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Movie, Drama

空手잠빌 2013. 3. 3. 10:13

아웅산 수치, 박근혜, 앙겔라 메르켈

[영화로 읽는 세상이야기 101] 박근혜 정부 출범에 다시 보는 <더 레이디>

13.03.02 21:19l최종 업데이트 13.03.02 21:49l 박호열(tkaenao)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수행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진영논리에 연연해 박 대통령을 평가절하하거나 소갈머리 없이 초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출범을 전후해 일부 언론에서 칭송해온 아웅산 수치-박근혜-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동격론'은 되짚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물 특히 정치인에 대한 비교평가는 역사적 사실에 철저히 입각해야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방한한 수치 여사를 만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고 국민을 가족으로 삼아서 사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며 자신과 수치를 동일선상에 놓았습니다. 메르켈 총리에 대해서는 자서전에서 "(메르켈의) 경제와 외교정책이 내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하고, 둘 다 보수정당의 당수며 이공계 출신이라 잘 통하는 것 같다"고 자평했습니다. 일부 언론의 '동격론'이 허튼소리만은 아닌 것처럼 들릴 만한 연유입니다.

그러나 껍데기를 한 꺼풀 벗기고 들여다보면 세 사람의 '동격론'은 쉰 소리임이 금방 드러납니다. 버마(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 아웅산 수치의 삶과 사랑을 다룬 영화 <더 레이디>를 다시 본 이유입니다. 지난해 대선을 3개월여 앞둔 묘한 시기에 개봉한 이 영화가 박 후보를 떠올리게 하고, 이러한 연상 작용이 후보의 이미지가 각인되는 대선시기와 겹치며 탄력까지 받았음에도, 두 사람의 속살은 참 다릅니다.

아웅산 수치의 삶 돌아보기 : 평범한 주부에서 버마 민주화운동 상징 되다 

 원천 봉쇄된 민족민주동맹 집회에 참석한 수치가 군인들의 발포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총구 앞에 당당히 맞선다. 이 일화는 버마 전역을 뜨겁게 달군다.
ⓒ CJ 엔터테인먼트

관련사진보기


1947년 7월 19일 버마 수도 랑군. 해먹에 누운 어린 딸이 아빠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릅니다. 아빠는 "외세의 침략으로 소중한 것들을 빼앗기면서 우리나라가 가난해졌다"며 버마의 역사를 딸에게 들려줍니다. 마치 인도의 독립영웅 네루가 딸 인디라 간디에게 옥중서신(세계사 편력)을 보낸 것처럼.

이후 영화는 수치(양자경)의 남편 마이클(데이비드 튤리스)이 암을 선고받은 후 아내를 회상하는 가운데 두 사람을 축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부부이자 정치적 동지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지리적 이별'을 뛰어넘어 '연대와 헌신'으로 결합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대신 피로 물든 버마 민주화운동이나 카렌민족동맹(KNU)의 반정부투쟁 등 민중들의 저항의 역사는 쉬이 보이지 않는 한계를 노정합니다.

수치는 1960년 인도 대사로 부임한 어머니를 따라 인도로 가지만 이태 뒤 네윈의 군부쿠데타로 망명 아닌 망명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후 아시아 연구자인 마이클과 결혼해 정착합니다. 조국이나 아버지에 대한 별다른 부채의식 없이 평범한 주부로 지내던 그녀를 버마로 불러들인 것은 한통의 전화로 들려온 어머니의 입원 소식입니다. 

그녀가 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귀국한 조국은 버마판 광주항쟁인 '8888항쟁'이 일어난 직후입니다. '8888항쟁'은 군부독재정권을 종식시키기 위해 1988년 8월 8일 전국에서 불붙은 민중항쟁으로, 군부의 총칼에 2천명 이상이 학살된 참극을 가리킵니다. 수치는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서 총칼에 부상당한 학생들과 그들을 뒤쫓아 병원에 난입해 학생들을 난타한 채 연행하는 군인들을 목격하며 버마의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합니다.

버마를 26년간 철권통치 해온 네윈이 '8888항쟁'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총선거를 약속하며 사퇴하자 '랑군의 봄'을 맞은 민주화운동세력은 수치를 총비서로 추대하고 민족민주동맹(NLD)을 발족합니다. 그러나 암암리에 반격을 준비하던 군부는 국방장관 소 마웅이 친위쿠데타를 일으키면서 '8888항쟁'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수치가 민주화운동의 구심으로 부상하자 군부는 이듬해에 그녀를 가택연금에 처하고 중무장한 군인들을 주둔시킵니다. 군부정권에 의한 15년간의 가택연금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뒤 군부는 '8888항쟁'의 약속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40년만인 1990년 5월, 총선거를 실시합니다. 하지만 군부의 기대는 보기 좋게 박살납니다. 총선 결과 수치가 이끄는 NLD가 495석 중 392석을 차지하며 대승을 거두니까요.

