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꽃 하나가...

복음 송 “작은 불꽃 하나가 큰불을 일으키어….”를 좋아 한다. 작은 불꽃은 번져 나가는 가능성과 희망의 상징이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산을 태워버리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경이롭기만 하다. 나 자신은 그저 “작은 불꽃”으로 큰 산은 못 태우더라도 작은 골짜기의 한 벼랑이라도 태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나온 삶이 그냥 지워버리기는 너무 아쉬워서 이렇게 써 내려가 본다.

Steinberg 부부의 한국 방문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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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교회

2020. 9. 1.

독일 Hannover  Bach strass 모임의 Steinberg 장로부부의 방문   9. 24수-10.10금 1981

Mr. Steinberg은 독일 Hannover  Bach strass 모임의 장로로서 Sch. Elosabeth 수간호사를 국내 선교사로 천거하여  파독 한국의 딸들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며 돌보는 일에 힘|쓰시는 분이시다. 내가 영국에서 선교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세 번이나 하노버를 방문할 수 있도록 초청하여 주셔서 그분들이 하는 한인 선교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든 분들이다. 스타인벡 장로님은 내가 만일 학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자기가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는데 오늘 이렇게 부부가 15일 정도 계실 예정으로 한국에 오셨다. Hannover에 있는 Bach strass 교회 자체가 개방적인 모임이면서, 한국의 딸들을 사랑한 귀한 교회이다. 1966년 한국 간호사들이 서독에 진출하면서 서독 형제교회는 이들을 전도하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그때는 동서독으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에 서베를린은 베를린 형제교회가 연합하여 한국 간호사들 선교를 하기로 했고, 서독은 하노버 박 스트라쓰 교회가 중심이 되어서 선교하도록 했다. 베를린에서 한인 선교를 담당할 자매로 당시 수간호사이며 독신이었던 요한나 자매를 국내 선교사로, 하노버에서는 역시 수간호사이며 독신이었던 엘리사벳 자매를 국내 선교사로 임명하여 하노버를 중심으로 독일 전역에 흩어져 있는 한국 간호사들을 돌보도록 했다. 물설고 낯 설은 독일에서 엄마와 같이 언니와 같이 보살펴 준 이들을 통해 우리 딸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나오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는데, 그 중심에 스타인벡 장로님 부부가 계셨다.

 

조경 사업을 하고 계시는 장로님은 개방적이며 한국 사람들의 영혼구원을 위하여 힘쓰는 고마운 분들이시다. 독일 모임이 한국 모임과 협력하지 않다 보니까 서로가 교제가 없어서 모르는 가운데, 그저 한두 명의 모임 자매들을 통하여 한국 모임의 소식이 전해 지거나, 귀국한 자매들을 통해서 서로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이를 계기로 엘리자벳 자매님이 귀국한 자매들을 통해서 한국을 방문하게 되어서 몇몇 모임들과 교제가 시작되었고 독일 모임에 한국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재독 한인 선교를 위해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와 교제가 없다 보니까, 한국 방문이 그저 개인적인 차원이 되고 말았다. 거의 10여 년간 한인 선교를 위해서 일하고 계시는데 한국 모임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나 개인 그리고 독일에서 돌아와 있는 적은 무리 자매들의 환영을 받게 되어서 너무 아쉬운 마음이었다. 그 대신 한국에 계시는 동안 모임의 중심에서 많은 교제를 하실 수 있도록 내가 준비를 하였다.

 

모실 곳이 마땅하지 않던 나는 불광동에 있는 김종만 형제 집에서 쉬도록 준비를 하였다. 김 형제는 그런대로 사는 형제였고 붙임성과 사교술이 좋아서 모든 사람과의 교제가 좋았고 전도도 부지런히 하는 귀한 형제였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호텔에 머무시는데 경제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할 수만 있으면 한국적인 생활을 누려보시도록 그렇게 했다. 스타인벡 장로님은 자기가 한국 머무는 15일간의 계획을 나에게 부탁하였다. 그분들은 한국을 일주하고 싶어 하셔서 전국일주 계획을 세웠다. 오늘 우리는 스타인벡 부부와 함께 임진각에 다녀왔다. Steinbeg형님이 렌터카로 전국을 돌면서 한국 모임을 방문하기를 원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는 전국일주 길을 서울 강릉 동해선을 따라 울산 부산 제주도 목포 광주로 해서 서울로 돌아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모임들에 소식을 보내어 준비하도록 했다. 그리고 통역으로는 김학열 자매가 함께 하였다.

