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의 미호천통신

미호천에서 보내는 삶의 넋두리

방생- 그 깨달음에 대하여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19. 12. 26.

2015년 5월 3일  음력 삼월 보름

덕촌 광장이다.

매년 3월 1일이면 이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고 추석날 저녁이면 덕촌 가요제로 온 마을이 들 뜨는 곳

 

가끔 이렇게 대형 버스가 사람들을 기다리기도 한다.

앞집 처자 시집가는 날이거나 동네 어르신들 관광 가는 날이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오늘처럼 신도들이 모여 방생 법회를 떠나는 날도  그러하다.

 

 

작년 이른 봄

여주 어디쯤

강가에서 물고기를 놓아주고 신륵사란 절 구경 더불어 작은 깨달음 하나 얻었었다.

물고기를 구해다가 도로 강물에 풀어주는 이 요식행위는

"일체중생시유불성" 이란 붓다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하여, 그것이 소가 되었던 닭이 되었던 심지어  너른 바깥 세상 구경 한 번 못하고  평생을 물속에서 주둥이 버끔거리며 살아가는 천형을 지닌 물고기에 이르기 까지 예외가 아니라는 것과  우리만 못한 중생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통해서 중생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부처가 될수 있다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는 매우 뜻깊은 행사라는 것을 스님의 짧은 설법을 통해 전해 들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고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이 저 아랫녘

백양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기사 어디로 가는지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 나들이려니 하면서 첫 휴게소에 도착할 즈음 창밖의 풍경이다.

 

가랑비 오락 가락하는 휴게소 주차 광장

버스 옆에서는 저렇게 비 맞아가며  모이통을 둘러싸고 모이 쪼아 먹는 양계장의 닭들처럼 늦은 아침을 먹는 풍경은 주차된 버스의 대부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명산 대찰

백양사 입구의 연못하나 터를 잡아 짐을 푼다.

 

 

 

운명이라면 운명이고

인연이라면 인연일것이다.

 

인간들의 식탐에 의해 강제 억류되었다가

석방이 결정된 살아있는 것들의 대표주자

 

"너희들은 참 좋겠다" 하는 생각도 잠시

이곳에 "몰래 다녀간 손님" 이란 제하에 수달이 서식한다는  안내판이 못가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야 반가울수 있겠지만

가까스로 목숨 건진 물고기들 처지에선

금새 수달의 먹이로 생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르는 저들의 앞날

미물이 어찌 거기까지의 헤아림이 있으랴!

 

잠시후의 방생에 그저 즐거워 할 따름인져!

 

 

 

대부분의 요식행위에는 나름 뜻이 있을것이다.

촛불을 밝히는 연유는  무엇일까?

무명의 구름에 가리워져 있는 우리의 지혜로움을 되찾듯

부질없는 욕심의 그림자를 거두어 내리라는 다짐을 위해 불 밝히는 것이리라!

 

 

 

 

부자지간인지 숙질간인지 그것이 궁금하기는 하나 이 또한 중요하지는 않다.

단지 어른이고 애고간에 물가에 서면 생각이 깊어지는구나 하였다.

 

 

 

준비가 끝났으므로 스님의 독경이 시작되었다.

목탁소리와 요령 소리가 같이 어우러져  맑고 경쾌하게 물가에 파문일듯  울려 퍼졌다.

 

 

 

 

 

속된말로 "기돗발"이란  저 진지함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삼보!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스님들을 일컫는다고 배웠다.

스님을 위해 우산을 받쳐주는 저 보살님은 삼귀의의 하나

그  다짐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크나큰 복을 짓고 있는 모습같아 보기에 좋았다.  

 

 

 

모자지간

무슨 얘길 나누고 있을까?

 

그래

본디 있던곳으로 돌려보내자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해 ... 그런 이야기려니했다.

 

 

 

 

 

아주 오래전

이 땅에 머물다 가신 탄허스님이란 분이 계셨다고 들었다.

 

어느 잡지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다시면서 그 근거로 말씀하신 것이

 

아해들의 눈이 빛나고 여자들이 갈수록 예뻐지기 때문이라 하셨단다.

적잖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스님의 예언이 허언이 아님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그림이 아니겠나?!

 

 

 

 

 

 

 

 

옛것을 돌이켜 봄으로서 앞날을 예측할수 있는 이 어린이들의 몸짓, 표정

그래, 잘 자라거라!

 

 

 

 

이루어 지이다라는 간절함으로 기도하옵나니  부디 이루어 지게 하옵소서!

 

 

 

 

 

 

 

 

오랜 독경이 끝나고 법을 설하시는 스님

 

이르시기를 

대저 방생이라 함은 인간의 식탐에 의해 잡혀있는 물고기를 본디 있던곳에 놓아줌으로 해서

즉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 스스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으로  얽매어 있는  자신을  스스로 놓아주는 지혜을 얻고자 함인것입니다.

 

이슬비 내리는 중

낮게 드리워진 하늘아래

더 낮은 음성으로   툭하고 던지듯 설하옵신 짧은 법문.

 

아! ......

