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이장춘 2019. 5. 5. 09:13

 





 

 

 1927년 2월 16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방송을 내보내던 시험방송 시절
부터 방송에서얘기 보따리를 풀어 유익하고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 주셔서 우리나라 방송사에서
최초로 방송에 출연한이 연사기 되였습니다. 내용은
 어린이에 관한 얘기였지만 어른들에게도 재미
있고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최초의 방송출연자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제정하던때   



 아래 프로그램에서 보시듯이 

 시험방송 프로그램인  2월 15일 1시 5분  

육아강좌시간에는  "어린 아기와 작란감"이 

 방송 되었고 2월 16일 개국일은 개국 행사로 방송이 

 안되었지만  다음날  2월 17일에는 "어린이와 직업"이

 방송되었습니다.        이때는 새싹회를 구성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하는 등 어린이들을 위해서  

여러 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1899년에 넉넉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를  제대로 다니기 어려워
선린상업학교 2학년을중퇴하고 총독부 일을
 거들기도 했지만 얼마 안있어 그만두고 1917년
손병희 선생님의 사위가 되고 청년운동 단체인
청년구락부를 조직해서  활동하셨습니다.  
191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해서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1920년 일본 東洋大學에서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하고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해서
본격적으로 어린이 운동에 나섰습니다.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제정한다고 하자 계각층에서 호응을 보여,   1922년 5월 1일, 
서울 안국동 천도교  광장에서 기념념행사를 가졌습니다. 
안국동 천도교회관  앞에 기념비가 있습니다.
 


 
1923년 아동 문학가이고 작곡가이자
연극에도  힘을 기울이셨던 윤석중, 윤극영,
마해송님등과 색동회를 구성하면서 어린이 날 행사를 
보다 사회적으로 확대시켜 1923년 5월 1일 정식 창립일로
 하고   대대적인 행사를  염과 동시에  어린이 헌장을
선포, 어린이를 대하는 길잡이로 삼았습니다
 


 
어린이 날은  1927년부터
 5월 5일로 되었고  해방후에도
이 행사는 계속되었으며    1961년
제정 · 공포된    아동복지법에  따라
 국정기념일로   되어      여러 행사를
가졌습니다.  1975년부터 공휴일이
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천제적인
이야기꾼으로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릴 수도 있는 재능을 지니셨기에 선생님이
계시는 곳에는 어린이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였습니다. 1927년 방송을 실시하면서
그 역량은 한층 더 발휘되었습니다.
 
1931년 고혈압으로 세상을 뜨실 때까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가, 민족주의자,
색동회 창립자, 아동 문화운동가, 언론인, 교육자 등등
선생님에게 붙은 수식어는 많습니다.  선생님이 가신
 뒤에도  색동회를 같이 하시던 윤석중, 윤극영님
등이 그 뜻을 이어가셨고 이분들의 활동은
방송과     깊은 관계를 가지면서
오래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방송국에서는 방송초기부터
어린이에 관한  얘기나 노래,  방송극등이 
 중요시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라디오방송에
 귀를   기울이던 시절에는      어린이  프로그램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졌으며    지금도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은  중시되고 있습니다.




    박창학님 글




우리나라의 '어린이날'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어린이 날'이라는 용어와

'어린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어린이'라는 말은 '어리석은'을 의미했지요.

어른들은 아이들을 '이놈, 어린 것, 애들, 애 녀석,

아해 놈'등으로 불렀습니다.


지금처럼 의무교육이 시행되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농사일을 하거나 도시로 나가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소파 방정환이 생각한 '어린이'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하며 마음껏 뛰놀고 걱정없이 지낼수 있는 모습이지만

일제강점기 치하의 조선에서는 어린이들이

즐겁게 지낼 수도, 존중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도

민족정신을 일깨워주고자 각 지역에 소년회가

창설되기 시작했습니다.


3·1운동 이후 일본의 도요 대학교

아동 미술과에 입학한 방정환은 아이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을 뜨고,

 비록 가혹한 현실일지라도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본격적인 소년 운동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또한 아이를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의 독립된

사회 구성원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날의 기원은 1921년 5월 1일,

방정환이 앞장서 이끌었던 '천도교 소년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방정환은 천도교 소년회에서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갑시다.'라는

표어 아래 소년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923년 3월에는 '색동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습니다.

색동회가 1923년 5월 1일

노동절에 맞추어 서울에서 조선소년운동협회

주최로 첫 어린이 날 기념식을 거행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첫 '어린이 날'이 시작되었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 묘역탐방

망우공원에서 자세한 글 아래 연결










관련글 보기



어머니의 마음, 80년간 한결 같이 불린 양주동시, 이흥렬(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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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마음 어린이날 노래 방정환 가정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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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묘지공원·애국지사·유명문화예술인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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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날 노래
 
1.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2.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 첨부파일

대한의 어린이.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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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 망 / 정 보]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 http://ab88.kr/488/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