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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남자 2017. 10. 9. 20:27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고린도전서 1:10


(들어가는 말)

오늘은 교회력(calendar of church)으로 강림절(降臨節) 셋째 주일입니다. 강림절에 피우는 촛불 가운데 셋째는 기쁨의 촛불(candle of joy)입니다. 강림절 촛불은 가운데 한 개의 초와 이를 둘러싼 세 개의 보라색 초와 하나의 분홍색 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 분홍색 초가 기쁨의 초입니다. 우리의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예수님을 보내주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오늘은 당회입니다. 당회는 기쁜 잔치의 때입니다. 한 해 동안 교회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일을 돌아보고 그 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해 오셨는지를 확인하며 감사하고 기뻐하는 시간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로서 혹시 미흡한 것이 있었다면 겸손히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의 일들을 계획하는 자리입니다. 오늘은 교회의 의미에 대하여 한 번 살펴보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의 의미를 생각하기 위하여 먼저 세 가지 질문을 해봅니다. 첫째는 교회가 무엇인가? 둘째는 교회는 누가 만들었고 누가 주인인가? 셋째는 교회를 만든 목적이 무엇인가?

얼마 전에 제가 알지 못하는 어떤 분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내용의 가운데, 옛날에는 교회라고 하지 않고 예배당이라고 했는데, 그 시절의 예배가 훨씬 감격스러웠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교회와 예배당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이 분이 말씀하신 내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교회와 예배당은 시대에 따라 용어가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원래 다른 말입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말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가 예배당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배당은 빌딩이지만 교회는 빌딩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에서 바울사도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라고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 곧 수신자(receiver)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들과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입니다. 첫번째 질문의 답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구세주,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들은 한마디로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면 두번째 질문으로 가 보겠습니다. 이 교회는 누가 세우셨습니까? 교회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16:18에서 예수님께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교회’ 곧 ‘예수님의 교회’를 ‘내가 세우리니’ 곧 예수님이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며, 교회의 설립자도 예수님이십니다.

세번째 질문으로 예수님은 교회를 왜 만드셨습니까? 그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5:17~19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또 고린도전서 3:9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곧 예수님은 교회를 동역자로 삼으셔서 세상을 하나님께로 되돌리는 화목의 직책을 감당케 하시려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2. 한 몸이 된 교회

예수님이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시켜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교회를 만드셨다면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활동하여야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까?

그것을 잘 이해하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바울사도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2:27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교회는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1:22~23입니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려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명백히 몸과 머리의 관계입니다. 그러면 몸된 교회가 머리된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님이 교회를 만드신 목적, 곧 세상을 하나님께로 회복시키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인간의 몸을 생각해보십시오. 몸은 머리에서 내려오는 명령대로 움직이면 됩니다. 절대로 머리와 떨어져서는 살 수 없습니다. 교회는 결코 빌딩이 아니며 단순한 조직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그러므로 지체로서 몸의 각 부분을 이루는 성도들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전도를 하다보면 “교회가면 서로 싸우는 꼴 보기 싫어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교단의 분열, 교회의 분쟁과 분리, 교회 내 교인들 간의 갈등 들을 지적하면서 “서로 사랑하자 하면서 그렇게 싸우는게 무슨 교회인가?” 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하나됨입니다. 서로 삶의 배경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사람들이 하나 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 싫어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본능적입니다. 그래서 어떤 권위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자기가 최고이고, 자기가 가장 옳다는 것이 의식과 무의식 전체에 가득합니다. 그러니 서로 싸우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구원받은 백성도 완전히 그 죄성을 떨쳐버리지 못한 구원받은 죄인, 의롭다 인정받은 죄인이기 때문에 여전히 그 죄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하시면서 가장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이 제자들, 즉 교회의 하나됨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7:23입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3. 하나 됨을 이루는 열쇠

오늘 본문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본론 중의 머리 부분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고린도교회는 바울 사도가 심혈을 기울여 기도하며 이룬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일년육개월동안 머물렀는데, 데살로니가에서는 불과 석주동안 머물렀던 것과 비교할 때 매우 오래 머문 셈이며, 사실 3차 전도여행에서 에베소에서 2년간 머문 것을 제외하면 바울이 당시 세계 곳곳을 누비며 전도하던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교회에는 많은 역사들이 나타났고,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에는 문제가 참 많았습니다. 음행의 문제, 곧 성적으로도 많이 문란했고, 성도간에 서로 다투어 소송을 거는 일도 있었으며, 우상숭배의 경향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긴급하고 심각한 문제는 교회의 분열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지금 네개의 파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입니다.

교회에서 왜 파가 나뉠까요? 특별한 경우 파괴적인 사단의 마음으로 분열시키고 재미있어 하는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는 잘 하려다보니 의견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하고, 교회를 바로 세우려하다보니 의견이 나뉘고 다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상처를 입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찢어서 나가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분쟁을 하고 나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만드시면서 하나님께 가장 간절하게 구한 것이 하나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극단적으로 나뉘어서 잘하는 것보다 잘 못하더라도 하나됨이 더 가치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교회이냐입니다. 언제나 doing 보다 being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며, 어떤 교회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세상 조직들 가운데는 놀랄만하게 하나됨을 잘 이루는 조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정치집단을 보십시오.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하루 아침에 등지고, 이해관계가 맞으면 아무리 정책이 달라도 한 지붕 밑으로 모입니다.

반면에 교회는 이해관계로 모인 곳이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영화를 볼 것이며,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교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 자체가 신비입니다. 사람은 그럴 수 없지만 성령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실제로 교회 안의 많은 갈등과 다툼 분열이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과 아무런 이해관계 없는 교회가 놀랄만한 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두고 보면서, 교회의 하나님의 열쇠가 무엇인가 궁금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그 비결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마음과 뜻을 같이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저마다 마음이 다르고 뜻이 다릅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같아지고 뜻이 같아집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뜻을 품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같은 말을 해야지 이것이 가능합니다.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은 언어가 같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가야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7)

누구에게서 세례를 받았느냐? 곧 누구의 줄에 섰느냐? 누구 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누구의 입으로 전해졌든지 전해진 그 복음의 내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복음은 바로 하나님과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사람의 사상으로는 나뉘어지고 갈라질 뿐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복음 만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열쇠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릅니다. 성품도 다르고 생각도 다릅니다. 십자가에 우리의 자아를 못 박고 내안에 그리스도만 사실 때 우리는 모두 일치하여 하나가 됩니다. 십자가의 복음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깨어졌던 관계가 회복되고 화목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일하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말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자원과 능력으로 세상을 이길 힘과 지혜을 얻게 됩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당회를 앞에 두고 우리 교회를 이끄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결국은 하나님과 예수가 하나이셨듯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교회를 만드신 예수님의 소원이었으며, 그래야 교회를 만드신 목적에 맞게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실현하여, 세상을 하나님의 품으로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에베소서 4:3)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힘써 지키는 가운데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세상을 회복시키는 승리의 주인공이 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길벗
글쓴이 : 송명헌(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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