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정심

modest-i 2014. 10. 19. 16:11

관찰력은 기본적으로 풍경화가의 시선에서 탄생한다. 화가는 저 멀리 화폭의 균형을 잡아 줄 한 지점을 응시한다.

 

 뛰어난 관찰자는 자신의 눈앞으로 확대된 풍경을 뚫고 들어가 사태의 발단을 찾아내고 그것을 꼭짓점으로 삼아 사태를 훑어 내려오며 정리한다.

 

바로 그것이 관찰의 깊이다.

 

춘추시대 소진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지닌 6개국을 설득시켜 하나로 묶은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 발단의 꼭짓점을 찾아내는 관찰의 힘이었다.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경제를 구성하는 세부품목들도 대부분 바닥이다. 시장에는 무기력이 넘쳐 난다. 집값·전세값 폭락에 이어 기어이 땅값마저 내리고 있다. 이 좁은 대한민국의 땅값이 떨어지다니! 금융 해일이 실물 경제를 덮친 것처럼, 불안감은 이제 가계에 직접적인 실물 고통이 되었다.

위기가 기회라며 투자하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향후 1년간 코스피가 1,000 이하로 계속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집값도 주가도 모두 ‘반토막'을 향해 달려가는 꼼짝할 수 없는 포위의 극한이다.

 

 


중심 없는 관찰은 산만한 아이쇼핑일 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러나서 관망하는 것? 그것은 구경꾼의 태도다. 그래서야 포물선이 다시 상승하는 정확한 시점을 파악할 수 없다. 지금 요구되는 것은 능동적인 주시, 관찰이다. 관찰은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 깊게 조직적으로 파악하는 행위를 말한다.

 

중심이 없는 관찰은 산만한 아이쇼핑에 불과하다.

 

눈만 쓰는 게 아니라 눈과 머리가 함께 조화를 이뤄야 복잡한 현상을 조직할 수 있다.

 

 

눈과 머리가 연결되기 위해서는 둘이 맞닿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가 필요하다. 그것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관찰력은 현대의학이 20세기에야 발견한 신체의 비밀을 5세기 먼저 발견했다.

 

“왜 그럴까?”라는 과학자다운 질문은 관찰의 제1조건이다.

 

 

물론 정치경제학적 관찰은 이런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확실한 목적 관찰의 태도를 첨가해야 할 것이다.

 

대상에 매혹되거나 휘말리지 않고 목적에 충실한 관찰에서 깊이가 생겨난다.

 

그 깊이는 대상의 본질을 ‘궁금'하게 여기는 호기심과,

 

 현상을 행동의 근거로 가져가려는 ‘목적성'이라는 꼭짓점에서 비롯된다.

 

 

 

사단이 벌어진 최초는 그저 조그마한 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태는 거기서부터 확산된 것이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확산된 복수의 현상들이지만,

냉철한 머리는 결과로서의 확산을 뚫고 들어가서 그 최초의 발화점을 주시한다.

 이것이 관찰의 힘이다.

 

하지만 발화점을 찾아내는 관찰력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물이나 사태의 이모저모를 방대하게 섭렵하는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거기에는 길고 긴 시간이 투여되어야 한다.


 

논리 회로가 엉키면 풀지 말고 뛰어넘어라

백가가 쟁명한 중국 고대의 춘추시대. 정확한 관찰력으로 6개국의 재상을 겸임한 불세출의 재상 소진(蘇秦)의 사례에서 ‘원근법적 관찰력'의 한 전형을 발견할 수 있다. 기원전 334년부터 320년까지 활동한 소진은 제(齊)·연(燕)·한(韓)·위(魏)·조(趙)·초(楚) 여섯 나라가 ‘합종'해서 강대국 진(秦)나라에 맞설 것을 주장한 종횡가다.

진나라가 초강대국이 되면서 약한 나라들이 동병상련의 처지에 몰린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여섯 나라도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었고, 과거에는 수도 없이 싸웠으며 당시에도 서로에게 잠재적인 적에 가까웠다. 이들을 설득해 연합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 내기란 소진처럼 뛰어난 유세가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었다.

