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

이장춘 2011. 7. 17. 11:39

   

 
  KBS 부산방송총국의 어제와 오늘 ( 2 ) 
 

 

1950년 서울에 있던 중앙방송국이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에서 방송을 하게 된 것은
8월 중순부터 일이었습니다.잠시 머물다가 가려던 것이
3년을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115평의 적은 청사에 500W의
소출력으로 전국방송이라고 했지만 부산일대에서나
들을 수 있는 방송이었습니다.
 
방송내용이 군가나 전쟁소식등으로 단조로웠고 

유엔군 총사령부 방송이나 미국의 소리 방송을 중계하는

것이었지만 이것도 맨주먹으로  하는 것이어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전국에서 피난민은 모여들어방송국 주변에도 판자집이 가득 들어차고
전국에서 모여드는 피난 방송인들은 주변 판자집도 구하기 어려워  이곳 저곳

돌아 다녀야 했고 스튜디오를 침실삼아 지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만약에 대비해서 제주도에 방송국을 새로 세우고 바다에 방송국을 띄워

섬과 해안지역에 주민들을 위로하고 싸움에 임하는 군인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6.25와 방송편에 자세한 얘기가

있으므로 얘기는 줄이고 그때 찍은 사진을

올려 그날을 회상 해 봅니다.

 

 

 

 위의 사진은   1951년 어느날 방송국 앞뜰에서 찍은
 방송인들로 오른 쪽 밑에 제가 붙인 사진은 노창성님으로
 6.25시작 전부터 끝날때까지 전시 방송국장을 지내시다가
 전쟁이 끝나고 직제가 바뀔때 방송관리국장을 하셨습니다.
   앞줄 중앙은 전시방송과장 송영호님이고 후에 방송
관리국장을 지내셨습니다.왼쪽부터 안병원님,
 강찬선님, 이상송님, 강익수님, 유덕훈님,
조백봉님, 김창구님입니다.

 안병원님은 우리의 소원을

작곡 하신 동요 작곡가 이시고 (1949년부터

54년까지 KBS어린이합창단 지휘) 오른쪽 조백봉님은

음악계장으로 계시다가동아 방송국으로 가신 분입니다.

김창구님은 국립극장장, 대구방송국장등을 지내셨습

니다. 그 외 분들은 모두 아나운서니다.

 

 

 

위 사진은 1.4후퇴로 부산에 온 방송인들이

 1951년 촬영힌 사진이고 아래는 1952년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6.25와 방송편에 있습니다.

위 사진은 송영호 방송과장, 한영섭, 조한긍, 이근정, 조용하,

이용태기자와 조남사 연출계장, 배준호 PD, 윤길구, 홍양보 (VUNC에서

 다니러 왔다가), 강익수, 양대석, 김경자 아나운서가 함께한 사진이고

아래 사신은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사진으로 윤길구, 양재션

장기범, 임택근, 한희동, 이수열,서명석, 황우겸, 정순향

최창숙, 김순철, 김경자 아나운서 입니다.

 

 

 

 

부산에서 라디오 코리아를 총연출 할때의 조남사님 모습

 

 

 

부산피난시절 국악인들의 방송 모습입니다.
뒷줄은 왼쪽부터 김준현, 김기수, 김춘행님이고
 앞줄은  왼쪽부터 안비취, 김옥심, 김배금님입니다.
 

 

 

 

개국기념일에 모처럼 큰 행사도 했지만

얼마 안되어  6.25기간 중에는 살아남았던 11월 27일

방송국이  화재로 모두 불타고 말았습니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 콘세트는 미 제 4 이동 방송대 소유로 이 건물에서

 VUNC송신시설을 이용해  방송은 거의 중단되지 않고

지속 될 수 있었습니다.부산방송국 화재로 6.25무렵

 대구와 마산을 제외 하고는 방송국이

 모두 불타버린 샘입니다.
 

  

  

부산방송국은 1953년 부산역전 화재로

불타버린 청사 복구공사를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출력을 올려 1955년 6월 25일에는 5Kw가 됐고  1956년

12월 말에는 연주소가 완전히 복구되어 연주소에서 정상적인 

방송을 할 수 있었습니다.  5.16이 일어나고 군사정부가 방송에 힘을

 기울이면서 동래송신소가 1961년 12월 9일부터50Kw전파를 발사하고

주파수도 890Kz로 바뀌어 우리나라 동남 전지역을 포함해서 일본에까지

들릴 수 있는 시설을 갖추게 되어 1962년 3월 1일부터는 일본어로  

대일방송도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오재경 공부부장관이

새로운 송신기를 시동하고 있습니다.