선거 결과에 아연실색한 군부는 총선 무효화를 선언하고, NLD 지도부 등에 대한 대대적인 검속에 돌입합니다. 총칼에 의한 폭력과 공포의 정치가 다시금 고개를 치켜들고, 버마에는 또다시 짙은 암흑이 내려앉습니다.

박근혜와 아웅산 수치 : '철의 난초'와 '퍼스트레이디'

 버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의원이 지난 1월 29일 오전 박원순 시장의 안내로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을 둘러본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영화읽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수치와 박 대통령이 닮은 점이라면, 두 사람 모두 장군의 딸로 태어나 비극적인 가족사를 딛고 여성지도자가 된 정도입니다. 아버지의 후광이 컸지만, '두 아버지의 역사성'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아웅산은 대학시절부터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침략국인 영국, 일본에 차례로 맞서 항전했습니다. 그 시기 관동군 소좌 박정희는 일제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정적과 측근에 의해 살해당하지만 한 아버지는 버마 독립의 영웅으로, 한 아버지는 철권통치의 화신으로 후대의 역사에 기록됐습니다.

여성지도자로 발돋움하기까지의 과정도 확연히 다릅니다. 수치의 정치는 영화의 오프닝에서 어린 딸의 머리에 하얀 난초를 꽂아준 후 암살당한 아버지에게 가 닿습니다. 15년간 영어의 몸으로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고, 군부와는 한 치의 타협도 하지 않고, 죽어가는 남편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하는 등 고난의 세월을 홀로 견뎌냅니다. 그녀를 '철의 난초'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데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자신의 힘으로 거듭난 '역사성'을 함의한다 하겠습니다.

수치는 2010년 11월 13일 석방된 후 2012년 4월 총선에서 자신의 고향인 아닌 젊은 시절 한때 노동운동을 했던 '카운훔'을 지역구로 선택해 당선됩니다. 영화의 엔딩 장면처럼 가택연금 중인 수치의 집 앞에 대규모 시위대가 밀려들어 "아웅산 수치"를 연호하자 하얀 난초를 건네며 인사를 하듯, 작고 가냘프지만 아름답고 강인한 '철의 난초' 수치의 투쟁은 멈추지 않습니다. 국제사회는 수치의 이런 고난의 세월에 노벨 평화상 등 각종 인권상을 수여하며 그녀를 국제적인 여성지도자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프랑스 유학시절 어머니의 사망으로 귀국한 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으면서 정치에 입문합니다. 10·26으로 아버지를 잃지만 전두환이 준 사당동 집과 육영재단, 영남대 정수장학회를 운영하면서 물질적 풍요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1998년 아버지의 정치적 자산이자 자신의 고향인 대구 보선에 공천을 받고 쉽게 금배지를 단 후 '선거의 여왕'을 거쳐 마침내 꿈을 이룹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런 그녀를 '독재자의 딸'로 평가한 바 있습니다.

이렇듯 두 사람의 정치 역정은 뿌리부터 다릅니다. 수치는 언제든지 다시 가택연금 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정치를 하는 이유를 "버마의 민주화와 평화" 즉, 버마의 민주주의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가택연금부터 시작해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펼치고 있는 지금까지 그녀의 정치적 행보는 일관되게 민주주의를 향해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왔던 것입니다.

박근혜와 메르켈 : 박 대통령 앞에 놓인 두 갈림길

 메르켈 독일 총리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2012.10.19).
ⓒ 연합/EPA

관련사진보기


영화는 장군의 딸과 군부독재를 대립구도로 전개됩니다. 수치는 그 대립구도의 한 복판에 서 있습니다. 반면 박 대통령은 장군의 딸과 군부독재를 한 몸에 구현하고 있습니다. 애초 비교 대상을 잘못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메르켈 총리는 수치에 비해 박 대통령에게 근접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0년부터 시작됩니다. 국회 외통위원이었던 박근혜 의원은 독일에서 당시 기독민주당 당수였던 메르켈을 처음 만납니다. 이후 한나라당 대표를 그만 둔 2006년 독일에서 다시 재회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현지에서 대통령 경선 참여를 처음으로 밝힙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 대선 당시 메르켈이 박 후보의 승리를 기원하는 편지를 보내고, 당선 뒤 첫 축하전화를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내년에 독일 방문을 약속하는 것으로 화답했습니다.