 

사태를 주시하던 소진은 여섯 나라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두 진나라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조나라가 떵떵거리는 이유도 연나라가 움츠리는 이유도 모두 진나라에 대한 공포심이 그 원인이었다. 소진의 눈은 이들의 행동을 진나라라는 꼭짓점에 맞춰서 일렬로 조직해 나갔다.

그런 후 그가 유세에 나서서 활용한 것은 ‘화근(禍根)의 심리적 확산효과'였다. 화의 뿌리! 이것을 제대로 건드려 주면 군주들의 위장된 공포심을 적나라하게 발가벗길 수 있었다. 정확한 설득과 대화는 가면을 벗은 다음에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나라 왕에게 말했다.

“조나라는 강합니다. 진나라가 천하의 방해거리로 여기는 것은 조나라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진나라가 감히 병사를 출동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한나라와 위나라가 그 후방을 교란시킬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나라와 위나라는 조나라에게 남쪽 장벽인 셈입니다. (지금처럼 그냥 두면) 진나라는 누에가 뽕잎을 먹듯 한나라와 위나라를 야금야금 차지하여 두 나라는 진나라의 신하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화는 반드시 조나라로 모아질 것입니다.”(<사기열전> 중 「소진열전」)

위험요소는 아무리 과장해도 그것이 거짓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심리는 위험을 외면하거나 현실을 실제 상황보다 더 안전한 것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근을 없애는 것으로 이익을 말하면 매우 현실적인 충고가 된다.

소진의 유세 전략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조나라 숙후에게 소진은 ‘화의 뿌리'를 강조했다. 마치 종이에 물이 스미듯 진나라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잠식하고 있다는 말은 숙후에게 위협적으로 들렸다. 다행히 조나라 왕은 어렸고 그가 겪은 진나라의 지긋지긋함은 여름철 모기떼보다 더했다. 소진은 조나라 왕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방대한 섭렵은 관찰본능을 단련시킨다

인간의 공포심을 이용한 심리전술은 아귀가 딱딱 맞는 정확한 관찰의 뒷받침이 없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소진은 연나라에 1년간 머물며 이 나라의 사정을 속속들이 관찰했다. 연나라 왕 앞에 나섰을 때 그는 연나라 백성들의 창고에 어떤 물건이 쌓여 있는지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연나라 땅은 사방 2,000여 리가 되고, 무장한 병력이 수십만 명이며, 수레 600대에 말 6,000필이 있고, 쌓아 놓은 식량은 몇 년을 견딜 수 있습니다. 남쪽에는 갈석(碣石, 하북성에 있는 갈석산)이나 안문(雁門, 오늘날 산서성에 위치한 지역)처럼 자원이 풍부한 곳이 있고, 북쪽에는 대추와 밤에서 얻는 이익이 있어 백성은 밭을 갈지 않아도 넉넉하게 살 수 있습니다.”(<사기열전> 중 「소진열전」)

 

 

한나라 왕에게 말한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이든 그 나라가 존립하는 이유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소진에게 그것은 한나라의 뛰어난 무기(武器)였다.

“한나라 계자(谿子) 땅에서 만들어지는 쇠뇌, 소부(少符)에서 만들어지는 시력(時力)이나 거래(距來) 같은 훌륭한 활은 모두 600보 밖까지 쏠 수 있습니다. 한나라 병사들이 발로 쇠뇌를 밟고 양손으로 기계를 잡아당겨 쏘면 백 발이 쉼 없이 잇달아 발사됩니다. 멀리서 맞은 것도 화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슴에 박히고, 가까운 데서 맞으면 화살 끝이 가슴속 깊이 파고 들어갑니다. 한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칼은 모두 땅에서는 소나 말을 벨 수 있으며 물에서는 고니나 기러기를 베고 적과 싸울 때에는 튼튼한 갑옷이나 쇠방패를 쪼갤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죽 깍지나 방패의 끈 등 갖추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사기열전> 중 「소진열전」)

칭찬과 구체성의 칼날에 객관적이고자 하는 왕들의 의식은 여지없이 베이고 만다. 뛰어난 강약대비 화술로 소진은 6개국 왕을 설득시켜 진나라의 천하통일을 수십 년 지연시킬 수 있었다. 그가 이용한 것은 단 하나 ‘무서워 하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 전략을 쓰기 위해 소진은 몇 년을 절치부심하며 설득의 논거를 만들어 나갔다.


