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

나라임자 2019. 12. 16. 20:23
사민필지 독립신문 우리 말글 독립의 새벽빛
  •  리대로 한국인공지능학회 회장
  •  승인 2019.11.0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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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회장
이대로 회장

1446년부터 한글을 썼지만 조선시대 배움 책은 한자로만 썼다. 그런데 545년이 지난 고종 때인 1991년에 미국인 호머 헐버트가 한글로 ‘ᄉᆞ민필지’란 배움 책을 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고, 놀라운 일이고, 거룩한 일이다. 그리고 그 5년이 지난 고종 때인 1896년 4월 7일에 서재필이 주시경과 헐버트 도움을 받아 한글로 ‘독립신문’을 냈다. 이 둘 모두 한자를 한 글자도 안 쓰고 우리말을 한글로만 쓴 것으로서 어두운 밤을 밝히고 새벽을 여는 빛이었다. 또 두 일은 우리말 독립운동 발자취에서 세종이 한글을 만든 것 다음으로 가장 크고 뜻이 깊은 큰일이었다. 그것도 외국인이 나서서 그렇게 한 것은 매우 남다른 일이고 뜻 깊은 일이다.

왼쪽은 1891년 나온 ‘사민필지’ 머리 글, 오른쪽은 1896년 나온 ‘독립신문’ 제1권 제 1호.      사민필지는 띄어쓰기는 안 했지만 독립신문은 띄어쓰기를 한 것 또한 매우 중대한 일이다.
왼쪽은 1891년 나온 ‘사민필지’ 머리 글, 오른쪽은 1896년 나온 ‘독립신문’ 제1권 제 1호. 사민필지는 띄어쓰기는 안 했지만 독립신문은 띄어쓰기를 한 것 또한 매우 중대한 일이다.

‘ᄉᆞ민필지’는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이 한글로 쓴 배움 책이다. 헐버트는 고종 때인 1886년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서양식 국립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의 영어 선생으로 왔는데 한국에 ‘한글’이란 제 글자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 글자는 중국 한자보다 더 훌륭한 글자인데 한국인들은 안 쓰고 한자로 쓴 책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스스로 우리 말글을 배워서 3년 만인 1889년에 “선비나 백성들 모두 꼴 알아야 할 것이란 뜻을 담은 ‘ᄉᆞ민필지(士民必知)’란 세계 사회지리책을 써서 1891년에 출판한 것이다. 헐버트는 이 책 머리글에서 제 말글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좋은데 한국인들이 쉬운 제 말글로 세상 공부는 하지 않고 한문으로 쓴 책을 더 좋아하고 배우고 읽는 것이 안타까워 이 책을 낸다고 말하고 있다.

헐버트는 한글을 배우면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인 한글을 만든 세종을 우러러보게 되었고 영문으로 세계에 한글과 세종을 알리는 글을 썼으며, 한국인보다 한글과 한국을 더 사랑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신식 교육을 반대하는 한국 선비들과 한국인들을 깨우는 것을 싫어하는 일본인들이 방해해서 ‘육영공원’이 1991년에 문을 닫게 되어 헐버트는 그 해 12월에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한국이 좋아서 1993년에 감리교 선교사로 다시 한국에 와서 배재학당 안에 있는 삼문출판사 책임자로 일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1896년에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을 그 출판사에서 인쇄를 하면서 영문판 조필로 일한다. 그 때 한글판 조필은 배재학교 학생으로서 독립신문사 간사로 일하는 주시경이 맡았다. 독립신문은 ‘건양’이란 우리 연호를 쓰고 한양을 ‘서울’이라고 우리 토박이 이름을 쓴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이 사민필지는 배재학당과 여러 학교에서 교과서도 이용했으며 일반인들도 읽었다.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한 주시경은 1898년 6월 역사지지특별과를 졸업했는데 세계 사회지리책인 사민필지로 공부했을 것이다. 그리고 학생 신분으로 독립신문사에서 서재필의 언문 조필로 있으면서 철자법을 통일할 목적으로 1896년 국문동식회를 신문사 안에 설립했고 1900년에 배재학당 보통과에서 영어를 전공하면서 외국어 문법 공부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글학자가 되어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1907년 지석영이 만든 국어연구회와 학부 안에 설립한 국문연구소에서 주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주시경과 배재학당을 다닌 이승만이 1898년에 한글신문인 ‘협성회회보(학생회지)’를 만들고 이 신문이 한글 전용 일간지인 매일신보로 발전하는 데 모두 헐버트가 쓴 사민필지로 배재학당에서 공부한 영향으로 보인다.

