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suit of Recording/좋은말씀

도미니크 2017. 1. 8. 11:57
예술, 진리와 책임 - 하르트비히 쉴러 w. 아이라움/라주어코리아

- 가장 아름다운 기쁨은 다른 사람과 나눌 때 생긴다.

- 왜 예술에 책임이 관련이 있는가?
- 예술, 교육, 책임:
- 독일은 두개의 정치적 영역으로 갈라져 있었고, 서로 적대적인 상황이었다.  28년후에 경계가 무너졌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정치학자나 철학자들이 서로 다르게 이야기 한다. 왜 이것이 가능하였는가? 관통되는 이유는 혁명이라는 단어.  그것이 왜 혁명이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피를 흘리지 않았지 않느냐? 그렇다면 혁명에 대한 다른 개념을 발전시켜야 한다. 평화로운 혁명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평화로운 혁명이 가능한가? 그러한 일의 결정적인 사건은 "크리스탈 볼프(Christa Wolf)"라는 여성 작가의 말이다. 그녀는 "카산드라 콤프렉스"를 지은 양반이다.  

* 참조 동영상: 크리스타 울프의 연설 바로가기

* 참조 스크립트: 연설문(영문)바로가기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연대적인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 더 나아가서 우리는 반전체적이고, 파쇼에 반하는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 동독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파쇼는 없는 완전히 이상적인 국가를 만드는 지향을 가지고 시작되었는데, 그리고 40년 뒤에 그 이상이 실제하여야 한다. 연대적인 공동체, 기능적인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위계에 의하여 작동되는 기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평화가 지배적이고, 과도하게 무장한 국가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권한이나 기회가 독점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자기의 확신이나 신념을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고, 모든 면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자기가 원하는 곳에 살 수 있어야 한다. 동독에서는 살고자 할 때 경찰에 물어봐야 했다. 그리고 주변환경을 보호하는 가치. 이러한 이상이 동독에는 없었다. 동독이 처음 출범할 때 계획된 이상이 실현되지 않았다. 이당시 크리스탈 볼포의 연설이 이루어진 것이 기적이었다. 이 연설이 언제 가능했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날이었다.  당시 이 연설이 당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일을 주도했던 사람들 유명인사 30명이 연설문에 서명을 했다. 연설문의 제목이 바로 "우리나라에서..."이었다. 

이사람들을 들어보면, 정치인명 1명, 경제인 2명, 기술자 2명, 신학자 3명, 학자 7명, 프로페셔널 7명, 예술가 8명(저술가, 연극인, 배우, 무용수)와 같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이 사실이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정치인은 1명인데, 예술가는 8명이었다. 예술가는 주변인이었다. 평화로운 혁명의 주도자는 예술가였다. 그리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서명을 자처했다. 1,700,000명 사인했다.  예술가가 혁명을 부축였다. 왜, 예술가들이 나섰을까? 무슨 동인이 있을까? 우리가 예술가를 바라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술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예술가 스스로는 자신을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다른 예술가와 서명한 예술가가 다른 점을 살펴보자.  

전시회에서 그림을 보면 "이게 그림인가"하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저차원에서 수준이 낮은 그림으로 인식할 수 있다.  "저런 그림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버리고, 그림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림의 저변에 있는 질적인 것을 봐야 한다. 

<그림a을 보고 설명>
이 그림은 원도 있고, 강력하고 검은 원이 침울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이 그림은 일상적인 생활에서 느낌을 표현한 것 같은데, 무거운 것은 밑으로 떨어지는데, 이 그림에서는 무거운 것이 떨어지지 않고 긴장된 상태에서 균형속에서 유지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모든 그림은 3차원의 실제를 2차원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실제의 변형이다. 

<그림b를 보고 설명>
이 그림은 내면적인 대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그림은 자기 자신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화가의 자신이 일까? 그것은 형태도 있고, 물질도 있다. 우선적으로는 색채이다. 둘 다 같은 색깔이다.  왼쪽은 형태를 헤체하고 역동을 부여했다. 그러나 두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붉은 색이다. 왼쪽 그림은 대충 그린 것이 아니다. 형상을 그래도 가지고 있다. 

