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爭史

마틴신 2018. 1. 25. 10:55
이탈리아 대전쟁 요약 (1494-1559)
15세기말에서 16세기 중반까지 8차례에 걸쳐 이탈리아 반도에서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스페인,잉글랜드 등이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 연합하여 전쟁이 벌어진다. 스코틀랜드와 멀리 있는 오스만 제국까지도 참전하는 등 세계 대전이라 부를 만한 대규모 장기전이였는데  이 전쟁은 지중해 무역과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으로 떠오른 이탈리아 반도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유럽의 강대국간에 벌어진 쟁탈전이였다. 로마 카톨릭 교황도 교황령 군대를 통원하여 참전하거나 다른 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전쟁을 주도하기도 했다.

전쟁은 주로 프랑스 국왕과 신성로마제국 황제, 교황 3자간에 힘 겨루기 양상을 띄고 있었다. 8차례의 전쟁중에 각국은 필요나 상황에 따라 서로 동맹을 맺거나 역동맹을 다시 맺어 전쟁을 벌이곤 하였다. 프랑스는 3차 이탈리아 전쟁에서만 승전을 하였을뿐 나머지 전쟁에서는 모두 패배한다. 8차례의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스페인이 승리하여 이탈리아 반도의 거의 대부분을 직간접적으로 지배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최강대국의 자리를 확실하게 굳히게 되었다. 한편 잉글랜드가 유럽 대륙에 가지고 있던 마지막 거점인 칼레를 마지막 8차 전쟁 (1551-1559)에서 프랑스에게 빼았기게 된다. 잉글랜드는 8번째 이탈리아 전쟁에 스페인의 동맹으로 참전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잉글랜드의 여왕 메리 1세가 스페인에 펠리페 2세의 마누라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대전쟁

    발생 년도

     비       고

   1차 이탈리아 전쟁

   1494 - 1498


   2차 이탈리아 전쟁

   1499 - 1504


   3차 이탈리아 전쟁

   1508 - 1516

   캉브레 동맹전쟁

   4차 이탈리아 전쟁

   1521 - 1526

   4년 전쟁

   5차 이탈리아 전쟁

   1526 - 1530

   코냑 동맹전쟁

   6차 이탈리아 전쟁

   1536 - 1538


   7차 이탈리아 전쟁

   1542 - 1546


   8차 이탈리아 전쟁

   1551 - 1559





1차 이탈리아 전쟁 (1494-1498)
1494년에 시작하여 1559년까지 8차례에 걸쳐 이어진 이탈리아 대전쟁이 시작되는 계기를 제공한 1차 이탈리아 전쟁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1492년 콘클라베에서 새로운 교황에 알렉산데르 6세(214대 1492-1503)가 선출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줄리아노 추기경이 프랑스로 건너가서 국왕 샤를 8세를 만나 이탈리아를 침공할것을 부추기며 로마를 정복한후 자신을 새 교황에 즉위시켜달라고 요청한다. 명분으로 제시한것은 콘클라베 당시 알렉산데르 6세가 거액의 뇌물로 추기경들의 표를 매수하였으므로 부정선거이며 그가 선출된것은 무효라는 것이였다. 또한 샤를 8세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해 프랑스 군대를 이탈리아로 파견시켜 달라는 요청을 밀라노 공국의 루도비코 공작으로 부터 받게 되었다. 

이러던 차에 1494년 나폴리 왕국의 페르디난도 1세가 죽자, 샤를 8세는 나폴리 왕국의 왕위에 대한 앙주 가문의 승계권을 요구하며 드디어 이탈리아를 침공하였다. 알프스 산맥을 넘은 프랑스군은 큰 저항없이 이탈리아를 관통하여 로마를 정복하고 나폴리 왕국을 점령했다. 프랑스 국왕 샤를 8세는 교황령 성도 로마를 점령한후, 교황 알렉산데르 6세와 밀약을 체결하면서 그의 이탈리아 침공을 적극 도왔던 줄리아노 추기경을  토사구팽(兎死狗烹) 시켜버린다. 낙동강 물오리 알 신세가 된 줄리아노 추기경은 훗날 1503년에 제 216대 율리오 2세 교황(재위1503-13)으로 즉위하게 되며 교황이 되고자 했던 소원을 이루기는 하였다.


