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글 독립운동 발자취

나라임자 2019. 11. 6. 15:18
'조선왕조실록' 등 한글로 집필했다면 어떤 역사 나왔을까
  •  리대로 한국인공지능학회 회장
  •  승인 2019.11.0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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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글 독립운동 발자취]

세종대왕과 그 아들인 세조, 손자인 성종 때까지
50여년 동안 정부에서 한글을 살려 쓰려고 애썼지만
그 뒤 연산군 때부터 그런 흐름이 사라졌다
이대로 회장
이대로 회장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과 그 아들인 세조, 그리고 손자인 성종 때까지 50여년 동안 정부에서 한글을 살려 쓰려고 애썼지만 그 뒤 연산군 때부터 그런 흐름이 사라졌다. 500여년 동안 정부 공문서를 한글로 쓰지 않았다. 조선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 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때도 그랬다. 그뿐만 아니라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우고 “공문서는 한글로 쓴다”는 한글전용법을 만들고도 한 동안 이를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깨어있는 나라임자들이 한글을 써야 된다고 외치고 애써서 이제 간신히 한글이 살아나고 공문서는 한글로 쓰고 있다.

나는 우리 말글 독립운동 발자취를 연구하면서 조선시대 왕조실록부터 한글로 쓰기 시작하고, 공문서라도 한글로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중국 지배를 받고 한글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조선시대는 어쩔 수 없이 한자로 썼더라도 중국 지배를 벗어난 1894년 대한제국 때부터라도 한글로 썼더라면, 아니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때부터라도 공문서를 한글로 썼으면 한글이 살아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를 이끄는 이들이 세종대왕처럼 자주, 개혁 창조 정신이 없는데다가 뿌리 깊은 남의 말 섬기는 버릇(언어 사대주의) 때문에 그렇지 못했다.

세종은 새 글자를 알리려고 성스러운 조선왕조와 종교 이야기, 그리고 동전까지 한글로 썼다.
세종은 새 글자를 알리려고 성스러운 조선왕조와 종교 이야기, 그리고 동전까지 한글로 썼다.

 

조선시대 말글살이 모습. 한문으로 쓴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시대 교지(이순신에게 내린 임명장)
조선시대 말글살이 모습. 한문으로 쓴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시대 교지(이순신에게 내린 임명장)

1894년 조선 고종은 칙령 1호 공문식(公文式) 14조에서 “모든 법률∙칙령은 모두 국문(國文)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漢文)으로 번역을 붙이거나 혹은 국한문으로 혼용한다”고 발표한다. 이 일은 한문만 쓰던 공문서를 국문으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정한 것이 첫째 큰 의미가 있고 다음으로 언문, 반절, 암클들로 불리던 우리 글자를 처음으로 ‘나라글자(국문)’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데 큰 뜻이 있다. 그런데 그 때 벌써 일본의 영향을 받아 일본식 한자혼용(1886년 창간한 한성주보가 혼용)이 시작되어서 국한문 혼용도 같이 하게 했다는 것이 큰 부끄러움이다. 그 때 지배층은 한글보다 한문을 더 좋아하고 한글을 잘 모르는 이가 더 많았을 것이다.

고종 때 한글(국문)을 살려서 쓰려고 지석영, 주시경 들이 연구하고 애썼다. 그러나 1905년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기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고 1907년에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황제자리에서 쫓겨나면서 그 기세가 꺾인다. 1907년에 지석영, 주시경들은 정부에 국어연구소를 차리고 한글을 살려 쓸 정책을 마련하려고 애썼으나 그 해 일제에 의해 고종이 폐위되고 순종이 즉위한다. 한편 주시경은 상동교회에서 조선어 강습원을 차리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서 쓰게 하려고 애썼으며 1908년에서 그가 한글을 가르친 제자들을 중심으로 세계 최초 민간 국어연구학회(오늘날 한글학회 처음 이름)을 창립한다. 그러나 1910년에 대한제국은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1894년 고종 31년 11월 21일(계사) 칙령 제1호를 발표한 관보. 이때까지 공문은 한문이다.
1894년 고종 31년 11월 21일(계사) 칙령 제1호를 발표한 관보. 이때까지 공문은 한문이다.
고종 때 공문서는 한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칙령에 따라 쓴 한글과 한문, 혼용 글.
고종 때 공문서는 한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칙령에 따라 쓴 한글과 한문, 혼용 글.

