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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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이야기

2020. 8. 8.

 

 

 

바라 이야기

창1장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하아레츠  붸에트  하솨마임  에트  엘로힘  바라  브레쉬에트)

 

(창 1:1) '태초에' (בְּרֵאשִׁית)(베레쉬트)는  시간의 출발점 자체 즉 역사가 시작된  바로 시초를 가리킨다.

(요 1:1) '태초에'(εν αρχη)(엔 아르케)는  시간을 초월한 영원 전에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편  Septugent(70인역) 창1:1절도 역시  요 1:1과 같이 '영원 전부터'란 뜻을 지닌 '엔 아르케'(*εν αρχη )로 번역 하였지만 그러나 창세기가 영원 전사건을 다루는 것이라기 보다는 우주 및 인류가 탄생하는 시점으로부터  하나님의 섭리로 인간 구원을 위한 구속사적 역사관에 관점이 있다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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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이지만 그러나 성경은 처음에 구원으로 시작하지 않고, 창조로 문을 열고 있다. 창조가 시작이고 근본이며 전제이어야 구원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셨다' 라는 명제는 인간에게 제출된 상상이나 머리의 고안이 아니라 창조사건 자체를 창조주 자신에게서 온 계시임을 선포한다.

 

창조의 시작과 함께 시간이 시작되는것은 창조가 역사적 사건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조가  모든 존재의 시작이다.   구원도 창조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셨으므로 하나님만이 구원할수 있다.

 

만물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스스로 존재 하지도 않는다. 천지가 아무리 광활 해도 그것은 스스로의 존재가 아니며 다 창조로서 존재 한다. 물질이 영원하면 그 개별적인 모든 개물도 다 영원해야 한다. 그러나 개물들이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만물이 영원하면 구원도 불가능하고 인간의 존재는 아무 의미도 없는 우연적인 존재이고 불가사의한 존재 일 뿐이다.

 

 전능한 하나님은 거대한 우주를  단번에 창조 하셨다. 하늘은 천계를 뜻하는 바로 우주이다. 땅도 찬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지 우주의 한 부분이다.

 

어떠한 우주 설명 도식도 하나의 이론 체계일 뿐이지 창조 사실 자체는 변경 시키지 못한다. 존재하게 된 것은 다 창조에 의한 것으로 변하는 개물들이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다. 만물은 영원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고 창조로 이뤄졌으므로  그것은 시간과 함께 시작 되었다.

 

태초는 만물이 존재하기 시작한 시점을 뜻한다. 창조의 경륜은 영원하고 하나님의 창조 작업도 영원에 속하지만, 창조 역사에 의해서 창조가 시작할 때는 시간 형태를 띄게 되었다. 만물이 더 정확하게는 물질이 존재의 모습을 형체화 하면 그것은 곧 시간이 된다. 시간은 물질의 운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여 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면 거기에는 반드시 시간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태초이다. 태초는 창조가 그 존재를 시작하는 순간이다. 만물이 존재하기 시작하기 이전은 영원이요 존재하기 시작한 그 순간이 바로 시간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태초에'로 표현하였다.

 

따라서 만물 이전의 시간은 영원이다. 영원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므로 창조 후에도 하나님은 영원자로 계신다. 그러므로 영원은 언제든지 하나님께 속하고 시간과 물질은 유한한 피조물들에 속한다. 시간은 처음 창조와 함께 형성 되었지만 그 다음의 창조 정비는 시간내에서 이뤄졌다. 그러므로 만물은 시간내에서 존재하고 그 시간 내에서 소멸된다.

 

하나님의 시간은 “영원한 현재”이며, 모든 시간이 동시적으로 있는 영원이며, 시간 전과 시간 후에도,  영원 안에서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세계를 ‘시간 안에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창조하셨다.

 

 “영원한 현재”로서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거나, 미래의 하나님이 아니고, 언제나 현재의 하나님이시고, 그런 의미에서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비록 모든 피조물의 시간성은 하나님의 영원과 날카롭게 대비되고 구별되지만, 인간의 시간의식도 사실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라는 시간성 안에서만 과거의 시간성과 미래의 시간성이 파악되고 현존한다.

 

  창조는 미래의 ‘아직 있지 않음’으로부터 나와서 현재의 ‘순간 있음’을 거쳐 과거의 ‘더이상 있지 않음’ 이라는 시간의 흐름으로서 경험된다.  현재는 항상 변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파생된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를 조건짓고 있으며, 미래로 넘어가고 있다. 이것이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주에 들어있는 현실이다.  

 

하나님은 무시간적 영원이거나, 비시간적 영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성은 시간의 무한 연장으로서의 영원 개념인 것은   모든 시간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시간의 유한성을 죽음으로서 경험한다. 죽음은 유한한 인간 생명의 시간성의 끝이면서도 시간성의 박탈이다. 시간의 정지요, 시간성을 더 이상 지니지 못하는 존재의 정지이다.

 

성경에 의하면 죽음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죽음자체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主요 시간의 주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 할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서 우리를 만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고  확신하는 것은 유한한 인간생명의 시간성이  종말을 맞이한  이후에 무(無)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 생명을 영원한 시간 속으로 받아주시고 새로운 시간성으로 덧입혀주시는 은혜로운 초청 때문이다. 창조된 세계는 하나님이 보호하고 보존한다.

 

만물이 존재하기 시작하므로 시간이 시작 되어 첫날에 천지가 창조 되었다. 창1:1절은 창조 과정의 제목이 아니고 첫날의 창조를 뜻한다. 처음 창조는 전 세계의 출현이다. 이 창조의 전체가 첫날에 출현 해야만 시간이 가능하므로 창조 전체는 첫날에 이뤄졌고, 그 다음 시간 부터는 정비 되었다.

 

처음 창조에서 우주가 그 전체로 형성되어야 하므로 육(6)일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첫날 창조후 모든 만물은 시간의 방식으로 존재하므로 육(6)일간 정비되었다. 하나님이 권능이 모자라 육(6)일간 정비한 것이 아니라 창조된 모든 만물들이 시간의 존재의  방식을 가지므로 육(6)일 정비에 소요 하였다.