 

 

 

1966년 부산방송국이 최초로 실사한 바다와 육지 하늘을 이어 실시한 5원방송이다.kd 

 

 
 
1960년대 우리는 달라가 된다면
머리카락 짤라팔고,  가마니, 새끼꼬아 팔고,
먹고싶은 전복이나, 왕새우 등 해산물 국내에서는
돈 있어도 못먹고 외국에 팔아야 했던 눈물겨운 시절이었

 습니다. 독일에 광부 보내고 간호원 보내서 벌어들인 달라,

월남파평으로 들여온 달라와 물자를 밑거름으로 경제를

일으키려 하던 시절 외국원수 오면 그렇게 큰 대접이

없었고 월남에 가는장병 환송은 전국민적으로

이루워 졌습니다.

 

 
월남 파병 국내에서 처음 출발지는
 춘천이고 마지막 출발지는 부산이었습니다.
이들이 떠날 때마다 역에나가, 부두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잘 다녀 오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던 때였습니다.
그 때 그 일이 생각 나던 중 KBS부산사우회 구연도 
지회장님이 사진을 보내 주셔서 올렸습니다
 
위의 사진은 파월장병 환송방송을 마치고 찍은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1967년 3월 서독 리브케 대통령이

방한해서 부산에 오실 때 부산방송국에서 라디오방송을
마치고 찍은 사진입니다. 김무중, 채연식 아나운서,
황하주(고인)피디, 그리고 구연도님 입니다

 

 

왼쪽부터 채연식 아나운서, 김무중 아나운서, 황하주 pd,  

구연도 엔지니어(현 부산 사우회장 -사진제공-)님이 함께 하셨습미다.

 

 



 
광복 20주년인 1965년 부터 시작된
1960년대 70년대 부산방송국 임해공개방송은
언제까지도 머리에서 지워 버릴 수 없는 추억입니다.
여름이면 해운대, 광안리등의 해수욕장을  향해서 전국에서
모여드는 피서객들과  부산시민들이 어우러져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그 자리에서 흥을 도구어 주는 공개방송이야 말로
큰 뉴스거리이기도 했습니다.

 

 


72년 임해 공개 방송 < 해운대 >

 

 
부산방송국에는 해수욕철등
좋은 철을 택해서 찾아 오시는 방송인들도
 많았고 방송인들 행사도 있었습니다.위, 아래 사진은
 1966년에 부산에서 열린 합평회 모습으로  한남석 부산
방송국장님을 비롯해서이덕근, 주태익, 강완수, 김수웅,
김선초, 인운섭, 황희두, 김무중,이춘기, 최종채, 포항
김성배님 그리고 성함이 잘 기억나지 않은분을
포함해서 그 때 이름 있었던 방송실무진이
 많이 참여 하셨습니다. 

 

 

 

 

 

TV기술 조정계장을 하셨던 오승룡님이

 

부산 TV개국과 진해군항제를 계기로 이 지역에 와

 

촬영한 사진 몇장을 골라 올렸습니다.

 

 

1-지찬수, 2-한백수, 3-김병환, 4-안영순, 5-오승룡, 6-민흥식,

 7-팽광철, 8-이정오, 9-이관종,10-고윤기, 5,6뒤 이만희(운전)

 

 

1-안영순, 2-고윤기, 3-팽광철4-오승룡, 5-이정오, 6-하용득, 6-김종욱(PD)

 

 

1-안영순, 2-고윤기, 3-팽광철4-오승룡, 5-이정오, 6-하용득, 7-이관종

 

 

1-김종욱, 2-오승룡, 3-하용득4-이종성, 5-팽광철

 

 

1-오승룡, 2-하용득, 3-이종성, 4-이정오

 

 

 

1970년 부산방송국 사원들

 

 

 

 초량시대와 TV방송국 개국

 

 


초량동 연주소 건물입니다.

 

 

다른 방송국에서 TV방송은 1978년부터

시작 되었지만 도시의 규모로보나 일본과의 지리적

관계로 보나 민영TV방송 등 제반 여건은 이곳에 조속한

TV방송의 필요성이  커  초량에 새로운 방송국을 1972년 11월

15일 방송을 시작 했습니다.이로서 37년간 오랜 세월을 지켜오던

대창동 시대는 마감 되었습니다.하루에 한 차례의 뉴-스와 주당 2회의

프로그램을제작 방송 했습니다.   처음에는 뉴-스에 필림은 거의 사용

되지 않았고 아나운서 스트레이트 방송으로 진행 됐습니다.
프로그램도 출연자의 대담 등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초량시절은 16년이라는 짧은 기간이기는

했어도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역 TV방송의 문을

열었고 이곳에서 칼라 방송을 했다는데 역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저에게도 시청자에게 봉사 잘 하고 시청료

받으라고 TV에도   출연시켜주고   라디오에도   

 매주 시간을 내 주셔서 방송에 참여 했습니다.