부동산은 한국 경제의 ‘화근'일까?

오늘날도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이 ‘미네르바 신드롬'에서 관찰된다. 인터넷 경제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다음카페 아고라의 논객 ‘미네르바'는 지난 몇 달간 한국 경제를 정확히 예측해 ‘본좌'로 군림하고 있다. 그는 신비에 싸인 인물이지만 오랜 기간 금융권에 몸담아 온 현장 전문가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한국 경제에 대한 가장 냉혹한 평가는 그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다. 주가 500선, 마이너스 성장, IMF를 통한 일본 금융권의 공격 예고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황이고 미네르바의 묵시록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한국이 GDP 대비 부동산 비중이 89%를 차지한다”는 진단이다. 이것은 소진이 건드린 조나라와 연나라의 ‘화근'과 유사하게 닮아 있다.

 

 

지금까지의 경제위기가 전 세계적 동반하락 현상이었다면, 지금부터는 그야말로 한국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예언은 사람들을 불안감으로 내몰고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거대여론을 형성하는 중이다. 위험은 아무리 과장해도 거짓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네르바 신드롬만큼 잘 보여 주는 사례는 없을 듯하다.

그는 화의 뿌리를 찾아내 그것을 치밀한 시장 관찰력을 토대로 확산시키는 데 있어 춘추시대 소진과 같은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의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말이라는 주장이 있다. 1년 뒤에는 주가가 오를 거라며, 지금은 주식을 살 때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들을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거기에 관찰이 있는지, 관찰이 정확한 것인지 말이다.


- 강성민 / <2천년의 강의> 저자, 교수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인물과 사상>에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저술가들의 책을 분석·비평하는 ‘탈脫 아카데미 저자열전'을 연재 중이다.

 

출처 : 삼성(www.samsung.co.kr)

 
 
 

^ 평정심

modest-i 2014. 10. 19. 15:54

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적인 생각법 2] 정확한 욕망 - 비교력 / 네 개의 눈으로 사물을 꿰뚫어 본 한나라 유경(숙손통)

비교력은 나와 나 아닌 것,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 시급한 것과 여유 있는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 등 서로 대비되는 사물의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이다. 더 나아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미세하게 다른 것들을 분별해내는 지혜이다.

 

인간은 많은 것을 욕망하지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짚어 내지 못할 때가 많다.

 

진짜 욕망과 가짜 욕망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직업을 자주 바꾸는 사람을 보게 된다. 정신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는데 표면에서만 겉도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불안스러운 악착같음을 보고 있자면 알고 지내는 신경정신과 의사가 해 준 말이 생각난다. 나이 마흔을 넘기고도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찾아오는 내방자들이 많다는 얘기였다.

 

 

 

 

 

인간의 욕망은 삼각형을 닮았다

인간의 욕망은 대체로 강렬하다.

순간적이고 충동적인데다가 여러 개의 복수 형태로 나타나고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

늘 도시에서의 성공적 삶을 꿈꾸지만 한편에서는 시골로 가서 농사나 짓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욕망이 우리를 속인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다.

어떻게 속이는가?

이에 대해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인간의 욕망은 삼각형을 닮았다'고 말했다.

 

여기 A,B,C를 꼭짓점으로 하는 정삼각형이 있다.

 A는 욕망하는 주체, 바로 나다.

B는 내가 사고 싶어하는 스포츠카다.

C는 내가 스포츠카를 사고 싶게 만든 중개자다.

