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쓰고 읽기

격암(강국진) 2014. 5. 12. 07:52

당신이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

 

서구 철학의 역사를 보면 신화의 세계가 자연철학의 세계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신화를 기원전 8세기경의 호머와 헤시오드가 글로 기록한 이후라고 한다. 우리가 신화의 시대라고 부르는 시대에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이 세계란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신들이 서로 다투고 화합하면서 굴러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사랑의 신때문에 일어나고 부엌신을 화나게 하면 음식이 상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신화가 글로 기록되기 시작하자 그 신화적 세계관의 전체모습이 들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그 안에 있던 모순들이며 설득력없는 면들이 분명해졌을 것이고 그것이 보다 오늘날의 과학에 가까운 세계관을 출현시켰을 것이다.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는 성경에 관련해서도 있다. 성경이 라틴어처럼 일반인들이 읽기 어려운 말로 씌여지고 모든 성경이 집대성되어 출판되지 않았던 시절에 성직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은 뭐든지 성경에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무식한 농부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출판이 보편화되고 독일어같은 일반언어로 성경이 번역출판되자 기독교는 혁신을 피할 수 없었다. 마틴루터는 1517년에 95개 반박문을 써서 종교개혁을 촉발시켰는데 이 글은 두주만에 유럽전역에 퍼졌다. 이는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보편화되지 않았더라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쓰고 읽는 것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독점되는 시대에 진실은 숨겨지고 거짓된 이야기, 일종의 근거없는 신화 그리고 부패가 판을 치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아마도 아 예전에 미개하던 시절의 이야기구만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실은 현대인들의 다수, 특히 한국인들의 다수는 자신이 어느정도 문자가 출현한 시대 이전, 인쇄술이 보편화된 시대 이전을 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스스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전문화로 인해 지식이 칸칸이 나눠지는 것은 사실 요즘은 더 심해졌다. 오늘날 번역의 문제만 해도 넘치게 많이 있다. 우리나라 한글판 성경책도 현대인이 모르는 말로 써있는 경우가 많다. 지식은 넘치는 것같으면서도 독점되어 어려운 전문용어의 벽뒤에서 신화를 만들어 낸다. 지식과 사고는 칸칸이 나뉘어져서는 과학은 과학자의 일이되고 철학은 철학자의 일이되고 문학은 문학가의 일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칸칸의 세계가 허구의 신화, 허구의 권위로 뒤덮히게 된다. 엉터리 언론이 사람들을 어떤 환상의 세계에 있게 할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 오늘날도 신화와 허구는 계속 되고 있고 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읽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드물고 하물며 쓰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그렇다고 할 때 과연 우리는 우리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신화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사실 내가 보기엔 많은 사람들은 과학에 시대에 살기때문에 자신이 그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할 뿐 실질적으로는 신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게는 안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알고보면 그분이 알에서 깨어나셨데라던가, 그분의 어머니가 처녀였다잖아라고 말하면 '역시! 그럴줄 알았어.'라고 말할 준비가 된 것같은 분들도 있다. 

 

진짜 옛날과 차이가 있다면 단지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신화는 대개는 개인적 차원의 신화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여러가지 일관성을 가지지 못하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이러저리 엉성하게 이어서 세상은 이런 곳이라는 믿음을 만들어 내고, 자신이 스스로 만든 그 개인적인 신화의 세계를 살아간다. 나는 그것을 사고의 벽이라고 부르는데 어디엔가 이것은 원래 이렇다, 이것은 진리다, 이것은 확실하다라고 단정짓고 벽을 세운다. 그리고 그 벽 너머의 세계, 거기에 존재하는 진실과 인간은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는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미워하고 멀리해야 마땅한 사람에게 열렬히 빠져들며, 애써 노력해서 이룩한 것을 아무 가치없는 것과 바꾸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벽을 확실하게 있다고 느끼고 존재하지 않는 유령을 두려워한다. 귀중한 것을 도둑맞는다.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한다. 어느새 이웃이 죽어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뜬 장님이 된다. 

