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싶은 이야기/이춘모가 보는 세상 이야기

장복산 2020. 3. 23. 13:47

진해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없다.

진해하면 딱히 떠오르는 정치인의 얼굴이 없습니다. 그래도 진해와 정치인을 생각하면 7선에 제14대 국회의장까지 지낸 황낙주 전 의원의 얼굴이 생각이 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도 사실은 진해에서 정치를 시작 했지만 후에는 창원을 지역구로 하는 정치인이었습니다. 황낙주 전 국회의장을 생각하면 선거운동을 하며

돈이 없어 손수레에 방송장비를 싣고 선가운동을 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황낙주 전 의장은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조창대후보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신민당 후보로 출마했던 황낙주후보는 차점으로 낙선하자 개표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선거소송을 했습니다. 그러나 1969년 조창대 의원이 진해에서지역구 행사를 마치고 덕산동 K-10 비행장에서 이륙한 세기항공 경비행기인 파이퍼 체로키기를 타고 가다가 경기도 안성 야산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사망했습니다. 조창대의원의 사망으로 선거소송은 취하되었고, 황낙주 전 의장은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출마했습니다.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황낙주 후보는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워 리아카라고 하는 손수레에 방송장비를 싣고 선거운동을 한다며 시민들이 불쌍한 황낙주를 도와주자는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동정표가 선거에 영향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황낙주후보는 동정표로 당선되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민주공화당 하광호후보를 3,582표차로 따돌리고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한 황낙주의원은 이후 대선거구제가 실시되면서 9대는 민주공화당 이도환, 신민당 황낙주가, 10대는 민주공화당 박종규, 신민당 황낙주가, 12대는 민주정의당 배명국, 민주한국당 황낙주후보가 당선됩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는 신군부의 힘을 등에 업고 민주정의당 배명국후보가 진해지역구를 차지하며 한국국민당 김종하후보와 같이 당선되었습니다. 11대에서 낙선한 황낙주 후보는 다시 제12대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민주정의당 배명국후보와 무려 29,089표차로 2등을 해 당선은 되었지만, 차점으로 낙선한 한국국민당의 김종하후보와는 불과 5,525표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황낙주 전 의장은 13대, 14대, 15대 국회의원선거는 진해를 떠나 창원을 지역구로 정치를 했습니다.


국회의원 3선한 배명국, 김학송 별 의미 없어

보수의 아성 같았던 진해에서  1988년 다시 소선거구제로 실시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이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신군부의 등장으로 육군보안사령관 출신 전두환정권에서 보안사 인사과장 출신인 배명국의원의 3선 가도를 통일민주당의 정치신인 박재규(朴載圭)후보가 5,064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되고 말았습니다. 진해에서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박재규의원은 대통령 경호실장 출신 박종규의 동생인 박재규와 동명 2인으로 김영삼 총재의 최측근이던 서석재 의원의 생질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소야대 시절인 지난 89년 9월 정기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갑자기 <박재규의원 독직사건>이 불거져 나와 처음부터 그 배경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설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당시 지역구 라이벌인 배명국의원(민자)과 청와대민정비서관이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고발인에 의해 양심선언의 형태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박의원은 추후에 양심선언을 한 전대월씨에 대해서는 "안기부프락치로 서울대에서 학원사찰에 관여했던 사람으로 처음부터 어떤 의도를 갖고 내게 접근해왔다"며 항고 했으나 3년형을 선고 받고 1년 2개월을 복역하다 출소하였습니다.


이후 박의원은 방황을 거듭하던 자신의 심경을 묘사한 <자살여행>이란 자서전을 집필하기도 했지만 끝내 재기하지 못하고 1994년 지병으로 별세하고 말았습니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일민주당 정차두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배명국 후보가 당선되어 3선에 성공했습니다. 진해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3선에 성공한 배명국의원은 장복건설을 설립해서 장복터널 공사를 발주 받아 터널을 개통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하게 3선의 배명국의원이 진해지역을 위해서 정치를 했다는 기억이 없습니다.