 

지라르는 A가 B를 욕망하게 된 것은 C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일견 이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갖고 싶으면 갖고 싶은 거지, 무슨 중개자가 필요하냐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라. 주변의 친구나 경쟁자들이 얼마나 나의 모방 욕망을 부추기는지,

사람들은 왜 톱 탤런트가 유행시킨 스타일을 따라 하는지를……. 욕망에 있는 모방적인 본질 바로 그것을 지적하는 게 지라르의 이론이다.

 

예를 들어 진주목걸이를 갖고 싶은 욕망은 실제로는 상류층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주목걸이 너머의 ‘상류층'이 자신의 진짜 욕망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다만 상류층의 대리자인 간접적인 욕망의 중개물들과 끊임없이 몸을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은 욕망의 이러한 가면적 경로를 냉철하게 인식한다.

그래서 자신이 욕망하는 것은 중개자인 C(탤런트)처럼 되고 싶은 것이지,

 B가 아니라고 말이다.

 

 

 

한나라를 세운 고조가 낙양을 고집하는 걸 보고 뜯어말린 유경도 낙양천도(B)는 바로 주나라 천자(C)의 대리품일 뿐이었음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유방은 왜 낙양보다 함곡관을 택했을까

춘추전국시대에도 이러한 욕망의 삼각형 구도는 자욱하게 펼쳐졌다.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후한이 망한 뒤 촉나라와 한나라를 석권하고 삼진을 평정한 후 항우와 천하제패를 놓고 각축을 벌이다가, 형양현에서 크게 무찔렀다. 두 번째로 중국을 통일한 한제국이 건설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유방이 항우를 물리친 그 순간만 해도 아직 제국의 기틀은 미미했다. 아직 수도를 어디로 할 것인지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어디를 제국의 도읍으로 정해야 할까. 유방은 생각에 잠겼다.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적합한 곳이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주나라의 수도인 낙양이다. 당시엔 주나라가 종주국으로서의 이미지를 아직 간직하고 있을 때였다. 유방은 수도를 옮기는 일에 착수했고, 이 소식이 나라 안팎에 널리 알려졌다.

그때 제나라의 포로 출신인 유경(劉敬)이라는 자가 소문을 듣고 한 고조(유방)를 만나러 왔다.
“폐하께서 낙양에 도읍을 정하신 것은 혹시 주나라 왕실과 융성함을 다투려는 것입니까?”
황제가 말했다. “그렇소.”

그러자 유경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길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 고조에게 주나라가 어떻게 생겨난 나라인지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주나라는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등장했다. 은나라 말기의 주왕(紂王)은 로마의 네로황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폭군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하는 물론 제후까지 가리지 않고 소금에 절여 죽이고, 삶아 죽이고, 포를 떠서 죽였다.

그때까지 주나라의 힘은 미약했다. 하지만 요임금 때부터 10대를 거쳐 선정을 쌓은 덕분에 주나라 문왕대로 내려오면서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 문왕이 죽고 아들 무왕이 즉위해 은나라 주왕을 칠 때에는 미리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맹진(孟津)에 모인 제후만 800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주왕을 쳐야 한다고 말했고, 마침내 은나라를 멸망시켰다.

주나라는 성왕이 즉위하자 낙양에 도성을 세웠다. 유경은 한 고조에게 주나라가 낙양에 도읍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이유는 주나라가 천하 백성을 덕으로 감화시키려 한 것이며, 험준한 지형에 기대 후손들이 오만함과 사치로 백성을 학대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한 것입니다. 병사 한 명 주둔시키지도 않고 주위의 소수민족과 큰 나라의 백성 가운데 기쁘게 복종하여 공물을 바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기열전> 중 「유경·숙손통열전」)

하지만 주나라와 지금의 한나라는 상황이 다르다고 유경은 지적했다. 서두에 인용했듯이 중국 전역이 피로 물든 지금 주나라의 도읍논리를 그대로 가져올 경우 사리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유경의 경고였다.

