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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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21년 01월

20

자연/취월당 선과 색 展 I

17세기 서양미술 바로크와 고전주의 코르넬리스 드 보스 (1585-1651) 앙리 4세의 승리 패널에 유채, 35×47.7cm, 랭스 미술관, 랭스 이 작품은 밑그림이지만 시체 주변의 붉은 핏자국, 초록빛이 도는 살색, 왼쪽의 연보랏빛 하늘 등 섬세하고 풍부한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P . L.C. 피터 반 몰 (1599-1650)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캔버스에 유채, 213.5×151.5cm, 랭스 미술관, 랭스 반 몰이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에 심취한 초년기 작품으로 평가된다고. 니콜라스 모이예르트 (1592-1655) 나사로의 부활 1652년 경, 캔버스에 유채, 85.9×107.8cm, 랭스 미술관, 랭스 신약성서를 주제로 한 도상화의 전통적 주제다. 멜키오르 드 혼더쿠터 (1636-1695..

18 2021년 01월

18

자연/취월당 방들의 실내악

방은 실재적인 동시에 상상의 공간이다. 네 개의 벽과 천장, 바닥, 문, 창문이 방의 물질적인 측면을 이룬다. 방의 규모와 형태, 장식은 시대와 사회 환경에 따라 갖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방의 밀폐성은 마치 성사처럼 집단과 남녀, 그리고 개인의 내밀성을 보호한다. 따라서 문과 방의 마스코트인 열쇠, 그리고 신전의 장막과도 같은 커튼이 상당히 중요하다. 방은 자신과 자신의 생각, 편지, 가구, 물건들을 보호한다. 방은 침입자를 물리치는 성벽이다. 방은 누군가를 맞이하는 은신처이다. 방은 무언가를 쌓아놓는 창고다. 혹은 , 들라크루아, 켄버스에 유채, 69×123cm, 1870, 워싱턴 국립미술관 . 들라크루아, 캔버스에 유채, 180×229cm, 루브르 박물관 , 알투안 베누아, 1705, 베르샤유 궁 엘..

17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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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화조화花鳥畵

정학교, 종이에 채색, 35.7×20.2cm, 서울대학교박물관 19세기 이정직이 읊었다던가? "그대는 보았는가. 옥 받침 위 금 술잔이 얼마나 영롱한지를..." 수선화의 청초함을 일컬어 가히 '물가의 신선'이라고 했다. 이 작품은 '구륵법鉤勒法' 즉 갈고리로 둘레를 먼저 표현하는 기법과 '몰골법沒骨法'이 함께 동원된 작품이라고. 김홍도, 종이에 옅은 채색, 26×31.6cm, 호암미술관 단원이 쉰다섯에 그렸다는 에 나오는 한 폭으로 화첩은 모두 20폭인데, 그 중 9폭에 까치를 비롯한 오리, 꿩, 매, 백로 등이 등장한다고. 마치 까치가 홍매향 소식을 봄날 대지에 무한 떠들어 대는 듯. 조영석, 비단에 먹, 23×16.8cm, 서울대학교박물관 '정묘년 봄 관아재觀我齋' 가 기운 넘치는 까치를 그린 것으로..

16 2021년 01월

16

15 2021년 01월

15

13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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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박래현 I

박래현(朴崍賢, 1920~1976)) 박래현은 운보 김기창 화백의 부인이자 평생 예술적 동반자로서 화단에 우뚝 선 인물이다. 청각 장애를 지닌 운보를 위해 한국어, 영어, 구화(口話)의 삼중통역자 역할을 해냈으며 어머니로서 현대 여성의 모범으로 칭송되기도 했다. 박래현은 일본화의 영향 아래 예술의 기초를 다졌으나 광복 이후 채색화의 장르를 창출했으며, 더 나아가 모더니즘으로 변모, 추상을 비롯, 뉴욕 생활 당시 판화 기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세계를 이끌어온 바, 그녀가 태어난 시대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선구자 적 역할을 이루어 낸 것이다. 박래현은 일제 말에 조선미전을 통해 등단하고,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소위 관전파(官展派) 화가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화가라고 볼 수 있는데 나이 ..