 

부평교회
오늘 도착해서 피곤은 좀 하시겠지만 시간을 아끼려고 스타인벡 부부를 모시고 부평교회 수요 저녁 집회로 갔다. 교회에서 스타인벡 장로님에게 모든 시간을 주셔서 말씀으로 교제하였고 통역은 독일에서 돌아온 전영숙 자매가 하였다. 집회 뒤 다과와 차를 나누며 우리 한국의 딸들을 위하여 수고해주신 사랑과 헌신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하며 뜨거운 교제들을 나누었다. 강치삼형이 50,000원, 김봉학형이 5000원을 교통비에 쓰라고 주셨다.

 

엠마오 성경학교 9. 25 목
내가 집이 수원이어서 매일 서울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장로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쉬도록 했다. 한국어도 전혀 모르는 장로님 내외와 영어나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김형제 부부가 어떻게 순간순간 지내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오늘은 내가 엠마오 성경학교 강의가 있는 날이어서 혼자 가서 마치고 늦은 밤 수원으로 내려가는 나는 몹시 피곤했다. 엠마오에서 교통비로 20,000원을 주어서 고마웠다.

 

Steinberg 부부 수원 방문  9. 27 토
오늘은 스타인벡 부부를 수원 우리 집으로 모시고 독일서 온 자매들과 수원 교회 몇 식구들이 모이기로 한 날이다. 13평 아파트 좁기는 해도 장로님 부부의 사랑을 받았던 파독 자매들이 뜻밖의 재회에 모두 기뻐하고 감격해하고 있었다. 차려진 점심식사를 함께 나누면서 만남의 교제들이 무르익고 있었다. 귀국한 자매들에게 아버지 같은 장로님 부부와의 해어짐은, 어쩌면 땅에서의 만남은 다시없을 수도 있어서 눈물짓는 그 모습들이 몹시 짠했다.

 

전국 일주  9. 29(월)-10. 8(수) 맑음

오늘은 스타인벡 부부를 보시고 전국일주를 떠나는 날이다. 먼저 우리는 은행에 들려서 독일 돈 마르크를 원으로 바꾸었는데 1000 마르크가 350,000원이었다. 한국 돈의 가치가 얼마나 없는지를 실감했다. 전국일주를 떠나는 일행은 스타인벡 부부와 김학열 자매 그리고 나, 네 사람이었다. 우리는 스타인벡 부부를 모시고 렌터카 회사에 가서 차를 빌렸다.

 

진리 동해를 방문

우리는 서울을 벗어나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영동으로 달렸다. 백두대간의 험산 준령을 오르고 내리는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에 두 분은 감탄하고 있었다. 대관령 꼭대기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강릉시와 동해의 푸른 물이 그동안의 모든 피로를 물러가게 해 주었다. 두 분도 백두대간에서 푸른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이 몹시 즐거워하고 계셨다. 대관령을 내려오기 전에 나는 스타인벡에게 여기서부터는 굽이가 많고 급경사진 도로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알려드렸다. 아흔아홉 굽이를 돌고 돌아 내려오면서 두 분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있었다. 아흔아홉 구비를 무사히 내려와 진리에 닿았다. 두 분은 바로 바다에 나가서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를 즐기고 계셨다. 자매들이 싱싱한 바닷물고기들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여서 조금 걱정을 하였는데, 생각보다 처음 대해보는 한국 어촌 음식을 잘 드셔서 너무 반가웠다. 강릉에서 형제자매들도 들어와서 함께 저녁 집회를 가졌다. 스타인벡 장로는 재독 한인 선교를 위해서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지구 저 편에서 이렇게 귀한 장로부부가 이 어촌까지 오셔서 교제해 주시니 하나님의 은혜가 고맙고 놀라웠다.

