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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牛亭) 2020. 4. 23. 16:08

6.25 참전 영국군, “임진강전투사() - (2)

 

얼스터 소총대대는 사태를 회복하기 위해 전진하였지만 상당수의 적군과 마주하게 되었다.

힘겨운 전투 이후 벨기에대대는 성공적으로 후퇴하였으나 제 29여단은 곤경에 빠졌다.

글로스터대대는 힘겨운 전투와 후퇴로 인해 중대 전방 배치 위치를 잃게 되었으며

퓨질리어 대대 또한 중국군의 엄청난 병력에 의해 후퇴하게 되었다. 424일 아침

중국군의 공격으로 글로스터대대 병력은 감악산 일대에서 점점 줄어들다가 포위되었다.

 

이때, 탄약이 떨어지면서 상황은 악화되었다. 남쪽으로 후퇴하여 구출을 시도했으나

중국군이 감악산 곳곳에 밀려들어오며 구출 시도는 중단되었다. 다른 영국군 대대 또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퓨질리어대대는 후퇴하였으며 얼스터 소총대대는 배치된

장소에서 적군의 압박을 받는 상황이었다. 425일 오전 철수 명령이 내려졌다.

글로스터대대는 해산 허가를 받았으나 탄약은 떨어지고 글로스터 대대 병력 대부분은

중국군 지역에 포로로 잡혔다.

 

탄약 소진보고를 받은 후 얼스터 소총대대는 후퇴하였으며 이로써 전방 지원 포병대는

전부 후퇴하였다. 얼스터대대와 퓨질리어대대는 후퇴 명령 이후에도 제 8후살리온 대대와

함께 고지에 배치된 수많은 중국군에 맞서 싸웠다. 이로 인해 후퇴 명령 이후에도 많은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임진강 전투 후 실시한 점호에서는 글로스터대대 소속 병사 67 명의

신원만이 확인되었다. 이 전투에서 59 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으며, 526 명의 포로 중

180 명이 부상당했고 34 명은 감금 상태에서 사망하였다.

 

이 중 영국 장병 2 명에게 영국 최고훈장인 빅토리아 크로스가 수여되었다. 임진강

전투에서 영국군은 결국 후퇴하고 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지만 영국군 제 29여단의

확고한 전투는 중국군의 공세를 3 일 동안 지체시켰고 유엔군의 정비와 서울 공세 차단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이는 중국군의 마지막 공세로 임진강 전투가 끝나고

몇 주 후 정전 협의가 시작되었다. 안타깝게도 정전 협정을 체결하기까지 전쟁은 2 년간

더 지속이 되었다.

 

다음은 전투 직후 런던 타임즈에 보도된 기사의 발췌문이다. “글로스터대대가 지금까지

한 것과 이전에 해온 전투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노썸버랜드 퓨질리어, 얼스터 소총, 벨기에, 그 밖의 제 29여단 부대와 영연방의 각기

다른 삶을 살았지만 험난한 전투지에서 엄청난 수의 적군의 공격을 글로스터와 함께 맞섰다.

글로스터에서 한국전쟁에 참여한 81,000여 명의 영국군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출신 참전자와

벨기에 참전자의 노고와 기여를 생각하며 추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