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서울 올림픽 이야기

우정(牛亭) 2013. 3. 13. 10:16

88 서울 올림픽 이야기(5) - 헝그리 스포츠, 레슬링

 

1964년 토오쿄오 올림픽에서 장창선 선수가 은메달을 땄습니다.

 

다시 한 번 레슬링이 유도, 권투와 더불어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피땀으로  이루는 헝그리 스포츠의 전형임을 입증했습니다.  대표선수에

뽑히면 선수촌에 들어가 숙식 문제도 해결하며 운동할 수 있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평생 연금이 나오니 가난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올림픽 메달은 곧 "고생 끝, 행복 시작"입니다.

 

 

 

 

한국의 올림픽 사상 최초의 금메달이 1976년 몬트리얼에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였고, 1984년 L.A. 대회에서는 김원기

선수와 유인탁 선수가 금메달을 땄습니다.

 

 

(76 몬트리얼 올림픽에서 한국 최초 금메달을 딴 양정모 선수)

 

 

 

 

 

(84 L.A. 올림픽에서 유인탁 선수의 미국선수와 결승전)

 

 

(84 L.A. 올림픽 금메달 유인탁 선수)

 

 

무명의 김원기 선수가 금메달을 따자 그의 모교인 전남 함평

농고가 한국 레슬링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함평 골프

고등학교가 되었고 걸출한 골프 선수, 신지애 를 배출했습니다.

 

(84 L.A. 올림픽 금메달 김원기 선수)

 

그러니 이제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퇴출된다는 것이 그리 이상할

것도 없겠지요. 벌써 수영, 스케이팅, 골프로 잽싸게 돌아섰어야지요? ! ? !

 

 

나는 정문에서 출입관리 하느라 경기장 안은 들여다 볼 새도

없었지만, 88 서울 올림픽에서는 김영남 선수와 한명우 선수가

금메달을 땄고, 박장순 선수가 은메달을 땄습니다.

 

 

(88 서울 올림픽 금메달 김영남선수.  지금은  카작스탄에서 성공한 사업가)

 

어느 날, 어느 선수의 시합이었는지 시골 고향 어른들 20여 명이

그 선수의 응원을 왔습니다.   여름내 농사일로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은

모습으로  출입 정문 앞에서 웅기중기 모여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입장권 사려니 너무 부담이 커서 어떻게 공짜로 들어 갈 방법이 없나

하신다는 겁니다.

 

(그때 입장권 그림입니다.  레슬링 경기장 입장권이 2,000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명우 선수.  88 서울 올림픽 금메달)

 

대학생 봉사자 한 명을 불러 인원파악하고 경기장 안까지 모시고

갔다가 나올 때 확실하게 회수해 오라고 하면서 임시 출입증 20여

장을 주었습니다.

 

 

(박장순 선수. 88 서울 올림픽 은메달, 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88 당시 한국 레슬링 협회 회장은 이건희 회장이었습니다.

 

협회를 먹여 살리는 든든한 후원 회장이었지요. 어느 날 레슬링

본부에서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오후에 삼성그룹 사장단이 경기장

참관을 오시니 잘 모시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협회로서는 절대적인 돈줄이니 추호도 소흘히 할 수가 없습니다.

드디어 버스 한 대와 대형 승용차 몇 대가 도착하니 비서 한 명이

달려옵니다. 아무 시비하지 않고 인원파악하고 임시 출입증을 줍니다.

 

사실은 당연히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나라는

무슨 지위에 있다거나(요즘 지방의회 의원들의 꼴불견이 하늘을 찌릅니다.)

돈 푼이나 있다는 사람들의 행실이 자리와 전혀 무관한 곳에 가서도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는 태도입니다. 

 

없어져야 할 악습이고, 구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