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의 미호천통신

미호천에서 보내는 삶의 넋두리

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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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천에서 부르는 노래

2019. 12. 26.

 

대도시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중소도시 어느 곳에든 그 지역민들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병원 하나씩 끼고 있다.

 

청주시 외곽에 위치한 이 병원

이달 첫번째 수요일 아침

침대에서 낙상하신 어머니께서 이곳에 누워계신다.

 

 

옛날 같으면

거슬러 멀리 올라갈것 없이,  고종황제께옵서 이같은 변을 당하셨다면

평생을 누워서 지내다가 돌아가시는 것 밖에 딸리 뾰족한 수가 없을터이다.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로 동분서주할적

묵묵히 실험실에서 의약을 개발하는데 몰두한 학도들 덕에

또 한편으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인체에  가장 적합한 대체 관절을 개발한 공학도와 의학도의 공동 연구덕에 어머니는 세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으시고 하루가 다르게 경과가 좋아지고 계시다.

 

 

 

우리를 대신하여 어머니를 돌봐주시는 도우미께옵서 명절을 쇠셔야 하기에

안해와 밤낮을 교대하며 이 병원 머무른다.

 

추석명절을 쇠는 사람이 어디 간병하시는 분 뿐이겠는가?

병원앞 다양한 메뉴로 급한 점심 해결해주던 식당 마저도 문들 닫아버렸다.

허탈한 심정으로 무조건 좌회전했다.

 

 

정처없이 걷다가 앞서가던 무리들이 들어가는 곳으로 따라들어간 곳

허름한 칼국수집이다.

 

수제비 한그릇 일금 6천냥

 

내부도 허술하고 철저하게 위생적이지는 않아보이는 내부 풍경을 보더다도 결코 싸다할수 없는 가격이다.

 

훤히 들여다 보이는 주방에서는 친정어머니로 보이는 뚱뚱한 아줌마와 딸로 추정되는 젊은 아낙이 분주히 끓이고 삶고,  대개가 그러하듯 아무생각없는 대여섯살 딸래미 하나 수제비 반죽 손에 잔뜩 묻혀 손장난하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식탁에 오른 들깨 수제비

방송국에서 나와 카메라 들이댄다해도 티비에 흔히 나오는 리포터들의 호들갑을 흉내낼 재간이 없다.

 

단지 담백하다. 맛있다. 기막히다. 이런 류의 표현 보다는

그 맛의 깊이를 가늠할길이 없기에 할말을 잊은고로 망연자실 이 네글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선물이 별건가?

내게는 아주 반갑고 고맙기 그지없는 추석 선물이다.

 

가만 생각하니 맛있는 음식을 해내는 식당의 공통점은 주인이 좀 뚱뚱하고 모녀지간이건 고부지간이건 이 대가 함께 운영하고  조금은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듯 보이는 집이다.

대부분 잔재주 부리지 않아 깊은 맛이있고 손이 커서 푸짐하다.

다만 맛에 탐닉하여 자주 찾다 보면 주인을 닮아 중부지방의 풍요를 같이 공유할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이 병원의 정확한 내력은 알길이 없다.

단지 이곳이 이 병원을 개축하기 이전 진입로이고 양가에 늘어선 저 가로수가 이 병원의 역사가 적잖이 오래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병든 사람이나 병든 사람을 옆에서 보살펴주는 사람들이 휠체어에 앉고 밀어가면서 이곳에서 한참을 머물면서 숨쉬기 운동하고 간다.

한낮의 만만찮은 늦더위를 식힐 그늘을 드리워주고 간간이 바람도 불어와 답답한 병실을 빠져나와 쉬었다 가기에 이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읽은 수필의 한 귀절처럼 나무는 덕을 지녔다는 말은 참으로 맞는 참말이다.

 

 

앞서 말씀드린 병원 2층엔 신생아실이 있다.

가끔씩 젊은 부부들이 허용된 시간에 한하여 그들이 낳은 아기들을 창밖에서 들여다 보는 모습을 볼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옛날 우리 아이들 키울적 느끼지 못한 아기들의 귀여움과 생명에 대한 경이 등을 느낄수 있다.

위 그림은 병원에서 머지않은 예식장의 모습이다.

젊은 남녀들이 그들의 부모와 친지들을 불러 모아놓고 우리 죽음이 갈라 놓을때까지 이 사랑 변치않겠노라 다짐하는 곳이기도 하다.

 

병실로 돌아와 내다본 창밖의 풍경

멀리 층층이 들어가 사는 산 사람들의 거처가 보이고 바로 아래는 장례식장이다.

 

사람들은 우리 사는 세상이 넓다하나 결국 2층 신생아실에서 이승으로 나와  저 밖에서 자라나 결혼도 하고 노닐다가 늙어져  때가 되었다 싶으면 저 밑 1층 장례식장에서 남아있는 사람들과 작별한다.

 

 

병원은 근원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출구이기도 하지만 저승으로 돌아가는 환승역이기도 하다. 

 

예서 보노라니  삶과 죽음이 크게 다르지도 않고 그다지 멀리 떨어져있지도 않다.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