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우정(牛亭) 2020. 6. 16. 10:18

이승만의 독립정신 이후

 

19048 이승만은 57개월 만에 출옥하였다. 3개월 뒤 이승만은 민영환의 후원을

입어 미국으로 출발하였다.존 헤이 국무장관에게 대한의 독립을 청원할 사명을 띤 밀사의

신분이었다. 사명을 완수한 이승만은 서울의 여러 선교사가 작성해 준 소개서에 힘입어

조지워싱턴대학, 하버드대학, 프린스턴대학에 차례로 입학하여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1905~1910). 미국인으로서도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중략)

191010 이승만이 귀국했을 때 대한은 이미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있었다.-------

1911 총독부는 이른바 105인 사건을 조작하여 기독교회를 탄압하였다. 19123

이승만은 임박한 체포를 피해 언제 돌아올지 모를 망명의 길에 올랐다. 1913년 봄 그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해 3월 이승만은 우리 교민이 다수

사는 하와이에 정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근 2개월을 두문불출하면서

한국교회핍박이란 또 한 권의 역작을 집필하였다.

 

한국에서 지금 자유가 숨 쉬는 유일한 장소가 있으니 교회이다. 교회는 서로 돕고

사랑하며 청년을 교육할 줄 안다. 이승만은 예수를 가난하고 버려진 자를 위해 로마의

권력에 맞선 인류 최초의 혁명가라고 칭송하였다. 이후 오랫동안 그 정신이 잊혔는데

마르틴 루터가 이를 깨달아 교회를 혁신하니 이로써 오늘날 서양의 부강한 문명이

생겼다고 주장하였다.------------------------------------------------------

 

독립운동에 종사하여 감옥을 들락거리는 영웅호걸형의 인물에 대해 이승만은 그들이

세론(世論)의 존경을 받기는 하나 독립에 실질적 기여는 없는 가운데 그 행적을 따지고

보면 수상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경계하였다.

-------------------------------------------(중략)

이후 3.1운동이 벌어지고 이승만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러자

중국에서 활동 중인 여러 독립지사가 이승만의 위임통치청원을 비난하였다.----------

 

1923 이승만은 또 하나의 걸작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이란 논문을 작성하였다.

1917년의 러시아 공산혁명은 제국주의 억압 하의 많은 후진 민족(중국, 베트남)에게

구원의 등불로 비췄다.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심한 내홍을 앓게 된 한편의 원인도

그러하였다. 그 광경을 목도한 이승만이 공산당을 경계하는 글을 지었으니 바로 위의

논문이다.

 

법률을 제정하여 자본가들의 양반 노릇을 막고 노동과 평등세력을 이루게 하자는 데는

찬성이다. 그러나 자본을 폐기하자는 주장은 곤란하다. “자본가들의 경쟁이 없어지면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지혜가 막혀, 결국 물질적 개명이 중지될 것

이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 공산주의를 이런 수준의 이론으로 비판할 수 있는 인물은

세계에서도 매우 드물었다.

 

19418월 이승만은 그의 마지막 걸작 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를 집필하였다.

-------------------------------------------------(중략)

일찍이 미국은 자국의 독립정신에 반하여 한국을 일본에 넘기는 큰 실수를 범하였다.

일본은 아시아대륙과 태평양을 지배할 야망을 품은 신의 나라이다. 미국이 지핀

한 톨의 불씨는 장차 미 대륙을 불태울 것이다. 일본의 미국 공격이 임박하였다.

이 같은 내용이었다. 과연 4개월 뒤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하였다. 이후

이승만은 세계의 선비가 되었다.

 

이상이 독립정신이후 이승만이 남긴 주요 저작이다. 20세기 전반의 한국인으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학술적으로 유효한 저작을 남긴 사람이 달리 누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와 독립운동의 대오를 이끈 안창호, 김구, 김규식 어느 누구도, 또는 그와

대립한 김원봉, 박헌영, 김일성 어느 누구도 길거나 짧거나 단 한 편의 학술서나 논문을

남기지 못하였다. 동시대의 한국인과의 비교에서만도 아니다. 세계적 지평에서도

그러하였다. 이후 미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말하였다.

 

이승만은 그의 몸무게만큼의 다이아몬드와 같은 존재이다.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학자, 사상가, 정치가, 애국자 중의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