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20. 1. 4. 09:26

짜빈동 전투를 돌아본다(3)-(11중대 3소대장 이수현 소위의 회고)

 

이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중대장 정경진 대위와 제1소대장 신원배 소위(해사 20)

에겐 태극무공훈장, 1소대 선임하사 김용길 중사와 제3소대 1분대장 배장춘 하사에겐

을지무공 훈장이 수여되었다.

 

화기소대장 김기홍 중위(해사 18), 포병관측장교 김세창 중위(해간 33), 2소대장

김성부 소위(해간 34), 김준관 하사, 오중환 하사, 이영환 하사, 이 진 병장 등에겐

충무 무공 훈장이 수여되었다.

 

그러나 3소대장 이수현 소위는 서훈에서 제외됐다. 정경진 중대장이 왜 이수현 소위의

훈장은 상신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2015) 중앙보훈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그에게 물어 볼 수도 없다. 다만 유추해 볼 수 있는 이유가 하나 있다. 누가 제3

소대장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외곽방어선 돌파책임을 물어 훈장 상신을 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둘이 만나면 부딪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수현 소위는 김광길, 은희목 해간35기 동기와 함께 해병학교 훈련이 끝나고 실무에

배치되자마자 1967127긴급 파월 됐다. 청룡부대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던지

세 동기는 1사단 파월 특수교육대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사병 60 명과 함께 수송선편이

아닌 김포공항에서 North West 항공기편으로 출발, 오키나와 캄란(C 130 수송기로

환승) - 다낭(소형기로 환승)을 거쳐 추라이 미 해병 기지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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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110일에 추라이 짜빈박에서 3대대 전술대대본부가 도보이동 중에 적의 

매복에 걸려 9중대 2소대 3소대장 포함한 장교 4 명 포함 32 명이 전사했고 30 명이 전상

후송됐다. 일시에 병력 60여 명의 손실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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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3 명의 장교는 3대대 본부에서 며칠간 머무르며 간단한 수색 및 정찰교육만 받은

뒤 김광길 소위는 제2대대 5중대로, 은희목 소위는 제3대대 10중대로, 이수현 소위는

3대대 11중대로 각각 팔렸다.’


11중대는 196611, 9중대로부터 짜빈동 진지(둘레 800m, 남북 300m, 동서 200m)

인수 받은 뒤 진지 보강작업을 하는 한 편 진지방어훈련과 경계 및 정찰활동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이수현 소위는 짜빈동 전투 딱 14 일 전에 해간33기 고시홍 선배로부터 3소대장을 물려

받았다. 중대장 정경진 대위는 19666월에 파월되어 여단본부 군수참모실에 근무하다

1967111중대장으로 부임한 터여서 이수현 소위와 별반 차이가 없는 신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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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경험이 없으면 대원들은 물론, 소대장과 중대장까지도 엄청 당황하게 됩니다,

여간 침착하지 않으면 나중에 상황이 끝난 뒤 서로간 보기도 민망스러울 행동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두 번 경험하면서 상황판단에 점차 익숙해져 적절한 대처 요령을 체득해 가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전투 경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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