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Movie, Drama

空手잠빌 2006. 2. 21. 01:08

벤허 / Ben-Hur 음악적인 리뷰 + 음악모음
1959년/ 원작: Lew Wallace/ 공동제작 + 감독: William Wyler
주연: Charlton Heston 외/ 음악: Miklos Rozsa/ 224분

 

인간의 운명은 전지전능하신 神에 의해 결정이 되며,
또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자신의 운명은 다 결정이 되어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게 아니고, 한 사람의 운명은 자기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개척해나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글쎄, 어느 쪽의 말이 옳다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쉬운 사안은
절대로 아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비슷한 나이로 같은 동시대를 살았던
이 영화 속의 주인공의 인생 여정을 살펴보면, 이렇게 전혀 다른 각도의 운명론,
둘 다가 어쩌면 모두 다 맞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고 26년의 세월이 흘렀다.(Anno Domini XXVl)
유대(Judea) 지방의 명문 귀족가문의 외아들(Prince),
“Judah Ben-Hur”(Charlton Heston, 1924, 미국 에반스톤)
2개 군단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새로 부임하는 총독, “Valerius Gratus”와 같이 온
(어린 시절에 함께 놀면서 자라난) 옛 친구이자 호민관(Tribune)인,
“Messala”(Stephen Boyd, 1931-1977, 영국)
반가운 재회를 하지만, 그러나 유대인 반역자 검거에 협조해달라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면서 서로의 적대적인 입장과 사상의 차이를 절감하게 된다.
한편, 총독이 성에 입성을 하던 날, “벤허“의 집 지붕의 낡은 기와가 떨어지면서
총독이 낙마를 하고 다치는 사고가 발생을 하는데, 무고함을 알면서도 “메살라”는
“벤허“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까지 전부 체포를 하고 수감을 한다.
그리고 가족만은 제발 석방해달라는 “벤허“의 애원을 무시한 채 그를 노예로 만들어
로마 해군의 전함(Galley)의 노를 젓는 신분으로 전락시키는데, 그러나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쉽게 속단 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생각지도 않았던 뜻밖의 시련은 “벤허“에게
훗날 더 큰 사람이 되어 더 큰일을 하라는 운명의 초석이 된다.

41번의 죄수번호로 노 젓는 생활을 한지도 3년, 마케도니아 전함과의 해전에서
집정관(Commander)인, “Quintus Arrius”(Jack Hawkins, 1910-1973, 영국)의 생명을
어쩌다 구해준 “벤허“는 그의 양아들이 되는 신분의 수직상승을 하게 되고,
또 귀족으로서 로마의 대경주장(Great Circus)에서 5번씩이나 전차 경주의 우승자가
되는 영예도 함께 얻게 된다.
그러나 떠나온 고향과 가족을 그리는 마음, 그리고 “메쌀라”를 향한 복수의 일념은
결국 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만들고, 폐가를 지키던 자신의 집사(Steward),
“Simonides”(Sam Jaffe, 1891-1984, 미국 뉴욕)
그의 외동 딸, “Esther”(Haya Harareet, 1931, 이스라엘)
반가운 재회를 한다.
한편 4년간이나 지하 감옥에 있던 “벤허“의 어머니(”Miriam“)와 여동생(”Tirzah“)은
“Young Arrius”라 불리는 “벤허“의 등장에 놀란 “메쌀라”의 허가로 석방은 되지만
불행하게도 나병에 걸려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환자 계곡“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만나 비밀을 지키기로 서약한 “에스더“가 어머니와 여동생은 죽었다고
말한 거짓말을 그대로 믿은 “벤허“는 복수로서 전차경주에 출전하기로 하고
귀향길에 만났던 아랍부호, “Ilderim”의 영리한 네 마리의 백마를 이용하게 된다.

드디어 결전의 날은 밝아오고,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아테네, 시리아등을 대표하는
각 지방의 출전자들 9명의 경주가 시작된다.
물론 우승후보자는 화려한 경력으로 로마를 대표하는 “메쌀라”.
사납게 생긴 흑마가 이끄는 전차 바퀴 옆에 드릴의 날 같은 날카로운 쇳조각을 붙여
경쟁자들의 전차를 망가트리고 또 비겁하게 채찍으로 상대를 제압하던 “메쌀라”는
결국 전차에서 떨어져 온몸이 말발굽에 짓이겨지는 중상을 입게 되고,
“벤허”는 이 경주의 우승으로 단번에 유대인들의 영웅이 된다.
그러나 “메쌀라”가 죽기직전에 말해준 어머니와 동생의 소식을 듣고 단번에 나환자
계곡을 찾은 “벤허”는 절망감과 분노에 휩싸이고, “에스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 기어코 이들 모녀를 안고 나오다, 뜻밖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노예가 되어 끌려갈 때 자기에게 물을 주었던 사람이 바로 이분임을 깨달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예수께 물을 드리고, 자신도 처형장에 따라간다.
한편 갑자기 세상이 온통 암흑천지가 되고 천둥번개가 치며 쏟아지는 빗속에서
순식간에 나병이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한 “미리암”과 “티르자”는 집으로 돌아온
“벤허”와 눈물의 포옹을 나누고, 이후 모두다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절대로 없어서는 안될 “물“이라는 상징적인 매개체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두 번의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되는 (성경의 어느 구절에도 나오지
않는) “벤허”의 인생을 통하여 이 작품은 간접적으로 원작소설의 제목, “A Tale Of
Christ” 같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데, 신약성경의 주요 복음서 저자인 “바울”
(Paul)이 처음에는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을 핍박하다가 변신하였던 것처럼,
이 영화의 원작소설("Ben-Hur: A Tale Of Christ"/1880년)의 저자인
“Lew Wallace”(1827-1905, 미국 인디애나)
비슷한 경험을 토대로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Illinois”의 주지사 아들로 태어나 멕시코전쟁과 남북전쟁에 참전하여 장군이 된 후,
뉴멕시코 주지사(1879년)와 터키대사도 역임한바 있는 그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단적으로 신약성경의 허구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오랜 연구와 조사 끝에
오히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거듭나면서 이 명작을 1880년에 탄생시켰다.
2년 후, 연극무대를 통하여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이 작품은
이후 20년간 롱런을 하면서 무대극으로도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아직도 걸음마단계
이었던 활동사진(Motion Picture)의 완전 초창기인 1907년에 드디어 첫 번째로
영화화가 되긴 하였지만 곧바로 저작권 소송문제로 비화하는 사건을 초래하였다.