그는 한 고조에게 진나라의 땅을 권했다. 진나라의 수도 함곡관은 산으로 에워싸이고 하수를 띠처럼 두르고 있으며 사면의 요새가 나라를 튼튼하게 지키고 있어 갑자기 적이 쳐들어오는 위급한 사태에도 100만의 군사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라가 계속 어지러울 것이 명약관화한데 함곡관에 도읍하면 수도만은 굳건히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유경의 논리였다.
“폐하께서 함곡관으로 들어가 도읍을 정하고 진나라의 옛 땅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천하의 목을 조르고 그 등을 치는 일입니다.”
한 고조 유방은 고심 끝에 결국 유경의 이야기를 따랐다. 그의 공을 치하해 낭중으로 삼고 봉춘군(奉春君)이라고 불렀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에 대한 깨우침

유경의 지혜는 단순히 사태를 정확하게 읽으라는 것만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거기엔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다.

등 뒤엔 피바다가 가득하고 발밑은 쑥대밭인데 눈앞에 고지가 보인다고 앞뒤 없이 달려가면 기다리는 것은 신기루뿐이라는 얘기다.

 

유방은 결코 그의 재위 기간에는 성군이 될 수 없었다. 그가 수습해야 하는 것은 명성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이었다. 수도가 한 국가의 심장이라면 그 심장을 수많은 적으로부터 보호해야 했다. 헌데 한 고조는 주변에 아무 방어물이나 요새지도 없는 무방비 도시를 수도로 선택했다. 만약 유경이 없었다면 한 고조는 낙양의 핏빛 노을을 바라보며 후회하는 날을 맞아야 했을 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앞서도 말했듯이 욕망의 모호한 대상에 대한 깨우침이다. 무릇 다스리는 자라면 냉철해야 한다. 목적에 복무해야지 대상에 매혹되어선 곤란하다. 수도를 굳건히 해서 제국의 기틀을 갖추는 것이 목적이라면 낙양은 도읍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고조는 낙양에 매혹당했다. 그곳은 1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 중국의 수도였고, 그 중심에는 성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고조는 주나라의 성왕이나 강왕처럼 되고 싶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소유물인 낙양을 차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삼각형이다. 자칫 운명의 트라이앵글이 탄생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욕망은 매우 직접적인 듯이 보이지만 실은 간접적일 경우가 더 많다.

 

성욕의 근원이 모성애 결핍일 경우가 있듯이,

 

인간은 항상 무의식 중에 내재된 진짜 욕망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대변하고 있는 상징물에 집착하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른다.

 

오늘날에도 욕망의 장난은 그치지 않는다.

 

 르네 지라르가 말했듯 우리의 욕망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욕망을 모방하고 있다.

남들이 치니까 골프 치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지기 싫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남들이 백화점 음식 사 먹자 덩달아 시장을 버리고 백화점에 간다.

 

창조적이지 못한 사회의 특징은 이처럼 ‘욕망의 간접화'의 수위가 높다는 것이다.

욕망에 개성을 부여하는 사회, 욕망의 직접성을 되살리고 그것이 갖는 사회적, 개인적 의미를 생각하는 사회야말로 창조적인 무언가를 그려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 강성민 / <2천년의 강의> 저자, 교수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인물과 사상>에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저술가들의 책을 분석·비평하는 ‘탈脫 아카데미 저자열전'을 연재 중이다.

 

출처 : 삼성(www.samsung.co.kr)

 
 
 

^ 평정심

modest-i 2014. 10. 19. 15:02

제1강 ‘관찰력’에서는 춘추전국시대의 가장 뛰어난 ‘관찰력’의 소유자들을 소개했다.

 

진나라가 패권국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이를 막기 위해 제후국들의 합종을 제안한 소진,

 

진나라의 떠오르는 책사로서 소진의 합종론을 깨기 위해 연횡론을 주창한 장의,

 

진나라가 조나라의 보불 화씨벽을 빼앗고자 했을 때 여기에 맞서 기지를 발휘한 인상여,

 

쿠데타로 집권한 흉노의 묵돌 등이 여기에서 다뤄진다.