 

창1:1의 창조가 첫날의 창조가 아니고 창조 제목이라면 우주는 언제 발생 했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고 지구의 상태도 역시 설명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온 우주를 창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요할 필요가 없다.

 

무한한 지혜와 권능 때문에 짧은 순간에 우주를 발생 시킬 수 있었다. 또 그의 창조 경륜은 영원하므로 무한한 권능으로 자기의 경륜을 실현시켜 시간의 시작과 동시에 만물을 출현 시키셨다.

 

태초에 천지가 창조 되었다는 것은 그 이전에 아무런 존재가 없음을 뜻한다. 그것이 태초로 표현하고 있는 근본 이유이다. 그러므로 우주 만물은 무에서 창조 되었다. 태초가 시간의 시작이므로 태초 이전에는 영원으로서 사물들이 존재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태초를 표현하는 베레쉬트(בְּרֵאשִׁית)는 종속절로 해석할 수 있는 종속 접속사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창조를 이룸으로  모든 지혜와 권능의 원천이 되었고 그의 영광이 현시 되었다.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을 현시하는 기구이다. 그의 엄위와 권세가 나타났기 때문에 창조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창조로서 영광이 그의 존재 방식임을 확인 하였다. 본래 영광은 하나님에게만 합당하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영광으로 표현 되었다.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현시하기 위해 창조를 이루셨다.

 

하늘과 땅은 지구에서 보는 표현이다. 땅도 천체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늘은 모든 천체와 영의 세계를 포함한다. 태초에 천지가 창조 되었으므로 영의 세계도 마찬가지로 태초에 창조 되었다.

 

창조 전에는 하나님뿐이셨으므로 영의 세계도 그 전부터 존재할 수 없다. 태초에 하나님은 영들의 세계와 모든 천체들을 창조 하셨다. 모든 만물은 다 창조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으므로 영들도 영원한 존재를 가질 수 없다. 하나님만이 영원하고 그 외의 모든 만물은 창조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을 뿐이다.

 

천체들이 멀고 너무도 크기 때문에 그 존재가 경이로워서 창조에 의하지 않고 다른 방식 곧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될 많큼 압도적이지만 피조 세계에 그런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창조가 모든 만물의 존재 방식이고 그 존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일단 창조가 이루어진 세계에서는 새로운 창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 영역에서 변화와 변형만이 있을 뿐이다. 창조 세계 밖에서 새롭게 존재자들이 출현해서 창조세계로 편입되어 들어 오는 것이 아니다. 무에서 새로운 존재가 출현하여 창조세계로 편입되어 들어오는 것은 없다.

 

모든 존재의 시작은 하나님에게서 시작 되었으므로 창조외의 다른 방식에 의해서 존재자들이 시작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창조에는 변화와 변형은 있어도 새로운 창조는 없다. 창조 후에는 발전을 거친 창조의 원형만이 있을 뿐이다. 창조의 완성은 이루어진 창조의 완성이지 새로운 창조의 출현은 전혀 아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셨어도 창세기의 창조 기술은 지구를 중심한 창조의 정비를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창조의 완성 후에는 창조의 비밀을 인류에게 공개 하실 것이다. 그 때에도 하늘들의 천체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여 창조의 신비는 언제나 하나님에게만 속하여 인류의 지식의 증가로서 가능하게 하는 일로 남을 것이다. 탐구가 계속 되어도 창조의 비밀은 계시로만 가능한 것이다.

 

창조주는 자기의 창조 작정을 따라 창조하셨고 다른 것에 의존 하거나 다른 존재와 의논하여 창조를 이루신 것이 아니다. 그럴 경우는 단독 창조가 아니라 협동이다.하나님은 말씀으로만 창조 하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으로 사역하신다. 그것이 창조에서 처음으로 현시 되었고 그 후 모든 사역 과정에서 확실하게 나타났다.

 

하나님이 말씀 하시자 만물이 나타났다. 그것도 동시에 나타났다. 거대한 우주가 전능자의 지혜와 작정대로 물질의 형태로 나타났다. 말씀이 물질를 이뤄냈다. 말씀만 하심으로 무에 만물들이 진열하여 나타났다. 그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졌다. 말씀이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능력을 갖기 때문이다. 말씀이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말씀에 무한한 힘을 동반 시키셨다.

 

 그 힘이 만물로 형태화 되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이 말씀으로 표출되어 그 사물들의 위치와 성질과 법칙이 되었다. 말씀에 무한한 힘을 동반시키자 모든 사물들은 에너지의 변형 형태로 존재했다. 모든 창조는 다 하나님의 작정의 형태화이므로 하나님의 지혜의 결정체이다.

 

각 사물은 하나님의 지혜의 반영이므로 사물을 바로 탐구하면 하나님의 창조 지혜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무한한 지혜로 각 사물이 형성 되었으므로 각 사물이 지닌 지식도 끝이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지혜의 한정 때문에 작은 사물들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다 읽을 수는 없다. 하나님만이 사물들에 나타난 자기의 지식을 다 읽으실 수 있다.

 

창조로 만물의 범위가 확정 되었으므로 새로운 창조가 추가 되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 내에서 모든 변화와 발생이 이루어진다. 정해진 창조 이후에는 하나님의 창조 범위를 벗어나거나 넘어 설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에서 새로운 물질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존의 창조 세계의 변형이지 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 허락 없이는 새 창조는 발생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창조를 이루신 것은 피조물들의 경배와 섬김을 받으시기 위해서이다. 천지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지혜와 권능으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기에 기뻐 하신다. 모든 창조 기사가 인간 창조를 목표하고  인간의 창조를 위해서 모든 것이 창조 되었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 목적은 그 인간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 섬김 받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광대무변한 우주를 만드시사 그것을 즐기심이 목표가 아니라 그의 창조주 되심을 인정하고 그를 섬기는 백성을 가지시기를 목표하셨다.

