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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牛亭) 2020. 6. 15. 11:41

이영훈의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읽자 중에서

 

거짓말하는 악습

 

조선이 결국 망하게 된 것은 천년 이상에 걸친 전제정치였다. 전제정치는 한두 사람이

백만 명 위에 걸터앉아 그들을 노예로 부리는 꼴이라고 하면서 백성의 마음을 결박하여

깊은 병에 들게 한다고 했다. 이승만은 그 마음의 결박 여덟 가지를 하나씩 설명한다.

 

그중에 가장 통렬한 지적이 일곱째의 거짓말하는 악습이라고 했다. 이승만은 우리

대한과 청국을 이처럼 결딴낸 가장 큰 원인을 거짓말하는 악습에서 찾고 있다. 그 악습을

열거하면 실로 한량이 없다.

 

위에서는 아래를 속이고, 자식은 아비를 속이는데, 남을 잘 속이면 총명하다 하고 잘

속이지 못하면 반편이라 한다. 거짓말로 집안을 다스리고 거짓말로 친구와 교제하고

거짓말로 나라를 다스리고 거짓말로 다른 나라와 교섭하니, 세계는 대한과 거짓말하는

천지라 하여 공사나 영사를 파견하면 모두 이마를 찡그리며 부임해오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실로 부끄럽고 분한 일이로다.”

 

이 같은 이승만의 한탄을 읽노라면 문득 21세기 초 이 나라의 현실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도 이 사회는 여전히 거짓말 천지가 아닌가(이영훈 외

반일 종족주의미래사, 2019).

 

최초의 근대적 역사서

 

(전략) 앞서 지적했듯이 지남 100년간 이 나라 대학사회는 이승만의 독립정신

알지 못하거나 무시해 왔다. “독립정신의 후반부인 정치외교사 서술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보통 근대 역사학의 출발을

1908년 신채호가 대한매일신보에 기고한 미완의 원고 독사신론(讀史新論)”으로

잡고 있다.

 

단군의 정통을 잇는 부여족이 만주대륙을 무대로 펼친 역사를 민족사의 원형으로

간주한 신채호의 역사학이 과연 근대적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어쨌든 역사학자들은

그보다 4년 앞서 이승만이 감옥에서 지은 독립정신이 그 이념이나 방법에서 근대

역사학의 효시를 이루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한국사학사(韓國史學史)의 여러 연구서

가운데 이승만의 독립정신에 대해 한마디 언급하고 있는 단 한 책을 찾을 수 없는

형편이다.

 

자세히 읽으면 누구나 공감하듯이 개항기 정치외교사에 관한 이승만의 저술은 어디서

이런 자료를 구했는가가 신기할 정도로 실증적이다. 감옥 안인만큼 구할 수 있는 자료와

정보에 한계가 있었다. 군데군데 그런 한계가 보인다. 그렇지만 오늘날 그 방면의 일급

연구자도 처음 접하는 자료와 정보가 동원되기도 한다. 이승만의 역사 서술은 철저하게

자료에 기초한 고증이다. 그 점에서 오직 상상력 하나로 민족의 고대사를 엮어낸

신채호의 독사신론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더구나 앞선 1~25장에서 역사를 조망하는

관점으로서 자유와 독립의 이념을 그토록 정밀하게 소개했음에야. 비유컨대 이승만은

독립정신의 역사 서술을 통해 중세와 근데 사이의 계곡을 건너 독자의 높은 고지를

점령했다. 그 고지 위에서 뒤를 돌아보니 100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이 나라의 역사학은

그 계곡을 건너지 못하거나 엉뚱한 골짜기로 들어가 우왕좌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