<그림c를 보고>
형상을 옮긴 그림이 아니다.  밝은 빛이 아래로 벋쳐 나간다.  이 그림은 멀리 보면 바다나, 풍경이나, 여러가지 모습으로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은 순수한 색깔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색깔이 만든 형상이다. 색깔의 형상이 스스로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예술가는 여러가지 일을 했지만, 이해받지 못한다. 인상주의 미술을 즐기려면 예술가의 그림을 사면 된다.  복사본을 사면된다.  풍경화는 집안의 장식품으로 설치하기도 좋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을 볼 때, 당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지하고 의아했다. 예술가는 자연을 사진처럼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상주의 이후에 초현실주의(표현주의)가 나왔다. 그 당시에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다. 그들은 훨씬 더 강력한 색상으로 표현했다. 당시에는 표현주의를 "독일스타일"이라고 했다. 나치시대의 독일에서는 표현주의가 금지되었다. 당시에 그런 그림을 망가뜨리거나, 버리거나 태워버렸다. 

오늘날에는 인상주의, 표현주의가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서 이것이 가능하여졌을까? 예술가들은 다음시대 앞을 살아가니 가능하다. 예술가들은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하나의 힘이 있다. 그것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세상과 같이 어울려 산다.  상상(판타지)는 세상을 새로운 시각, 새로운 말로서 설명해준다.  이것이 우리가 예술가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다.  예술가를 영웅으로 찬미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위엄을 이야기하려 한다.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분들은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를 것이다.  몇일간의 노력이 아니다. 이것은 3년간의 싸움이다. 그림을 보더라도 작가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림d를 보고>
파랑과의 싸움, 노랑과의 싸움.  노랑 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우연인가? 이게 예술이야? 예술가들의 문제는 어떻게 내 상상력을 주도할 것인가?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늘의 말에 대하여 이야기 했는데, 상상력을 말에 마구를 씌우는 사람이라고 했다. 야생의 힘이다. "내맘에 들어","추해".  위대한 예술가들은 야생의 힘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거친 힘이 아니라 정확한 상상력을 만들어가야 한다.  상상력을 관행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야생적 상상력의 중간 지점이 "진리"라 한다.  형태와 색이 어울리나? 이것이 진실인가?  진리와 진실을 이야기할 때 어려움은 구분하지 못한다. 나의 진리이냐? 세상의 진리이냐? 

루돌프 슈타이너의 3가지 이야기로 신지학이라는 책에서 나왔다. 1) 진리로서 생각을 통해서 인식하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의미라는 것은 세상에 있는 사물에 관계된 것이지, 내 자신의 영혼과 관계되어서는 안된다. 세상의 진리라는 것은 내 영혼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 자신 속에서 "빨강이 좋아"라고 말하는 것은 내 영혼이 말하는 것이다. 빨강을 내가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진리에 가까이 가는 것. 2) 진리를 파악하고자 할 때 영혼은 그 자체에 연결된다.  빨강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빨강은 관찰자에 관심이 없다. 
3) 진리라는 것은 진짜이다. 모든 사람이 진리에 반대해도 진리는 진리이다.  교육자들은 말한다. 아이가 어떻게 들어나야 하느냐? 아이가 부모처럼 되어야 하느냐? 교사처럼 되어야 하느냐? 아이가 사회구성원처럼 되어야 하는냐? 아이가 노동로봇이 되어야 하느냐?  "아니예요!", "아이는 자기 스스로가 되어야 해요!", 교육은 아이자신이 되도록 돕는 도구이다. 빨강이 빨강이듯이.  우리가 예술이라고 말하는 개념보다도 훨씬 넓게 봐야 한다.  오늘날 어떤 이는 예술은 특정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예술가가 되려는 마음은 모든이에게 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나서서 이야기할 때 그때 모든 사람은 예술가이다. 예술가는 "미래의 에이전트". 미래를 가져와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미래, 환경, 삶과 사람에 대하여...인간은 도처에서 예술가로서 활동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3년간의 예술가 양성과정이 끝나고 있다. 우리가 해왔던 것은 모험이었다. 한사람이 이상을 가졌다. 강우태라는 사람이었다. 혼자 가진 것이 아니다. 부인에게 말했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이상만 가진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가지고 미래를 가져온다.  위대한 철학자는 생각하는 예술가들이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이런 프로젝트는 혼자해서는 안된다.  여러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분들이 프로젝트의 기둥이 되었다. 참여와 관심이 그러한 기둥이다.  마지막으로 깜찍 놀랄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하겠다. "이것이 절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 절정은 여러분들이 더할 것이다.  조만간 모든 예술영역에 걸쳐 추진될 것"이다. 








도미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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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트비히 쉴러교수님의 강의를 녹취해주셔서 오늘 보니 참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