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爭史

마틴신 2018. 1. 23. 08:10
  • 1차 전쟁(1494~1495):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원정으로 시작되었고 샤를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 피렌체를 점령하는데 성공한 후,[3] 교황이던 알렉산데르 6세와의 밀약을 통해 나폴리 왕국[4] 점령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알렉산데르 6세를 중심으로 베네치아 왕국교황령 등이 중심이 되어 체결한 베네치아 동맹과 스페인 세력이 개입. 급히 프랑스로 퇴각해야 했다.

  • 2차 전쟁(1499~1504): 샤를 8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프랑스 왕 루이 12세는 밀라노를 수도로 한 밀라노공국을 정복, 이어서 나폴리왕국도 점령하여 샤를 8세의 숙원을 이루려 했다. 하지만 프랑스 세력의 확장을 경계한 스페인의 페르난도 2세가 지원군으로 참전하겠다고 요청하는데, 이는 일단 나폴리왕국을 멸한 뒤 프랑스의 뒤통수를 때려 나폴리를 독점하려던 계획이었던 것. 결국 스페인은 유명한 테르시오 진형을 창안한 명장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의 활약으로 인해 남부 이탈리아 반도 대부분을 영유했던 나폴리왕국을 통째로 집어삼켰으며, 이후 나폴리왕국령은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이 끝나는 1714년까지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된다.

  • 3차 전쟁(1508~1516): 교황령의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치세의 목표로 내건 교황 율리오 2세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요약할 수 있는 전쟁.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율리우스는 먼저 프랑스와 손잡고 베네치아를 격파했으나 이탈리아 반도에 프랑스의 영향력이 필요 이상으로 커져간다고 생각. 다시 스페인을 끌어들여 프랑스를 몰아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페인이 프랑스 대신 이탈리아 반도에 영향력을 행사. 이에 율리오 2세는 신성로마제국을 끌어들여 스페인을 견제하려 했으나, 신성로마제국 황태자와 스페인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희대의 엄친아 카를 5세의 등장[5]으로 인해 율리오 2세의 꿈은 실패로 돌아간다. 한편 잉글랜드는 이 전쟁에 처음으로 참가. 이후 간간이 프랑스의 적국으로서 참전하는데, 이는 백년전쟁 당시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바랐던 왕 헨리 8세의 야심 때문.

  • 4차 전쟁(1521~1526): 신성로마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이 된 카를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20여년간에 걸친 노력의 시작. 하지만 이 전쟁에서 프랑수아는 카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는 커녕 3차 전쟁 후반부에 획득한 밀라노를 잃었으며, 1525년의 파비아 전투에서 개발살. 자기 자신도 포로로 잡혀 이듬해에야 겨우 자신의 두 아들을 인질로 맡길 것을 맹세한 마드리드 조약에 서명한 뒤에야 풀려난다.

  • 5차 전쟁(1526~1530): 포로로 잡혔다 풀려난 뒤 복수를 갈망하게 된 프랑수아 1세와 카를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교황 클레멘스 7세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코냑 동맹 대 카를의 싸움. 하지만 코냑 동맹은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국가들이 연합한 것이었기에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특기할 만한 점으로, 이 전쟁 중에 신성로마제국-스페인 연합군이 로마를 초토화시켜 로마의 르네상스를 결단내 버렸다 ....

  • 6차 전쟁(1536~1538): 5차 전쟁의 결과 카를의 신하로서 밀라노공국의 공작으로 즉위한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2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된 전쟁. 프란체스코 사망 이후 프랑스 왕 프랑수아는 자기 자신을 공작으로 내세운 반면 카를은 자신의 아들이자 훗날 스페인의 왕으로 즉위하는 펠리페를 공작으로 임명. 이에 화가 난 프랑수아가 선전포고했다. 이 전쟁 중에 프랑수아는 오스만 제국과 군사동맹을 체결하는데, 이는 이후 이탈리아 전쟁 내내 프랑스의 기본 방침 가운데 하나가 된다. 한편 이 전쟁은 교황 바오로 3세가 중재하여 성립된 니스 조약으로 그 끝을 맺는데, 조약이 체결되기까지는 바오로 3세의 노력이 적지 않았다. 서로 전쟁과 강화를 되풀이하는 두 사람의 화해를 위해 노력했다는 점보다도, 니스에 도착한 프랑수아와 카를이 서로와 대면하기를 원치 않았고. 이에 서로 다른 방에 앉고 바오로 3세가 왔다갔다하며 서로의 말을 전달했기 때문교황을 시계추로 삼아버리는 프랑스 왕과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위엄.

  • 7차 전쟁(1542~1546):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스페인 사이의 영토분쟁 결과 벌어진 전쟁. 앞서 벌어진 세 차례의 전쟁은 모두 프랑스에게 불리한 쪽으로 끝이 났는데, 프랑스 왕 프랑수아가 조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던 것이 전쟁의 한 요인이 되었다. 이 전쟁은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인 카를 5세가 서로와 겨룬 마지막 전쟁이 되는데, 전쟁 종결 1년 뒤인 1547년에 프랑수아가 사망하기 때문. 한편 이 해에 잉글랜드 왕 헨리 8세도 세상을 떠난다.

  • 8차 전쟁(1551~1559): 프랑수아 1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왕 앙리 2세가, 카를 5세에게 선전포고한 전쟁. 앙리 2세의 정책은 프랑수아 1세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닌데, 따라서 '카를의 세력을 꺾어누르려던 아버지의 유지를 본받겠음!' 하는 식으로 벌인 전쟁이다. 비록 1556년에 카를 5세가 퇴위하며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신성로마제국을 주고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스페인을 주어[6] 카를의 제국이 둘로 쪼개지기는 했지만 프랑스는 이번에도 이기지 못했고사실 8번의 전쟁 가운데 프랑스가 웃으며 끝낸 전쟁은 3차 전쟁 한번뿐이다, 1559년의 카토-캉브레지 조약으로 스페인과 강화를 체결. 스페인이 이탈리아 반도 거의 대부분을 직접, 간접 지배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한편 잉글랜드가 유럽 대륙에 가지고 있던 마지막 거점인 칼레가 프랑스에게 함락된 것도 이 전쟁에서였는데, 펠리페 2세의 아내가 잉글랜드 여왕 메리 1세였고. 따라서 잉글랜드는 스페인의 동맹으로서 참전했었기 때문.


[자료출처]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