주시경은 1910년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으나 한글을 살려서 우리 겨레와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꿈은 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나라가 일본 나라가 되었으니 일본어가 국어가 되고, 일본글이 국문이 되었으니 우리말을 국어, 우리 글자를 국문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글자를 한겨레의 글, 으뜸가는 글, 한국의 글이라는 뜻을 담아서 우리 말글로 ‘한글’이라고 지었다. 우리말은 한겨레의 말, 으뜸가는 우리글이라는 뜻을 담아 ‘한말’이라고 새 이름을 지어서 부르며 우리 말글을 살리려고 애를 쓴 것이다. 주시경은 한글책 보따리를 들고 여러 학교를 다니며 가르치고 우리말 사전인 ‘말모이’를 만들다가 1904년에 갑자기 이 세상을 뜨니 한글은 빛을 잃는다.

1919년 고종 황제가 이 세상을 뜨면서 3월 1일에 기미독립운동 만세 운동이 일어났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 때 기미독립선언서도 일본처럼 한자혼용이었다, 그 해에 중국 상해에서 망명한 애국자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운다. 그 뒤 1945년 광복 때까지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문서도 한자혼용이거나 한자로만 썼었다. 그 때 주시경 제자요 한글전용 주장자인 김두봉도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했으나 공문서를 한글로 쓰지 않은 것이 매우 아쉽고 안타깝다. 중국 땅에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보지만 내부 문서라도 한글로 썼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중국에 있었기 때문이지만 한자로만 쓴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왼쪽)와 성명서(오른쪽).
중국에 있었기 때문이지만 한자로만 쓴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왼쪽)와 성명서(오른쪽).

1945년 광복이 되면서 미군이 이 땅을 점령하고 미국 군정이 시작되었는데 그 때에 모든 교과서를 한글로 쓰고 공문서도 영어와 함께 한글로 쓴다. 그 때 조선어학회 출신인 안재홍이 민정장관(미국 민정장관과 동격), 이인이 법무부장, 재무부장에 김도연이 활동하고 교과서 만들기에 최현배가 참여하면서 1947년부터 한글날이 공휴일이 되었다. 모든 교과서를 한글로 만들고 공문서도 영문과 함께 한글로 썼다. 참으로 잘한 일이고 다행스러웠다.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우면서 “공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어쩔 수 없을 때에 한자를 병기한다”는 법(법률 제6호)을 만들었으나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한글을 쓰기 시작한 1446년부터 500년 동안 공문서 하나도 한글로 쓰지 않았다. 세계 으뜸가는 제 글자가 있는데도 안 썼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고 뉘우치고 이제라도 잘해야 할 것이다. 매우 잘못된 일이고 뉘우칠 일이다.

한자혼용으로 쓴 1961년 계엄사령관 공고문(왼쪽), 오른쪽은 1962년 한국은행 공고문.
한자혼용으로 쓴 1961년 계엄사령관 공고문(왼쪽), 오른쪽은 1962년 한국은행 공고문.