지자체 강제통합의 아픈 기억들

나는 1996년 실시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해군장성 출신인 신한국당 허대범후보 선거사무실에서 기획실장으로 선거를 도왔던 일이 있습니다. 기성정치에 물들지 않은 신선하고 투명한 정치를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대는 기대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후 지역의 젊은 일꾼을 지처 하던 김학송후보가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3선에 성공하고, 같은 시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김병노후보가 진해시장에 3선을 성공하면서 진해지역의 정치판도가 양김시대를 열었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뿐이었습니다. 감학송의원이 국회의원 3선을 하며 국방위원장까지 했지만 군항도시라는 진해에서 해군의 주력부대인 해군작전사령부까지 부산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 뿐이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진해시를 창원에 강제통합하고 진해의 자치권을 말살하는 일에 진해출신 이달곤 전 행자부장관과 진해출신 3선 국회의원인 김학송의원이 앞장섰다는 사실은 지금도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제21대 총선에서 다시 아픈 기억들을 떠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지자체강제통합이 얼마나 졸속으로 진해 사람들을 무시하고 강제했으면 주민들이 시민단체를 결성하고 이달곤 행자부장관까지 고발하며 반발했던지 지금도 가슴이 저리는 아픈 통증을 느낍니다. 


지자체를 강제통합하면서 진해시민들의 감당하기 어려운 반발에 결국은 3선의 김학송국회의원은 제19대 국회의원 후보를 사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나에게는 아쉽고 안타까운 기억들이 아픈 상처로 가슴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보수의 아성 같았던 진해에서 지자체강제통합에 반발하는 진해 주민들의 투표반란으로 제5대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아성을 무너트리고 여소야대로 지역의 정치지형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후회하는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제19대 총선에서 야권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은 아마 영원히 나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역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기회를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야권후보들이 난립하면서 도로 새누리당 김성찬후보가 제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말았습니다. 


진해를 대표할 정치인 키워야할 필요성 있어

해군참모총장 출신이라는 간판으로 재선에 성공한 김성찬의원이 진해를 위해서 뚜렷하게 무엇을 했는지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너무나 황당한 일은 지자체강제통합의 선봉에 섰던 이달곤 전 행자부 장관이 다시 이번 총선에서 진해를 지역구로 국회의원후보로 입후보 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습니다. 아무리 망각 없는 삶이 고통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지금도 지자체강제통합으로 자치권을 잃어버린 진해사람들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로 남아있는 자존심의 상처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번 총선에서는 진해사람들이 마음을 가다듬고 심사숙고해서 투표해 주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진해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일꾼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국회의원은 국정을 논하고 법을 만드는 정치인이지 지역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기사 요즘은 전략공천이라는 명분을 팔아 국회의원 후보를 보따리장사같이 이지역저지역으로 마구 보내기도 하고 후보들도 이당 저당을 기웃거리는 세상이라 지역구라는 특별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것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자체강제통합을 반대하는 운동을 할 때 우리의사를 전달하려고 국회를 방문했던 일이 있습니다. 주민등록증을 제시해도 국회 출입조차 막아버리는 경위들에게 항의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습니다. 진해출신 국회의원은 얼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호남지역 국회의원인 강기정의원 보좌관의 도움으로 행자위가 열리는 국회에 들어 갔습니다. 지자체 통합문제가 최종적으로 진해, 마산, 창원과 하남, 광주, 성남을 기초자치단체로 통합하는 문제를 치열하게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행자위에도 진해출신 국회의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창원출신 권경석의원은 지역민심과 반대되는 의견만 개진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하남출신 문학진의원은 아주 적극적으로 하남과 광주, 성남이라는 지자체를 통합하는 문제에 대해 강력한 반대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진해, 창원, 마산을 통합하는 지자체통합 안만 의결되면서 진해가 희생의 제물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 아픈 상처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언제나 진해를 대표할 수 있는 진솔하고 넉넉한 국회의원을 우리 스스로 선출하고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항상 나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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