 

그 신화의 세계를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읽기와 쓰기, 특히 쓰기를 하지 않고 그 개인의 신화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읽기는 중요하고 좋은 것이지만 충분치 않은데 결국 남이 쓴 글이란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남이 쓴 글만을 읽는 것으로는 우리는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어디서 앞뒤가 안맞는 것인지 느끼기 어렵다. 모처럼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말을 들었다고 해도 우리의 머릿속에 그런 말은 별거아니다, 그런 건 다 알고 있다, 그걸 믿어서는 안된다는 확신이 굳게 자리잡고 있다면 별다른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그런 글과 말은 무시될 것이다


사실 좋은 말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다. 어떤 글이나 책의 의미란 상당부분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읽는가 하는 문맥 혹은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가 하는데에 달려 있다. 우리는 유치원생용 동화나 초등학생용 교과서에서 인생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면 유명한 고전을 줄줄 외우고 주변 지식까지 외우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같은 책도 내가 어떤가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그래서 한번 읽은 책도 세월이 지나 다시 읽으면 그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연스레 자기가 쓴 글을 읽는 일이 되기도 한다. 내가 쓴 글을 읽어본다는 것은 어떤 명작을 읽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배운 사람이라고 자부하려면 글쓰기를 해야 한다. 스스로 글쓰기에 힘쓰고 그를 통해서 자기를 살피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눈을 뜨고 있지만 잠을 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사람들은 읽기와 쓰기 특히 쓰기를 멀리한다. 실질적으로 교육과정 어디에도 글쓰기는 없다시피 하다. 글쓰기가 있다고 해봐야 대학입시를 위한 글쓰기가 조금 있을뿐인데 그런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겠지만 목적이 분명히 외부에 있는 만큼 자신의 개인적 믿음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즉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전에 채점하는 사람이 원하는 답, 선생님이 원하는 답이 뭘까에 집중하게 된다. 이래서야 곤란하다


진정한 글쓰기는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고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다. 어디에 제출하기 위해, 누구에게 좋은 평가를 받거나 팔아먹기 위해 하는 수단이 된 글쓰기는 한계가 있다. 그런 글쓰기를 잘하면서도 남을 비꼬는 일에만 집중하고 자기를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많다. 직업적으로 남들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정리해서 떠들어 대는 것을 하는 사람도, 그래서 스스로 지식인으로 자부하고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실은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자기와 대화해 본적이 없는 사람, 앵무새처럼 남의 이야기만 반복하는 사람은 그저 훌룡한 누군가가 말했다는 권위에 의존해서 말할뿐 자기가 말하는 것의 진짜 가치는 모르는 것이다. 혀가 없는 요리사나 마찬가지다. 자기가 없으니 그렇지 않겠는가?

 

많은 한국인들은 자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을 근거로, 지식이 넘치는 세상에 산다는 것을 근거로 자신이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너무나 훌룡한 가수가 있는 시대에 산다는 이유로 자신도 괜찮은 가수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없고 그래서 그 내부가 공허하기 짝이 없는데도, 그래서 그로 인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그렇다는 것을 모른다. 과학의 시대 이전의 사람들은 신과 유령을 쉽게 봤다. 그들은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헛 것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 헛된 권위와 체면에 목을 매지 않는가? 우리는 날마다 뭔가는 원래 그렇다라는 말을 엄청나게 하면서 살지 않는가? 미개한 시대의 사람과는 다른가? 나는 책읽기는 한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그 책에서 남이 만들어 낸 유령을 가져온 것은 아닌가? 이렇다고 할 때 우리가 쓰기를 생활화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로 까지 말해야 할지 모른다.

 

사실 그 이유에 대한 의견은 여러가지이겠지만 글쓰기가 좋다는 것은 대개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일이다. 그런데 왜 글쓰기를 일상화하는 사람은 그렇게 작을까. 내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뭔가를 잘하지 못하는 첫번째 이유는 그것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쓰기를 너무 간단한 것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종종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을 부러워 한다. 전문가 수준의 수학문제를 풀거나 철인경기같은 것을 즐기는 사람도 부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피아노앞에 앉아봤더니 내 연주는 피아니스트하고는 너무 다르더라라던가 나가서 좀 뛰어봤더니 마라톤 세계기록과는 너무 격차가 크게 느껴져서 달리기는 포기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웃음을 살 것이다그런데 사람들은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렇게 하자마자 자기의 손가락에서 프로 작가의 글과 같은 것, 고금의 고전이 될 글이 흘러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실망한다.

