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爭史

마틴신 2020. 2. 5. 07:20

피렌체 공성전은 코냑 동맹전쟁 말기인 1529년 10월 24일부터 1530년 8월 10일까지 피란체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전투는 황제 카를 5세가 파송한 제국군(스페인+신성로마제국)과 피렌체 사이에서 벌어졌다. 공성전이 벌어진 원인은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통치가문이였으나 1527년에 피란체에서 추방당하며 통치권을 상실하였는데 이를 회복하기 위함이였다. 오랑주 공 필리베르 드 샬롱과 피에르 마리아 3세 데 로시가 이끄는 제국군은 피렌체를 포위한후 10달에 가까운 공성전을 벌인 끝에 함락에 성공하였다. 피렌체 공성전을 끝으로 1526년에 시작된 코냑동맹전쟁은 완전히 종료되었다.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자신의 재종손자(再從孫子)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를 피렌체 공작으로 임명하여 피렌체를 통치하도록 하였다.


피렌체 공성전은 코냑동맹전쟁(1526~1530)의 일부이며 전쟁의 마지막 단계에서 제국군대가 피렌체를 침공하자 이에 대항하여 피렌체는 농성전을 벌였다. 코냑동맹전쟁은 교황이 황제 카를 5세의 세력을 이탈리아 반도에서 몰아내려고 프랑스를 비롯한 피렌체등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 연합하여 1526년에 일으킨 전쟁을 말한다. 동맹군이 이탈리아 북부를 점령하자 황제 카를 5세는 북이탈리아를 탈환한후 1527년 5월6일 도시로마를 정복하며 전쟁의 승기를 잡는다. 로마가 제국군에 의해 점령당하자 피렌체의 통치가문인 메디치 가문은 힘을 잃게 되었고 정적들의 공격을 받아 피렌체에서 추방당한다. 메디치 가문의 구심점이였던 교황이 전쟁에서 대패하며 항복하였기 때문이다.(교황 클레멘스 7세는 메디치 가문 출신이다.)


1528년 나폴리 공성전과 1529년 란드리아노에서 프랑스군이 패배하자 프랑수와 1세는 카를 5세와 캉브레 조약을 체결한후 전쟁에서 이탈하였다. 베네치아 역시 황제와 강화를 체결하면서 동맹에서 탈퇴하자 피렌체만 홀로 남았다. 교황은 황제에게 항복한후에 체결한 조약을 통하여 자신의 조국인 피렌체에 대한 무력 침공을 요청한다. 무력을 통해서라도 메디치 가문의 피렌체 통치권을 회복하고 인질로 잡혀 있는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구출하기 위함이였다. 황제 카를 5세는 이탈리아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 증대를 위해서 이 제안에 동의하였으며 대신에 황제 대관식을 치루어 달라고 주문하였다.  


교황과 황제간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피렌체에 대한 침공은 개시되었다. 제국군이 진격해오자 피렌체는 이에 저항했지만, 동맹국들이 모두 이탈한 상태라 도움을 받을수 없었고 고용된 용병들이 배신을 하면서 장기전으로 돌입한 전쟁은 점차 불리하게 돌아갔다. 제국군에 의한 볼테라 점령과 가비아나 전투에서 프란체스코 페루초 사망 이후, 더 이상의 저항은 헛된 것이 되었고 마침내 1530년 8월에 항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