한글로 쓴 사민필지(왼쪽)로 공부한 배재학당 학생들이 1898년 한글로 쓴 일간신문 매일신문.
한글로 쓴 사민필지(왼쪽)로 공부한 배재학당 학생들이 1898년 한글로 쓴 일간신문 매일신문.

그런데 한글로만 만든 사민필지를 1895년에 한문으로 번역해서 내고, 1889년에 유길준이 그의 일본인 스승인 일본 사상가 ‘후꾸자와 유기치’가 쓴 ‘서양사정’이란 것을 보고 국한문 혼용 교과서인 ‘서유견문’을 내고, 1895년 학부가 ‘소학독본’을 내고 1902년에 “만국지리지”란 교과서를 한자혼용으로 낸다. 또한 1898년 처음 윤치호가 ‘대한황성신문’이란 이름으로 한글로 만들던 신문을 8월에 윤치호가 독립협회 회장이 뒤면서 장지연, 남국억 들이 인수해 ‘황성신문’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한자혼용으로 낸다. 그리고 독립신문은 1899년에 폐간되었다. 그러니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 적는 우리말 독립 꿈은 물거품이 되고 일본식 한자혼용 세상으로 가다가 1910년에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다.

왼쪽부터 1895년 한글 사민필지를 한문으로 바꾼 한문 士民必知, 1998년에 유길준이 일본인 스승 ‘후꾸자와 유기치’가 쓴 ‘서양사정’을 보고 한자혼용으로 쓴 서유견문, 1895년 학부가 낸 한자혼용으로 낸 책.
왼쪽부터 1895년 한글 사민필지를 한문으로 바꾼 한문 士民必知, 1998년에 유길준이 일본인 스승 ‘후꾸자와 유기치’가 쓴 ‘서양사정’을 보고 한자혼용으로 쓴 서유견문, 1895년 학부가 낸 한자혼용으로 낸 책.

[사민필지 머리 글: 매우 뜻이 깊은 글이라 현대어로 풀어 바꿔 소개한다]

천하 형세가 옛날과 지금이 크게 같지 아니하여 전에는 각국이 각각 본지방을 지키고 본국 풍속만 따르더니 지금은 그러하지 아니하여 천하만국이 언약을 서로 믿고 사람과 물건과 풍속이 서로 통하기를 마치 한집안과 같으니 이는 지금 천하 형세의 고치지 못할 일이라.

이 고치지 못할 일이 있는 즉 각국이 전과 같이 본국 글자와 사적만 공부함으로는 천하각국 풍습을 어찌 알며 알지 못하면 서로 교접하는 사이에 마땅치 못하고 인정을 통함에 거리낌이 있을 것이오. 거리낌이 있으면 정의가 서로 두덮지 못할지니 그런 즉 불가불 이전에 공부하던 학업 외에 각국 이름, 지방, 폭원, 산천, 산야, 국경, 국세, 재화, 군사, 풍속, 학업과 도학이 어떠한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고로 대저 각국은 남녀를 막론하고 칠, 팔세가 되면 천하 각국 지도와 풍속을 가르친 후에 다른 공부를 시작하니 천하의 산천, 수륙과 각국 풍속,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라 조선도 불가불 이와 갖게 한 연후에야 외국 교접에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또 생각건대 중국글자로는 모든 사람이 빨리 알며 널리 볼 수가 없고 조선 언문은 본국 글일뿐더러 선비와 백성과 남녀가 널리 보고 알기 쉬우니.

슬프다. 조선 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마는 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알지 아니하고 오히려 업신여기니 어찌 아깝지 아니하리오. 이러므로 한 외국인이 조선말과 언문법에 익숙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특별히 언문으로서 천하각국 지도와 목견한 풍기를 대강 기록한다. 땅덩이와 풍우박뢰의 어떠함을 먼저 차례로 각국을 말씀하니 자세히 보시면 각국 일을 대충은 알 것이요. 또 외국 교접에 적이 긴요하게 될 듯하니 말씀의 잘못됨과 언문의 서투른 것은 용서하시고 이야기만 보시기를 그윽이 바라옵나이다.

