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정심

modest-i 2014. 10. 19. 16:42

통찰이란 자기를 둘러싼 안팎의 전체 구조를 새로운 시점에서 파악하는 일을 말한다. 통찰이 가능하려면 주위의 상황을 새로운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게슈탈트 심리학(형태 심리학)에서는 지각적 재구조화라고 한다.

춘추시대에 최고의 통찰력을 보여 준 대가로는 한나라의 한비, 정나라의 자산, 주나라의 노자를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한비는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할만큼 군주와 신하의 관계에 정통했다. 그는 군신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통찰했다. 그 놀라운 인식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한비는 법가의 집대성자다. 그는 법의 냉혹한 적용을 주장했지만, 기본적으로 법은 피통치자인 백성의 납득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 법의 힘은 백성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일본 중세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통찰이기도 하다. 한비의 저술 <한비자>는 대부분 현실 문제에 대한 것으로 전국시대 사회 현실에 대한 냉철한 관찰이 돋보이는데 한비는 군주는 법술(法術)로써 사람들을 통제하고 엄한 형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고난 약소국 한(韓)나라 사람이었던 한비는 나라의 땅이 나날이 줄어들고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 한나라 왕 한안(韓安)에게 여러 차례 글을 올려 간언했지만, 한나라 왕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비는 한안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법과 제도를 닦아 바로 세우고 권세를 잡아 신하들을 부리며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튼튼하게 하며 인재를 찾아 쓰고 어진 사람을 임명하는 일에는 힘쓰지 않고, 도리어 쓸모없는 소인배를 등용하여 그들을 공로와 실적이 있는 자보다 윗자리에 앉히는 것을 보고 통탄했다.

이에 한비는 유세의 어려움을 알고 <세난(說難)> 편을 지었다. ‘세난'이란 말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뜻이다. 이 글은 한비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고난을 기반으로 하는 데다 인간 심리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상대가 원하는 말을 돌려서 하라

그렇다면 유세의 모험에 관하여 한비는 어떤 말을 남겼을까. 먼저 그가 주목한 것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시나리오를 여러 개 쥐고 있다가 마음속으로 잘 계산한 뒤에 들이밀어야 한다는 뜻이다. 통찰력이란 엉뚱한 데서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이러한 준비성에서 나온다.

“상대방이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데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식견이 낮은 속된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며 멀리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이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높은 이름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상식이 없고 세상 이치에 어둡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속으로는 큰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는 높은 이름을 원할 때 높은 이름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겠지만 속으로는 멀리할 것이며, 만약 큰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꺼릴 것이다.”( <사기열전> 중 「노자·한비열전」)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개 그의 사람됨과 행동거지, 언변의 스타일을 종합하면 대강은 얻을 수 있겠지만 좀더 철저한 유세가라면 관상학에도 정통해야 험한 전국시대를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비판은 신뢰가 깊어진 후에 하라

왕에게 걸어가는 길은 이처럼 온통 지뢰밭이다. 지뢰는 용케 피해야 하지만 중간중간 상대방의 환심을 살 수 있게 선물을 던져 주어야 한다.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주는 것, 군주가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 의견을 내세워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 군주가 꾸민 일과 같은 계책을 가진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고, 군주와 같은 실수를 한 자가 있으면 그에게 잘못이 없음을 명확히 설명하고 덮어 주어야 한다. 계속 이어서 한비의 말을 들어보자.

“현명하고 어진 군주에 관해서 말하면 자기를 헐뜯는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지위가 낮은 인물에 관해서 말하면 군주의 권세를 팔아서 자신을 돋보이려 한다는 오해를 받게 되며, 군주가 총애하는 자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그들을 이용하려는 줄 알며, 군주가 미워하는 자에 관해서 논하면 자기를 떠보려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말을 꾸미지 않고 간결하게 하면 아는 게 없다고 하찮게 여길 것이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말이 많다고 할 것이며, 사실에 근거하여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면 소심한 겁쟁이라 말을 다 못 한다고 할 것이고,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면 버릇없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유세의 어려운 점이니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사기열전> 중 「노자·한비열전」)

이것은 어디까지나 왕과의 신뢰관계가 전혀 형성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오랜 시일이 지나 군주의 총애가 깊어지면 큰 계책을 올려도 의심 받지 않고 군주와 서로 다투며 말해도 벌을 받지 않는다. 그때 유세가는 국가에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명백히 따져 군주가 공적을 이룰 수 있게 하며, 옳고 그름을 솔직하게 지적해도 영화를 얻게 된다. 그때까지는 자기 몸을 수고롭게 하고 천박한 일을 겪어야 한다고 한비는 말한다.

