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나라임자 2020. 11. 29. 09:55

youtu.be/J3ANwaHjCl8 한자병기 공청회 박용규 박사 반대 주제 발표.

 

한자병기 반대 광화문 네거리 서명운동 youtu.be/fI5CEnEixLI

 

광화문 네 거리 서명운동 youtu.be/KlJjTX4cVLQ

광화문 네거리 서명운동 youtu.be/zTFbOKEcs3k

 

 
 
 

사는 이야기

나라임자 2020. 11. 19. 13:12
‘심산상’ 받은 민주투사 통일꾼 백기완
[현장] “나는 통일꾼이요!”라고 외친 자주문화운동가, 22회 심산김창숙상 받아
 

리대로

11월 6일 성균관대 국제관에서 노동운동가요 자주문화운동가인 백기완 선생이 심산김창숙연구회가 주는 22회 ‘심산상’을 받았다. 심산(마음뫼) 선생은 일본 강점기엔 독립운동을 하고 광복 뒤엔 독재투쟁을 했으며 성균관대학을 세우고 초대 총장을 지낸 투사요 선비다. 백기완 선생은 남북통일운동을 하고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한 이름난 민주투사요 자주문화독립운동가다. 두 분은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고 독립 투쟁을 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심산상은 “이 시대의 불의에 대한 저항과 민족의 창조역량을 드높이는 학술과 실천 활동을 북돋으려고 만든 상”인데 이번에 백기완 선생이 받았다. 그러나 몸이 아파서 시상식에 나오지 못하고 맏딸인 성공회대 백원담 교수가 대신 받았다.

 

백기완 선생은 1933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복 뒤에 아버지를 따라서 서울로 오면서 가족이 남북에서 나뉘어 살게 되었다. 살림이 어려워서 중학교에 못가니 스스로 책을 보며 공부를 했고 영어 사전을 통째로 외우기도 했다. 6.25 전쟁 뒤에 도시빈민운동, 농민운동을 하면서 나무심기운동도 하다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반대투쟁에 나선다. 그리고 구속되기를 거듭하면서도 통일문제연구소를 차리고 통일운동을 하고 민주주의와 서민복지를 위해 거리투쟁에 나섰다. 또한 그런 가운데 일본 한자말이나 외국말을 쓰지 않고 우리 토박이말로 시를 쓰고 ‘버선발 이야기“들 글묶(책)을 낸다. 이 일은 자주문화독립운동이었다. 그래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에서 2002년에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뽑기도 했다.

 

 

 

백기완 선생은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남다른 점이 있다. 첫째 옳지 못한 것을 보면 스스로를 생각하지 않고 그에 맞서서 싸운다. 반독재 민주투사로 나선 것도 서민 복지를 위해 거리투쟁에 앞선 것도 그런 실천이었다. 둘째 민족 자주통일 운동에 앞장 선 것이다. 이 일은 저 스스로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백범사상연구소, 통일문제연구소를 차리고 활동한 것이 그 일이다. 셋째, 초등학교만 나왔지만 스스로 공부해서 일류대학을 나온 교수보다 더 바르게 살고 겨레와 남을 위해 살았다. 일류대 교수들이 일본 앞잡이가 되어 반민족행위를 서슴지 않는데 백 선생은 그들을 꾸짖었다. 넷째, 우리 겨레 얼과 말글을 지키고 살리고 빛내려고 애쓰고 우리 터박이말로 글을 쓰고 우리말 살리기에 힘 쓴 자주문화독립운동가다.

 

세상의 어두운 곳과 어려운 사람을 위한 일에 스스로를 생각하지 않고 앞장서는 사람, 초등학교만 나왔지만 대통령에도 나오고 민주투쟁과 노동운동을 하면서 여러 곳에서 상을 준다고 했으나 거절하고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에서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뽑아 발표하니 매우 기뻐한 맑은 참사람이었다. 사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에서는 상장이나 상품도 주지 않고 세상에 알리는 것이기에 어떤 이는 고맙고 기쁘게 생각하지 않는 이도 있었으나 백기완 선생은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번에 독립운동과 독재투쟁을 한 심산 김창숙 선생을 연구하는 모임에서 주는 심산상도 기쁘고 고맙게 받았다. 민족 독립과 민족자주문화운동을 하는 분다운 모습으로서 많은 사람이 배우고 본받을 일이다. 빨리 몸이 쾌차하시길 빈다.