조선 육영공원 교사 헐버트 씀


 
 
 

사는 이야기

나라임자 2019. 12. 6. 03:53
공무원이란 것은 나라 일꾼이고 국민의 머슴
[대한제국 독립신문 3호 논설] 모사꾼 아닌 정치학을 배운 이가 정치를 하라
 
리대로 

 앞 독립신문 2,3호에 쓴 논설에서는 정부와 백성이 어찌 처신해야 할지를 알려주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는지와 정부 관리의 마음가짐, 정치는 어떤 사람이 해야 하며 정치인을 어떻게 뽑아야 하는 지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정치는 정치학을 배운 사람이 해야 하는데 정치학을 가르치는 곳도 없으니 정치를 아는 사람이 적고, 정치를 배우지 않았더라도 마음이 바른 사람이 해야 하며, 공무원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나라 일꾼이고 국민의 머슴임도 밝히고 있다. 좋은 나라 일꾼을 뽑기가 쉬운 것이 아니니 국민이 직접 투표로 뽑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오늘날엔 어떤가? 투표를 해도 제대로 일꾼을 뽑지 못한다. 오늘날도 정치학 공부한 사람, 전문 지식과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이가 정치하는 게 아니라, 시위 몇 번 하고 옥살이를 한 사람, 방송이나 신문에 이름이 자주 나와서 얼굴이 알려진 사람, 덜된 정치인 밑에서 못된 요령만 보고 배운 이, 돈이 많거나 높은 권력을 누렸던 이가 정치를  많이 한다. 정치학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마음이 바르고 따뜻한 이가 정치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어떤 지역과 계층 표를 얻어 정권을 잡겠다고 젊은이와 여성, 종교인과 큰 조직 눈치를 보고 총리나 국회의원 뽑는 수준이다. 그러니 나라 위하고 국민 모두 섬기기보다 제 정당 이익 챙기기 바쁘다.

 

공무원은 어떤가? 나라와 국민을 해서 일을 하고 사는 보람을 얻겠다고 공무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월급이 잘 나오니 저만 편하게 살자고 공무원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니 그들 표를 얻으려고 공무원을 늘리겠다고 하는 정당이 있다. 거기다가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 우리 민주정치를 한 지 70년이 넘었지만 독립을 못하고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교육용어, 행정과 전문용어 속에 헤매고 있다. 아니 철저하고 일본 식민지 근성이 박힌 자들이 교육자요, 정치인이고 공무원이다. 그래서 나라가 흔들리고 시끄럽고 약하게 된다.

 

정치를 모르는 자들이 정치를 하다가 잘못해서 옥에 끌려가고 국민은 두 패로 나뉘어 서로 잘났다고 싸운다. 튼튼한 나라가 되려면 할 일이 많은데 그런다. 아직도 우리는 멀었다. 그러니 130년 전 우리를 짓밟던 일본이 다시 우리를 넘보고 강대국이 우리 깔본다. 우리 모두 120 여 년 전 나라가 흔들리고 외세에 시달릴 때에 나온 독립신문이라도 꼼꼼하게 읽어보고 어떤 사람을 정치인으로 뽑아야 할지 고민해보자. 이번에는 외국통신도 옮기니 살펴보고 그 시대를 이해하자. 그리고 오늘 우리가 어떻게 튼튼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까 생각해보자.

 

▲ 독립신문 4호.     © 리대로

 

논설

 

정치학이라 하는 학문은 문명개화한 나라에서 여러 천 년을 두고 여러 만 명이 자기 평생에 주야로 생각하고 공부하여 만든 학문인데  정부 관리가 되어가지고 이 학문을 배우지 않고는 못쓸지라. 이 학문을 안후에도 본래 심지가 그른 사람은 못된 일을 하는 이가 많이 있는데 하물며 이 학문도 없는 이가 정부에 있으면 몰라서 잘못하는 이도 있는지라.

 

정부 속에 학문도 없고 마음도 그른 사람이 많이 있으면 그 피해는 백성이 입는 것이요 백성이 해를 입으면 나라에 화가 있을 것이니 그러면 자기 몸에 앙화가 미칠 것이라 지금 조선에서 정치학에 능한 이만 뽑아 정부 중책을 맡길 수가 없는 것이 정치학을 가르치지 아니 하였으니 어찌 알 사람이 있으리오.

 

그러면 다만 한 가지만 믿을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이나 써야 그 사람이 큰 사업은 못하더라도 있는 법률과 규칙을 순종할 터이요. 남에게 해는 없이 일을 행할 터이니 정직한 사람이나 골라 쓰기를 바라노라.