한비자 통찰의 마지막 단계는 ‘역린(逆鱗)'에 대한 것이다. 이것으로 그는 「세난」 편의 대미를 장식한다.

“용이라는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기열전> 중 「노자·한비열전」)

한비의 군주 심리학은 오늘날의 대중시대에도 유용한 지식을 선사한다. 봉건시대의 군주와 현대사회의 ‘대중(大衆)'은 여러모로 닮았다. 일단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폭군일수록 기분에 따라 행동하고 말과 생각이 다를 때가 많다. 오늘날 대중의 입맛은 수시로 바뀌고 미묘하게 틀어지기 때문에 쉽사리 접근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매스미디어가 대중의 취향을 획일화하며 ‘대중=바보'라는 도식을 만들어 낸 것이 지난 20세기의 흐름이라면, 21세기에는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고 있다. 대중만큼 영악한 것도 없고, 대중만큼 위력적인 것도 없다. 그들은 무쇠도 녹일 수 있는 여러 개의 입으로 만장일치의 마녀사냥을 향유하는가 하면 스스로 문화를 창조해낸다.

 

오늘날 대중의 역동성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새로운 상업적인 트렌드에 노출되어 있다면 한비 시대의 군주들도 왕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몰려든 유세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왕들은 항상 독살의 위협에 시달렸고 왕실의 권력게임에 지쳐 있었다.

비록 유세일 따름이지만 이것이 언제 칼이 되어 나의 목을 겨눌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왕들이 외부 세계와 만나는 하나의 필연성이기도 했다. 외부적인 요인이 설득 대상의 성질을 끊임없이 유연화시키고 변화시킴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한비를 읽으면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적어도 한비의 법은 이런 유동성의 불안을 애초에 차단하기 위한 방패로 강구된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풍화되지 않을 단단한 ‘사유'의 힘을 기다리며

지금까지 다섯 번에 걸쳐서 <사기열전>에 나오는 인물들을 통해 창조적 ‘생각법'을 만나 보았다. 소개한 인물들은 <사기열전>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사유의 힘을 보여 준 이들이다. 활동한 시기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달랐지만 인간으로서 감히 통과하기 힘든 시험의 과정을 그들만의 독특한 사유로 넘어섰으며, 역사의 돋보이는 존재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들의 행적과 대화에서 공통점으로 간추릴 수 있는 것은 모순과 갈등을 수용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며 때로는 조정하기도 하면서 생각의 싹은 자라고, 사회의 모든 면모에 대한 성세한 통찰 속에서 생각의 뿌리가 깊어진다는 것이다. 주름살이 많은 얼굴에서 더욱 웅숭깊은 삶의 흔적을 발견하듯,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쳐서 만든 상처가 ‘제대로' 아물수록 세월에 풍화되지 않는 단단한 사유가 탄생한다.


- 강성민 / <2천년의 강의> 저자, 교수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인물과 사상>에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저술가들의 책을 분석·비평하는 ‘탈脫 아카데미 저자열전'을 연재 중이다.

출처 : 삼성(www.samsung.co.kr)

 
 
 

^ 평정심

modest-i 2014. 10. 19. 16:41

마치 거대한 맹수 한 마리가 장전된 총알처럼 꿈틀거리는 상황을 앞에 둔 인간은 직관에 의존하게 된다. 직관은 이성과 분석을 거치지 않고 몸으로 본능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언제나 결정적 순간에 사용되기 때문에 일의 승패를 좌우하는 악역을 도맡는 능력이기도 하다. 진나라 통일의 패업을 도운 이사라는 인물은 모든 기회를 ‘만 년에 한 번'이라는 생각으로 잡았던 인물이다. 그를 통해 직관의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단 한 번 뿐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동을 충동시키고 의욕을 자극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이 격언을 가장 강조하여 사용했고, 스스로의 삶에서 남김없이 증명한 인물이 바로 진시황을 보필한 이사(李斯)다.