 

하나님은 이 백성들 가운데 거하사 그의 영광을 찬양 받으시며 그들의 섬김을 바라셨다. 그러므로 창조는 하나님의 백성의 거소로 창조되고 조성 되었다. 거대한 우주가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나타내고 노래 하지만 영적 인격적 존재들에게서 찬양과 경배와 섬김을 받으시기를 바라고 모든 창조를 이루시고 진행 하셨다.

 

하나님의 진행된 그 창조 과정에서 구체적인 그 날에 대한 히브리어 원어는 "욤"(היום)이다. 그런데 이 날의 길이가 현재의 날과 똑같은 24시간이다. 성경에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וַיְהִי-עֶרֶב וַיְהִי-בֹקֶר)(봐예히 예렙 봐예히 보켈 ) 것을 근거로 하여 하루가 되고 있다는 것을  6번 이나 강조하고 있다.  

지구에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것은 지구가 자전이 시속1,668km 속도로  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지구에서 자전이 한 번 이루어진 것을 하루라고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6일동안 계속해서 날(היום)(욤)이라는 글자 앞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וַיְהִי-עֶרֶב וַיְהִי-בֹקֶר)(봐예히 예렙 봐예히 보켈 ) 문구를 넣어두셨다. 이것은 날에 대한 시간의 길이를 지구가 자전 한 번 한 것으로 그 길이를 명확히 정해 놓았다. 그러므로 당시의 하루도 현재와 똑 같은 정확한 24시간임을 알수 있다.

 

성경 첫 문장("태초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1:1)에서  첫 단어  '태초' (레쉬에트 ראשית )라는 단어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뿐 아니라 하늘의 세계 즉 태양, 달, 별, 우주의 수많은 천체들을 창조하셨다.   

                               

그래서  창1:1는 처음 창조함를 뜻하고 곧 전 우주적  출현이다. 이 창조의 전체가 처음에 출현해야만 시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 창조가 시간의 존재 방식을 가져야  육(6)일이라는 날을 기술할 수 있다.

 

그래서 창조는 "처음에" (창1장:1절)에서 발생했고 그 다음 창1장2절에서부터 정비되었다.  창조된 모든 만물들이 시간의 존재 방식을 가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6일을 통하여  정비를 이루셨다.

 

성경은 창조와 함께 시간이 시작되어 역사적으로 발생하였다는것을  계시하였다.  전능한 하나님은 거대한 우주를  여러과정을 거침이 없이 바로 창조 하셨다.

 

만물이 존재하기 이전은 영원이요 존재하기 시작한 그 순간이 바로 시간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것을 '태초에'(레쉬에트 ראשית )로 표현하였다.  하나님은 단지 창1장1절에서 한문장으로 '처음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느니라' 하므로서 모든 우주 창조이론을 함축시키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세계를 하나씩 하나씩 개발해 들춰내는것이 인간의 몫으로 남겨 두셨기 때문에 창조된 각 사물은 하나님의 지혜의 반영이다.

 

지금까지 우주를 인간이 탐구한 지식에 의하면,

 

우주에는 약 1250억개의 은하계가 있고, 각 은하계에는 수천억개의 태양과 같은 별들이 있다.

빛의 속도는 : 1초에  30만km, 

우주의 나이 130억 광년,

우주의 지름 950억광년,


태양은 은하계 중심으로부터 3만광년 떨어진 곳에서  원 계도를 그리며 움직이고 있고,

 

한바퀴 도는데 2억2,500만년,

태양에서 지구까지 1억5,000만km, 

태양에서 명왕성까지 59억1천만 km,

태양과 같은 항성이 우주안에 2천억개가있다.

 

태양의 둘레 4,379,000km

지구의 둘레      40,075km

달의 둘레         10,921km

 

태양은 지구 질량보다 약 33만 2,000배 크다.  

 

그런데 만일 태양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크다면,

중력이 증가하여 주변을 도는 수성, 금성, 지구, 토성등의 행성들이 태양에 끌려 들어가고 만다.

 

반대로 태양이 현재보다 작으면, 그 중력이 약하므로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은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마치 실이 끊어진 연처럼 우주 공간에 날아가 버린다.

 

하나님은 태양을 최적의 크기로 창조하셔서 그 중력으로 지구와 다른 행성들을 일정한 위치에 봍잡아 두셨다.

 

 태양 중심부의 온도는 섭씨 약 15,000,000(1천5백만) 온도까지 올라가고, 평면 온도는 섭씨 약 5,500 온도를 유지한다.

 

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전부 지구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약 20억분의 1만 지구에 도달한다. 지구가 탄생할 때 다른 행성들도 함께 생겨나 태양의 둘레를 돌게 되었다. 행성이란 수성, 금성, 지구, 화성과 같은 둘레를 도는 천체를 말한다.

 

창세기의 기록되던 때의 사람들은  지구가 언제 생겨나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모양과 크기는 어떤지 알지 못했다. 당시에는 지구는 모두 평평하고 가장자리는 암흑세계로 떨어지는 끝을 알수 없는 절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은 빚어낼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셨다.

 

지구의 둘레(적도의)는 약 39,842km,

직경은 약 12,700km,

무게를 톤수는 60해 즉  6에 0을 21개 붙여야 한다.(아마 6,000,000,000,000,000,000,000t)  

 

만일 지구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크게 창조 되었다면, 그에 따라 중력도 커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상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중력 때문에 상공으로 올라가지 못하여 구름을 만들지 않는다. 결국 지구는 전체적으로 물이 순환되지 않아 기상의 변화가 정상으로 일어나지 못한다.

 

또한 지금보다 중력이 크다면 새와 곤충, 비행기 우주선 등은 지금처럼 쉽게 날 수가 없다. 큰 중력 때문에 모든 것이 무거워 인간은 더 큰 체구와 근육이 필요하고 힘을 더 내기 위해 많이 먹어야 하므로 큰 거인이 되어야 한다.

