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suit of Mentoring/구결컬럼

도미니크 2019. 7. 29. 16:32


한 선배가 고객을 대하는 태도를 당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고객은 바람나기 직전의 연인이다.” 아마도 고객에 대한 마음가짐에 절실함과 성실함이 요구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듯싶다. 영업사원 시절에 고객이 경쟁사에 넘어가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선배의 설명이 오래 기억되었다. 이렇게 유사한 속성을 암시하기 위해‘A’를 ‘B’로 대치하는 표현방식을 문학에서는 메타포(metaphor, 은유) 용법이라 부른다.


생각을 전달할 때 이해하기 쉽도록 메타포를 적절히 섞어 설명한다면, 메시지가 가진 개념의 본질을 깊이 생각한 사람이다. 대개의 경우 깊은 고찰이 없다면, 그럴듯한 은유 표현은 섣불리 생각해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은유에 남다른 실력을 가졌다. 그들은 은유적 표현으로 삶과 자연의 시를 쓰고, 독자들은 이를 해석하며 사고의 지평을 확장시킨다. 그러나 은유법은 시인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츠(Edward Lorenz)는 카오스(chaos theory, 혼돈) 이론을 설명하면서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용어를 이용했다. ‘나비효과’란 필리핀의 나비 날갯짓이 일본열도에 태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메타포이다. 이 말은 로렌츠의 논문에 그의 동료가 붙인 부제목에 기인하였다. 로렌츠가 고안한 기상예측의 시각화 그림이 공교롭게도 나비의 날개 모양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고, 나비효과는 그가 촉발시킨 카오스 이론의 상징적 용어가 되었다.


카오스 이론은 초기의 미묘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초기 민감성’,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경로가 너무 다양하여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예측 불가능'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카오스 이론은 관찰 시간을 오랜 동안 크게 넓히면 처음에는 설명이 안되던 우연한 현상이라도 돌연 특정한 패턴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나비의 날갯짓과 태풍이 발생하는 결과 사이에 수많은 경로가 일정한 특징을 보인다는 설명을 위해 ‘카오스는 나비의 날갯짓’라는 메타포가 사용된 것이다.


한편 법륜스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인연과보(因緣果報)’는 카오스 이론과 맥이 통한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지만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며, 그 현상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지혜가 ‘인연과보’이다. 이에 대비되는 말로 스님은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있다고 했다. 권선징악과 같이 선행을 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악행을 하면 필히 벌을 받는다는 직선적 사고가 ‘인과응보’이다. 그러나 자연계의 현상은 직선적 ‘인과응보’ 보다는 카오스적 ‘인연과보’에 가깝다. 내가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아지기는 하지만, 환경에 따라 원하던 결과가 전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스님의 주장은 카오스 이론을 삶의 지혜에 연결시킨 말이다.


‘인연과보’의 진리는 자연환경의 ‘불확정성 원리’와 더불어 유기체의 ‘자기조직화(self-oragnization)’ 현상을 합친 정황과 같다. 전자는 환경의 우연성을 설명하고, 후자는 환경 속에서 발휘되는 생명체의 창발적 행동 패턴을 가리킨다. 이상의 두 가지 원리는 우연한 현상도 오래 관찰하면 어떤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카오스 이론을 설명해 주는 과학원리이다. ‘불확정성 원리’는 과학적 사실로 자리잡았지만, ‘자기 조직화 원리’는 외부 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에 의해서 여전히 반론이 있는 주제이다.


‘자기 조직화’는 자기 스스로 조직화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자기 조직화 능력은 살아있는 유기체에는 공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실제로 자연계의 동물은 객체에서는 보이지 않던 행동 패턴이 군집에서는 드러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뜨거워진 벌집을 환기하여 식히려는 꿀벌집단의 날갯짓,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들의 V자형 비행 패턴, 어스름한 초저녁 새떼들의 군무.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바다 속 물고기가 커다란 공처럼 뭉치는 구형패턴은 특별한 의사소통이나 선행학습이 없었음에도 객체들의 창발적 자기조직화 패턴을 보여준다.