초나라 상채(上蔡) 사람으로 순자(荀子)에게 학문을 배운 이사가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 진의 천하통일은 이미 대세로 굳어진 상태였다. 이사는 이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통일 이후 자신이 정부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 보폭을 내디뎠고, 타이밍과 전략이 맞아떨어져서 수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만 년에 한 번이라는 생각으로 기회를 잡아라

시대는 마치 거대한 맹수 한 마리가 장전된 총알처럼 꿈틀거리는 상황이었다. 전국시대 말기 각국은 오랜 기간 서로 부딪혀 싸우면서 전쟁 피로증을 겪고 있었다. 여러 변법을 시행해 보았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후국들은 인정하기 시작했다. 맹주가 나타나 부르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했다. 누군가가 결정만 내리면 판이 크게 달라질 것이란 걸 예민한 생존전략가 이사는 읽고 있었다. 스승은 제자의 이런 투지를 말리지 않았다.

이사는 초나라 출신이지만 거기 머물 이유는 없었다. 그가 가야할 곳은 곧 천하의 주인이 될 진나라였다. 그는 진시황을 찾아가서 유세할 기회를 얻었다.

“진나라의 강대함에 대왕의 현명함이라면 취사부가 솥단지 위에 앉은 먼지를 훔치듯 손쉽게 제후를 멸망시키고, 황제로서 대업을 이루어 천하를 통일하기에 충분합니다. 이것은 만 년에 한 번 있는 기회입니다. 지금 게으름을 피우고 서둘러 이루지 않으면 제후들이 다시 강대해져서 서로 모여 합종하기로 약속할 테고, 그렇게 되면 현명한 왕이 있을지라도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사열전」

아직 시황제의 칭호를 얻기 전인 진왕 정(政)은 이사의 의견을 즉시 받아들여 궁궐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장사(長史)로 삼았다. 당시 진왕은 환관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것이 밝혀져 정통성 논란을 막 겪은 뒤였다. 자신의 혀처럼 보좌할 막강한 측근 권력을 키워야 했다.

이사는 진시황의 이런 처지를 잘 꿰뚫어 보았다. 직관은 번뜩이는 영감이며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이다. 직관을 발달시키면 상대방의 심리를 읽을 수 있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진다. 이사의 계책은 진시황에게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밖으로 쏟아 낼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주는 것이었다.

진나라가 강대해지자 제후국 내부에 나라를 진에게 바치려는 배신자들이 속출했다. 이사는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돈을 쥐고 쉽게 동반자들을 포섭했고 대항하는 이들은 칼로 찔러 죽였다. 그는 곧 다른 나라에서 온 유세가에게 주는 재상 벼슬 객경(客卿)으로 승진했다.

 

 


용인술의 원칙-양보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사에게 첫 번째 정치적 시련이 닥친다. 한나라에서 온 정국(鄭國)이라는 유세객이 스파이라는 사실이 발각됐다. 이미 진나라는 그의 말을 듣고 운하 사업을 벌였다가 엄청난 국부를 낭비했다. 이를 빌미로 텃새들의 집요한 공격이 시작됐다. 본국 출신 관료들과 외부 출신 빈객 유세가 사이의 오랜 알력관계가 폭발한 것이다. 이 시련을 넘어서는 과정은 이사가 결정적 순간에 승패를 좌우하는 직관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그가 축객(逐客)론을 돌파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는 ‘개방적 인재관이 큰 그릇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증명해 줄 역사적 근거는 충분했다. 진나라 효공이 상앙의 변법을 채용해 나라가 부강해진 것, 혜왕이 장의의 계책을 받아들여 삼천의 땅을 차지한 것, 소왕이 범저를 얻어서 외척을 억누르고 대신들의 세력 확장을 막은 것이 모두 그랬다. 나아가 개방적인 용인술이 갖는 장점을 원리적인 측면에서도 설명했다.

진시황이 갖고 있는, 주변국에서 빼앗은 수많은 보석들은 무엇인가. 또한 남쪽 제후국에서 데려온 악사들이 연주하는 화려한 음악과 도공들이 빚어 내는 투명한 도자기들은 또 무엇인가. 이것을 문화적인 시각에서 조명하면 낯선 것을 녹여냄으로써 안이 넓어진다는 것의 적절한 예시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후에 이사는 이것을 제왕의 자질론으로 연결시켰다.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장강은 작은 물줄기 하나 버리지 않아서 그렇게 넓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량껏 포용하는 게 아니라 ‘양보불가'라는 적극성이 강조되어 있다. 그는 제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진나라 황제가 견지해야 할 ‘인재론'과 ‘용인술'을 너무나 시의적절하게 구사했던 것이다.


