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음악 백년

이장춘 2019. 6. 6. 18:57



   


정풍송(정욱)의 인생 역정과 조용필의 노래 ‘허공’

    

 

‘허공’은 민주화를 갈망하던

정풍송(정욱)의 울부짖음이었다.

1967년부터   52년간   우리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던 노래들. 조용필의 ‘허공’,

‘미워미워미워’  ,    한상일의 ‘웨딩드레스’

홍민의 ‘석별’,  한혜진의 ‘갈색추억’

등    2,000여 곡의 노래를 작사하고

작곡, 편곡해서 패티김, 이미자,

 

최희준, 조영남, 인순이, 최진희,

김연자, 설운도, 주현미 등   당대 최고

인기 가수들의 노래로 불려졌다. 이 노래들을

만든 주인공 정풍송의 올해 나이 79세다. 몇 달

후면 팔순이 되는 정풍송은    아직 작품 활동이

활발하다. 지난 5월 나훈아의 신곡으로 발표되어

인기를 모으고 있는 노래‘무심세월(無心歲月)’

 비롯해  최근엔  색다른   기획으로

신곡들을 녹음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등의 국민

들이 즐겨 애창할 수 있는  노래들을  현지어로

만들고 있다. 베트남어로 된 노래 두 곡, 중국어로 된

노래 세 곡,   인도네시아어로 된 노래   두 곡 등

모두 12곡을  작사,  작곡, 편곡해서  현지

해당 국가 가수들과 국내 가수

윤수현 등이 녹음했다.

    



 

‘허공’은 1985년 조용필이

불러 크게 히트한 이래 국민가요로

사랑받고 있다. 이 노래는 정풍송이 민주화를

갈망해서 쓴 특별한 사연이 있다.  1979년 10.26으로

유신정권이 붕괴되고 우리 국민들이 ‘서울의 봄’을

생각하며목전에 다가온 민주화의 꿈에 가슴 설레며

한껏 기다리고있을 때,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들의 쿠데타로 그토록 고대하던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한 순간에

허공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정풍송도 1978년 유신 말기

서대문 모처에 끌려가 고생을 좀 했기에

누구 못지않게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꿈들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 왔다가 허공 속에 멀어져 갔다. 이때의

허망하고 참담한 심정을 안고 울면서 펜을

들었던 노래가 ‘허공’이다.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민주’...」

 

그러나 당시 노래를 비롯한

모든 창작 작품이   발표되려면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거쳐야

했다.「너무나도 멀어진 민주」 이런 문장으로

검열을 통과될 수도 없을 뿐더러 또다시 끌려가

혼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민주」라는

단어 하나만「그대」로 바꾸어 놓으니

사랑노래로 절묘하게 둔갑

하게 되었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것은

1980년이었지만 조용필의 노래로

발표된 것은 5년 뒤였다.    당시 정풍송

작사, 작곡인 ‘미워미워미워’가 크게 히트했고

 이웃나라 일본에서 까지 히트하면서 조용필이 몇 년간

일본에서    활동하게 됨에 따라   반주음악까지

녹음해 놓고 몇 년간 기다리다 1985년에야

노래 녹음을 하게 되었다.

 

‘허공’이 발표되자마자

크게 반향을 일으켜 오늘날까지

국민가요로 애창되고 있다. 비록

「민주」 대신 「그대」로 바꾸었지만

작가와 대중들과의 「이심전심」이

아닌가 하고 정풍송은

생각하고 있다.

    



 

이런 정풍송에게 최근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37년 전

작사, 작곡, 편곡해 김연자가 불러 히트했던

 노래 ‘진정인가요’가 지난 4월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


에서 송가인 · 김소유가

 이 노래로 불꽃 튀는 대결을 벌여

 많은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끌게

되면서 유튜브를 비롯해 각 매체에

크게 부각하며 다시 크게

히트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옆자리

친구가 「내 고향 남쪽바다~」

하며 부르는 ‘가고파’를 듣고 홀려

“나도 저런 작곡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고 훗날 ‘가고파’의 작곡자인

김동진 교수님이 계시던 서라벌 예술대

음악과에 진학해 김동진 교수님의

작곡 지도를 받았다.

    


1962년 입사한 부산

MBC가 사회 첫 발을 내딛었던

첫 직장이고    현재 재경 부산

MBC 사우회장을 맡고 있다.