                               

*반대로 지구의 중력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작다면, 지구를 둘러싼 공기는 중력을 벗어나 외계로 날아가 버려 지구 대기는 차츰 진공상태로 되어 가고, 바다와 육지의 물은 너무 빨리 증발하여 상상하지 못할 거대한 태풍을 일으켜,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기상환경을 만들어 인간은 물론 1,000만종에 이르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기 어렵다.

 

*만일 대기층 두께가 지금보다 얇다면 우주 공간으로부터 무수히 떨어지는 운석들이 미처 타 버리기 전에 땅에 떨어지게 되어 지상에서는 폭발과 화재가 연발하게된다.

 

*만일 자전하는 지구의 자전축이 23.4도로 기울지 않았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생겨날수가 없고, 지구의 겨울은 너무 춥고, 여름은 너무나 더워서 살수가 없다. 하나님의 창조 설계도는 빈틈이 없으시다.  

   

*적도상에서 지구의 자전 속도가 1,668km,

고속도로에서 나의 승용차가 시속 160km 달렸을때 나는 상당한 위험부담을 느겼다.

그런데 지구의 자전 속도는 자동차 시속160km 보다도 10배가 넘는 빠른속도로  하루(약 24시간)에 1바퀴 돈다.

 

그러면서 또 지구는 매시간 107,000km의  속도로 역시 태양 둘레를 궤도를 따라 돌아간다. 얼마나 빨리 달리는가?

시내버스가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70~80km 달리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도 순식간에 모든 사람은 넘어진다.

 

지구가 태양둘레를 1회 공전하는 걸리는 시간은 약 356.24일이다.  

 

달은 지구로부터 평균 386,400km 떨어져 있으며

그 직경은 지구 직경의 4분의 1인 3,480km이고,

무게는 지구의 80분의 1 정도이다.

 

달에는 공기와 물이 전혀 없으므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 

낮에는 섭씨 123도로서 뜨겁고, 밤은 섭씨 -233까지 내려간다.   

 

 첫사람 아담 이래 오늘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지구인 중 우주 공간에 나가본 우주인은 고작 572명뿐. 그중 달 궤도까지 가본 사람은 24명, 달 표면을 직접 밟아 본 사람은 12명에 불과하다. 겨우 달까지만이라도 우주 비행한다는것도 고난도의 첨단 과학이자 현대 문명의 집대성이라 아니 할수 없다. 

 

창1장1절에서 태초에서 이 거대한 우주 즉 태양, 달, 별들, 지구등을 넷째날 만드심이 아니고 태초에 동시에 만드셨다.

 

그러나 성경 창세기 1장 2절 이하 부터는 지구의 6천년 전의 모습 그대로를 볼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의 기록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라고 되었기 때문이다


 이 창조된 천지는 하나님이 붙들어셔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심 곧 물들을 감싸심이기 때문이다. 수면위에 운행하신다는것은 하나님의 영이 물을 품으심을 뜻한다. 세이바(שֵיבָה )이란 단어는 부드럽게 움직여 다니는 뜻과 함께 품는 다는 뜻을 갖는다. 현재 온 피조세계는 하나님이 보살펴야  보존되고 질서가 유지 되는데  이 처음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미완료형 분사 므라헤펫트(מְרַחֶפֶת)를 사용하므로 빛이 지구에 비춰지기 까지 하나님의 영이 친히 땅과 물을 붙들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 특히 땅을 붙드심은 땅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살며 하나님을 섬길 곳이기 때문이다. 처음 창조는 이제 막 창조 되어 모든 사물들이 자기 기능을행사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하나님이 자기 손으로 붙드셔야 했다.

 

어두움 속에서 자기들의 형질들이 다 고정 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손을 벌려 땅과 물을 붙드셨다. 물이 아직 정비 되지 않은 땅 위에 출현 하였으니 땅 위에 잘 붙어 있으려면 창조주가 손으로 붙드시는 길 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이들의 주장처럼 하나님이 모든 창조를 다 이루어서 법칙과 성질들을 넣어 놓으신 후에 스스로 운행 하도록 내어버려 두는것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성립 하지 않는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붙드심이 없이는 계속해서 존재 할수가 없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자기의 창조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며 간섭하신다.

 

하나님의 영을 루아흐(רוּחַ)라고 표현했다고 해서 바람으로 말할 수 없다. 아직 태양이 나타나지 않아서 기온의 변화가 없는데 어디서 바람이 나와 물들의 표면위에움직이며 불어 댈 수 있겠는가? 루아흐 엘로힘(רוּחַ אֱלֹהִים )은 성경 전체의 문맥과 교회의 이해에 의해서 성령으로 이해해야 바른 것이다. 삼위 하나님이 모든 창조에 역사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루아흐 엘로힘(רוּחַ אֱלֹהִים )을 주어로 받는 동사, 정확하게는 분사로 사용할 수 없다.

 

물들의 얼굴들 위에라고 표현함은 이미 지구가 여러 대륙으로 나누어져 있었음을 의미 한다. 바다가 넓고 온 지구를 물이 다 덮고 있어 물들의 얼굴들의 위에 즉 알 프네 함마이임(עַל־פְּנֵי הַמָּיִם׃ ) 이라고 표현했다.

 

이미 대륙들과 대 산맥들 혹은 대간들이 세워져서 물들이 땅 위의 여러 곳을 덮고 있음을 알수 있다. 전체로는 모든 지구를 덮고 있었어도 지구상의 여러 구조들 때문에 여러 바다로 구분될 수 있었다고 본다.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지구는 아담이 창조되기 7일 전의 모습 그대로임을 알수 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고 하신 첫째 날이 있기 바로 전의 지구의 상태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토후와 보후(תֹהוּ וָבֹהוּ ) 즉  질서가 전혀 없는 상태를 표현한다. 지구가 창조되어 물질들의 뭉치로만 있고 모든 구성분자들이 제 기능을 행사하지 못함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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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יהי אור )(에히 오르) 말씀하신지 6일이 되어서 아담은 창조되었다. 일반적으로 아담은 6천년 전에 창조되었다는것이 성경의 연구자들의 기록이다. 만일 아담이 6천년 전에 창조되었다면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지구의 모습은 지금으로부터 6천년 전의 지구의 혼돈하고 공허한 토후와 보후(תֹהוּ וָבֹהוּ )모습과 동일하다.