 

내 마음 한켠

오래된 담장 한 쪽 소리없이 무너져 내리고

지금까지 가려져 있던 또 다른 세상 하나 눈에 들어오는듯

마음속 환하게 밝아져 옴을 느꼈다.

 

 

 

올해 구십 넷 되신 보살님

백세 시대의 축복은 이렇게 건강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

부디 건강하시고 나날이 좋아지는 세상 길이 누리시기를 앙망하나이다.

 

 

 

올해 여섯 살 어린이

단옷날 춘향이 그네 뛸적 내려다 보이던

그 오월의 산야처럼, 

치고 날아오를적 그 오월의 하늘처럼  늘 푸르고, 더욱 푸르게 자라거라!

 

 

스님께서 이르시기를

왼쪽으로 가면 공양간이니 그리로 가라 하셨으므로  대중들은 그리로 발길을 옮겼다.

 

 

 

 

가만 돌이켜 생각하니

우리 내외

두 아들을 키워내면서 흔한 고액과외 하나 시키지 않았다.

 

바람불면 불려가듯

명산대찰 발길 닿으면 마음 가다듬고 부처님전 삼 배를 올렸다.

 

이리 하여 주옵소서 혹은 저리하여 주옵소서

기와 불사 제대로 한적없고 스스로 다짐하듯

큰 절은 살림살이 넉넉할터이니 불전함에 천원짜리 넣고

작은 절은 상대적으로 넉넉치 못할터이니 만원짜리 넣읍시다.

 

다만 세 번 절할적

간절하고 진솔된 마음으로 그저 바닥에 엎드려 손 바닥을 머리보다 높이 올려 경배드렸다.

 

그리고 그 기도는 이루어져  아해들은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훌쩍 자라나

우리 내외 이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예까지 오지 않았는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자연  다시금 옷깃 여며 합장.

 

 

 

 

뒷산과 저 흘러내리듯 덮여져있는 기와

생각없이 노니는 사람들

자연이란 말을 굳이 풀어서 얘기하면 "스스로 그러하다" 란 뜻일게고

저 그림이야 말로 자연 그 자체 아니겠는가?

 

 

 

굳이 스님께서 일러주시지 아니했다해도

배고픈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공양간을 찾아들수 있겠구나 하였다.

 

밥 퍼주시는 저 공양주께서도 복되시기를.........

 

 

 

 

 

 

배부른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배 부르기 전의 그것보다 더 정겹고 여유가 있다.

해우소 찾아 걱정 덜기 전후의 사정과 저 식사 전후의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씀이다.

 

 

전깃줄에 앉아 지줄대는 제비들 모양으로  나누는 수다는

그 내용은 몰라도 보기에는 참 좋았더라!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스님들과 사진 찍은 기억이 없다.

여지껏 그런 인연이  없었음이다.

오십 팔년을 살아내고서야 비로소

이런 영광이 내게도 복권 당첨되듯 선물처럼 주어졌다.

 

귀의 삼보하옵니다.

합장.

 

 

 

나들이의 추억은 대부분 사진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런 추억을 오래도록 되새기고자 하려면

"찍사" 옆에 붙어 다니면 된다.

 

 

 

 

걸음걸이도 그렇지만

스님들의 법복과 저렇게 자애로운 표정은

경내 안  

주변과 완벽하게 어울린다. 

 

 

 

 

 

 

대웅전

법을 청하면서 기다리는 대중들

 

 

 

 

 

 

 

외람되나마 "꺾다리 스님"이라 불러 드렸다.

키가 엄청 크신 스님은 법문 가운데 대부분을 백양사와 관련된 퀴즈로 일관하셨는데

뒤에 알았지만 모범답안은  공양간 벽에 붙어있었다.

급한 일도 없었는데 읽어나 볼걸.....

 

 

 

 

 

예의 그 "꺾다리" 스님께옵서 이르시기를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 또한 산을 건너지 못한다"

 

그러나 문득

산은 물을 담지 못하지만 물은 저렇게 산을 담아내는고나 하였다.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 앉으려 끊임없이 더 낮은 곳을 찾아 흘러내리는 물

잠시 쉬어가듯 보 속에 갇힌 물은  높은 산과 하늘을  저렇게 고스란히 담아냈다.

 

 

먼길 나들이

일찌감치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으로 오늘의 행복은 마무리 되나하였다.

.

.

.

.

 

엊그제

육거리 시장에서 고구마 모 넉단을  구해다 팔십 평 텃밭에 심었었다.

 

일끝내고 돌아갈적

하나같이 바닥에 늘어져 다시금 일어서지 못할것 같았던

그 고구마 모들이 걱정되어 서둘러 찾았더니 모두들 안간힘 쓰고 일어서기 시작한다.

 

종일 흐렸던 날씨가 크게 도와 주었고

이 부질없는 걱정 또한 부질없는 욕심에 기인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자유로울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옭아매는 어리석음을 떨쳐버리는 지혜

오늘의 이 작은 깨달음 조차도  구리거울 처럼  늘 정성들여 닦고 또 닦아야 반짝인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

 

 

을미년 삼월 보름

 

조강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