12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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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변월룡 III

변월룡의 풍경화는 초상화에 비해 덜 주목받았지만, 작가의 개성과 미묘한 내면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장르다. 전쟁의 공포와 비극을 극복하고 다시 일상을 즐기게 된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삶, 화려한 도시의 풍경 교회나 성채 등 러시아의 전통적인 건축물, 설경, 생명력 가득한 광활한 초원과 강 등을 그린 풍경화는 소련인이자 고려인인 그가 지닌 이중의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다. 소련에서 풍경화는 영혼의 언어를 갖지 않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모호하다는 이유로 중시되지 않았지만,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는 조국 의 풍경과 근대공업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풍경은 허용되었다. 레닌그라드에서 멀리 떨어진 극동 자주 찾은 변월룡의 풍경화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보인다. 그는 구불구불하게 뒤틀린 소나무를 주로 그렸다. 사실적이..

11 2021년 01월

11

자연/취월당 변월룡 II

1953년 7월 변월룡은 소련 문화성의 명령에 따라 북한에 파견되어 러시아 아카데미 시스템과 교과 과정을 모범삼아 전쟁에 파괴된 평양미술대학을 재건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전수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당시만 해도 미술 창작에 대한 김일성의 구체적인 지침이나 민족적 형식의 교시가 없었기 때문에 북한의 예술가들은 소련의 문예이론과 실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변월룡은 그 매개였다. 15개월 남짓 북한에 머무르는 동안 그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해방 이후 우리에게 오랫동안 잊혀진 북한의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했고, 처음으로 밟은 조국산천의 풍경과 북한주민들의 소박한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그의 존재는 분단 후 반쪽이 되어버린 한국현대미술사에 귀한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귀국 후 변월룡은..

10 2021년 01월

10

자연/취월당 변월룡 I

변월룡(邊月龍), 1916~1990 연해주에서 태어나 러시아 문화예술의 중심지 상트페테르부르크(舊 레닌그라드)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그곳에서 평생 제자를 길러내면서 러시아 미술사에 작은 족적을 남긴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변월룡의 작품에는 두 개의 조국,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에 대한 강한 소속감과 모국인 한국에 대한 향수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변월룡의 조부와 부친 세대, 즉 연해주 이주 1 세대는 정신적, 문화적으로 조선인으로서의 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으나, 러시아 내전이 끝나고(1920) 연해주를 강제 점령했던 일본군이 철수하면서(1922), 그 후손들로 구성된 고려인 사회는 볼셰비키가 이끄는 소련 체제에 흡수되지 않을 수 없었다. 변월룡이 신한촌에서 중등교육을 받던 당시 한글신문, '선봉' 에는 조..

08 2021년 01월

08

자연/취월당 이중섭 III

● 엽서화 이중섭은 일본 유학기 도쿄의 문화학원에서 후에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를 후배로 처음 만났다. 문화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이중섭은 1943년까지 도쿄에 머무르며 마사코에게 수많은 '그림엽서' 를 보냈다. 한 면에는 가득 그림을 그리고, 다른 면에는 오로지 주소만 적혀 있으며, 글은 전혀 없는 '무언의 엽서' 들이다. 총 90여 점 이상의 엽서화가 알려져 있으며, 그 중 일부가 전시되었다. 처음에는 먹지를 대고 선을 그린 후 옅은 색채를 가미한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리다가, 점차 자신감과 투지가 불타는 그림으로 발전한다. 엽서화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두 연인의 사랑이 점차 진전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41, 종이에 청묵, 채색, 9×14cm, 개인소장 좌) 1941, 종이..

08 2021년 01월

08

자연/취월당 이중섭 II

● 은지화 은지화는 이중섭이 창안한 새로운 기법의 작품이다.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을 새기거나 긁고 그 위에 물감을 바른 후 닦아내면, 긁힌 부분에만 물감자국이 남게 된다. 그렇게 해서 깊이 패인 선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드로잉이 완성되는데, 평면이면서도 층위가 생길 뿐 아니라 반짝이는 표면효과도 특징적이어서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 된다. 이러한 기법은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이나 금속공예의 은입사 기법을 연상시킨다. 누구보다 한국의 전통을 존중했던 작가가 의도적으로 전통기법을 차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서귀포 시절 행복했던 가족들의 모습을 추억하는 것에서부터, 비극적인 사회 상황과 자신의 처참한 현실을 암시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장면들이 예리한 철필로 새겨져 있다. 이중섭은 이 은지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