 


 
 
 

한글사랑

나라임자 2019. 11. 4. 14:08
우리 말글 독립에 크게 공헌한 조선 끝 무렵 '한글성경'
  •  리대로 한국인공지능학회 회장
  •  승인 2019.10.2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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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회장
이대로 회장

조선 끝 무렵 19세기에 기독교가 중국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만 한문으로 된 성경이 아니고 한글로 성경을 만들어 포교했다. 서양 선교사들은 우리나라에 유럽이 쓰는 로마자와 같은 소리글자가 있고 우리나라말이 중국말과 다른 것을 알고 성경을 우리 말글로 알리면서 기독교도 더 빨리 알려지고 한글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한글이 태어나고 300여 년 동안 일부 왕실과 양반집 아녀자와 선비들 사이에서 조금 쓰였는데 1882년 중국에 온 로스목사가 심양에서 성경을 한글로 쓰고 선교하기 시작했고, 1885년 부활절 날 조선에 온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도 성경 국역에 힘쓰면서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한글로 교육하니 한글이 널리 알려지고 쓰이게 된 것이다.

기독교는 유교와 불교가 배우고 쓰기 힘든 한문으로 된 중국 경전을 그대로 읽고 쓰는 것과 달랐다. 한글은 배우고 쓰기가 쉽고 우리말로 쓴 것이니 서민들도 쉽게 읽을 수 있어서 기독교는 빨리 퍼지고 그 덕에 한글도 일반인들 속에서 살아난 것이다. 기독교도 좋고 한글도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유교와 불교인들은 한글세상이 다 된 20세기 대한민국 때에도 한문을 고집하는 것을 넘어 한글만 쓰기를 반대했다. 이들은 어리석고 바보처럼 굴었다. 요즘 들어서 그 잘못을 깨닫고 유교도 사서삼경을 국역하고 불교도 쉬운 말로 찬불가를 지어 부르고 불경도 국역해 쓰기 시작했다. 이제 大雄殿이란 집 이름도 ‘큰법당’이라고 한글로 쓰는 곳도 있다.

왼쪽부터 1858년 중국에서 나온 한문 성경과 1882년 중국에서 로스 목사가 만든 한글 성경.
왼쪽부터 1858년 중국에서 나온 한문 성경과 1882년 중국에서 로스 목사가 만든 한글 성경.

한글은 세종대왕이 1443년에 만든 뒤 3년 동안 그 쓰임새를 실험하고 연구한 다음 1446년에 훈민정음해례본을 완성하면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1446년에 소헌왕후가 죽자 그 아들 수양대군에게 석가모니 일대기인 석보상절을 짓게 했고, 그 다음해인 1447년에 월인석보를 기초로 직접 악장을 만들어 월인천강지곡이란 불교찬가를 한글로 지었으며 그 뒤 세조가 월인석보도 지었다. 성스러운 조선왕조 이야기인 용비어천가와 함께 불교 이야기를 새 글자인 한글로 쓴 것이다. 불교와 한글은 이렇게 남다른 인연이 있다. 그러나 그 때 유교 선비들이 한글 태어나는 것까지 반대했기에 유교 이야기는 한글로 쓰지 않았다.

이렇게 세종대왕은 불교를 믿고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불교는 그 뒤 한글을 거들떠보지 않고 중국 불경을 그대로 읽고 외웠다. 그러나 기독교는 300년 뒤에 들어왔어도 한글로 경전을 만들어 선교한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신식 학교도 세우고 한글로 교육을 했다. 또한 고종 때인 1886년 우리나라 최초 신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을 세웠을 때에 교사로 온 미국인 헐버트는 한글을 3년 만에 한글을 깨우치고 1889년에 한글로 ‘사민필지’란 사회지리교과서를 지었다. 그리고 1991년에 글묶(책)을 출판했다. 외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처음 한글로 교과서를 만들었고, 한글과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훌륭함을 영어로 써서 외국에 알렸다.

오른쪽부터 세종대왕이 한글로 쓴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 세조가 한글로 쓴 석보상절.
오른쪽부터 세종대왕이 한글로 쓴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 세조가 한글로 쓴 석보상절.