권력은 선심 쓰듯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사의 도움으로 20여 년이 지나 통일 대업을 이룬 진왕 정은 천자(天子)라는 호칭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것으로는 자신의 공적을 다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삼황오제만이 자신과 견줄 수 있다고 생각해 ‘시황제(始皇帝)'라는 호칭을 새롭게 만들었다. 여기서 시(始)란 만세(萬歲) 중 제 1세, 즉 처음이라는 뜻이다. ‘만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는 이사의 조언을 받아들인 시황제는 새로운 만 년을 자신이 직접 열어젖혔다. 두 사람이 얼마나 궁합이 잘 맞았는지는 이러한 세부적인 것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기회'라는 자기 경영의 키워드는 정상에 오르기 위한 수단으로서는 충분히 효과적이지만, 정상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또한 모든 사물이 극점에 이르면 서서히 쇠락함은 자연의 진리이다. 정상에서 아래로 순탄하게 내려오기 위한 지침으로서도 ‘기회'라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사는 끝까지 기회에 자신의 몸을 기탁했다. 부귀할 수 있는 기회, 타인을 억누를 수 있는 기회, 인생의 온갖 욕망을 아귀처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권력은 언제든지 제공한다. 이때의 기회는 과거 목마를 때 마시는 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사가 중용과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을 역사가 허락하지 않았다. 진시황이 지방 순례에 올랐다가 사막 한가운데서 갑자기 죽어버리자 상황이 급변했다. 당시 시황제를 수행했던 이는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趙高) 그리고 시황제의 막내아들 호해(胡亥)였다.

조고는 호해의 어릴 때 스승으로 진시황의 죽음을 권력 창출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 시황제는 숨이 넘어갈 무렵 저 북방에 3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흉노를 방비하기 위해 떠난 큰아들 부소(扶蘇)에게 유언을 남겼다. 군대는 장군 몽염에게 맡기고 돌아와 유해를 맞으라는 것이었다.

비록 진시황은 평소 바른말로 자신의 비위를 거스르는 큰아들을 멀리했지만, 미워하지는 않았나 보다. 그래서 먼 변방에 보내서 거친 일을 시켰지만, 죽음에 이르러서는 적자계승의 원칙을 지켜 맏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주는 유서를 남긴 것이다. 조고는 시황제의 죽음을 아무도 모르게 비밀에 부치고 호해와 이사를 설득해서 유서를 고쳤다. 부소와 몽염에게 자결을 명하고 호해를 2세 황제로 삼는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이사에게 이 사태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보통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기회가 곧 위기였다. 조고는 온갖 감언이설과 반 협박조로 승상인 이사를 설득했다. 너무 큰 반역의 행위인지라 이사는 처음엔 반대했다. 하지만 조고의 설득은 끈질겼고 이사 자신이 반대하면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할 판이었다. 이미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결국 이사는 “아! 나 홀로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죽을 수도 없으니 어디에 내 목숨을 맡기랴?”라는 탄식과 함께 유서 조작과 왕위 찬탈에 동참한다.

판단의 결정적인 계기는 만약 부소가 왕이 되면 그의 측근인 몽염이 승상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사는 시황제의 맏아들 부소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시황제의 죽음은 곧 자신의 권세도 종결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래도 법가의 정신으로 제국의 법을 만든 이사가 헌법에 해당하는 왕위 계승의 원칙을 무너뜨리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왔지만, 권력의 안일함에 중독된 그의 이성은 이 ‘위기'를 자신의 인생에 다가온 ‘마지막 기회'라고 왜곡해서 인식한다.

결국 이사는 조고와의 권력 싸움에서 패배했고, 참혹하고도 급속도로 진 제국이 무너지는 모습이 「이사열전」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사는 반역의 누명을 쓰고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을 받아 거리에서 처형당하고 그 가족은 삼족이 멸해졌다.

직관이 발휘되는 것은 언제나 결정적 순간이다. 그것은 20세기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만 번에 한 번 오는 기회라는 말은 만 분의 1초의 차이로 예술작품이 탄생하느냐 평범한 사진이 되느냐가 갈라지는 것만큼 사태에 대한 민감하고도 집중적인 인식을 요구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이사의 삶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마천은 그를 뛰어난 인재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역사의 필연적인 흐름에 적절하게 몸을 맡겨서 성공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기회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기회를 다스리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그리고 한 개인이 역사의 운명을 이겨내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이사의 마지막 결단에 진한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그를 섣불리 어리석은 자로 평가하기가 주저되는 이유다.


- 강성민 / <2천년의 강의> 저자, 교수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인물과 사상>에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저술가들의 책을 분석·비평하는 ‘탈脫 아카데미 저자열전'을 연재 중이다.