방송 하시는 분들에게 감사 했습니다.

 

 

 

 

 

TV방송이 시작 되고 첫 방송 모습입니다.

 

 

 

 

 

아래 사진은 하나밖에 갖추어지지 않았던 연주실의 모습입니다. 


 

남천동 청사이전

 

 

 


 

 

이곳 초량에서 16년을 이어 오다가 지금의

남천동 현대적인 시설을 마련해서 자리잡은 것은

1985년 9월에 착공해서 ( 위사진) 88올림픽이 있던 해

5월 준공을 보았습니다. 아래는 청사 준공 테잎커팀

모습입니다. 당시 부산방송본부장 김은구님과

 KBS사장 정구호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제가 부산방송국에 있을 때에는 라디오 출력 100Kw
(그후 250Kw로 증설)의 김해 송신소가 있었고 진주와 함양에

1Kw중계소, 하동과 거창에 250W가 있었습니다. 남해에 TV중계소

당시 영도에있는송신소는 영상출력 2Kw에 (후에 10Kw증설)챠넬 5로

방송되었고 울산과 가 있었습니다.일본과 가까운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1962년3월 1일부터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밤 12시 부터 30분간대일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연주소는 방송초기부터 6.25피난시대를 거친대창동시대를

 마감하고 72년에 이사온 동구초량동 1143번지의고관 부근에 800평 3층

건물로 여기에 TV연주실 한개와 라디오 연주실 2개,  그리고

 아나운서부스가 네 개를 갖춘 건물 이었습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종교시간, 생활상담실,
즐거운 한나절, 노래자랑, KB향연, 고요한 밤에,

어린이시간 등 5시간 정도의 자체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속 단체로는 KBS전속 경음악단이 있었고
가수가 두분이 계셨습니다.  KBS전속 아기 노래회와
KBS전속 동극반도 있었고 어머니 노래회와
자문위원회가 있었습니다.

 


1970년도 부산방송국 직원들의 모습입니다.

 
 

 

 1974년도 기준으로  인원 구성은

국 장 고 김득성님

 


 방송부장 고 김헌수님,
 
방송과장 황희두님, 보도과장 권용중님, 
기술부장 박한국님, 
 
라디오조정과장 구연도님,  TV조정과장 김영송님,
 
김해송신소장 박재복님,   영도송신소장 이근우님
서무과장 신창기님,        북부출장소장 김영안님,
동부출장소장 박준규님,   울산출장소장 박성우님

P    D
 
김정수, 황하주, 박찬곤, 문수복,
채연식님 아나운서 윤두식, 강미란, 송광자님,
기 자 이기우, 김덕조, 양영곤, 곽순욱, 오순오님,
엔지니어 김창한, 허태호, 주방호, 이우문, 정엽수님,
 
행    정
 
정종철, 김광수님, 업 무 박학식, 손진윤, 김덕준,
서정관, 박영창, 엄경애, 박영희, 김종순, 미쓰왕, 미쓰공,
여영환, 허태순, 오세규, 박조신, 이상근,
박호영님, 등이 계셨습니다.
 
 
 