 

글쓰기는 어렵다. 타고난 천재는 모르겠지만 나같은 보통사람이라면 몇일이나 몇달 배우고 써본다고 훨씬 좋아지지는 않는다. 명작을 쓴다던가 하는 것은 말도 안되고 다시 읽어보고 흠 읽을만하군 하고 스스로 보람을 느끼게 하는 글을 쓰게 되는 것도 금방 되지는 않는다. 글을 쓰려면 자기의 관점이라는 것을 가져야 하고 자기의 세계를 가져야 한다. 그 자기 세계를 키워야 한다. 자기의 세계를 가지려면 자기와 친구가 되고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런데 오랜동안 버려두고 대화하지 않던 내가 말한마디 건넨다고 속마음을 마구 털어놓을 리가 없다. 조용한 곳에서 분위기잡고 산책하면서 말을 걸어도 잘 들어보니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반복하기 일쑤다. 우리 안의 나는 야박하고 부끄럼을 많이 탄다. 자꾸 자꾸 대화하고 정성을 다해서 귀를 귀울여줘야 사실은 난 이렇다면서 겨우 마음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글쓰기는 어렵다. 해봤더니 노력해도 안되던데라고까지 생각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 신화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해 보라. 우리가 제 아무리 노력해도 도통 읽을만한 것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실은 우리가 그만큼 내적으로 큰 병에 걸려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이 너무 당연해 보여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 없어보이는 병이다.

 

글로 기록되는 순간 그 글은 우리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여준다. 병이 너무 깊어서, 도무지 앞뒤가 안되는 신화를 믿고 살아가기에, 그것을 써내려가려고 해보니까 글이 엉망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글을 써보고 글이 써지지 않을 수록 오히려 글쓰기에 힘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자기를 보는 글쓰기는 달리기 연습같은 것이고, 치료제와 같은 것이다. 몸과 마음이 좋지 않을 수록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인데 잘되지 않는다고 금방 포기해 버린다면 병은 영영 더 깊어만 질 것이다. 병이 빨리 치료되지 않는다고 아예 약먹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게다가 글쓰기는 말하기와 당연히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글은 안 쓰면서 지인들과 낄낄대며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삶을 사는 건지 모르는 벌거벗은 임금님일 수 있다. 자기 입에서 나가는 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자기가 지금 뭘 입었는지도 모르면서 바깥을 걸어다니는 사람은 매우 용감한 것 아닐까? 자기와 대화해 보지 않고서,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가는지도 잘 모르면서, 마구 뭔가를 뱉어내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당신이 뭘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당신은 혹시 무척 재수없는 인간이 아닐까? 책임질 수없는 약속과 근거없는 말을 마구 남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중에 그 결과가 우리에게 몰려온다면 그 것은 어떻게 감당하는가. 혹시 우리인생이 지금 부질없이 바쁘고 고되다면 그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내가 왜 이런 글을 쓰는가를 설명하고 이 글을 마치고 싶다.  나는 전에 몇번인가 글쓰기의 중요성이라던가 블로그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개인적인 소망때문이다. 나는 좀 더 살만한 세상에 살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거듭하여 글쓰기를 권하는 것이다. 


살만한 세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어떤 정치적 파벌과 싸움을 벌이고, 부정부패를 몰아내고, 책을 읽고, 강연에 참가하여 배우기를 게으르게 하지 말고, 좋은 언론을 통해 정론이 세상에 퍼지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은 모두 옳은 것이지만 사실 이미 해왔던 것이고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새로운 게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강조되지 못한 것으로써 수동적으로 읽는다던가 듣는다던가 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스스로 참여하는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의 소비자만 될 것이 아니라 생산자가 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의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 자기의 인생을 글로 남길 필요가 있다. 


나는 글쓰기가 문화운동으로 만들어져서 모든 한국사람들이 글쓰기를 하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기를 보는 글쓰기를 생활화하지 않는 사람은 배운 사람이라고 자부 할 수 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글쓰기가 보편화된 사회란 바로 자기성찰이 보편화된 사회다.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은 것이다. 당장 한국전체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적어도 배운 사람이란 그런 사람이라는 이해가 있는, 그런 문화가 있는 마을에서 살아가고 싶다. 