 

사람 고르는 법이 대단히 어려운 것이니 한 사람이 추천하는 사람은 암만해도 믿기 어려운 것이 그 천거하는 사람이 천거할 때는 그 사람이 옳게 천거한 것이려니와 만일 잘못 알았으면 국가에 큰 낭패요 천주에게 불행한 일이니 그런 중대한 일을 누가 담당하기를 그리 좋아 하리요.

 

만일 몸조심하는 사람은 그런 일 하기를 좋아 아니할 듯 하더라. 이런 까닭으로 외국서는 관찰사와 원님 같은 것과 정부 속에 있는 관원들을 백성을 시켜 뽑게 하니 서령 그 관원들이 잘못하더라도 백성들이 님군(임금)을 원망하지 않고 자기를 꾸짖고 그런 사람은 다시 투표하여 미관말직도 시키지 아니하니 벌을 정부에서 주기 전에 백성이 그 사람을 망신시키니 그 관원을 정부에 벌주는 것보다 더 두렵게 여길 터이요. 또 청하여 빠질 도리도 없을 터이라.

 

내각 대신과 협판은 임금이 뽑는 것이 마땅하고 외임은 그 도와 그 골 백성으로 시켜 신망 있는 사람들을 투표하여 그 중에 표를 많이 받은 이를 관찰사와 군수를 시키면 백성이 정부를 원망함이 없을 터이요. 또 그렇게 뽑은 사람들이 서울서 한 두 사람이 천거로 시킨 사람보다 일을 낫게 할 터이요.

 

그 사람이 그 도나 그 군에 산 사람인즉 거기 일을 서울서 간 사람보다 자세히 알 터이요. 거기 백성들이 뽑아서 원님이든지 관찰사를 하였으니 그 사람이 백성들을 위할 생각이 더 있으리라. 정부 관리란 것은 임금의 신하요 백성의 종이니 위로 임금을 섬기고 아래로 백성을 섬기는 것이라. 나라 규모가 이렇게 되면 임금의 권력이 높아지고 백성의 형세가 편할 터이니 나라에 무슨 변이 있으며 원망과 불평한 소리가 어찌 있으리오.

 

우리가 바라건대 정부에 계신 이들은 몸조심하고 나라가 잘 되길 바라거든 관찰사와 군수들을 자기들이 천거하지 말고 각 지방 인민으로 하여금 그 지방에서 뽑게 하면 유익한 일인 것을 불과 일 이년동안이면 알리라.  - 끝 -

 

외국통신

 

일본 농상공부에서 전기학 학사 셋을 미국과 구라파로 보내서 전화 쓰는 법을 더 배우게 하더라. 전화란 것은 전기를 가지고 몇 천리 밖에 사람과 서로 말하는 기계니라.

 

영국 후작 스폰서씨와 그 부인은 일본에 유람하는데 일본 관원들이 대접을 대단히 잘하니 이 후작은 영국 해군 관원인 까닭이라. 일본 신호에 제 이 해물박람회를 연다더라.

 

해슈아에 있는 사람이 서울에 있는 아라사 사람에게 편지를 했는데 아라사에서 조선 목포를 차지하였으면 매우 아라사에게 유익하겠다고 말하였으나 아라사에서 그런 일 할 리가 없을 듯 하더라.

 

영국에서는 고금도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더라. 그러나 그것도 믿지 못할 말이더라.  일본 총리대신 이등박물씨는 상제가 되어 한 달동안 내각에서 슈유(휴가?)를 얻어가지고 육군부장 흑전청룡씨가 총리대신 대리로 있었는데 근일에 이등박물씨가 다시 내각에 나왔더더라.- 줄임 -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사는 이야기

나라임자 2019. 11. 20. 23:50
우리 국민끼리 서로 싸우면 나라 망하리라
[대한제국 독립신문 2호 논설] 정부와 국민이 믿고 합심하면 강한 나라돼
 