 

아담이 창조된 날과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땅이 혼돈된 상태의 지구의 모습을 보여준 시간적인 차이는 1주일이지만 창세기 1장 1절 천지의 창조사건은 전 우주적 이라고 볼수 있다. 

 

이 우주적 사건에서 태양이 속해 있는  은하계에는 태양과 같은 별들이 약 1천억개가 넘게 있고,  또 이 은하계 옆에 또 다른 은하계가 있는데 그 이름을 안드로메다라고 하는 별들이 약 1천억개가 있다고 한다. 이 같이 이 우주에는 수천억개의 별들의 무리를 성경은 단순히 그 창조한 때가 바로  태초 -레쉬이트(ראשית )라고만 말하고있다.

 

태초라는 시간보다  앞선 시간은 없다. 성경은 지구를 포함한 이 우주의 창조사건은 태초라는 것을 창세기 1장 1절에서 밝힌다.  

 

그러나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흑암 속에 있는 지구의 모습 하나만 표시되어 있는데 그 '땅이 혼돈하며 공허" 하였던 것이다.  수면으로 뒤덮여 있는 지구가 아직 정비되지 않은 상태를 나타낸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조상 아담을 우주에 있는 수많은 별들중에 오로지  하나의 지구만을 클로즈업 시켜서 아담이 창조되기 바로 전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세기 1 : 3∼5) 

 

창세기 1장 1절에는 태초에 천지 즉 전 우주가 창조된 것이 소개되었고  창 1장 2절에서 태초에 창조된 지구는 깊은 흑암 속에서  태양의 빛을 전혀 받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장 3절에서  그 흑암 속에 있는 지구를 향하여  '빛이 있으라' 고 명령 하시니 그 흑암속에 있던 지구가 비로소 태양빛을 받게 되었다.

 

그 태양 빛을 받게 되자마자 그때서야  지금껏 부동으로 있던 지구가 스스로 자전함과 동시에 낮과 밤이 생기게 되었다.  그후 지구는 계속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게 되었는데 이것이 첫째날이었다.  
 
그후  지구는 하나님의 '빛이 있으라' 는 말씀속에서 계속 자전을 통해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면서,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날 된것이다. 지구의 자전은 태양빛이 있어여만 절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태양 빛이 지구에 계속 비추니  지구는 낮과 밤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6,000년전인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지구는 계속 낮과 밤이 이어졌다.
 

또 그 태양빛은 처음부터 지구에 섭씨 평균 25도의 온도로 유지시켜주면서 

셋째 날의 식물들이 자라나게도 하였고,  

다섯째날에는 조류와 어류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도 했다. 

 

 하나님께서 지구에  아담을 비롯하여 여러종류의 생물들을 창조하시고자 계획 하실 때에 가장 처음으로 하신 것은 흑암으로 둘러쌓인 지구에 태양의 빛이 들어오게 하신 것이다. 그래야 그후 모든 창조물들이 작동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흑암에 둘러싸여 있을 때에는 태양을 지구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째 날에 태양과 지구 사이 1억5000만km 거리로 가로놓인 흑암을 제거하기 위하여 지구에 연속적으로  빛을 발산케 하셨다. 


깊은 흑암 넘어 태양에서는 사방으로 빛을 계속 발산하고 있었지만,  지구는 그 당시에 빛을 한 점도 받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만 있어야만 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 : 2)에서 볼수 있듯이


결국 하나님은 처음으로  태양과 지구사이를 흑암으로만 온통 쌓인 곳에 약 8분19초만에 태양 빛이 초속 30만 km로 지구에 오게 됐던 것이다. 이런 지구에 태양의 빛이 들어오는 사건이 곧 첫째 날 사건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구에 아담을 창조하시고자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빛이 있으라'는 의미이다.

 

시간은 속도에 따라 변한다. 물체가 빛의 속도로 달릴 때 시간이 멈춘다.  시간과 공간은 변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 속에서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그래서  인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사인 볼트(자메이카 출신)는 100m를 9초 85로 달린다.

만일 이 우사인 볼트가 만일 초속30만km 즉 빛의 속도로 달릴수 있다면,

그 우사인 볼트는 일생동안 계속 늙지 않는 그대로 모습을 지닌다.  왜냐하면 빠르게 움직일수록 시간은 천천히 가고, 길이는 수축되며, 질량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니라' (창세기 1 : 6∼8)

 

처음  지구에 있는 물들은 얼음으로 되어 있었다. 지구는 흑암 속에서 태양의 빛을 한 점도 받고 있지 못한 상태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지구가 흑암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지 수십억년인지  수천억년인지알 수가 없는 이유는 태양과 지구, 우주천체의 별들이 만들어진때는 태초라는 말 외에는 알수 없기 때문이다. .

 

그래서 지구는 그렇게 긴 시간동안  깊은 흑암에 있었기 때문에 지구에 있는 물들은 흑암 속에서 액체가 아니고 고체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둘째 날에 깊은 흑암 속에서 고체로 되어진 지구의 물을 액체로 만드는 일을 하셨다. 지구에 생물들을 창조하시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고체의 물을 액체로 만드시니 땅 표면에 물이 가득하였거니와 땅 위 공중에도 물이 가득하여 또 물로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

 

또 물가운데 퍼짐 곧 궁창을 설치함으로 물이 공기에 받치워서 공중에 떠 있게 되었다. 물이 공중에 공기에 의해서 떠받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궁창은 바로 공기들이 형성 됨을 뜻한다. 라키이야( רָקִיעַ   ,퍼짐.expance)는 궁창이 벌림을 뜻하므로서 물로 닫혀진 지구 위를 펴서 물들 한가운데 대기권을 형성하였다.