요즘 세상에서는 공유경제라던가 마을만들기라던가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자본주의를 반성한다던가 유지가능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한다. 비극적 사고나 높은 자살률같은 것이 우리에게 반성과 혁신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대안적 시스템을 찾아 헤맨다. 우리가 뭘하던 미래에도 슬픈 일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기와 대화하는 글쓰기를 하는 문화가 있는 나라에서는 그런 슬픈 일이 적게 일어날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수동적으로 읽기만 하는 사람보다 적극적으로 쓰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삶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시스템이전에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글을 쓰는 문화는 이 세상을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될것이고 나아가 결정적 역할을 할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빼고서는 알맹이가 빠진, 즉 인간이 빠진 개혁이 될 것이다. 우리는 개인의 차원에서 신화로부터의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먼저 그 개인의 신화를 기록하고 써야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한 호머가 되고 헤시오드가 되어야 한다. 그걸 팔아서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서다. 


글을 쓰는 문화가 있는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기가 쉬워질 것이고 돈에 중독된 것같은 현대한국의 모습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쓰기위해서는 읽고 생각해야 한다. 책도 많이 팔리고 사람들간의 대화도 많아지고 배우려는 노력도 많아질 것이다. 모여서 할 일이라고 남의 험담이나 자동차 아파트 크기 비교하는 것이 아니면 사교육 이야기밖에 없는 그런 일도 줄어들 것이다. 남들이 뭘한다고 하면 정신없이 따라가고 보는, 유행에 약한 일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다보면 훨씬 더 다양한 세상,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 재미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따뜻한 정이 흐르는 인간적인 세상이 될 것이다. 나는 바로 그런 세상에 살고 싶다. 남들보고 하라고 권하면서 내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내가 글을 쓰고 당신이 글을 써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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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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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글을 쓰다보면 나의 모습을 뒤돌아보게될테고 그러다보면 나를 사랑하기위해 좀 더 신경쓰겠지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세상이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동의해 주시니 기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공감합니다. 여담이지만 얼마전 초교3 아들 공개수업을 갔다가 우리는 왜 에세이 수업문화가 없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따져보면 우리세대는 교실에 아이들이 많아 에세이교육이 힘들었고 그런 교육을 받은 세대가 교사가 되서 여전히 그런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논술시험도 모범답안을 추구하는 현실이니..
선생님의 질문에 대해 마구 마구 손들어 열심히 발표하는 아이들의 대답엔 자기생각이 그다지 없어보였는데, 따지고 보면 저도 그시절 그랬던 것같습니다.
글쓰는 문화가 꼭 학교에서 비롯될 필요는 없겠지만 글쓰는 문화가 외면된 교실의 현실은 너무 안타깝더군요..
교육이 취업과 동일시 되고 그러니 시키는 일이나 잘하는 사람을 키우기 위한 교육에는 말잘하고 자기생각있는 사람은 필요없고 그런게 근본적 이유일 것입니다. 독립적 사고를 하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나라에서는 자연히 쓰기도 강조하는 것같습니다.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요즘 세대간 간극이 너무 크다는 걸 느끼는데 각 지자체의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하는 글쓰기 교실을 통해서 앞선 세대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토로하기도 하더군요.

일단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지 남과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기에 격암님 말씀대로 온나라가 글 쓰는 사람으로 가득하길 기원해봅니다.
그렇죠. 문화센터에서 글쓰기를 배우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를 보다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ZYu46ayLvM&feature=player_embedded

기본소득네트워크. http://www.basicincome.kr/
이런 것들이 실험 되어지고 있군요, 추천합니다.

그리고, 격암님 허락없이 아래 싸이트에 님의 글을 소개했네요, 원하지 않으시면 삭제 하겠습니다.
http://www.parkbongpal.com/bbs/board.php?bo_table=monthly&wr_id=3836

추가할 내용이 있습니다. 술을 조금 했구요, 아래와 같이, 위의 싸이트에 답글을 달았답니다. 거듭 말씀드리자면, 싫으시면 말 해주셔요, 삭제 하겠습니다.