 날 짜
내 용
1935.09.21
    사단법인 조선방송협회 산하 부산연주소 개소, 호출부호 JABK로 방송개시
    (출력250W, 주파수 1,030KHz)
1947.10.1
    대한방송협회 호출부호 HLKB로 변경 시행
    (주파수 650KHz로 변경, 출력 500W로 증강)
1950.04.10
    부산방송국 승격
1961.12.09
    동래송신소 설치, 주파수 890KHz로 변경
1968.04.10
    부산 TV 송신소 개소 (CH9)
1969.05.08
    동래->김해송신소 이전 개소(주파수 890KHz)
1971.04.10
    무룡산 중계소 개소
1972.06.26
    부산방송국 신축이전 (대청동->초량)
1972.11.15
    부산방송국 TV 로컬방송 개시
1973.03.03
    한국방송공사(KBS) 부산방송국 개편 발족
1980.07.10
    부산방송국 FM 라디오 방송개시 (주파수 92.7MHz)
1980.12.01
    부산 동양TV 및 CBS 통합
1981.02.02
    제3TV 교육방송개시 (CH23)
1981.03.16
    제2라디오 방송개시 (주파수 97.1MHz)
1981.06.02
    제3교육라디오 방송개시 (주파수 107.7MHz)
1982.05.10
    울산중계소 로컬방송 실시
1982.12.21
    산내 TVR TV중계소 개소 (출력 10W, CH12)
1982.12.31
    양산TVR 제2TV중계소 개소 (출력 10W, CH29)
1983.05.14
    무룡산산중계소 제2TV 개국 (CH27)
1983.09.05
    무룡산중계소 음악, 교육FM 준공
1983.12.24
    용등TVR 제1TV중계소 개소 (CH19)
1983.12.31
    용등TVR 제3TV중계소 개소 (CH35)
1984.07.16
    부산방송본부 승격
1984.11.01
    황령산 천마산TVR TV중계소 개소
1984.11.30
    김해송신소 영도송신소 무룡산중계소 KTA에 이관
1984.12.16
    울산방송국 개국
1984.12.29
    용등 산내TVR 제3TV중계소 개소
1985.04.19
    영도송신소 증축공사 준공
1985.09.21
    부산방송본부 신축사옥 기공 (대지 7,425평, 연면적 9,001평)
1986.07.30
    장산TVR 제1 2TV중계소 개소 (CH29,CH31,100W)
1986.12.30
    용호TVR 제1TV 중계소 개소 (CH13, 100W)
1987.06.18
    장산TVR 제3TV 중계소 개소 (CH25, 100W)
1987.12.30
    용등TVR 제2TV 중계소 개소 (CH41, 10W)
1988.05.20
    부산방송본부 사옥 준공 이전 (초량->남천동)
1988.06.01
    김해송신소 영도송신소 KTA에 환원
1988.06.21
    만덕TVR TV 중계소 개소
1988.12.31
    산내TVR 제2TV 중계소 개소 (CH12, 10W)
1990.07.12
    만덕TVR 제2TV 중계소 개소 (CH19, 100W)
1992.12.24
    반송 괴정TVR TV 중계소 개소
1993.04.21
    부산방송총국 개칭
1993.12.01
    용동매산 하북TVR 제3TV 중계소 개소
1994.12.08
    녹산TVR TV중계소 개소
1995.11.25
    기장TVR 중계소 개소
1996.10.31
    김해송신소 DIGITAL송신기 교체 완료
2001.12.01
    영도 송신소 자동화 완료
2001.12.03
    제1라디오 표준FM 신설 (103.7MHz)
2001.12.08
    연주소 송출운용센터 개소
2003.12.05
    황령산 DTV 송신소 준공
2004.07.12
    황령산 송신소 DTV방송 송출 (D1TV-CH14, D2TV-CH14, D3TV-CH18)
 
 
 

 

 

 

 

2010년 현재 부산방송총국 근무사원

 

 

총국장 : 최석태

 

 

위원 : 전라미, 감일상, 장동범

 

 

 편성제작국

 

국장 : 이남기

 

선임 : 김득수, 차경애, 서명환

박중권, 이석주, 이종윤, 박영희, 김동환, 허태원, 강태동, 장충순,

이경균, 박태호, 김창돌, 김종석, 이양훈, 이영덕, 장수연, 박지은,

김미해, 박영태, 고은령, 심하원, 이경민, 김영철, 권태숙, 하인자,

박명숙, 정종인, 조윤화, 장현순, 박경의, 송진순, 허양도, 손준영,

오인교, 김경진, 최용수, 강한수, 장홍태, 장홍태, 허용석, 이선동,

유태진, 김요섭, 최영송, 이해선

 

보도국

 

국장 : 정해석

 

선임 : 지상윤, 김흥배, 백성진

직원 : 장성길, 권태일, 황현규, 김영인, 김경섭, 허선귀, 최재훈, 이상준,

강지아, 이철재, 김지원, 안종홍, 배병오, 배도업, 김창한, 강상윤,

권종욱, 성기준, 배성직, 공웅조, 노준철, 이이슬, 강성원, 최지영,

박선자, 김숙자, 박정빈, 이극민, 오한용, 이동영, 한석규, 류석민

 

 기술국

 

국장 : 김정호

 

선임 : 최재석, 허수영, 황점봉

신승우, 조상우, 곽원용, 김병국, 홍철용, 엄동욱, 김동섭, 이수욱,

한현우, 이인승, 김병기, 이중희, 성백환, 정승호, 박인철, 한상헌,

박동인, 이재권, 이창원, 안철호, 송성준, 김성태, 전경환, 박광덕,

조석윤, 박우근, 이기룡, 강경덕, 이두석, 홍성수, 최기섭, 박동희,

김진오, 김윤근, 이대국, 조병학, 이경동, 전창식, 윤정호, 박종대,

송석진, 강태훈

 

