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爭史

마틴신 2018. 1. 25. 10:49

코냑동맹전쟁은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주도하에 결성된 코냑동맹국과 스페인-신성로마제국등의 광활한 영토를 가진 합스부르크家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1526년에 시작된 이 전쟁은 코냑동맹국들이 패배하며 1530년에 종전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가 제 4차 이탈리아 전쟁(1521-1526)에서 프랑스를 격파하고 이탈리아 반도에서의 패권을 거머쥐게 된다. 카를 5세(재위1519-56)의 세력 팽창에 위협을 느낀 교황 클레멘스 7세(재위1523-34)가 이탈리아에서 카를 5세를 몰아내기 위해 프랑스,밀라노,베네치아,피란체 공화국과 1526년에 코냑동맹을 결성한후 바로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전쟁중인 1527년 5월 6일에 교황령의 수도 로마를 침략한 신성 로마 제국군대 가운데 일부가 통제에서 벗어나 로마 시내에서 무차별적으로 약탈,살인,파괴,강간을 자행하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코냑 동맹전쟁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16세기에 8차례에 걸쳐 벌어진 일련의 이탈리아 대전쟁(1494-1559)중 5번째 발생한 5차 이탈리아 전쟁으로 분류된다. 이 전쟁이후 신성로마제국은 유럽 최고의 초강대국임을 분명히 했으며 교황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코냑(Cognac)은 프랑스 서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프랑스 국왕인 프랑수와 1세의 출생지로 유명한곳이다. 이곳에 모여 동맹을 결성하였기에 '코냑동맹'이라 명명하였던것 같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주에만 '코냑'이라는 상표를 붙일수 있다고 하는데 과거부터 이 지역에서는 포도를 많이 재배하였으나 '코냑'이라는 브랜디 제법이 발견된것은 코냑동맹 결성 당시(1526년)보다 260년이나 지난 1787년에 일이다. 

그리고 동맹 결성 당시에 이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주는 타 지역 제품보다 맛이 쓰고 품질이 떨어졌다고 전해지는데 아마도 황제군에 복수를 하고자 했던 동맹들이 모여 앉아 이 쓴 포도주를 마시면 와신상담(臥薪嘗膽)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특히 4차 이탈리아 전쟁에서 대패하여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프랑스 국왕 프랑수와 1세는 그 수치심으로 인해 복수에 불타올랐을 것이다. 프랑수와의 복수심은 와신상담(臥薪嘗膽) 하였던 월나라 구천(勾踐)이 오나라 부차(夫差)에 품었던 복수심보다 더 컸을것 같다. 그래서 굳이 동맹 결성 장소를 자신의 고향이자 유독 포도주 맛이 유난히 쓴 '코냑' 지방으로 정하고 그 쓴 포도주를 마시며 동맹을 결성하지 않았을까 한다.




유럽 각국의 상황과 신성 로마제국의 세력 팽창
중세 봉건시대는 십자군전쟁(11-13세기)이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며 아울러 교황의 권위도 점차 약해지게 된다. 백년전쟁(1337-1453)이후 프랑스는 귀족의 세력이 약해지며 왕권이 강화되고 중앙집권이 이루어진다. 서유럽 끝자락에 위치한 가난한 섬나라 잉글랜드는 백년전쟁에서 프랑스에게 패배한후 장미전쟁(1455-1485)이라는 내전이 발생한다. 장미전쟁은 평민들과는 무관하게 귀족과 그들의 사병간에 벌어진 내전으로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투쟁전이였으며 그 결과로 귀족세력이 약해지고 절대왕권과 중앙집권이 이루어진다. 

아라곤,카스티야,그라나다등 여러개의 왕국으로 나뉘어져 있던 이베리아 반도가 처음으로 통일된것은 1492년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에 의해서다. 이사벨 여왕은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를 지원한것으로도 유명한데 남편인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와 합심하여 이슬람 왕국이였던 그라나다를 함락시켜 '통일 스페인의 어머니'이라고 불리우는 훌륭한 여왕이다. 그녀의 둘째딸인 후아나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필리프 1세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카를 5세(재위1519-1556)이다. 