격암님은 흔쾌히 괜찮다고 말 하셨지만, 제 생각은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서 답글(댓글)은 삭제 합니다.
글을 소개해 주셨는데 감사해야지요. 싫어할 일이 있겠습니까. 인상깊게 읽으신것 같은 부분에 대한 각주랄까 소감도 잘 읽었습니다. 사실 쉽지 않지요. 그글을 읽으면 글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게 되는 그런 글을 언젠가 써보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저도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퇴근 후 일에 관련된 생각을 모아 글을 써 모은 것도 많지는 않지만 제가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 중 하나이지요. 격암님을 그런 면에서 참 존경합니다. 일을 하시면서 쓰시는 건 저와 입장이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글을 쓰시는 양부터가 저를 압도합니다. ^^ 저는 초등학교때부터 편지를 정말 많이 썼습니다. 그때는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는 재미와 더불어 내 글이 강건너 산넘어 바다건너 간다는 게 참 신기했었다고나 할까요? 대학때는 군대간 선후배, 동기, 동네 오빠들한테까지도 위문편지를 써서 우스갯말로 나는 국방부에서 위문편지표창장 받아야한다고 큰소리를 치고 다녔지요. 생각해보면 제가 쓴 몇 천통의 편지들로 하여금 저는 받을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닌 사실은 저 자신과의 대화를 그들에게 공개하고 싶었던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제 편지를 받아준 사람들에게 참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격암님의 글을 보며 들었습니다. 결국 제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니까요. 저의 초등학교 6학년 큰아이는 이런 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글을 많이 써서 그 글의 힘으로 지금은 곡을 씁니다. 큰아이가 가끔씩 자기가 글을 써보지 않았으면 곡도 못썼을거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저는 그게 글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관점과 세계를 키워나가려면 글쓰기만큼 좋은 작업이 없다고 봅니다. 늘 훌륭한 글로 감동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아주 좋은 것을 물려받았군요. 저는 자식은 기본적으로 자기 힘으로 혼자 크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그래도 뭔가 쓸모있는 것을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글쓰는 습관을 만들어 줄수 있는 부모란 훌룡한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정성어린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글을 쓰는것은 자신과의 대화의 시간을 늘리는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모두들 좀더 일찍 잠자리에 들고
조금 더 돈에 매몰되지 않고
조금 더 겉모습에 치중하지 않겠죠
한국의 정신없는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길이라고 봅니다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답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공감합니다.
글쓰기에 대한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다.
늘 님의 생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이런 것이 블로그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개인적으로, 이정도 글을 쓸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습니다.
소감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내용 잘 읽었습니다. 오래도록 교훈이 될 것 같군요. 세상 사람들이 좀 더 헉슬리와 오웰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합니다.
소감 잘 읽었습니다. 헉슬리, 오웰 팬이신가 보군요. 그분들도 훌룡하지만 전 그 분들 이상으로 훌룡한 한국필자가 한국어로 좋은 책을 써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한국어문화권에는 좋은 책이 아직 많이 부족한 것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블로그에 퍼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출처만 밝혀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끔 자기가 직접 쓴걸로 만드시는 분들이있어서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글 잘봤습니다. 그런데 인용하실 때는 "~했데"가 아니라 "~했대"가 맞는 표기입니다.ㅠㅠ 했데는 지난번에 보니 ~했더라,그렇더라/의 경우에 쓰입니다. 글 주제가 주제인만큼 댓글 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본문의 어디를 말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했데 던 했대던 저는 쓴적이 없는데요.
진짜 와닿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제 블로그에 격암님 글 언급하였습니다. 불펌형식이 되기 싫어거 댓글 남겨놓겠습니다.
http://blog.naver.com/rocoroco/220665617061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는 제글을 퍼다가 자기 글이라고 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 글에 감사하기 위해서 글을 쓰게 됩니다. 무엇보다 비슷한 독서 취향과 시대 공감을 합니다.
그렇습니까. 공감하는 분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전 지금까지 읽기를 쓰기보다 더 큰 가치를 두고 살았던 것 같아요.
많은 지식이 있어야, 남들에게 뽐낼 수(?) 있단 심리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읽기가 생각보다 많이 받아드려지지 않더라고요.
때론 왜곡되게 받아드려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글쓰기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내 생각이 덭붙여진 지식이야 말로 제대로 받아드려지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글을 써봐야 남의 글을 이해하는 관점이 더 생기기도 하지요. 소감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