출처 : 삼성(www.samsu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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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st-i 2014. 10. 19. 16:38

종합력은 ‘관찰'과 ‘비교'를 통해 종합적인 판단에 이르는 기술이다. 노(魯)나라 자공(子貢)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5개국을 서로 싸움 붙인 일은 관찰과 비교만으로 이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현재의 행위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에 대한 경우의 수를 도출하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행동에 돌입하는 지혜가 스며 있다.


외교의 달인 자공, 나라를 구하러 나서다

종합력은 작은 조각들을 결합하는 능력이다. 이는 분석과는 또 다른 지적 능력이고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특정한 해답을 전하기보다는 폭넓은 패턴을 감지하는 능력이며, 누구도 결합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요소들을 한 곳에 결합해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능력이다.

우리 주변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종합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래미안은 아파트 이름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브랜드다. 아파트 앞에 붙는 삼성, 엘지, 주공, 대림 같은 판에 박힌 상호를 없애고 아늑한 뜻을 지닌 합성어로 대체한 것이다. 래미안(來美安) 식의 콘셉트는 이후 아파트 브랜드의 표준이 되었다. 여기서 보아야 할 것은 서로 다른 것,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을 결합시켜 새로운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중국 고대에도 이와 같은 특출한 종합력을 보여 준 인물이 있다. 공자의 제자였던 자공(子貢)이 그 주인공이다.

공자와 제자들의 학문이 깊어 갈 때 나라 밖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제(齊)나라의 대부호 전상(田常)은 반란을 일으킬 속셈이 있었으나 역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차라리 제나라에서 세력이 큰 고씨 등과 군대를 합쳐 노(魯)나라를 쳐 공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공자는 이 소식을 듣고 제자들에게 “나라가 위태로우니 누가 나서서 구하겠는가?”라고 물었고 이 말에 여러 제자들이 다투어 나섰다.

맨 처음 자로(子路)가 나서기를 청했지만 공자는 그를 제지했다. 자장(子張)과 자석(子石)이 연이어 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윽고 자공이 나서겠다고 하자 그제야 공자는 허락했다.

왜 공자는 자공에게 임무를 맡겼을까? 바로 그의 외교 자질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자공은 공자 밑에서 배웠지만 「화식열전」에서도 소개될 만큼 성공한 상인이었다. 원래 위(衛)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단목사(端沐賜)이며, 말재주가 뛰어났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제나라 전상을 진정시키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전상을 찾아가서 쳐들어오지 말라고 통사정이라도 해야 할까?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제나라 전상의 반란을 막다

자공은 전상에게 미끼를 던지기로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주변 다섯 나라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했다. 아직은 머릿속의 계획일 뿐인 이것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그 과정을 한번 따라가 보자.

자공은 전상을 만나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다. 다 허물어져 가는 노나라는 공격하기 어려운 나라이고, 물샐틈없는 방비에 군사력도 강한 오(吳)나라가 오히려 공격하기 쉽다고 말한 것이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전상이 버럭 화를 내자 자공은, 그렇게 해야 전상 당신에게 유리하다고 재빨리 덧붙였다. 만면에 득의의 미소를 짓고서 말이다.

 

당시 전상은 제나라 왕과 실세 귀족들에게 늘 치여 사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반란을 일으키고자 했지만 아직 힘이 그만큼 되지 않아 우선 노나라라도 쳐서 공을 세움으로써 힘을 비축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공의 논리에 따르면 노나라를 쳐서 이기면 제나라 왕만 더욱 높아질 뿐이다. 왕은 더욱 교만해지고 대신들의 위세도 덩달아 높아진다. 반면 오나라를 공격해 패배하면 나라 밖에서 백성들이 많이 죽고 제나라는 힘이 약해질 것이다. 왕과 대신들은 나라 안에서 그 지위가 위태로워지며 그렇게 되면 전상에게 대적할 만한 신하가 없어진다는 논리였다.

‘옳다구나'하고 무릎을 친 전상이 오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할 동안 자공은 재빨리 오나라로 건너갔다. 오나라 왕 부차(夫差)를 만난 그는 제나라를 치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부차는 월(越)나라가 눈엣가시이기 때문에 월나라를 먼저 쳐야 한다고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자공은 오왕을 겁쟁이로 몰아붙였다. 큰 먹이를 놔두고 잔챙이를 건드리는 건 제왕의 태도가 아니라고 말이다. “월나라는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서 제나라 정벌을 떠난 오왕의 군대에 합세하게 할테니, 어서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로 떠나라.”고 부추겼다. 이 말을 들은 부차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월나라 군대가 오나라를 도우러 오면 월나라 안이 텅 비게 될테니 후방의 급습을 우려할 필요가 없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오왕은 여기서 결정적으로 자공에게 속아 넘어갔다. 월나라 왕 구천(句踐)을 만난 자공이 오히려 제나라와 전쟁하고 돌아오는 오나라를 공격하라고 첩보를 전했기 때문이다. 구천은 늘 오나라 왕에게 무시를 당했으나 굽실거리며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그런데 부차가 이것을 눈치 채고 월나라를 정리하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자공은 그에게 말했다.