나폴리 왕국을 접수한후 지중해와 나폴리의 미인들과 쾌락에 빠져있던 샤를 8세는 매독에 걸리고 만다. 프랑스 군인들의 상당수도 매독에 감염되어 고생하게 되었다. 한편 나폴리 침공 과정중에 프랑스 군대가 약탈을 자행한것에 분노한 북부 이탈리아에서는 베네치아 동맹이 결성되었고 프랑스 본토와 나폴리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군대의 연락망과 보급로를 차단하는 조치를 취한다. 뒤늦게 프랑스 원정군은 귀국을 서두루던중에 이탈리아 동맹군과 포르노보 전투(1495/7월)가 벌어진다. 샤를 8세는 이탈리아 동맹군을 간신히 물리치고 무사히 귀국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전투 과정에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매우 부유하지만 그들의 용병군으로 구성된 군대는 허약하다는 사실을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이탈리아에서 유럽의 강대국들간에 지속적으로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매독은 당대에 천형으로 치료가 쉽지 않았다.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전리품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남미의 풍토병인 매독의 병원균을 유럽에 싣고와서 퍼트렸다고 한다. 물론 여러가지 설이 있고 프랑스군은 이태리 나폴리병이라고 하고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 병이라고도하며 서로에게 떠넘기기도 하여 정확한 매독의 진원지를 알수는 없다. 샤를 8세가 정복하기 이전에 나폴리 왕국은 스페인영이였으므로 스페인에서 시작된 병이라는 설도 설득력이 있기는 하다.(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제노바 사람이였으나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신대륙 탐험을 했으므로)





제 4차 이탈리아 전쟁 (1521-1526)
4차 이탈리아 전쟁의 결과로 인해 5차 이탈리아 전쟁(코냑 동맹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4차 전쟁은 카를 5세가 1519년에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자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관계가 악화되는데, 황제 선출에 경쟁자였던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가 이를 구실로 1521년에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연패를 거듭하다가 1525년에 파피아 전투에서 완패하며 프랑수아 1세(1494-1547)가 포로로 잡히고 만다. 국왕이스페인에 감금되자 프랑스는 왕을 석방하기 위해 일련의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오스만 투르크와 전례없는 기독교-무슬림 동맹까지 맺어 기독교 세계에 큰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프랑수와 1세를 구하기 위하여 모후 루이즈가 술레이만 1세(1520-1566)에게 편지를 통해 원조를 요청하였는데, 술레이만 1세는 유럽을 향한 서진 정책에 좋은 기회로 판단하여 헝가리 침공을 계획 하였다. 1526년 7월 오스만 트루크는 모하치 전투에서 헝가리 국왕 러요시 2세를 죽이고 헝가리를 정복함으로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오스트리아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프랑스는 '적의 적'은 곧 협력자가 될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상황을 모면하였으며 향후 지속적으로 오스만 트루크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카를 5세(1516-1556)를 지속적으로 견제하였다. 

프랑스의 다각적인 노력으로 프랑수아 1세는 아들을 스페인에 포로로 내어주고, 피란체, 브르고뉴등을 포기하는 선에서 마드리드 조약을 맺은후 풀려난다. 그러나 귀국한후 강압에 의해 서명한 조약은 무효라고 선언하며 조약을 이행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 교황 클레멘스 7세(1523-1534)가 신성로마제국의 세력팽창을 경계하며 프랑수아 1세의 손을 들어주었다. 카를 5세는 이에 분개했지만 종교개혁(1517)으로 어수선한 독일을 수습해야 했으며 헝가리를 점령하며 서진하는 오스만 트루크로 부터 오스트리아를 지켜야만 했기에 프랑스에 대한 응징에 기회를 뒤로 미룰수 밖에 없었다.





[자료 참고와 출처] 

   

위키백과

나무위키,   

네이버 지식백과,   

네이버 역사카페 부흥,  

 

영국왕가

이야기 영국사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세계전쟁사 다이제스트 100

   

먼나라 이웃나라 1권 네덜란드 편,   

먼나라 이웃나라 6권 이탈리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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