 

 

관찰은 생각의 기본이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뒤엉켜 있던 당시에는

복잡하고 미묘한 힘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꿰뚫는 눈’의 필요성은 가장 우선적인 것이었다.

 

장의와 소진은 제후들을 설득하기 위해 각국의 먹고사는 현실부터 군사 장비의 현황까지 훤히 꿰뚫었으며

이를 설득의 근거로 제시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객관적이면서도 치밀한 관찰에 생겨난다.

 

 

제2강 ‘비교력’에서는

 나와 나 아닌 것,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

 시급한 것과 여유 있는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 등 서로 대비되는 사물의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었다.

 

춘추시대의 흥망과 성패의 비밀이 다 여기에 숨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려는 한고조의 천도 계획을 막고 불안한 제국 초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게 도운 유경(숙손통)은

주나라와 한나라가 처한 상황의 차이를 비교해서 정확히 꿰뚫어보았다.

 

한나라 이광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한 이유 또한 장군과 장군이 아닌 자에게 요구되는 역할의 차이에 대한 사고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초나라의 현인 사마계주가 지배층과 점술가의 자질을 비교하는 대목은 타산지석의 중요함을 보여준다.

 

동시에 다른 사람에 의해 평가받기 전에 스스로를 냉정하게 점검하는 일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제3강 ‘종합력’에서는

 ‘관찰’과 ‘비교’를 통해 종합적인 판단에 이르는 기술을 제시했다.

 

제나라의 자공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5개국을 서로 싸움 붙이는 일은 관찰과 비교만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엔 현재의 행위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에 대한 경우의 수를 도출하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행동에 돌입하는 지혜가 스며 있다.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명의 편작은 음양의 질서에 대한 투철한 깨달음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에 근거한 판단이 가질 수 있는 한계를 보충했고,

 

그 뒤를 잇는 창공은 교과서에 나온 진리를 현실에 맞게 변형시킴으로써 올바른 길을 찾는 창의성을 잘 보여준다.

 

외척 통치의 틀을 깨고 왕권을 강화했지만 스스로 재상 직을 내놓은 진나라 범저의 이야기는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 우리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이 사례들은 종합적인 판단이 꼼꼼한 계산과 넓은 시야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시사한다.

 

 

제4강 ‘직관력’에서는

관찰과 비교와 종합이라는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넘어서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직관은 인간 이성을 개입시키지 않고 사물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사기열전』에서 이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 현실과 천 갈래 만 갈래 펼쳐진 길 중에서

성공적인 길을 찾아들어간 개인들의 처신술로 나타난다.

 

진시황을 도와 통일을 이루고 진 제국의 법적 기초를 닦은 이사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때를 알아차리고 나아감으로써 비록 학문적 기반은 얕았지만 국가의 기틀을 잡는 역사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지나친 강경 원칙론자였던 급암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그가 왕에게 간언을 수시로 올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중대한 이익이 걸린 자리에는 끼어들지 않는 본능적인 직관력 덕분이라고 할 것이다.

 

제5강 ‘성찰력’에서는

종합과 직관으로 완비된 판단일지라도 다시 한번 반성적인 의식의 회로로 불러들여 검토해야 할 것을 역설했다.

 

진시황을 암살하려던 연나라 자객 형가는 비록 뛰어난 학문과 승부사적인 기질을 갖췄지만

빨리 떠나라는 군주의 의심과 재촉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준비를 미처 다 하지 못한 채 임무를 수행하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진나라의 상앙은 법술가이지만 지나친 엄격함과 먹줄로 잰 듯한 정확성 때문에 부메랑을 맞은 인물이다.

권력을 잃었을 때 그는 자신이 만들어 반포한 법망에 걸려 죽었다.

 

성찰은 당장의 이익이나 효과에 목매인 인간들이 앞을 다볼 수 있는 심리적인 여유를 되찾을 때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제6강 ‘통찰력’은

달인’의 경지에 이른 생각하기의 진수들을 담았다.