“남에게 보복할 뜻이 없으면서도 그런 의심을 받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고, 남에게 보복할 뜻이 있는데 이것을 알아차리게 한다면 이는 위태로운 일입니다. 또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새어 나간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일을 꾀하는 데 있어 큰 걱정거리입니다.”( <사기열전> 중 「중니제자열전」)

핵심을 찔린 구천은 즉시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오나라에 군대를 보냈다. 하지만 자신은 정예 병력을 이끌고 오나라가 제나라와 전쟁한 뒤 돌아오는 길목에 매복했다.

다시 자공은 진나라로 갔다. 지금 오나라와 제나라가 붙으면 분명 오나라가 이긴다. 그러면 문제의 발단인 전상은 해결이 된다. 하지만 오나라는 그 기세를 몰아 진나라로 쳐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자공이 볼 때 진나라가 준비만 잘 하고 있으면 지친 오나라 군대를 꺾을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그는 진나라 정공을 만나 “군대를 잘 정비하고 병사들을 쉬게 하면서 기다리라.”고 말해 주었던 것이다.

사태는 자공이 예측한 대로 돌아갔다. 오나라는 제나라를 깨뜨리고 진나라로 진격했지만, 진나라에게 크게 패하고 힘만 소진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매복해 있던 월나라 군대와 부딪혀 거의 전멸당한 뒤 오왕 부차는 겨우 궁궐로 몸만 피신했다. 월왕 구천은 궁궐을 에워싼 뒤 오왕 부차를 끌어내 죽이고 재상 백비의 목을 베었다. 사마천은 논평한다.

“자공은 한 번 나서서 노나라를 보존시키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를 강국이 되게 했으며,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다. 즉 자공이 한 번 뛰어다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십 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기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사기열전> 중 「중니제자열전」)


새로운 두 개념이 만날 때 통찰이 싹뜬다

자공의 계획은 전상의 침략을 저지시키는 것이었지만 자공이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한 세력을 이용하여 다른 세력을 제어하는 것이었다. 그 핵심은 어느 한 나라가 절대적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강한 것은 약하게 약한 것은 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나라를 둘러싼 에너지의 절대량은 변화하는 것이 없도록 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계산법인가.

다섯 개의 퍼즐로 중국 지도를 바꾼 자공의 능력은 분명 뛰어난 종합력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자공이 뛰어난 외교가이자 명민하고 민활한 상인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공자의 제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유가(儒家)였다.

머리를 쓰는 사람은 항시 꼬리 밟힐 것을 걱정해야 한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그려지는 자공은 외교가와 상인의 모습이지만, <좌전>과 같은 역사서를 보면 유가로서 자공의 활약이 잘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자공이 공자의 예(禮) 사상을 지침으로 삼아 모두 일곱 차례나 노나라를 위해 활약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협상과 속임수가 본질인 외교 및 상업영역과, 청렴과 결백이 핵심인 유가의 영역은 어떻게 자공이라는 한 몸 안에서 구현될 수 있었을까? 떨어뜨려 놓으면 한없이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 ‘논리의 본질'이다. 자공은 이것을 삶의 기술로 받아들여 그 안에서 융합시켰기에, 서로 모순되는 것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하나의 목적을 향해 두 배의 속도로 무섭게 질주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 통찰이론의 권위자인 인지심리학자 로버트 와이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통찰이 발생하는 가장 대표적인 순간은 ‘이전에 만나지 않았던 두 가지 개념이 새롭게 만날 때'이다. 이전에 만나지 않았던 두 가지 개념이 새롭게 만나, 이전에 없던 추론이 발생하고, 그 추론에 따라 감동과 정보처리의 수준이 결정된다.”


- 강성민 / <2천년의 강의> 저자, 교수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인물과 사상>에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저술가들의 책을 분석·비평하는 ‘탈脫 아카데미 저자열전'을 연재 중이다.

출처 : 삼성(www.sams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