카를 5세는 모계 혈통에 따라 스페인, 시칠리아, 나폴리등을 승계받고 부계 혈통을 따라 합스부르크 왕가(독일-오스트리아)등 넓은 제국을 물려받았다. 이것뿐만 아니라 대항해 시대 초기에 스페인이 개척한 식민지인 필리핀 제도와  남미대륙도 통치하였으며 1519년 6월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어 그의 영토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원조가 되었다. 이렇게 스페인+신성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탄생하자 프랑스와 잉글랜드등 주변국가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었고 동맹등을 통해 견제를 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정치적인 상황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이탈리아는 이민족과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다. 동고트족, 동로마 제국, 롬바르드족, 프랑크왕국의 지배를 거쳐, 962년 오토 1세에 의해 성립된 신성로마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11세기 이후에는 황제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황제와 교황간의 세력 다툼이 격화되고 지방 영주가 통치하는 도시국가가 출현하였다. 도시국가의 수공업 및 상업이 발달하면서 베네치아, 제노바밀라노, 피렌체 등이 산업, 상업, 금융의 중심지로 대두되어 세력을 확장하였다.

15세기에서 16세기에 이탈리아는 유럽의 특별한 존재로 독특한 영광과 독특한 굴욕이 함께 있었다. 옛 로마제국 시절 서구세계 전체를 지배했던 이 땅은 분열과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유럽의 강대국들은 왕권이 강화되고 중앙집권이 이루어지며 갈수록 왕을 중심으로 나라 전체가 결속하며 국민국가로 나아갔지만 이런 흐름과 상관없이 이탈리아에는 그런 구심점이 없었다. 북부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지배권을 주장하다가 13세기 이후 베네치아, 밀라노, 제노아 등 여러 도시들이 할거하는 상황이 되었고, 중부는 로마 교황청의 세력이 앞서는 가운데 피렌체, 시에나 등이 분립했으며, 남부는 비잔티움, 노르만, 이슬람 등에게 계속 정복되던 끝에 나폴리 왕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처럼 잘게 갈라진 이탈리아는 서로 대립하고 전쟁을 벌이는 일이 끊이지 않았으며, 군주국, 공화국, 신정체제 등 정치체제와 이념이 다양하였기 때문에 통일된 국가의 모습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고조 유방처럼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실현할줄 아는 걸출한 영웅이 필요했으나 안타깝게 그런 영웅호걸은 태어나지 못했다. 다만 체사레 보르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마키아벨리의 공허한 한숨소리만 이탈리아 반도 상공에 메아리 쳤다. 지중해를 통한 해상무역과 상업의 발달로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웠으나 외세의 침략이나 간섭으로 부터 자국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였고 이런 이탈리아 반도는 유럽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의 각축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 시대에 세속 군주였던 로마 카톨릭 교황들은 이런 사실을 간파하고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자하는 노력을 기울이며 직접 연맹을 결성하거나 전쟁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당시는 ‘르네상스’ 시대였다. 1453년 비잔티움 제국(동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해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유산을 간직한 학자와 기술자들이 이탈리아로 대거 망명해 들어왔고, 이를 토대로 고대의 유산을 재발견하고 학술과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에 힘입어 초기 자본주의가 나타나고 시민계급이 형성되는 등 다른 유럽 지역보다 근대적인 사회문화가 일찍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삼분지계




[자료 참고와 출처] 

   

위키백과

나무위키,   

네이버 지식백과,   

네이버 역사카페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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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영국사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세계전쟁사 다이제스트 100

   

먼나라 이웃나라 1권 네덜란드 편,   

먼나라 이웃나라 6권 이탈리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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