 

물로 꽉 닫혀진 지구를 벌려, 즉 물들을 벌려 지구를 열고 공기층을 형성함으로 물과 물사이가 벌어져 광활한 하늘이 되었다. 이 하늘은 대기권을 뜻하여 이 대기권으로 하늘이 열려서 천계가 지구상에서 보이게 되었다. 또한 대기권의 설치는 지구를 둘러싸서 지구를 생명체들의 생활 공간이 되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셨다.

 

지구에 생명체가 나타날 정도가 되므로 하나님은 지구의 표면에 생명체들이 출현할 자리를 만들기 위해 물을 땅에도 두고 공중에도 두어 지구의 표면을 가볍게 하셨다. 그래서 지구 표면에 식물들과 다른 생명체들이 출현하여 자랄수 있게 하였다.

 

또 물들 사이에 물들로부터 나눔( מַבְדִּיל בֵּין מַיִם  맙디일 베엔 마임 라마임)이라는 표현은 물이 땅 표면에만 있던 데서 땅 위의 물과 대기권 위의 물이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수중대를 뜻한다.

 

이것은 처음 나타난 생명체들이 격한 온도에 변동없이 살수 있도록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섭리적 조치이다. 이 수중대 설치는 너무 뜨거운 온도의 유입이나 해로운 물질들의 대기권으로 유입을 막아 주도록 설계 되었다.

 

수중대 곧 바다가 대기권 위에 설치되었으므로 지구상의 온도는 밤낮 거의 동일한 온도를 유지해서 처음 창조된 식물들과 동물들 그리고 무엇 보다도 인류의 번창이 빠른 시일에 이루어질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창조과정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 표현을 사용하므로서 지금까지 창조는 (בָּרָא  바라)로 무에서 창조가 이루어졌음으로 했는데, 이젠 아사( עשה)를 사용함으로 무에서 창조가 아니라 이미 처음 창조에 포함 되어 있는 모든 것들을 이용 하심을 분명히 하신다.

 

 궁창을 물들 가운데 펴신 것이다. 이것이 곧 대기권이다. 대기권이 물과 물로 나뉘는 경계선이요 땅 위의 물을 머리에 이고 있는 장치가 되었다. 궁창이 땅 위에 설치 되었으므로 물이 그 무게로 지구를 압박하지 않고 물이 생명의 근원으로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

 

 궁창이  만들어졌다는것은 대기권이 물로부터 형성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공기의 요소들이 물에서 만들어지고 형성 되었다고 할 것이다.  물없이는 생명체들이 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물이 모든 공기의 재료가 되고 생명체 발생의 기본 요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물로 대기를 조성하고 물로 생명체를 살게 하시고 생명체를 구성하셨다. 그래서 생명체에 물이 필수가 되게 하셨다. 물이 지구에만 있게 하심으로 물이 있는 곳이 바로 생명의 근거지임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그리고 수중대 설치는 다른 해독제들을 정화하고 길러주는 역활을 하게 되었다. 창조주는 물을 둘로 나눔으로 이렇게 지구상에 생명들이 출현할 수 있는 완전한 공간을 마련하셨다. 물이 공기중에 계속 있을 수 있는것도 공기가 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첫째 날에는 지구에 태양의 빛이 들어오게 하셨고, 

둘째 날에는 지구에 있는  물의 고체를 액체로 만들어 물과 물로 나뉘어 대기권을 형성하신 일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창세기 1 : 9∼13) 
 
 셋째 날에는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게 하셨다. 여기서 천하의 물이란 궁창 아래에 머물게 된 물을 의미한다. 그 물들이 모여서  지구에서 바다를 이루게 되었다.

 

궁창 아래의 물은 수중기가 되어 공중에 올라갔다가 빗물이 되어 산과 들에 떨어졌다.  이렇게 올라가고 내려가는 물(천하의 물)을 하나님은 한 곳으로 모으셔서 바다가 되게 하시니 뭍이 드러났다. 뭍을 땅이라 하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해저는 태평양 서쪽에 있는 마리아나 해구로서 수심이 8,648m이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약72%를 차지하고 지구에 있는 물의 97%를 담고 있다.

 

만일 모든 바닷물을 지상에 고르게 편다면 그 깊이가 2,700m 나 된다고 한다.

바다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청나게 많은 식물과 동물이 육상보다 더 많이 살고 있다.

 

지구상에는 수백만종의 동물중에

곤충종류가 1,000,000종이 넘고,

그들중 물고기는 30,000여종,

 

파충류는 6,500종,

새(조류)는 8,600여종,

포유류는 4,300여종,

미생물의 종류도 60,000여종.

 

해저 3,000m는 태양이 비치지 않는 암흑세계이며 수압이 300기압이나 된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생명체가 살고 있단다.

 

열수공에서는 높은 수압 때문에 지상과는 다르게 섭씨400도를 넘는 뜨거운 물이 나오고 있는데도 400여종의 동물들이 상고있다. 조개 몸 500g 속에 100억개의 황박테리아가 공생하고 있다. 

 

고체의 물이 액체로 변하면서 땅은 물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여기에 하나님께서는 온갖 종류의 식물들을 셋째 날에 만들어 놓으셨다.  땅은 그 당시에 식물들이 자라기에 최상이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만드심이 아니고  빛을 비취게 하셨다)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만드심이 아니고  빛을 비취게 하셨다)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창세기 1 : 14∼19) 


하늘의 모든 별들과 태양과 지구와 달은 이미 태초에 만들어 졌다.  수십억 혹은, 수백억, 혹은 수천억년전인지에 천지가 만들어졌다고 성경은 알려주고 있지 않지만 천지가  창조된 시간대가 그 태초라는 것은 확실하다.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창세기 1 : 16)

 
 성경은 아담이 창조되기 바로 전 지구의 모습은 먹구름처럼 흑암의 깊음 속에 지구가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것은 광명체들과 지구 사이에 흑암이란 가로막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 : 2) 
 
큰 광명이란 태양빛을 말한다.