그리고 기독교 선교사로 온 아펜젤러는 배재학당, 언더우드는 연희전문학교, 메리 스크랜튼은 이화학당 같은 기독교 재단 교육기관을 만들고 거기서 한글로 가르치고 포교했다. 그 때 한문을 배우다가 나이 들어서 배재학당에 들어간 주시경은 그곳에서 한글과 영어, 서양문물을 배우면서 학생신분으로 서재필과 헐버트를 도와 독립신문 만드는 일도 거들고, 그 신문사 안에 국문동식회(한글맞춤법연구회)도 만들어 한글 연구를 하고 한글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상동교회와 여러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쳤으며, 1908년에 그 제자들을 중심으로 국어연구학회(오늘날 한글학회)도 만들었다. 기독교 재단 학교가 한글을 살리고 키운 것이다.

기독교는 1800년대 이 땅에 들어올 때만 한글로 성경을 만들어 한글을 널리 편 것만 아니라 그 뒤 100년이 넘게 한글과 함께 살았다. 한글을 살린 주시경도 배재학당 (아펜젤러 세움)에 공부하며 한글학자가 되었고, 연세대(선교사 언더우드가 세움)는 ‘연세춘추’란 학교 신문을 1950년대부터 한글 전용으로 만들었고, 이화여대(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세움) 신문인 ‘이화학보’는 1970년대부터 한글로 만들었다. 연세대 최현배, 김윤경 교수는 한글만 쓰기를 주장하고 실천했다. 기독교 재단 학교가 신문이 한글로 가로쓰도록 이끌었고 한글나라를 만드는데 크게 이바지한 것이다. 그러나 일제 때 경성제국대학 후신인 서울대와 유교 재단인 성균관대 신문은 지금도 제호가 한자로 쓰고 있으며 이들은 지금도 한글로만 교과서 만드는 것을 반대하고 일본 한자말을 일본처럼 한자로 쓰자고 주장한다.

왼쪽은 1950대부터 한글로 만든 연세대 학보이고 오른쪽 아직도 제호를 한자로 쓰는 서울대학 신문.
왼쪽은 1950대부터 한글로 만든 연세대 학보이고 오른쪽 아직도 제호를 한자로 쓰는 서울대학 신문.

 


 
 
 

사는 이야기

나라임자 2019. 7. 1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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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의 부적절한 붓글씨 자랑
[논단] 언제 쯤 한문으로부터 해방될까? 독립국가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리대로

오늘 신문에 문희상 국회의장이 미국에 가서 미국 하원의장에게 한자로 쓴 붓글씨 족자를 선물하는 찍그림이 있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부끄럽고 화가 났다. 그리고 문희상 의장이나 그 보좌관들이 좀 모자라는 사람으로 보였다. 왜냐면 붓글씨를 잘 쓴다면 한자로 쓰지 말고 한글로 좋은 말을 써서 주었다면 한글과 우리 겨레가 우수하다는 것을 자랑하면서 우리 자존심도 세울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서이다. 오히려 한글 붓글씨를 써 주었다면 국민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터인데 많은 국민이 이 나라 국회의장으로서 생각과 자질이 모자라는 사람이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욱이 일제 강점기 때에 한글을 살리고 빛내려다가 일제에 목숨까지 빼앗기고 한 삶을 바친 분들이 많은데도 지도자가 그런 꼴을 보이니 한심하고 답답하다.

 

▲ 오른쪽은 20대 국회 개원을 알리는 영문 글이 있는 국회 누리집 모습. 왼쪽은 며칠 전 문희상 국회의장이 미국 하원의장에게 준 한자 붓글씨를 자     ©리대로

 

