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20. 1. 4. 09:29

짜빈동 전투를 돌아본다.(5) - 후일담

 

1970년 부관근무 1 년이 됐을 무렵 이봉출 행정참모부장이 진해교육기지 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그동안 이 중위를 잘 봤던지 같이 내려가자.”고 하더란다. 그러나

이 중위는 하루 빨리 제대해 고시준비를 해야 할 처지여서 고사했더니 무척 섭섭해 했다고

한다. 이 장군이 그럼 너 뭐 할래?” 물어 헌병대 근무를 해보고 싶다.”고 대답했더니

영감이 이동용 인사국장에게 기별했는지 금방 해군본부 헌병대 수사과(과장은 중령)

조사계장으로 인사명령이 났다.

 

헌병대 조사과에 가보니 요원들이 모두 중사, 상사로 그쪽에서 이골이 난 고참들인 거라.

그러면서 내가 헌병교육도 받지 않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게 비위가 상했는지

형법은 알고 계시겠죠?‘ 하며 테스트를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일갈하지 않았겠어.

이 양반들아, 내가 대학에서 법률 전공했고 고시준비하며 형법도 열심히 공부했소이다.

군형법의 모법이 뭔지 아시오? 바로 형법이오, 형법. 어디 군형법 좀 가져와 보시오.“

그렇게 해서 능구렁이들을 일거에 제압하고 장교 피의자와 까다로운 케이스 조사만

맡아 상하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단다.

 

이수현의 마지막 군 보직은 국방부합동조사대(합조대). “1970년 합조대에서

해병대 헌병 요원 파견을 요청했는데 아무도 자원을 안 하는 거야. 거기 가면 육해

공군이 함께 근무하는데 실력이 없으면 곧 평판이 돌고 해서 버티기 힘들 거든.

그래서 다들 기피 하길래 내가 지원했지. 합조대엔 1~5과가 있는데 과장은 중령이고,

나는 1과 과장 보좌관(해병담당)을 했어.“

제대는 1971131, 1차로 했다. 헌병대 조사계장으로 근무할 때 고대 법대 동창

소개로 만나 결혼했고, 영등포구 신길 6동에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다. 그 뒤 주식투자로

번 돈과 은행 예금으로 필지를 넓혀 1992년 지금 살고 있는 지하 1 층 지상 5 층의

국원빌딩(영등포구 여의대방로 93-1)을 올렸다.

 

제대 후엔 입대 1 년 전 1차 도전했다 실패한 고시 꿈을 접고 증권에 도전, 적잖은

재미를 봤다. 1977412일부터 30 년 넘게 증권회사를 출입했다. 처음 찾은

증권회사는 방민환 동기(해간 35)가 지점장으로 있던 대우증권 서소문 지점이었다.

 

일간<머니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주식투자로 자식 공부 시켰고 아담한 건물도 갖게

됐다.... 이 나이에 빈둥거리지 않고 맘에 꼭 드는 종목을 고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말했다. 한 때는 객장 투자클럽을 만들어 회장까지 지내기도 했지만 요즘은

홈 트래이딩 시스템(HTS)을 통해 쬐끔씩거래하고 있단다.

 

슬하엔 아들만 둘. 아버지(1960 충남대학교 전체 수석, 1962년 고대 전체 차석,

해병학교 35기 전형 2) 머리를 닮았는지 모두 공부를 잘 해 장남은 서울의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딴 뒤 현재 서울의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남은 아버지와 고대 동문으로 경영과 졸업 공인회계사 자격 취득 후 대기업에

근무하다 프랑스로 유학, MBA 코스를 밟으며 재무사(CFA) 시험 준비 중이다.

그는 아들 둘을 키우며 학원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쳤다고 한다. 역시 실력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