 총무국

 

국장 : 황영만

 

선임 : 이용화, 이학상

직원 : 박응훈, 이미화, 이상경, 박미옥, 조봉수, 김제욱, 정재량, 맹성수,

이영주, 박철효, 박종식, 강호영, 김영수, 김상재, 진정수, 최주호,

윤영만, 조일제, 엄경혜, 최재관, 이춘봉, 문정명, 박현수, 서정세,

한규봉, 백성한, 김영인, 이현균, 황영만,

 

 김해송신소

 

소장 : 이세형

직원 : 박용일, 차영철, 이성철, 박기석, 지봉화, 정성기, 허형권

 

 울산방송국

 

국장 : 박홍일

 

선임 : 곽병재, 조한제, 박정원, 황진희, 최원태

직원 : 이지훈, 주우권, 조원숙, 박찬옥, 이창헌, 권영수, 박해룡, 김철식,

원유빈, 화기영, 이중영, 정민수, 서희동, 김진문, 황권일, 김근영,

이현진, 양희진, 박중관, 강성기, 하용일, 남상삼, 강구탁, 서홍석,

양성용, 예종훈, 서영대, 정석환, 이상윤, 이춘근, 지형철, 안지민,

박영하, 이상우, 김계애, 김재철, 기경희, 이수은, 이지향, 김창관,

김용삼, 임순출, 이현경, 홍운기, 김무천, 이상호, 서동국, 김춘수,

노명수, 박찬수, 정용조, 정길재, 정상대, 김병세, 김용진, 정인수,

한국현, 박상운, 장진식, 손옥규, 안승, 오병선, 오장수, 김성연,

김성연, 박택용, 윤해광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KBS 부산 방송총국의 어제와 오늘 < 1 >

 

http://blog.daum.net/jc21th/17780085

KBS 부산방송총국의 어제와 오늘 ( 2 )
http://blog.daum.net/jc21th/17780086

 

최초의 지방방송국 부산 JBAK가 건설 되던 때 1935년 9월 21일 (HLKB)

 

http://blog.daum.net/jc21th/17781478

KBS 부산방송총국과 부산사우회 창립 17주년의 추억, 2007

http://blog.daum.net/jc21th/17781137

 

 

 

 

 

정평률선생님 글

 

 

위,초량연주소 사진.....

KBS 로고가 큼직하게 씌어 있었던

초량동 구 건물을 보니, 수험 표 달고 시험 보던

옛날 기억이 납니다. 당시, 아나운서 조계식/김병래

/고광수/김운대/왕종근씨 등이 계셨습니다

 

 

 1961년도 부산방송국 직원들입니다. 윤길구 국장님을

비롯해서 박호준 방송과장, 김재억 기술과장이 계셨습니다. 글자를

알아보시기 어려우실 것 같아 다시한번 써 보겠습니다.  왼쪽부터 박인필 아나운서,

 안구호 경리계주임, 김재억 기술과장, 박호준 방송과장, 윤길구 부산방송국장, 하영호 보도주임기자,

 황기술 기자, 김덕조 기자,민병희 기자,>사진 재2열 김정수 프로듀서, 김경동 아나운서, 김무중 아나운서,

 송기만 아니운서, 김정림 아나운서, 정창명 PD, 김두옥 아나운서, 이인재 기술과원, 강순희 기술과원,

 정영철 기술과원 박동수 아나운서>사진 제3열 김학의 수위, 이청원 서무, 김재한 운전기사,

 김광호 어린이합창단 지휘자, 고성호 PD, 하춘근 기술과 선임기사,강태길 기술과원,

안승표 음악주임, 박정국 기술과원, 이병철 동력실담당, 제일끝 이용억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위,초량연주소 사진.....KBS 로고가 큼직하게 씌어 있었던 초량동 구 건물을 보니, 수험 표 달고 시험 보던 옛날 기억이 납니다. 당시, 아나운서 조계식/김병래/고광수/김운대/왕종근씨 등이 계셨습니다
고맙습니가.
본문에 옮겼습니다.
옛날에 초량동에 방송국있을때 딱 한번가보고 그후로 남천동 에는 콘서트나 그리고 방송국 라디오 방송에도 자주갔었는대'요 이젠 부산그곳도 저한탠 아련한 추억이 많이 있는곳입니다 지금도 남천동에 kbs가 자리 하고 있는지요 부산에가면 한번 가보고싶습니다 예전에 왕종근아나운서님 부산근무할때는 자주 갔었어요 아주오래전이죠 그립네요
고맙습니다. 남천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