우리가 천 년이 넘게 중국 한자를 쓴 것은 우리 글자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한글이 태어나고 500여 년 동안 한글은 그 빛이 나지 못했다. 그 때 나라를 이끌던 이들이 중국 한자와 한문문화를 섬기고 한글을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 세계 언어학자들이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우리 글자 한글이 있다. 이제라도 지난날 우리 글자를 제대로 살려서 잘 이용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더욱 한글을 빛내고 잘 쓸 생각을 하고 힘써야 한다.  더욱이 일제 강점기 때에 목숨까지 빼앗기며 한글을 지킨 선열이 있고 지금도 많은 국민이 한글을 빛내려고 애쓰고 있는 데 그런 태도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나라를 이끄는 참된 지도자라면 한글을 지키고 살린 분들과 한글을 고마워하면서 한글을 더욱 빛내려고 힘써야 한다. 더욱이 배우고 쓰기 쉬운 한글이 반세기만에 온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그 바탕에서 민주주의와 경제가 빨리 발전해서 외국인들이 한강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판인데 제 정신이 든 정치 지도자라면 그런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는 개인 예술작품이고 활동인데 어떠냐고 한다. 개인 취미나 작품으로 하는 것이라면 한자뿐 아니라 영문을 쓰더라도 괜찮다. 그러나 국민 대표로서 외국에 나가서까지 그러는 것은 국민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외국인들이 우리를 깔보게 만든다.

 

문 국회의장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중국 한자로 된 사자성어를 즐겨 쓴다. 전 김영삼 대통령도 미국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한자 붓글씨를 자랑스러운 듯 썼다. 그 때도 부끄러웠다. 왜 그럴까? 똑똑하고 남다른체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몇 해 전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국립묘지를 방문해서 쓴 방명록 글씨가 잘못되어 망신을 당한 일이 있다. 한자는 배우고 쓰기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멀쩡한 사람도 바보로 만든다. 이번 문희상 의장이 미국에 가서 한문 사자성어를 쓴 걸 보면서 이름난 한문학자가 얼숲(페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 것을 봤다.

 

“‘재조(再造)’라는 단어가 조선 선조 이후의 기록에 나온다면, 대부분 ‘재조번방(再造藩邦)’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고, 재조번방은 명나라가 우리나라를 다시 일으켜주었다는 의미다. ‘번방’은 ‘황제 나라인 명나라 주변 울타리 역할을 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것을 글자를 좀 바꾸어서 ‘재조산하(再造山河)’라고 쓰더라도, ‘재조(再造)’는 ‘재조번방’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사자성어를 즐겨 사용하는데, 이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가끔, 좀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한두 번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정확한 뜻을 알고 사용해야 한다. ”라고 충고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나 홍준표 전 의원 같은 정치인들이 귀담아 들을 말이다.

 

 

▲ 왼쪽은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대선 때에 국립묘지에 가서 방명록에 쓴 한문이다. 처음에 잘못 써서 다시 썼다. 오른쪽은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출마했을 때 찍그림이다. 홍준표 대선후보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가 필승을 다짐하고 쓴 한문 사자성어이지만 모두 선거에서 패했다.     © 리대로

 

문희상 의장은 이번에 “일본 국왕이 위안부 문제나 일본 강점기 때에 우리를 괴롭힌 것을 직접 사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일본인들이 반성은커녕 문 의장을 헐뜯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를 깔보기 때문이다. 왜 우리를 깔볼까? 우리 스스로 문희상 의장처럼 못나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글은 우리 자주문화를 창조하고 빛나게 할 빼어난 도구요 문화경쟁 무기다. 그리고 우리 힘을 키워줄 보물이다. 이 한글을 잘 써먹을 때에 우리는 힘 센 나라가 되고 더 잘 살게 된다. 그런데 중국과 중국 문화를 섬기던 사대주의 근성과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한자 섬기기 찌꺼기를 쓸어내지 않고 스스로 우리 보물을 우습게 여기니 일본이 우리를 깔본다. 제 나라 말글은 제 나라 정신이고 얼이다. 제 나라 말글이 살고 빛날 때에 그 나라 정신도 살고 빛난다. 제발 한국 정치인들과 일제 식민지 지식인들은 한글을 우습게 여기지 말고 한글을 살리고 빛내어 힘센 나라를 만들라! 그리고 국민들이 외국인 앞에서 어깨를 펴고 살도록 해주라!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기사입력: 2019/02/14 [21:34]  최종편집: ⓒ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