리대로

1894년 청일전쟁,  1894년 갑오농민항쟁,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 1894년부터 1896년까지 갑오개혁 들들로 나라는 몹시 흔들리고 기울고 있었다, 그 때 신문을 살펴보고 그 시대를 알아보자. 1896년 독립신문이 나올 때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우리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기기 9년 전으로서 나라가 몹시 흔들리고 시끄러울 때였다. 123년 전 그때 독립신문이 기우는 나라를 어떻게 일으켜 세우고 튼튼하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때 국민이 저마다 저 만의 이익만 챙기려고 정부를 믿지 않고 국민끼리 싸우고, 외국인을 죽이면 나라는 약해지고 나라가 약해지면 외국이 나라를 빼앗으려고 할 것이니 그러지 말자고 조칙을 발표했고, 독립신문은 그 조칙을 소개하고 지키자고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그 때 침략 전쟁은 없더라도 외국은 우리를 먹으려고 우리 정부와 국민, 그리고 국민끼리 서로 싸우게 이간질을 할 것이니 그에 넘어가지 말고 정부와 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야 나라가 강해질 것임을 외치고 있다. 또 ‘국민’이란 말은 ‘인민’이라고 했다. ‘국민’이 일본말임을 보여준다.

 

나는 1910년에 침략전쟁도 없이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까 알고 싶어서 요즘 독립신문을 읽다가 나 혼자만 읽을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논설의 외침소리가 오늘날 남북이 나뉘어 싸우고 있는데다가 남남끼리도 좌우, 보수와 개혁세력이 갈리어 싸우는 우리에게 하는 호소로 들렸다. 나는 20대 대학생 때부터 오늘 70대가 되기까지 지난 50년 동안 광화문 앞 한글회관을 드나들면서 한글운동을 했는데 오늘날 광화문 앞이 밤낮 시위와 갈등 광장이 된 것을 보면서 이러다가 대한제국이 망하듯이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옛 실정을 알고 어떻게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으로 뭉치고 나라를 일으켜야 할지 길을 찾아주길 바라며 이 신문을 옮긴다.

 

▲ 조선 서울 건양 원년 사월 초구일 (1896년 4월 9일) 한글과 영문으로 낸 독립신문 제 2호.     © 리대로

  
  [논설]

 

우리가 오늘 신문에 조칙을 기록하였으니 인민이 이걸 보고 안심하여 각각 저의 직무를 이담부터 잘 하기를 믿노라. 임금이 이렇게 간절히 말씀하시는데 그 임금에 신민 되여 조칙을 듣지 아니하고 종시 난을 짓든지 무법한 일을 경향 간에서 행하면 그 사람은 마침내 죄를 짓고 목숨을 잃어버릴 터이니 임금과 우리 신민과 부모, 처자와 저의 몸을 사랑하는 자는 이때를 타서 속히 집에 들아 가 농사를 하든지 하던 직업을 영구히 하는 것이 신자의 도리요 자식의 행실이라.

 

만일 생각 없이 무법한 일을 행하고 난(난리)을 짓는 것은 즉 제가 제 무덤을 파는 것이요 또 제 부모와 처자에게 화를 전하는 바니 하루바삐 못된 일 하던 것을, 더러운 물건 버리듯 하고 군주 폐하의 조칙을 순종하여 집에 돌아가 옛 직업을 다시 찾아 처자를 보호하며 제 몸을 옳게 가지면 첫째는 저희 집이 편하고, 둘째는 조선 전국이 태평하여 나라가 강하고 부유케 될 터이니 이를 깨닫고 애국 애민하는 사람은 이 조칙을 듣고 곧 하라시는 대로 하기를 우리는 믿노라.

 

사방 천하형세가 이왕과 달라 조선이 세계 각국은 서로 통상하는 터이니 조칙에 하신 말씀같이 세계 지인이 다 형제라. 물론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조선에 와서 사는 이는 즉 조선인의 손님이라 주인 되어서 집에 오신 손님을 박대하든지 해하든지 하는 것은 야만인 일이요. 또 손님이 조선인민을 점잖은 주인으로 대접 아니 하고 무례한 일을 할 터이니 조선 전국이 그 해를 입을 터이라.

 

오늘날 조선이 강하지도 못하고 부유치도 못하며 인민이 도탄 중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없고 다만 제 몸만 당장 유익한 것을 취하여 제 나라 인민을 해하려 하며 서로 저희끼리 싸우니 마침내 저까지 해를 입고 또 나라는 어언 간에 약하고 이익을 취할 일과 생존할 방책은 해마다 적어지니 이게 어찌 한심치 안으리오. 시방 이때는 같은 나라 인민끼리 서로 싸움할 때가 아니라. 서로 돕고 서로 보호하고 서로 사랑해야 조선이 외국 인민에게 강하게 보일 터이니 그런고로 조선인민이 남에게 대접도 받을 터이욤.

