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이야기

우정(牛亭) 2010. 3. 23. 20:14

일본 골프장 구경하고 왔습니다. (2004 5)

 

 

2월부터 가기로 했던 일본 골프장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매번 놓치고 5월에야 또 다른

친구들이 끼워 준 덕분에 구경을 했습니다.  나는 늘 이렇게 남들보다 한 발짝 늦습니다. 

 

일본은 참으로 애증얽히는 갈등을 심하게 느끼게 하는 곳입니다.  정말로 깨끗한 환경,

무성한 산의 숲, 무심하나 깍듯이 예의 바른 사람들. 우리보다 더 크지도 잘 생기지도

않은 것 같은데 세계 최고의 장수 국가.

 

미국 다음의 경제 대국.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 세계 최고 기술 수준, 지진과 태풍의

자연 재해 외에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공산당, 야쿠자에, 적군파, 없는 것

없어도 노동조합의 파업이 없는 산업 환경.  세계 일류 국가임에 틀림없습니다. 

 

무엇으로 일본은 이런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요?  우리도 백 년이 걸리면 이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도 미국과 멕시코처럼 간격을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걸까요?

 

  

                              

(클럽 하우스에서 보는 왼쪽의 10번 호올과 오른 쪽의 18번 호올.  그 너머로 보이는 태평양 바다)

 

인천에서 대한항공으로 8시 40 출발, 한 시간 십오 분만에 공항에 내려서

공항에서 2,30분밖에 안 걸린 골프장에 도착하여 해질 때까지 27홀을 돌고, 다시

거기서 2,30분 거리에 있는 여관으로 와 온천을 하고 저녁을 먹고 쉼. 

 

이튿날 다섯 시 반에 일어나 간단히 온천하고 골프장으로 옮겨 종일 36을을 돌고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습니다. 

 

 

(1번 호올 왼편으로 늘어 서 있는 숙소 콘도)

 

 

이 날은 일행 중 환갑 생일을 맞는 친구가 첫 홀에 이글까지 한 경사가 겹쳐서 가벼운

축하 잔치를 벌였습니다. 

 

 

   

                                (깔끔한 일본 음식)

 

23일 여정의 마지막 날 아침, 한 팀은 아침 일찍 온천 간단히 하고 6 부터

9홀을 돌고 난 뒤 9 아침 밥 먹고 커피까지 한 잔 하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나는 물론 이 팀에 합류했습니다. 

 

11시 15 출발의 대한 항공을 기다리는 동안 오미야게(토산품)"을

돌아 볼 시간도 충분히 있었습니다. 

 

기장 안내가 이륙에서 인천까지는 1시간 20분이 걸린 다네요. 

한 시쯤에 공항에서 헤어져 일이 있는 친구들은 사무실로 가고, 나는 집으로. 

 

 

 

(모든 호올에서 바다가 보입니다.)

 

이렇게 23일에 72홀을 돌고도 반나절은 사무실에서 일을 볼 수 있는 골프였습니다. 

 

비용은 국내 골프의 딱 절반 값입니다. (항공료 + 숙박비 포함하고도, 카트 비 따로 안받고,

매상 눈치 안보고, 캐디가 없으니 타임 체크도, 몰아 부치는 사람도 없고)

 

골프장의 경관과 코스, 끝내 줍니다.  큐우슈 동북 끝, 해안 도로 절벽 위에 조성된

이 코스는 스페인의 영웅 세베 바예스트로스가 설계를 했다고 합니다. 

 

 

                                (북쪽에서 남쪽 벳부 바다를 바라봅니다.)

 

일본 버블이 최고조에 있던 시절에 대도시에서 올 사람들을 위한 헬리포트도 만들고

주위에 콘도도 조성해 놓았습니다.  동쪽 바다를 바라보니 크고 작은 배들이 지나 다닙니다. 

 

나의 고향, 울산의 동쪽 바닷가 정자동에서 감포 쪽을 바라다 보는 느낌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동남풍의 바닷바람이 설렁설렁 불어 오는 것이 고향 뒷동산에 올라

선 듯 환상을 일으킵니다. 

 

내 고향 뒷동산에도 이런 코스 하나쯤 있다면 하고 상상해 봅니다.

 

  

                         (큐슈우 동북쪽에서 혼슈를 건너다 봅니다.  여기가 고향 바닷가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는 곳,)

 

 공항에서 골프장으로 가는 중간에 지나게 되는 조용한 작은 마을은 마치 60여 년 전

울산 읍내(현재의 울산 구시가지)를 지나가는 듯 합니다. 

 

그 때 보이던 일본식 집이 그대로 늘어선 가운데 길가에 후꾸다(福田) 양복점도 있고,

 구보다(久保田) 농기계 점포와 다다미를 만들어 파는 가게에 ㅇㅇ 서점

ㅇㅇ 산부인과 간판도 보입니다. 

 

그 때(60여년 전) 없던 것으로는 주유소훼미리 마트와 자동차 정도일까요? 

밀과 보리가 그대로 아직 베지 않고 있는 밭도 있고 모내기를 끝낸 논도 있습니다.

 

 

바닷가 손바닥만한 방파제 안에는 작은 어선들이(요트가 아니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고 꽤 가파른 재를 너머 산 속에 있는 온천 여관으로 가는 길가에는 잎담배

재배 밭도 보입니다. 

 

빽빽한 나무 숲으로 심산유곡을 연상시키는(실제 심산유곡입니다만 바닷가에서

20분 거리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뿐입니다.) 곳에 있는 온천 여관은

조용하고 서늘하고 정갈하기가 그지없습니다. 

 

깨끗한 다다미 방에 들어서니 일본식 미닫이와 여닫이 (후쓰마 ) 안에 유카다

(집안에서 입는 홑 옷)과 오비(허리 띠)에 하오리(겉 옷)이 얌전히 개켜져 있습니다.

 

   

 

  

마당에 나가 앉으니 시원한 산들 바람에, 앞 산 꼭대기가 고개를 젖혀 눕다시피

해야 보이도록 높고, 초승 달 옆으로 주먹만 하게 가까이 다가 선 목성터키의

국기 그대로 입니다. 

 

공기와 물이 이보다 더 맑을 수 없겠다 싶은 고장입니다.

집 사람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마지막 18번 호올에서 바라보는 클럽 하우스)

 

제주도에 있는 어느 골프장이 이곳 골프장과 경쟁을 할 수 있을까 속으로 걱정이

태산같이 솟아납니다. 

 

언제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이, 산업에 종사하는 경영자와 종업원들이,

이들을 관리하는 정부와 정치꾼들이, 옆에 있는 천양지차의 경쟁자가

있는 줄도 모르고,

 

국경이라는 보호막만 믿고, 고객과 소비자와 국민을 알기를

발가락에 끼인 때만도 못하게 우습게 알고 온갖 횡포도둑질

기만을 다 부려도 되는 세월이 얼마나 더 가야 할까요? 

 

 

그래도 같은 핏줄이라고 묵묵히 견뎌 준 국민들을 얼마나 더 바보로

취급하는 꼴을 봐 줘야 할까요? 

 

언제쯤이면 나갔다가 돌아 올 때, 꼭 천당에 있다가 지옥으로 돌아오는

것 같은 이 끔찍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참으로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