 

 

 

 

 
 
 

사는 이야기

나라임자 2020. 11. 19. 13:05
“나요? 나는 통일꾼이요!” 민주투사 백기완
[기념] 백기완 성생과 함께 민주, 통일운동을 하는 분들이 고맙다
 

리대로

통일운동가요 민주 자주 문화운동가인 백기완 선생이 100일이 넘게 병상에 누워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11월 6일 심산김창숙연구회가 주는 22회 ‘심산상’ 시상식에도 나오지 못했다. 나라에 잘못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에는 스스로 몸을 생각지 않고 뛰쳐나가 못된 이들에게 호랑이처럼 외치던 백기완 선생도 나이가 들고 늙어 몸이 아프니 나서지 못하고 있다. 지난번 심산상 시상식에서 움직그림(영상)을 통해서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그런 모습은 상상도 못했기에 시상식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계속 그 모습이 떠올라서 빨리 일어나시길 바라고 빌면서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지난날 백기완 선생과 함께 민주, 통일운동과 자주 민족문화운동을 한 분들을 고마워하고 칭찬한다. 그 분들 가운데 나와 같이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과 한글 빛내는 일을 함께 한 이수호 선생이 요즘 백 선생과 같이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어 더욱 고맙고, 오랫동안 백 선생을 모시고 있는 채원희 통일문제연구소 간사가 더욱 고맙다. 우리 터박이말을 살리고 찾아 쓰려고 애쓰는 백 선생을 고마워하면서도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을 그분의 삶과 정신을 이어갈 것을 다짐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백기완 선생도 좋아하신 내 스승 공병우 박사는 예의 인사치례에 드는 시간에 한글사랑 운동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좋다고 하셨기 말이다.

 

지난날 대학생들과 민주주의 나라 만들기 투쟁과 서민을 돕는 투쟁 현장에 언제나 한복을 입고 나와 외치던 백 선생의 목소리는 민중들 가슴을 뛰게 했다.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하여 백범사상연구소를 만들고 통일운동을 하다가 통일문제연구소로 이름을 바꾸고 수십 년 째 남북 통일운동을 하면서 스스로 “나요? 나는 통일 꾼이요!”라고 외쳤다. 아는 것과 생각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이루려고 실천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에 망설이지 않고 나선 삶, 젊은 날에 뜻을 세운 것을 늙어 쓰러질 때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 뜻을 이루려고 애쓴 백 선생은 이 시대 참된 선비다. 너도 나도 열심히 일하여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 서로 도와주고 노나 먹자는 노나메기 운동도 그 실천이다.

 

 

백 선생이 왜놈들이 우리 터박이말을 못쓰게 하고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들인 일본 한자말을 버리자고 외치면서 우리말을 살려서 쓴 일은 민족 자주문화운동으로서 남다른 겨레사랑, 나라사랑 실천이었다. 50년대 부산 피란시절 산에 있는 판자촌을 ‘달동네’, 60년대 터널을 ‘맞뚜레’, 80년대 신입생은 ‘새내기’, 써클은 ‘동아리’라고 바꾸어 썼다. 또 고향은 ‘옛살라비’, 파도는 ‘몰개’,세월은 ‘달구름’, 지구는 ‘땅별’, 세상은 ‘벗나래’, 책은 ’글묶‘,’뉴스‘는 ’새뜸‘, 혁명가는 ’불쌈꾼‘이라고 새 말을 만들어 썼다. 일본 식민지 때 뿌리내린 일본 한자말을 따라서 쓰지 않고 우리말을 짓밟는 미국말을 거부한 것은 국어독립 운동이었으며 참된 배달겨레 삶이었다.


백 선생은 며칠 전 11월 6일 성균관대 국제관에서 심산김창숙연구회가 주는 22회 ‘심산상’을 받았다. 심산(마음뫼) 선생은 일본 강점기엔 독립운동을 하고 광복 뒤엔 독재투쟁을 했으며 성균관대학을 세우고 초대 총장을 지낸 투사요 조선의 마지막 선비다. 백기완 선생은 남북통일운동을 하고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한 이름난 민주투사요 자주문화독립운동가다. 두 분은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고 독립 투쟁을 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백기완님은 어떤 상도 달가워하지 않고 받지 않았는데 2003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이오덕, 이대로 공동대표)이 주는 ‘우리말 으뜸지킴이’상은 반갑게 받았었다. 이번 ‘심산상’도 그런 마음으로 받았다. 둘 모두 참된 배달겨레로서 백 선생 삶과 뜻이 통하는 것이기에 그랬다.

 

 

그런데 그 심산상 기념 액자에 쓰인 ‘投袂而起’란 글은 “옳지 못한 것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뛰쳐나가 싸운다.”는 뜻을 가진 한자말로서 장산곶매처럼 민주, 민중투쟁 현장으로 뛰쳐나가는 백선생과 딱 맞는 글이지만 앞으로는 우리 말글이었으면 좋을 것이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옳지 못한 것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고 장산곶매처럼 달려 나가 맞서는 백기완 선생, 한결같은 마음으로 통일과 자주문화 독립운동에 애쓴 거룩한 삶을 많은 사람들이 이어나가야 할 일이다. 나는 백 선생이 이루지 못한 일, 우리말과 얼을 지키고 살리는 일을 이어받아 이룰 것을 다짐한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