작은 광명이란 달빛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넷째 날에 작은 광명을 만드셨다는 의미는 달을 만드셨다는 뜻이 아니고,  달과 지구 사이에 태양의 빛을 가리고 있는 흑암의 가로막들을 제거하셨다는 이야기다.  달 자체는 발광체가 아니고  무광체이다.

 
하나님은 넷째 날에 태양의 빛이 달에 도착해서 그 빛의 반사로 지구에 작은 광명(달빛)으로 보이도록 하셨다.이것이 바로 작은 광명을 넷째 날에 만드셨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담을 창조하기(약 6천년) 전에는 지구가 흑암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태초에 창조된 달이 지구에서 작은 광명으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넷째 날에는 달의 제 구실을 하게 만드신 것이다.

즉 달의 창조가 아니라,

태양에서 나오는 빛이 달에 아무런 장애가 없이 잘 도착케 하고 또 달과 지구 사이에도 아무런 가로막힘이 없게 하여 태양에서부터 받은 달의 그 작은 광명(빛)이 지구에서 잘 보이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달에 있는 작은 광명(빛)이 지구에서 밤을 주관하는 구실을 할 수 있게 만드신 것이 넷째 날의 목적이었다.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창세기 1 : 16).


큰 광명은 태양을 의미하지 않는다. 태양은 이미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셨다. 태양은 우리에게 큰 광명(큰빛)을 준다.  

 

넷째 날에 큰 광명이 지구에서 확실히 보이게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태양에서 광대한 빛이 사방으로 발산하고 있는데

첫째 날에는 흑암의 틈이 생기게 하여 지구에 태양의 빛줄기가 들어가게 하셨고, 

넷째 날에는 태양이 큰 광명(빛)으로서 지구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드셨다.

 

이것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것을 완전히 제거하므로서 태양의 큰빛인 그 큰 광명이 지구에 닿도록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광명이 낮을 주관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놓여 있으면 태양 빛이 지구에 갈수 없으니 지구에는 낮을 주관 할수 없다. 그러므로 큰 광명을 만드신 것은 태양의 빛이 보이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천지라는 말씀 속에는 지구만 있는 것이 아니고 태양도 있다.
 지구가 어두워져서 저녁이 되었고  또 밝아져서 아침이 되는 것을 태양을 통해서 하도록 하셨다.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등은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상황을 말하기 때문에 태양이 있다는 표시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에는 태양이 태초부터 6일  내내 지구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7번이나 말해주고 있다.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창세기 1 : 16∼17) 하나님께서 넷째 날에 만드셨다는 별들은 땅에 비취게 하는 별들이었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있어서 땅에  비쳤다.

 

땅에 비치는 별빛들이다. 그들은 이미 몇만 년, 몇백만 년 몇 수 억년전에 별들의 실체로부터 떠난

별들의 빛들, 즉 광명들의 세계이다. 우리는 그 광명들을 별들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서 밤하늘의 우리가 보는 시리우스는 8년전에 떠난 8년전 빛의 모습이고,  

 

그리고 안드로메다라는 별의 빛은 은하로부터의 빛이 우리 지구에 도달하려면 230만 년이 걸린다. 

따라서 지금 여기서 우리가  안드로메다라는 빛을 본다면 그 빛은 230만 년 전에 안드로메다로부터  떠나온 빛의 모습이다.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은 약 6,000개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만들었던 이러한 별들의 빛을 넷째 날에 땅에 비취도록 하셨다.우리는 결코 별들의 실체를 밤하늘의 별들이라고 하지 않는다.

 

별들의 실체의 세계는 너무 장엄해서 우리가 볼 수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수많은 별들은 이미 별들의 실체로부터 아주 오래 전에 떠난 광명(별빛)들의 세계이다. 땅에 비치는 별들이란 광명들의 세계이며 그것은 곧 별빛들을 의미한다. 즉 우리는 그 별빛들을 별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땅에 비치는 별들을 만드셨다는 것은 결코 별들을 만드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별빛들을 보이도록 하게 하신것이다. 별들의 실체로부터 떠난 광명들이 이미 오래전에 지구에 도달해 왔으나 지구가 흑암 속에 있어 보이지 않다가 넷째 날에는 그들을 볼 수 있게 만드셨다는 것이다.  


  별들 창조는 이미 태초에 이루어졌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 : 1) 
  

즉 넷째 날에 큰 광명과 작은 광명과 별들을 만드셨다는 의미는 태양과 달과 별들의 실체를 만드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빛들을 지구에서 보이게 만드셨다는 의미다. 


(창1장 1절)은 태양과 달과 수많은 별들과 지구를 창조하셨고. 즉 무에서 유를 창조. 
(창1장 2절)은 태양과 달과 수많은 별들에서 나오는 광명(빛)들을 지구가 흑암의 깊음 속에 있기 때문에  볼 수가 없게 되어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고,

(창1장 16절)은 지구에서 태양과 달과 별들에서 나오는 광명들(빛들을)을 볼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 : 20∼23) 
 
다섯째 날에 하나님은 어류와 조류를 창조하셨다. 물고기들과 새들은 각각 종류대로 창조되었다. 

 

 

 여섯째 날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중에서 사람의 인체많큼 신비한 존재는 없다.  

인간은 기적의 산물이며,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인간의 몸은 하루동안에  2,340번 숨을 쉬며,

뇌세포는 700만개가 움직인다.

하루에 120평방미터의 공기를 마시며

1.3kg 수분을 섭취하고

3.5kg의 노페물을 배설한다.

 

4,800단어를 말하며

750번 주요 근육을 움직인다.