메르켈은 박 대통령과 1살 차이에, 목사였던 아버지로부터 교리적 신념을 물려받았고, 비슷한 시기에 정계에 입문한 뒤 15년 만에 사상 첫 여성총리가 되고, 보수정당의 당 대표를 역임했고, 말수가 적은데다 고독을 즐기는 성향까지 박 대통령과 얼핏 닮아 보입니다. 더욱이 메르켈은 총리 재선에 성공한데다 지난해 말 98%에 이르는 사상 최고의 지지율로 기민당의 당대표에 연임돼 '독일판 철의 여인'으로 불립니다. 기실 박 대통령과 닮은꼴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닮고 싶은 '롤 모델'이었던 셈입니다.

메르켈의 정치 리더십은 '화합과 통합'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 진보정당인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를 꺾고 정권을 거머쥐고서도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통해 슈뢰더가 총리 시절 제안한 '아젠다 2010' 개혁안을 이어받아 경제·교육·복지 등 산적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해 나갔습니다. 그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녹색당 등이 요구한 원전 폐기·저소득층 연금 확대·최저 임금제 지지 등 진보적 가치까지 수용했습니다. 독일 경제가 세계 금융위기 한파 속에서도 '성장'을 담보해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메르켈과 '동격'이 되고자하는 박 대통령 앞에는 두 가지 갈림길이 놓여 있습니다. 한 길은 적대적 이념의 포로가 되어 진보적 가치와 노동자를 탄압의 채찍으로 길들이며 영국 사회를 분열과 반목의 수렁으로 떨어트린 마거릿 대처가 걸었던 길입니다. 다른 한 길은 유연한 정치력을 기반으로 사회적 합의와 융합을 중시하는 가운데 좌와 우를 잇는 가교 역할까지 서슴없이 자임하며 독일을 화합과 통합의 사회로 진일보시킨 메르켈이 걸었던 길입니다.

같은 보수 여성 정치인이면서도 확연하게 다른 두 사람의 길 중 박 대통령은 어떤 길을 걸을까요?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5년간 대선의 3대 공약으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과 생애 전반에 걸친 복지와 상반된 길을 걷는다면, 그것은 메르겔의 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그것은 롤 모델 '메르켈 따라하기'도 아닙니다. 그것은 메르켈식 이슈 선점만을 차용한 선거용 카드에 불과합니다.

'아버지 따라하기'가 일직선으로 가 닿는 길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유독 강조했던 안보와 성장은 이 같은 우려를 현실화시키고 있습니다. 취임 전 발표한 국정 목표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사라졌습니다. 민주주의가 실종된 것입니다. 경제민주화는 민주주의 정치가 추구하고 실현해야 할 보편적 과제입니다. 화합과 통합은 민주주의 위에 곧게 설 때 만개합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안보와 성장에 방점을 찍은 것이나, 취임 전부터 서슬 퍼런 '불통 권력'을 휘두르며 국민과의 소통에 종언을 고한 것은 아버지 박정희를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기리려는 작심으로 비쳐집니다. 더 큰 문제는 '아버지 따라하기'가 일직선으로 가 닿는 길이 한국 사회를 독일이 아닌 영국으로 인도할 공산이 크다는 점입니다.

영화에는 쉬이 잊혀지지 않는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수치가 전국을 순회하며 세를 불리자 군부는 NLD 관련 집회를 원천봉쇄합니다. 그런 어느 날, 수치가 집회 참석을 강행하자 군인들에게 발포 명령이 떨어집니다. 숨 막히는 긴장 속에 수치는 한 걸음 한 걸음 총구 앞으로 발을 내딛고, 당당히 맞섭니다. 결국 군인들이 철수하고, 이 일화는 다양한 버전으로 리메이크돼 빠른 속도로 버마 전역으로 확대 재생산되며 '철의 난초'를 탄생시킵니다.

저잣거리의 수군거림처럼 '수치는 미래를 여는 희망의 상징인데 비해 박 대통령은 과거로 회귀하는 독재의 그림자' 운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국민들은 독재의 뿌리에서도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치가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제목으로 연설한 다음 구절은 이제 막 첫 단추를 끼운 박근혜 대통령에게 신선한 이정표가 될 만합니다. 권력에 대한 온갖 공포심을 없애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결국 죽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권력이 아니라 공포심이다.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킨다. 권력의 채찍에 대한 공포는, 거기에 복종하는 사람들을 타락시킨다. 자유, 민주, 인권을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계속 투쟁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