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19. 10. 16. 12:57

짜빈동 대첩, 대한민국 해병대가 지압장군을 눌렀다.


짜빈동 전투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여러 측면에서 고찰되고 연구되리라 믿는다.

 

게릴라 전법에서는 하급제대로부터 단계별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나 상급사령부를 직접 공격하여 정치적, 군사적 이익이나 타격을 주는 것이

그들의 통상적인 전략이다.


특히 이와 같은 전략은 아마도 호치민과 총사령관 보 응웬 지압의 북베트남 수뇌부가

1954315일부터 57일 사이 5월 8일로 예정된 제네바 회담을 염두에 두고 벌인 

디엔비엔푸전투에서, 막강한 프랑스군 15천명을 북베트남군과 민간 20만 명을 동원하여 

고립시키고 항복을 받아, 미리 예정되었던 58일 제네바 회담에서 결국 프랑스가 베트남 

식민지배에서 철수하도록 한 전례를 그대로 성공사례의 교범으로 삼아 청룡부대에도 꼭 같이 

적용했다고 본다.


1954년의 Vo Nguen Giap


즉 짜빈동 전투 215일 전후해서 한국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이 잇따라 방문하는

시기에 맞추어 해병대 1개 중대를 완전히 전멸시켜 고위급 인사들에게 패전의 비참한

현장을 목격하게 함으로 주월 한국군을 베트남에서 철군을 강요하려는 고도의 심리

전략에서 시도된 작전임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그 천하의 보 응웬 지압의 이 전술이

짜빈동에서는 대한민국 해병대 11중대 앞에서 무참하게 패배하였다.

 

짜빈동 대첩의 승리 요인을 요약하면;

 

1. 완벽한 방어진지의 구축과 방어훈련,

2. 포병의 요란사격과 일차공격 이후의 추격사격으로 공격부대의 예봉을 꺾은 점,

    포격으로 적의 후속부대 진입을 차단하고 적의 화력 거점을 완전히 제압한 점,

3. 용감무쌍한 3소대원과 경기관총 반의 임전무퇴의 해병대 정신

4.  한.미 해병대의 연합과 지원이 대첩의 요소였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짜빈동 대첩의 가장 큰 의의는, 프랑스를 몰아낸 195457일의 디엔 비엔 푸

전투이래로 붉은 나폴레온(Red Napoleon)”으로 불리며, 1968131일 꼭 같은

전술로 베트남 전역에 걸친 대규모 총공세의 구정공세를 펼쳐 비록 전투에서는 베트콩이

거의 괴멸된 패전이었지만 전체적인 전쟁에서는 미국 내 반전여론을 자극하여 결국 미군

철수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전쟁의 신이다 또는 “20 세기 최고의 군사전략가

불세출의 명장으로 불리는 월맹군의 지휘부, 즉 천하의 보 응웬 지압(Vo Nguyen

Giap (1911~2013) 장군이, 일생일대에 유일하게 대패한 전투가, 대한민국 해병대에게

당한 짜빈동 전투였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보 응웬 지압은 하노이의 인도차이나 대학 법학과를 다니면서 독립운동에 활발히

가담하여 결국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고등학교 역사 교사를 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탄압으로 감옥에 가기도 했는데 탄압이 강화되면서 중국으로 도망을 가서

거기서 호지명을 만났고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한다.


그는 전쟁역사(military history)와 철학서를 탐독했는데 특히 나폴레옹의

장군학(generalship)”을 깊이 연구했다고 하며 우리에게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잘

알려진 Thomas E. Laurence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

읽고 소수병력으로 최대전과를 얻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프랑스어는 모국어와 같았고 이후 영어와 중국어도 익혔다. 인간적으로도 102세를 살아

베트남의 식민지 해방(1954)과 베트남의 공산화 통일(1975)을 이루어 천고의 공적을

세웠다고 할 수 있고 베트남의 도이모이이후의 경제적 발전도 보았을 것이다.


     

                        (노년의 지압 장군)


삼국지에서 제갈량의 계략에 속아 사마의가 호로곡까지 추격해 온 순간 산등성이에

매복을 하고 있던 제갈량의 군사들이 포성과 함께 산 위에서 돌덩어리와 나무들을

굴려 입구를 막아 버렸다. 그리고 불씨를 던져 이미 쌓아 두었던 염초, 화약 등을

터뜨렸다. 호로곡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바로 이때, 갑자기 큰 비가 내려 타오르던

불이 꺼졌다


제갈공명은 산 위에서 위연이 사마의를 유인해 골짜기로 들어가자 삽시간에 화광이

크게 이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심히 기뻐하며 사마의가 이번에 반드시 죽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정찰병이 사마의 부자가 모두 달아났다고 보고하자 공명이 장탄식을 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 불가강야 (謀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 계략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어서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이구나."

 

베트남의 제갈공명으로도 비유되는 지압장군도 짜빈동 대첩 이후에는 제갈공명과 꼭

같이 대한민국 해병대에 대해 이렇게 장탄식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 쪽에서 보면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의 결과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