 

옛 병서를 봐도 두 나라가 서로 싸울 때에 내는 꾀는 어떻게 하든지 하여 적진 속에 이간을 붙여 두 장수끼리 서로 미워하게 하든지 그 적병의 장수와 그 장수의 임금사이에 이간을 붙여 서로 미워하게 하면 그 적군이 저절로 약해지는 것이니 그때를 타서 적을 치면 백전백승하는 법이라.

 

한번 해하며 나라를 잃은 후에 그걸 깨닫고 뉘우쳐야 쓸데가 없으며, 시방 조선은 누구와 싸움은 아니하니 조선 차지하고 시비하는 나라는 세계에 많이 없은 즉 만일 조선인민이 남 이간 붙이기 전에 서로 싸우면 그 때를 타서 누구든지 와서 조선을 차지하여도 어찌할 수 없을 터이니 설령 조선 인민 되어 지혜와 학문이 없은 즉 나라를 크게 돕지는 못하더라도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즉 나라에 역적이요 부모에 불효요 처자식에게 의리 없는 사람이다.

 

조선인민이 이 사정을 모르기에 이렇게 저희들끼리 서로 해하랴 하고 남에게 업수이 여김을 받는 것이니 이를 알고 깨달은 이는 우리 신문을 보고 개과천선하여 오늘부터 시작하여 합심하여 임금을 위하고 정부를 대접하며 우리 국민끼리 서로 사랑하고 외국 인민을 의심 없이 형제같이 대접하면 조선은 스스로 강해질 터이요.

 

외국 인민도 조선 사람을 진실하고 점잖은 주인으로 대접할 터이니 그런 것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 하는 자는 참 제 몸도 위할 줄 모르고 나라도 위할 줄 모르는 인생으로 세계가 알 터이다.

 

 [관보]             조칙

 

슬픈지라 근년 들어서 백성의 마음이 깨끗지 못하여 혹 거짓으로 여러 사람 마음을 미혹케 하는 자도 있으며 혹 의병이라 내세워 난리를 일으키는 자도 있으니 이는 짐이 교육을 잘하지 못하여 스스로 재앙과 난리를 일으키게 함이라 어찌 부끄럽지 아니 하리요.

 

이로써 조칙이 여러 번 내리고  사람을 보내어 화와 복으로 회유하여 선악을 스스로 깨닫게 하여도 모두 어리석음을 돌리지 아니하니 짐이 반드시 죽이는 권으로, 반드시 사는 길을 얻고자 하여 부득이 임군의 군사를 명하여 사방으로 나가게 하되 그 죄를 물으면 비류(못된 사람)라 하나 그 근본을 궁구(깊이 파고들어 연구)하면 다 짐의 아들이요 또한 봄이 되어 농사에 힘쓸 때를 잃으면 병난 끝에 주리고 배고픔이 끝이지 아니하여 개천과 구렁에 굶어 죽음을 면치 못할지니 말과 생각이 이에 이르면 마음이 불탄듯하여 어찌 감히 편하며 밥이 먹히겠나.

 

또한 짐이 들으니 요즘에 외국사람이 포도(도둑)에게 죽음이 간간이 있고 내국인민이 외국사람에게 죽은 자도 있다하니 짐의 마음이 심히 근심하고 민망하고 놀래고 한탄하노라. 이에 만국이 서로 통한하여 사귀고 의가 더욱 도타울 뿐더러 하느님이 위에 계시샤 살리기를 좋아하시는 덕으로 한결같이 보시나니. 어찌 내 지경, 네 지경을 의논하며 여기 약함과 저기 같음을 의논하리요.

 

우리가 모두 동포지인이라 동포 한 형제로 형이 아우를 해하여도 하느님이 재앙을 내리실 것이며, 아우가 형을 해하여도 하느님이 화를 내리실지니 가히 두렵지 아니하랴.  슬픈지라 짐의 조정에 있는 모든 신하들은 짐의 뜻을 본받고 각각 지방 관리에게 알려서 안과 밖이 둘이 없이 보호하기를 한결같이 하여 인민으로 하여금 악습을 고치고 착한 마음을 열어 잔인함을 행치 말며 대저 내 나라 인민과 외국사람의 죽임을 만난 자를 낫낫치 다 아래여 밝혀서 짐의 눈에 있는 것같이 하며 속히 짐의 마음에 스사로 경계하게 할 지어다.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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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0 [22:21]  최종편집: ⓒ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