 

자동차를 만드는데 13,000개의 부속품이 필요하고,

우주왕복선은 500만개가 필요하지만,

우리 인간의 몸에는 100조의 세포조직이 있고 25조의 적혈구와 250조의 백혈구가 있다.

 

 

사람의 세포 개수를 약 100조개라고 할 때, 이 DNA의 길이는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인, 1억 5천만km를 50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이다. 사람의 세포 한 개 속에 있는 DNA의 정보량을 A4 용지에 10폰트로 썼을 때 1,000쪽 짜리 1,350권에 해당한다. 놀라우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세포 하나 속에도 그렇게 방대한 유전정보를 기록해 놓으셨다!

 

뼈의 조직은 끊임없이 죽고 다른 조직으로 바뀌어 7년마다 새 뼈로 바뀐다.

피는 물보다 6배 진하며 몸을 한바퀴 도는 46초 걸린다.

심장의 박동수는 하루에 10만번이다.

동맥 정맥 모세혈관 총길이는 12만km. 4만8km의 지구를 3바퀴나 돈다.

 

인간의 뇌는 감각기관으로 매초 약 1억비트의 정보가 들어간다.

피부는 4주마다 완전히 바뀐다.

평생벗는 피부의 무게는 48kg이고 1,000번정도 갈아 입는다.

1달에 1번씩 갈아 입는꼴이 된다.

 

성인의 머리카락은 10만개,

수염은 3만개,

잔털은 30만개이다.

 

눈은 10만가지 색을 구분한다.

혀에는 9천개의 미각이 있다.

위벽에는 50만개의 세포들이 매분 죽어서 새세포를 만들어 낸다.  즉 신비란 말밖에 없다.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동물과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6일 째 되는 날에 창조하여 지구에 만들어 놓으셨다. 

아담과 하와는 지금으로부터 약 6천년 전에 창조되어졌다.   


 
따라서 창세기 1장 전체는  6일 천지창조설에 역점을 두고 있지 않고( x ), 

                                     6일 지구변화설에 역점을 두고 있다( o ). 

 

혼돈한 땅이 바다와 땅으로 구분이 되어졌다.

공허한 땅이 온갖 생물들이 살고 있는 활기찬 세계가 되었다.

지구는 흑암 속에 있었는데 낮과 밤이 이루어지는 곳이 되었으며 낮에는 태양을 밤에는 달과 별들을 볼 수 있는 곳이 되어졌다. 이렇게 지구는 6일만에 변화되었다.

 

 지구는 하늘의 별들의 세계와 함께 태초에 창조되었다.

창세기 1장의 골자는 인간 창조에 있지만 그 창조 배경에는 6일만에 지구의 모습을 어떤 상태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화시켰다는 내용들이다.

 

우리는 창세기 1장 전체에 있어서 태초의 사건과 더불어 6일간의 사건을 구분하여서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6일동안에 차례로 창조 하시면서 그때마다 "보시니 좋았더라" 라 하고, 창조 마지막날에는 "하나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더라." 라고 감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속에 살아가는 온갖 생명체는 하나님의 치밀한 청사진에 따라 모두 의미있게 창조하신 것이다.                                

 

정교하게 움직이고 조정되는 우주를 '완전히 프로그램된 거대한 컴퓨터'이다. 이는 우주가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생명체들은 물리법칙을 따라 살아간다. 새들은 항공역학의 수학적 질서에 따라 날고 있으며, 고성능 컴퓨터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인간의 뇌는 뉴런이라 부르는 신경세포의 작용으로 복잡한 일을 한다. 뇌세포의 작용을 물리법칙으로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전자기와 관련된 수학법칙따라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자연의 법칙이란 지구에서만이 아니라 우주 어느 곳이든, 우주 역사 어느때이든, 변함없는 법칙으로 예외없이 정확하게 전개되는 현상이다. 달이라고 해서 다른 중력법칙이 적용된다거나, 1,000년후에 중력법칙이 변한다거나 하는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법칙은 수억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경은  이 모든것들을 창조 하신분이 그리스도라고 밝힌다.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골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

             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히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 하나님은  무한한 권능과 지혜로 하늘의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을 담고 있는 은하계와 성운들도 이 거대한 별들을 구성하는 작은 분자와 원자들도, 그 생명체들을 구성하는 세포를 만드셨다. 가장 큰 물체로부터 가장 작은 구성분자들까지 창조하셨다.  하늘의 별들과 땅 위에 먼지까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찬양한다.

 

결국 그리스도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기 위해서 땅과 태양계를 일주일에 걸쳐 정비하셨다. 인격체가 나타날 모든 환경을 조성하셔서. 땅을 풀로 덮으셨다. 물과 공기와 대기권도 잘 정비하셨다. 별들도 땅위에 잘 비취도록 정비하셨다. 사람의 출현을 위해 하나님은 일주일에 걸쳐 정비하시는 일을 하셨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의 창조주에 대해서 반역을 감행했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 세계에 죄를 가져왔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 반역한 백성을 버리지 않기로 정하시고, 그들을 돌이켜 다시 자기의 백성으로 삼기로 하셨다.

 

차라리 그의 백성을 다시 만드는 것이 나을 것인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반역한 백성을 다시 돌이켜 자기의 백성으로 세우기로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구원하는 일을 하기로 하셨다.

 

때가 차매 창조주 그가 자신이 지은신 세상에 오시기로 하셨다. 그러나 전능한 창조주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하기로 하셨는데,  그의 전능으로나  그 무한한 지혜도 전혀 활용하지 않으시고, 성령의 사역으로만 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그의 인격에 피조물인 사람을 옷 입기로 하시고 창조주가 사람이 되어 사람의 자리에 오셨다.

 

하나님이 피조물의 자리에서 사람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창조주가 피조물을 입고 세상에 사람으로 세상에 오시되 군왕이나 영웅으로 오신 것이 아니고 초라한 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시고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세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어서   세상은 우리의 믿음을 조롱하고 비웃는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도 그런 일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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