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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간디 2012. 12. 27. 22:12

/ 박완서

 

 

 

일전에 시내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올 때의 일이다. 택시를 탔는데 택시가 동대문 쪽으로 가지 않고 돈암동 쪽으로 도는 것이었다.

한번 잡은 방향을 바꾸기도 어렵거니와 거리상으로 큰 차이가 날 것 같지 않길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라고 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운전사 쪽에서 뒤늦게 방향을 잘못 잡을 걸 알고 미안해 하더니 삼선교 쪽에서 질러 간답시고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변하는 신흥주택가나 도심지와 달리 안정된 한옥촌은 아늑하고도 구태의연 했다.

그곳엔 내가 여학교 시절을 보낸 집이 있을 터였고, 택시는 뜻하지 않게 그 집 앞을 지나는 것이었다.

조그만 한옥인 그 집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 그 집이 있는 좁은 골목은 한 쪽의 집들이 헐려서 큰 한길이 되어 있었다.

골목 속에 다소곳이 있던 집이 아무런 단장도 안하고 별안간 한길로 나 앉은 건 어딘지 무참한 느낌을 주었다.

마침 하학 시간이라 여고 학생들이 삼삼오오 그 앞을 지나고 있었다.

여학교 시절을 보낸 지금도 변하지 않은 옛집과 그 앞을 지나는 여학생들의 모습은 문득 나에게 시간관념의 혼란을 가져왔다. 울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실제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조용히 흐느끼고 싶은 잔잔한 서러움이 목구멍까지 치올랐다.

차는 곧 그 앞을 지났다. 나는 결국 울지 못했다. 쉰 살이 가까운 뻣뻣하게 굳은 여자가 그까짓 일로 차마 어찌 울기까지 하랴. 그러나 그때의 그 느낌만은 늙은 여자 답지 않은 쎈치였다.

그 집과의 만남은 쉰 살 여편네에게 열여섯 소녀의 감상을 일깨워 줄 만큼 그 집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꿈을 꾸었다.

숱한 꿈은 자라면서 맞닥드린 현실에 혼비백산, 지금은 그 편린(片鱗)조차 지니고 있지 않다. 나는 그때 내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생각해 낼 수가 없다. 다만 그 꿈과는 동떨어진 모습이 되어 늙어가고 있음을 알 뿐이다. 하루 하루를 사는 내 모습이 별안간 한길로 나 앉은 나의 옛집의 모습 만큼이나 초라하고 어설프다는 걸 알 뿐이다.

나는 매일 아침 하루의 계획을 세운다. 집에 있는 날은 집에서 할 일을 빠듯하게 짠다. 내가 할 일, 아이들에게 시킬 일, 파출부에게 시킬 일을 분류하고 내가 할 일을 또 가사와 원고 쓰는 일로 나누어 시간 배당을 엄격히 한다. 행여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 이 시간 배당이 차질이 생길까봐 전전긍긍 한다.

나가는 날은 나가서 볼 일을 또 그렇게 꼼꼼히 짠다. 외출하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 볼 일은 어느 하루로 몰아서 치루기 때문에 나가서 볼 일도 빠듯이 짜여져 있다.

허둥지둥 종종 걸음을 친다. 약속하지 않은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나 차라도 나누게 되어 시간을 빼앗기게 되면 어찌나 겁이 나는 것처럼 앞만 보고 종종걸음을 친다.

계획한 시간을 예기치 않은 일에 빼앗길까봐 인색하게 굴다 보니 거의 시계처럼 살려니 꿈이 용납되지 않는다. 낮에 꾸는 꿈이란 별 건가. 예기치 않은 일에 대한 기대가 즉 꿈일 수 있겠는데 나는 그걸 기피하고 다만 시계처럼 하루를 보내기에 급급하다.

시계처럼 산다면 제법 정확하고도 신용있는 사람 티가 나지만 시계가 별 건가. 시계도 결국은 기계의 일종이거늘.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사람이 기계처럼 살아서 어쩌겠다는 걸까.

낮에 이렇게 기계처럼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밤엔 자연히 죽은 숙면을 하게 되어 거의 꿈을 안 꾼다. 꿈을 안 꾸는 것인지 못 꾸는 건지, 꾼 꿈을 되살려 기억할 시간을 안 갖기 때문에 일껏 꾼 길몽 영몽(靈夢)을 아깝게도 망각의 구렁텅이에 처넣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숙면한다고는 하지만 꿈이 없는 잠은 뭔가 서운하다. 고기 없는 물이 서운한 것처럼, 고기 없는 물이 아무리 깨끗해도 살아 있는 물이 아닌 것처럼 꿈이 없는 잠은 산 사람의 잠일 수 없을 것 같다.

조금 덜 바빠져야 겠다. 너무 한가해 밤이나 낮이나 꿈만 꾸게는 말고, 가끔 가끔 단꿈을 즐길 수 있을 만큼만 한가하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계획 밖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길 소망하면서 가슴을 두근대고 싶다. 밖에 나갈 땐 정성껏 화장을 하고 흰 머리카락이 비죽대지 않나 살펴 머리를 빗고, 어떤 옷이 가장 잘 어울리나, 이옷 저옷 입었다 벗었다 하고 싶다. 예기치 않은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어서.

이렇게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아마 밤에도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어려서 꾼 것과 같은 색채가 풍부한 꿈을.

나는 어려서 특히 꽃과 과실의 꿈을 많이 꾸었었다. 진분홍 꽃으로 뒤덮인 들과 산을 끝없이 헤맨다거나, 놀랍도록 색채가 선명한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 밑에서 치마 폭을 벌리고 과일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꿈이라던가.

이런 꿈 얘기를 하면 어른들은 태몽이라고 하시며 웃으셨다. 나는 부끄러워서 어른 한테 꿈 얘기를 하는 걸 스스로 삼가게 됐다.

하긴 소녀 적의 태몽으로 지금 예쁜 딸들을 주렁주렁 두었는지 모르지만.

악몽을 꾼 기억은 거의 없다. 악몽이래 봤댔자, 무서운 도둑이나 괴물에게 쫒기는 꿈인데 이런 꿈을 꿀 때는 좋은 꿈을 꿀 때와는 달리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의식 하고 꾼다. 그래서 꿈이니까 나를 수도 있겠거니 하고 마음만 먹으면 둥실둥실 공중을 날라 괴물로부터 가볍게 놓여나게 된다. 그러니까 무서움증이 조금도 심각하지 않고 장난스럽다.

다시 꿈을 꾸고 싶다. 절박한 현실 감각에서 놓여나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만 한가해지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꿈을 단념할 만큼 뻣뻣하게 굳은 늙은이가 돼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녀 적에 살던 집 앞을 지나면서 울고 싶을 만큼 쎈치한 감정이 아직도 나에게 남아 있는 것만 봐도 나에겐 꿈을 꿀 희망이 있다.

 

 

 

 

출처 : 신현식의 수필세상
글쓴이 : 에세이 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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