 

울산 교회  9. 30. 화 맑음
오늘 우리들의 도착지는 울산이다. 진리 형제자매들의 흔드는 사랑의 손짓을 받으면서 우리는 강릉 안인을 벗어나 푸른 바다와 푸른 산자락이 맞닿은 해안선을 길을 따라가면서 모두의 기분이 상쾌하였다. 밀려오는 대양의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흩어지는 물거품, 망상 바다 흰모래 밭에 끝없이 밀려 오르는 모습들에 노부부는 경탄을 마지않고 있었다. 두 분은 아름다운 자연에 취하고 있었다. 삼척을 지나 근덕면 맹방 마을 바다에 잠시 들렸다. 날씨가 좀 덥고 바다가 좋으니까 스타인벡 형이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여서 나와 둘이서 바다에 들어가서 헤엄을 쳤다. 한 5분이나 되었는지 저 건너편 해안경비대 초소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친다. 밝은 대 낯에 바다에서 수영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한국을 그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는 다시 길을 재촉하여 달렸다. 계속 해안선을 따라오는 아름다운 이 길은 아마 이분들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고 있으리라 믿어졌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울산에 도착하여 형제들의 환영을 받았다. 임시로 모인 저녁 집회였지만 오실 분들은 모두 오신 것 같아서 반가웠다. 나도 울산 지역과 교회에 처음 오는 길이어서 좋은 만남과 사귐이 되었다.

 

부산 대덕교회 방문  10. 1 수 맑음
울산에서 아침을 맞이하였다. 몇몇 형제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교제를 나누고 우리는 부산으로 떠났다. 부산에 들어와서 복잡한 길을 헤치면서 대덕교회가 모이고 있는 김태헌 형님 집으로 갔다. 점심은 부산의 음식으로 대접해 주셔서 고마웠다. 커피를 나누고 김 형님이 우리를 안내하여 부산 시내를 돌아보도록 하여주셨다. 구덕 자매들이 신선한 남해의 해산물로 잘 차려진 저녁상에는 구덕 식구들과 영국에서 선교사로 오신 제시카 자매도 함께하면서 국제적인 교제의 자리가 되었다. 저녁 수요 집회에서 주님은 스타인벡을 통해서 풍성한 말씀의 교제가 나누어졌다.

 


제주도 교회 방문 10. 2 목 맑음
마침 날씨가 좋아서, 처음 방문하시는 이 분들이 불편하지 않게 여객선으로 제주도 갈 수 있게 되어서 반가웠다. 일정이 꽉 짜여있어서 제주도 가는 일이 제일 마음이 쓰였는데, 이렇게 순조로워서 주님께 고마운 마음이었다. 여객 터미널에는 김우종 형제 부부와 형제들이 마중을 나와서 환영하여 주었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서 제주를 일주하면서 색다른 섬나라의 풍광을 즐기면서 두 분은 제주도가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무척 좋아했다.


이 제주도는 김우종 형제 부부의 땀과 수고로 이루어진 교회로 형제자매들이 많이 늘어나서 반가웠다. 김우종 형제 부부의 제주도 개척은 영적으로 나와 깊은 관계가 있다. 김우종 형제가 제대한 뒤 강릉으로 나를 방문하여 잠시 머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진리와 강릉을 개척하고 있을 때여서 함께 두 교회를 번갈아 다니며 주님의 일에 대해서 많은 교제를 하였다. 그때 한국에는 아직 모임이 그리 많지 않은 때였는데, 그때 나의 욕심은 우선 한 도에 한 교회씩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제주도는 누군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나가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마침 때가 와서인지 1974년 11월 30일(토) 나는 서울 젠센 기념관에서 경기지역 연합집회 강사로 초청을 받았을 때 나는 내가 바라는 이 이야기를 힘주어 말하면서, 제주도 개척을 강조하였는데, 성령은 그 순간 김우종 형제를 감동하셨다. 그 뒤로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에서 삶을 마감하는 주님의 험한 길을 따라나서는 종이 되었다. 그때 무역회사에 경리직원으로 근무하던 그의 아내된 자매가 묵묵히 따라준 헌신으로 오늘의 결실을 가져왔다. 이제 돌이켜 보면 그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도 드라마틱할 것이다. 자매의 큰 수고와 희생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이며 그날에 주님의 상급과 칭찬이 계실 것이다. 저녁 모임에 형제자매들이 열정적으로 오셔서 우리들을 환영하여 주셔서 고마웠다.