 

 한나라의 위대한 천재 한비는 법가의 집대성자로 비록 개인적인 삶은 불우했지만

군주의 심리학에 정통했던, 제왕학에 대한 이해가 가장 깊었던 사람이다.

 

특히 말하기의 어려움을 담은 ‘세난說難’ 편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열전 속의 한비에게서

우리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설득의 심리학’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비가 숭상해 마지않은 노자 또한 사마천이 매우 높게 평가하는 사상가다.

 

가르침을 달라고 찾아온 공자에게 이미 죽어 없어진 성현들의 말부터 버리라고 충고했던 노자는

버리면서 얻고 세우지 않고 세우는 모순 어법을 통해 다스림의 진정한 이치를 보여줬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기열전』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사유의 힘을 보여준 이들이다.

활동한 시기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달랐지만

이들은 인간으로서 감히 통과하기 힘든 시험의 과정을 생각을 통해 넘어섰으며,

역사의 돋보이는 존재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들의 행적과 대화를 통해

우리가 공통점으로 간추릴 수 있는 것은 모순과 갈등을 수용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며 때로는 조정하기도 하면서

생각의 싹은 자라고 사회의 모든 면모에 관한 섬세한 통찰 속에서 생각의 뿌리가 깊어진다는 것이다.

 

주름살이 많은 얼굴에서 더욱 웅숭깊은 삶의 흔적을 발견하듯,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쳐서 만든 상처가 ‘제대로’ 아물수록 세월에 풍화되지 않는 단단한 사유가 탄생한다.

 

 

 

 

 

『사기열전』의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

 

일본의 국사國師라고 불리는 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이름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사마천을 따라가기가 참으로 요원하구나”이다.

 

얼마 전에 타계한 박경리 선생은 “온 생의 무게를 펜 하나에 지탱한 채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말한 뒤 생을 마쳤다.

 

도대체 사마천의 무엇이 우리 시대 위대한 인물들을 감동시키는가. 추구해야 할 멀고 먼 대상으로 여기고 평생을 기대어 지탱하고 싶게 만드는가.

 

사마천의 『사기』는 삼황오제부터 한무제까지 3000년의 시간을 포괄하는 웅대한 스케일의 역사서다.

생식기를 절단하는 궁형의 치욕을 당한 속에서도 그 절망을 이겨내고

객관적이고도 보편적인 인류의 문제를 가감 없이 그려낸 인간 승리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유언을 이어받아 기원전 104년에 착수, 16년의 인고의 세월을 거쳐 『사기』가 완성된 때로부터 2천여 년의 시간이 흐른 셈이지만,

그 이전과 이후에 나온 역사서들을 압도하면서 지혜의 빛을 더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궁무진한 고전으로서의 위력을 새삼 주목하게 된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사기』가 역사서이자 뛰어난 문학서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사마천의 문체와 글쓰기가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러한 문체를 뒷받침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다.

특히 뛰어난 개인들의 전기를 다룬 70편의 『사기열전』은 돋보인다.

 

다른 역사서들이 인간군상의 드러난 외부적 사실에 대해서 피상적·평면적으로 서술한 것에 비해,

 

사마천은 그 인물의 내밀한 부분과 참모습으로 파고들어

성공과 실패의 원인,

두려움과 자만심의 근원까지 짚어냄으로써

하나하나를 잊을 수 없는 개인들로 만들어놓았다.

 

말하자면 『사기』는 인간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가능하게 한 동력으로서의 ‘생각’을 중심에 두고 서술된 유일한 역사서라고 할 만하다.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요즘의 풍토에서 보더라도,

『사기』를 능가할 만한 ‘생각하기의 교재’는 드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언하건대 여기엔 인간으로서 시도해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생각들이 다 들어 있다.

 

공자와 노자부터 한비와 손무까지 우후죽순으로 백가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부딪치고,

국가의 안위부터 개인의 영달까지 성스러우면서 세속적인 인간 본성의 이중적인 측면이 드라마처럼 그려진다.

 

 

 

[인터파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