성에 대한 믿음, 공리주의, '인류의 미래 창조'를 목적으로 표방하는 사상, 사회주의는 모두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상은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과학기술적 유토피아주의도 이러한 사상과 같이 '위대한 사회'를 꿈꾸고 있지만, 위대한 사회와 문명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 잘못된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위대한 사회의 기본 질서는 절대로 계획을 통해서 달성할 수는 없으며, 예견된 결과를 목표로 할 수도 없다.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의 두번째 난점은 유토피아주의이다. 과학기술을 통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계몽주의적 낙관주의나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를 파멸로 몰고갈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주의적 비관주의는 모두 유토피아적 사고의 변형된 형태에 불과하다. 과학기술에 대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정반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극단적 사고 방식에 기초하고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이러한 극단적인 사고 방식 자체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한다.

 

 
 
 

^ 도덕(상호 이타)

modest-i 2014. 12. 9. 11:58

<책 소개>

자유시장 경제가 비도덕적이라는 그간의 주장을 공박 하면서

 

시장중심 경제가 도덕적 요구와

                       절약에                    가장 잘 부합함을 주장한              영국 철학자의 저술.

 

 

1956년 부터 1972년까지 "철학"지의 편집자였던 영국의 도덕철학자 H.B. Acton의 저술이다.

 

그는 이 책에서

 

대중들 사이에 널리 펴진 견해 즉 시장에서의 이윤추구 행위가 부도덕하다는 견해를 반박하고 있다.

 

이윤추구행위란 도덕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소비자와 근로자들이 시장에 참여하는 것과  동등한 행위이며,

 

그러한 행위가 어떤 악한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시도로 간주될 수 없다 것이다.

 

 

 

 

인간의 삶의 영역은 다양하며

시장에서 성공적인 직무수행이야 말로

다른영역에서 도덕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의 윤리성을 검토하는 입문서로서 적절하다

 

 

혼자서 즐기는 산행 블로그에서 펌 했음

 

 

                                      2014.12.09   모디스티

 

 

이 책은 1956년 10월에서 1972년 7월까지 ‘철학 Philosophy`지의 편집자였단 Harry Burrows Acton의 주요 논문 네편을 모은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가장 중심이 되는 글이 바로 ’시장의 도덕 The Morals of Markets`이고 기타 세 편의 짧은 에세이들은 시장에 대한 액튼 자신의 광범위한 분석을 다각적으로 보완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액튼은 시장 안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해서 일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을 부양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이러한 생각으로 인해 그는 사업가가 이윤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폭넓은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는 이윤추구행위란 도덕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소비자나 임금근로자들을 포함, 시장 안에서 활동하는 모든 다른 참여자들의 행위와 동동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는 그러한 행위가 어떤 악한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시도록 간주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시장 안에서도 정의, 정직, 신의 같은 것들이 시행될 기회들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시장은 사회와 동일선상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삶의 각기 다른 영역들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다른 덕목들을 시행할 수 있으며, 시장 안에서의 성공적인 직무수행이야말로 그 자신들이 다른 영역에서 이러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액튼은 주의깊게 자신의 논지를 펴고 있으며 이런 유의 논의에서 흔히 간과되기 쉬운 일상생활에서의 일련의 구체적 사실들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저자 소개]
액튼은 1908년에 태어났다. 옥스퍼드대학 맥달렌 컬리지에서 수학한 후, 1931년 유니버시티 컬리지와 런던의 배드포드 컬?熾【� 철학을 가르쳤고, 1940-45년에는 통상부에서 재직하였다. 1945-65년에는 배드포드 컬리지의 철학교수로 재직했으며, 이후 1974년 6월 16일 사망할 때까지 애딘버러 대학에서 도덕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목차]
서론: 자본주의의 윤리
시장의 도덕
1. 이 글의 주제
2. 이윤동기
3. 경제의 윤리
4. 평등한 집산주의적 대안
5. 계획과 예견에 대한 몇 가지 고찰
6. 요약 및 결론
전통과 질서의 몇몇 유형

논평: 하이에크의 ‘자유의 구성’에 관한 에세이
배분의 정의, 보이지 않는 손, 그리고 이성의 간계

 

 

 

시장의 도덕이라는 액튼경의 책을 읽어보면 시장이 얼마나 많은 도덕적 가치를 내포하고, 도덕을 키워왔는지를 이해하실수 있을 것입니다. 시장에서는 정직성과 성실성 그리고 법치에 의한 신뢰성등등의 도덕의 가치를 창출해왔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을 가르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원리와 시장의 도덕을 가르치는 액튼경의 책을 일독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시장은 도덕의 장이며, 도덕은 시장의 가치를 높이는 상호호혜적인 관계를 가지고 왔습니다.misesian 도 헌 올림 <댓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