 

 

목포교회 방문 10. 3 금
하루만 머무르고 떠나기는 너무 아쉬웠지만 갈 길은 바쁘기만 했다. 푸른 바다를 가르면 여객선은 잘 달렸다. 다시 부산에 내려서 터미널에 세워둔 차로 우리는 바로 남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목포로 떠났다. 스타인벡 부부가 온 이때만 해도 경부선, 영동, 남해 고속도로가 있어서 두 분에게 우리나라를 나라 구경시켜드리는 일에 아주 편했다. 부산서 남해를 직선으로 가로질러 목포에 도착하니 목포 형제들이 맞이하여 주었다. 잠시 쉰 뒤 나는 형제들에게 유달산으로 가자고 하였다. 남해에 옹기종기 떠 있는 섬들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놀라게 한 노적봉 사건과 침입자 왜인들의 만행과 바다를 지킨 위대한 이순신 제독에 대해서 스타인벡 부부에게 설명해 드렸다. 저녁 집회에서 독일 모임의 장로 형제 부부를 처음 대하는 형제자매들이 신기해하면서 이런 교제의 자리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 고마워했다.

                  

목포 앞 바다

 

광주교회 방문 10. 4. 토
광주에 도착하여 이원재와 형제들의 환영을 받았다. 광주에는 미국에서 오신 Kunze 노형 부부도 머물고 계셨고, 마침 Doug(이수원) 형제도 내려와 있었다. 나는 우선 모임의 형제들에게 스타인벡 부부를 소개했다. 그리고 나는 이원재 형제에게 주일 설교를 스타인벡 장로가 하도록 부탁을 하고 통역은 김학열 자매가 할 것이라고 의논하였다. 얼마 뒤 이 형제는 나에게 주일 스타인벡 형이 설교를 할 때 자매가 강단에서 통역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나보고 설교를 하라고 한다. 도대체 여자가 강단에서 통역하면 왜 안 되는지 나는 이들의 영적인(사상적) 근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적용 범위가 도를 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 형제는 그곳에 있는 Kunze 선교사의 영향을 받고 있었고, 이 형제가 주관적으로 결정하면 할 일이 아니었다.   

한국인을 사랑하여 한인 선교를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스타인벡 장로 형제 부부의 한국 방문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텐데, 한국말을 못 한다고 해서 이렇게 대접해도 되는 것인지 상식의 문제인 것 같았다. 설교는 그렇다 치더라도 강단에서 공식적으로 인사할 기회도 주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인사 통역도 자매가 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이분들이 주님을 섬겨가는 방식이라면 어쩔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들이 나하고는 정말 영적으로 코드가 안 맞는 분들이었다. 사전에 이런 교제가 있었더라면 광주에는 들려야 할 일이 없는 곳이었다. 나는 한국 모임이 어느 한 곳도 이런 스타일이 되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설교를 하는 동안 김학열 자매가 맨 뒤에 앉아 계시는 두 분을 위하여 나의 설교를 작은 소리로 통역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는 해도 괜찮은 모양이다. 나의 설교가 끝나고 이원재 형제가 광고 시간에 두 분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짧은 소개를 했다. 지금 까지 우리의 교제는 자유로웠는데 광주에 와서 막히고 있었다. 광주를 들린 것은 독일에서 귀국한 자매들 몇 자매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잠 하라”
성경 어디에도 자매가 강단에서 통역을 하지 않아야 된다는 근거는 없다. “잠잠 하라”는 말씀을 교회 안에서 자매들이 모든 활동영역에 넓게 적용한다는 것은 잘못이며 독선적이다. 여자는 왜 안 되는가? 성경 어디에 근거하는가? 자매들이 교회를 주관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지 벙어리 통역까지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이 분들은 바리새인들 같이 너무 확대 적용하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 “...하라”는 적극적 계명 248가지와 “... 하지 마라”라는 부정적 계명 365 가지를 만들어 모두 613가지의 규칙을 만들어 지키게 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613가지 규칙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열성파들이 하나님을 더 잘 섬겨보겠다고 만든 것인데 결국 자신들도 여기에 갇히는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자매들을 “잠잠하게” 하려고 확대 적용하는 모든 생각들은 옳지 않다. 자매들이 모든 모임과 활동에서 항상 잠잠해야 한다면 주일학교, 중 고 등반에 한 남학생이라도 구원받은 형제가 있다면 자매는 가르치거나 기도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어떤 변명이 있다면 그것은 초라한 자기 정당화에 불과한 것이다. 자매들이 잠잠해야 할 때는 교회가 장로들의 주관 아래 모일 때 자매들이 무엇을 안다고 해서 교회를 가르치거나 주관하려고 허락 없이 나서지 말라는 경고 일 뿐이다. 자매들이 장로들의 허락 밑에서 강대상에 나아가 간증, 찬양, 선교보고, 통역. 등 모든 분야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은 잠잠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권위 아래 있다는 표시일 뿐이다. 머리에 쓰는 것도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교회가 공적으로 모일 때이지. 지극히 사생활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너무 확대 적용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자매들이 머리를 가리는 것은 교회가 공적으로(officially) 모이는 시공간에 제한을 받는다. 근거 없는 넓은 적용은 공적 활동에 있어서 남녀 간의 인격과 성차별을 가져오게 할 뿐만 아니라, 복음의 확장과 교육 발전에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  

