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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이순신 장군한테 곤장 맞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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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事論壇/時流談論

2019. 8. 2.

중앙일보 2019.08.01. 00:26

 

지피지기 없는 허술함을 혼내
죽창가, 거북선 개선곡과 충돌해
윤봉길은 '일본 알기'에 열심
'진주만 가미카제 폭격?' 역사 무지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권력의 역량이 드러났다. 정권 성향이 노출됐다. 국정 위기가 만든 풍광이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 사람들’의 민낯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 한 달째다.

말이 쏟아진다. 정부 대응책과 다짐이 이어진다. 이미지 마케팅은 부산하다. 프레임 짜기도 바쁘다. 죽창가, 이순신과 열두 척의 배, 애국과 이적(利敵), 친일과 반일, 경제 전범, 대들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30일 거제시 저도를 찾았다. 그곳은 대통령 별장이다. 그는 그곳 역사를 소개했다. “저도 바다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께서 첫 번째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이 있었던 곳입니다.”


말과 이미지들이 얽혀 있다. 그 나열은 뒤틀린다. 죽창가는 동학농민혁명군을 기린다. 민정수석 시절 조국이 소환한 기억이다. 하지만 그 가사는 이순신의 취향과 다르다. 이순신은 패배의 울분을 노래하지 않았다. 거북선 곡조는 장엄한 개선행진곡이다. 그의 전략은 정교하다. 죽창으로 개틀링 기관총에 맞서지 않는다. 필승 전술·무기로 왜적을 무찌른다. 이순신 이미지에 죽창가가 덧칠된다. 그것은 이순신에 대한 모욕이다.


이순신의 상징은 위기 극복이다. 그 시작은 정보 수집이다. 방책(方策)이 용의주도해진다. 준비는 치밀하다. 그의 장계(狀啓)는 실감 난다. “신이 일찍부터 섬 오랑캐가 쳐들어올 것을 염려하고 특별히 거북선을 만들었습니다.” 당포에서 왜병을 물리친(1592년 임진 5월 29일 당포파왜병장·唐浦波倭兵狀) 보고서다. 당포는 거제의 항구다.


이순신의 전쟁 서사(敍事)는 완벽주의다. 대비의 게으름은 엄벌이다. “군관과 색리(色吏·아전)들이 병선을 수선하지 않았기에 곤장(棍杖)을 때렸다. (『난중일기』 임진 1월 16일) 전쟁 방비에 결함이 많으므로 군관과 색리들에게 벌을 주고(임진 2월 25일).”

일본의 통상 규제는 기습적 반칙이다. 도발 조짐은 감지됐다. 낌새는 수상했다. 아베 총리의 자세는 교묘해졌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지난해 10월) 이후 장면이다. 청와대 대처는 원론적이었다.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거기서 멈췄다.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은 급소 찌르기다. 청와대는 일본 동향에 둔감했다. 대비책은 허술했다. 이순신이라면 그런 행태에 어땠을까. 질타가 쏟아졌을 것이다. TV 사극이 떠오른다. “매우 쳐라.” 많을 때 곤장은 70~90대다(난중일기).

『난중일기』에 결정적 구절이 있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번 싸워도 위태함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知己知彼百戰不殆·지기지피백전불태).” 이순신은 조선수군과 왜군을 비교·해부했다. 거기에 균형과 냉정함을 투사했다


‘문재인 사람들’의 언어 공세는 어설프다. 최재성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 위원장이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7월 25일 외신기자클럽). “자국 기업의 피해마저 당연시하는 태도에서 가미카제 자살 폭격이 이뤄졌던 진주만 공습이 떠오릅니다.”

그 발언은 준비된 분노다. 하지만 근대사 상식은 낙제점이다. 진주만(미국 하와이) 기습은 태평양전쟁의 개전 전투다(1941년 12월). 거기서 자살 폭격은 없었다. 가미카제의 집단 자살 공격은 그 3년 뒤다. 일본이 패전 상황에 몰리면서다. 그 말들은 엉성한 조합이다. 성토의 힘은 떨어진다. 일본·미국 기자들은 내심 비웃었을 것이다.


이순신의 지피지기는 매헌(梅軒) 윤봉길로 넘어간다. “매헌은 15세 때 ‘일어속성독본’을 구입, 1년간 자습했다. 주변에서 반대했지만 윤봉길은 적(敵)을 알려면 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어 습득은 일본 역사 공부로 이어졌다.(이성섭 매헌기념관 상임운영위원)”김상기 충남대 교수(국사학과)는 “윤봉길은 상하이 의거 장소(홍커우공원)에 일본말로 일본인 행세를 하면서 무사히 입장, 거사에 성공했다. 그의 지피지기 정신이 힘을 발휘했다.”


‘문재인 사람들’ 대부분은 일본을 모른다. 그들은 식민지의 고통과 저항 역사에 기댄다. 그들의 익숙한 행태는 갈라치기다. 그것은 친일과 반일의 선동적 나눔이다. 그들은 윤봉길을 추앙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에 대한 윤봉길의 반응은 무엇일까. 개탄과 꾸짖음일 것이다.


문 대통령의 독려는 소재 기술의 국산화다. “우리는 일본의 절대 우위 분야를 극복하며 추월해 왔다. 우리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박정희 시대의 어휘다. 그 시절 기업인은 야망을 펼쳤다. 지금의 기업인은 위축됐다. 악성 규제는 넘쳐난다. 강성 귀족노조가 버티고 있다. 청와대 주력은 586 운동권이다. 그들 다수는 돈 버는 고충을 모른다. 산업화 투쟁은 험난하다. 민주화 투쟁 이상으로 어렵다. 글로벌 경제 생태계는 실리와 분업이다. 국산화는 기업인의 도전적 야성에 의존해야 한다. 거기에 폐쇄적 민족주의는 치명적이다.


한·일 관계는 전환점이다. 구성 요소와 정서가 달라졌다. 지일(知日)파 시대가 열려야 한다. 지피지기는 투지와 지혜를 생산한다. 일본을 알아야 한다. 그것으로 양국 우호가 단단해진다. 일본 정부의 역사·경제 교란 때도 마찬가지다. 일본에 익숙해야 한다. 그래야 역전과 역습의 결정타를 날린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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