자기조직화는 밖에서 강요된 행위라기 보다는 생존을 위하여 내부로부터 새로운 방식을 창출해 나갈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유기체 집단인 인간세계에도 예외가 아니다. 단세포 태아가 분열하며 사람의 모습을 찾아가는 신비함도 자기 조직화의 증거이다. 자기 조직화가 미약하다면 머리가 여럿인 기형 동물이 자주 발견될 것이다. 개인을 넘어 인간 집단의 자기조직화 현상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신호등과 교통경찰이 없는 베트남 하노이 사거리에서 교차하는 수천대 오토바이들의 흐름을 보면 인간집단의 자기조직화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자기조직화는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현상으로, 긍정적 피드백 사이클이 존재할 때 더욱 신속히 강화된다.


자기조직화(self-organizing)라는 말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판단력 비판(Critique of Judgement, 1790)’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자기조직화는 생물학적 목적론과 통한다. 무질서 속에서도 생물들은 자기의 마음을 가지고 목적을 향해 자기 스스로를 조직화한다는 뜻으로, 그 결과는 좋은 발전임을 상정한다. 생물학자인 스튜어트 카우프만(Stuart Kauffman)에 의하면 무생물로부터 생명체가 탄생하는 비밀도 자기조직화에 있다.


자기조직화는 외부적 조작에 의하지 않고, 내부적 가이드라인에 따라 더욱 복잡한 체계로 진화한다. 자기조직화를 신뢰한다는 것은 유기체가 통제 없이도 바람직한 상태로 전이한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지구과학에 이르러 가이아 이론(Gaia theory)을 만들었다.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지구를 거대한 지적 의사결정을 하는 생명체로 상정하고 ‘가이아’라는 그리스 대지의 여신 이름을 은유적으로 붙였다. 그에 따르면 가이아(지구)는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이 생존하기 유리한 조건으로 지구의 균형을 지켜나가는 고마운 엄마와 같은‘자기조직화’의 주체이다.


학자들이 ‘가이아 이론’에 대하여 모두 호감을 갖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조직화’의 시작이 혼돈이기 때문이다. 혼돈이 없다면 자기조직화도 발생하지 않지만, 외부의 의지적이고 의도된 개입이 없다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도 있다. 불확정된 혼돈의 상태에서 외부의 통제가 없다면 파멸의 길로 이탈할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들은 지구는 자기 조직화를 유지할 힘을 스스로 가지지 못했고, 때에 따라서는 생명체를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개념을 ‘가이아’에 비교하여 ‘메디아 이론(Medea theory)’이라고 한다. 메디아는 자신을 위해 아들까지 죽였던 비정한 마녀로 은유되는 그리스 신화의 나쁜 엄마이다. 메디아 이론의 추종자는 우주는 우연이나 필연의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스스로 조직화되기도 하고, 환경에 따라 비조직화되는 현상이 공존하는 ‘카오스’로 해석한다.


결론적으로 ‘카오스 이론’은 혼돈 속에서 유지와 파괴, 우연과 필연을 넘나드는 개념이다. 한국의 촛불혁명은 물론 BTS ARMY 클럽의 활동과 지구 곳곳에서 관찰되는 일반대중의 조직적 움직임은 ‘우연한 일이다’혹은 ‘필연적 일이다’의 양쪽으로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 점쟁이는 지나간 일은 잘 설명하지만 미래를 100% 예측할 수 없다. 상황과 사람의 의지가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후 설명은 가능하지만, 미래의 전개를 예측하지는 못하는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당면한 사건으로 미래를 해석하는 방향은 여러 갈래로 나뉘곤 한다. 현세 역시 가이아와 메디아가 공존하는 카오스의 세계인 것이다.


카오스 이론이 필연과 우연 속에서 일정한 패턴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일정한 패턴이 반드시 인류의 생존에 호의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개인적으로 보이지 않던 어떤 것이 집단적 관계가 형성되면서 자기 조직화는 발현된다. 그러나 집단적 관계가 항상 긍정적으로 발전한다는 가이아 이론과, 파괴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는 메디아 이론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문제이다. 수십년 동안 어떤 사회는 선진국을 향해 발전하는 반면, 어떤 사회는 구조악에 찌들어 세계 최빈국의 수준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미래에 대하여 긍정과 부정 어느 한쪽의 예측에 집착하기 보다는, 존재간의 맥락 안에서 우리 스스로 자기조직화의 해법을 찾아 가는 깨우침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므로 우연이건 필연이건, 유지이든 파괴이든“운명은 거스르는 자에게 굴복한다. 확률적으로 아주 많이!”<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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