나는 오늘 일들을 일기장에 쓰면서도 나 자신이 너무 흥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으면 좁은 대로 넓으면 넓은 대로 다 나름대로 주님을 높이고 더 잘 섬겨보려고 하는 그 정성스러운 마음이야 누가 모르겠느냐마는, 그러나 이런 일들은 정말 나하고는 안 맞았다. 주일 오후에 우리는 광주에 더 머물러야 할 일이 없어서 떠났다. 우리는 국도를 타고 올라오는 넓은 호남평야가 황금 들판을 이루고 있어서 풍요로웠다. 두 부부는 이런 신기한 황금 들판을 보는 것이 처음이어서 기념사진들을 찍고 그랬다. 서독에는 밀 들판은 볼 수 있지만 황금색은 나지 않아서 아주 이색적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대전서부터는 경부선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로서 스타인벡이 원하는 한국 일주 여행은 그냥 자연과 문물을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교회들을 방문하여 교제하는 영적 즐거움의 여행이 되었다.

 

서울 형제들과의 만남 10. 9 목
나는 스타인 부부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서울 지역 형제들과 교제의 시간을 마련하였다. 한국 여행과 모임 방문을 다 마치신 스타인벡 장로님 부부를 모시고 엠마오 사무실로 갔다. 여러 형제들이 한인 선교를 위하여 힘써 주시는 박 스트라스 교회와 스타인벡 부부에게 감사의 말씀들을 나누었다. 어떤 형제들은 한국 형제들이 독일을 방문하는 일에 협조해 주도록 말하였다. 그러자 스타인벡은 누구든지 오시면 환영한다고 대답했다. 실은 한국 형제의 말은 초청장과 비용 이런 것을 포함한 정식 초청의 협조를 뜻하는 것이기는 했는데, 이런 대화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분들이 필요하면 알아서 초청을 할 텐데... 어려운 모습들을 그렇게 드러내고 있었다. 한 시간여의 화기애애한 교제의 분위기는 두 분이 한국 교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DM 1000 선물
모임이 마쳐지자, 스타인벡은 나에게 똘똘 말은 봉투 하나를 주신다. 집에 와서 보니 1000마르크짜리 한 장이 들어 있어서 이렇게 큰 것을 주신 것에 대해서 놀랬다. 우리에게는 너무 큰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고 많은 아내를 위하여 세탁기 하나를 사고 책을 좀 사기로 했다.

 

한국을 떠나시는 Steinberg 부부 10. 10. 금
세월은 빠르기도 하다. 벌써 보름이 지나 오늘은 스타인벡 장로부부가 독일로 돌아가는 날이다. 우리는 김포 공항으로 나갔다. 여러 형제들과 자매들도 나와 주었다. 거의 한 달간 한국을 방문했던 스타인벡 장로부부는 한국 형제자매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가셨다. 그분이 한국과 한국 모임에 대해서 무엇을 느끼셨을까? 한국의 딸들을 위해서 처음 서독지역에 한인 선교를 주도하시던 하노버의 Bach Strass 교회는 히틀러 핍박 시대에 교회 생존을 위하여 침례교회의 지붕 아래서 나치의 환란을 피한 인연으로, 지금은 서로 선교와 교육을 위하여 협력하는 관계에 있다. 이 교회의 특징은 예배 때 자매들이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맡기고 있어서, 쓰던지 안 쓰던지 교회 차원에서는 상관하지 않는다. 한인 선교를 위해서 많은 열정을 쏟고 계시는 이런 귀한 분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분들의 이런 사랑과 수고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며, 사랑의 빚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이런 빚은 한국에 와 있는 타문화권 사람들에 대한 선교와 지원으로 갚아나가야 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김제화

jewhaa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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