    

 왼쪽부터 전응덕, 정풍송, 이성화


 

*부산 MBC 개국 보도과장을 지낸

전응덕 선생과 개국 아나운서 이성화 선생의

안내로 2019년 6월 3일 작곡가 정풍송 선생을

만나 많은 얘기를 들었다.      듣다보니 얘기가

끝이 없었다.       마침 정풍송 작곡 데뷔 50년을

맞아 2017년 5월 20일자에 동아일보 김상철 기자가

동아일보 지면 한 페이지에 걸쳐 특집 기사로

올린 글이 있다기에     더 자세한

얘기는 그 글로 대신한다.



허          공

 

작사 정 욱

작곡 정풍송

노래 조용필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

스쳐버린 그날들 잊어야할 그날들

허공 속에 묻힐 그날들

 

잊는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미련이 남아

돌아선 마음 달래 보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설레이던 마음도 기다리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이야기

스쳐버린 그 약속 잊어야할 그 약속

허공 속에 묻힐 그 약속

 

  


조용필이 허공을 처음 부르던 때




동아일보 2017년 5월 20일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부산 MBC 초기방송비화 특별좌담, 이성화, 전응덕, 최광민, 김능화, 김영효, 정풍송, 김기자 |

http://blog.daum.net/jc21th/17782558






김수환 추기경님과 정풍송 (정욱)

김추기경님께 앨범을 드리면서









 


길 위로 나들의 날게짓하는
유월은 흐르고 물 흐르 듯

시간의 변함도 따라가는
구름아래 세상이 펼쳐지는
노을진 저녁길
떠날 수 없는 발길이 서성입니다
꿈을 꾸는 분들은 행복한 분들입니다. 더 나은 자신의 미래와 후손의 행복이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자신의 행복을 꿈꾸기 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하고 행복을 심어주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그런 흔치않은 분 중의 한 분이 이장춘 춘하추동 방송국장님입니다. 아무것도 바라지않고 오직 KBS의 역사와 전통, KBS인과 그 후진의 행복을 위해 방송사료를 챙기고 다듬고 정리해 오셔서 사이버 박물관의 기틀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사우회 30주년 유공자 선정과 감사패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존경하는 세 분의 함께 하신 모습을 영상으로나마 뵙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승컵향한 새벽의 시간 선수들의
당당한 모습에 박수를 칩니다
역시 대한의 건아들입니다

아침밥 안먹어도 배가 불러오는 듯
기쁨을 참아낼수가 없네요
지금도 산책할 때면 트롯트 2시간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행복을 느낍니다.





안녕하세요?

제주도 전북을 왕실에 진상하기 위해 물 속으로 들어 가 작업한 것은
여자들이 아닌 남자들이었습니다.

17세기 말 제주의 해녀는 약 1000여 명이었는데, 원래 이들은 대부분
전복이 아니라 미역을 땄습니다. 진상할 전복을 캐는 것은 주로
포작인(浦作人·제주 방언 ‘보재기’)으로 불리는 남자들의 일이었지요.

1601년 제주도에 어사로 파견됐던 김상헌(1570∼1652)이 쓴
남사록(南사錄)에 이와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포작하는 자들은 홀아비로 죽는 자가 많다…. 본주(本州)에 바쳐야
할 전복의 수가 극히 많고, 관리들이 공(公)을 빙자하여 사리를 도모하는
것이 또한 몇 배나 된다. 그 고역을 견디지 못하여 흩어져 떠돌다가….”

제주 목사(牧使)가 해적을 정탐한다는 구실로 포작인들을 남해안의 섬으로
데려간 뒤 전복을 따도록 시키는 일까지 벌어졌답니다. 광해군일기 1608년
기사도 “전복을 잡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로, 종일토록 바닷속에 들어가도
겨우 한 두 개를 건진다”고 나옵니다.

수많은 포작인들이 수탈과 고역을 피해 제주도에서 전라도, 경상도 해안으로
도망쳐 나갔고, 300여 명이던 포작인은 18세기 초 88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1694년 제주에 부임한 목사 이익태는 전복을 딸 남자가 급감하자 미역을 따던
해녀들에게도 전복을 캐 바치도록 했다고 해요.

해녀들의 바다 물질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으나 포작인들의
비극은 옛 전설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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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밀양출신 정풍송작곡가님
작곡한노래 많은사랑을 받습니다
올해 팔순이 돼가는데도 동안이시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