오늘날 원작 소설에 지불하는 저작 판권료의 최초의 선례를 만든 이 사건은
결국 15분짜리 단편 무성영화(Ben Hur, "Sidney Olcott"감독)를 만든 영화사가
“Lew Wallace”의 유족들에게 당시에는 엄청난 거금이었던 2만5천 달러를 지불
하므로서 해결이 되었고, 이어 1925년에 드디어 "Ben-Hur: A Tale Of Christ"
이라는 제목으로 장편 영화(“Fred Niblo”감독/143 분/흑백, 무성) 가 만들어지면서
바로 일년 전에 합병 창립이 된 MGM 영화사(메트로+골드윈+메이어, 3개사가 합병)
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다.(처음 기획사는 골드윈)
영화가 상영이 될 때는 별도로 준비한 음악을 같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결코 무성영화라고 말 할 수 없는 이 작품은 1924년 6월부터 이태리에서
촬영, 제작이 되었는데, 당시 영화들이 대략 백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를 들인데 반해
4백만 달러를 투자하는 바람에 사업적인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데만 무려 6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영화역사상 가장 유명한 시퀀스의 하나인 그 위풍당당한 전차 경주 (세트 포함)의
모습은(1959년도 판, “벤허”와 같은 크기와 규모)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고는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로 그 위용이 대단한데, 이때 고용한 조감독의 숫자만 해도
무려 60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이때의 조감독중의 한명이었던,
“William Wyler“(1902-1981, 독일 알사스) 에 의해
34년 만에 다시 이 작품이 리메이크 되었다는 사실도 꽤 흥미롭다.
10년간의 오랜 제작 준비기간을 걸쳐 전작과 마찬가지로 (부도위기 속의) 같은
영화사에 의해 같은 이태리에서 1958년 내내, 강행군이 된 이 작품은 로마 근교의
“치네치타”(Cinecitta)스튜디오 외에도 무려 300여개의 세트장에서 한 대당 10만 달러
가 넘는 65mm 카메라들에 의해 촬영이 되었는데, 그 찍은 필름의 길이 만해도 지구를
한 바퀴 돌 정도였다고 한다.
(후 에 Anamorphic Process 를 거쳐 70mm 필름으로 재 프린트가 됨)
CG 가 당연히 없던 시절이다 보니 “Matt Shots”를 이용한 이중촬영과 손으로 일일이
그려 넣은 (로마 시내와 전차 경주장의 배경과 같은) 특수효과는 수공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도 대단한 장면들을 창조하였다. 한편 전례가 없었던 총 1,500만 달러가 넘는
사상초유의 제작비 조달 외에도 너무나 힘든 일이 수두룩하게 이어져서,
공동 제작자인 “Sam Zimbalist”(1904-1958, 미국 뉴욕)가 그만 긴장의 연속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제작 마감 2달 전에 로마에서 죽는 불상사까지 발생을 한걸 보면,
얼마나 힘든 역경 속에서 이 대작이 탄생하였는지 쉽게 짐작이 된다.

영화 음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대 서사극은 이외로 음악에
맞추어 장면들을 편집하는 등, 음악 자체에도 아주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기도 하다.
1940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후, 그동안 “Quo Vadis”(1951),“Julies Caesar”(1953)
등의 수많은 사극에서 이미 좋은 명성을 얻은바 있는
“Miklos Rozsa”(1907-1995, 헝가리 부다페스트)에게 의뢰를 하여
2달 동안 만든 Original Score 의 몇 개의 주요 Theme 은 그 스펙터클한 장면들을
웅장하게 잘 뒷받침하였음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애절하고 슬프게도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하였는데 이런 Theme 들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의
“Overture”(아래 음악) 에 아주 잘 함축이 되어있다.

이 “Overture”의 중간부분에서도 들을 수가 있지만, 영화 전체 OS의 기본적인
주제 음악이 되면서 반복적으로 계속 들리게 되는 Theme 은
집사의 딸인 “에스더”가 결혼허가를 받기위해 왔다가, 오히려 “벤허“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 잔잔하고 애절하게 들려오는 “Love Theme”(아래 음악) 인데,

“Rozsa”자신이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기 때문인지 아무래도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아름다움을 더욱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벤허”의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운명을 참으로 잘 묘사한 “Ben Hur Theme”과
“Fanfare To Prelude”도 인상적이지만, 그러나 로마시내에 입성하는 웅장한 장면이나
또 최고의 클라이맥스 부분인 전차 경주 장면 등 에서 관악기의 특성을 살려 화려한
팡파레와 함께 들려주는 “Circus March”와 “Parade Of Charioteers”(아래 음악)
같은 음악들 역시 매우 강렬한 감정을 전해주고 있어 음악만 들어도 그 명장면을 다시
떠오르게 만든다.

“Rozsa”는 이 작품 이후에도 “King Of Kings”(1961), “El Cid”(1961), 그리고
"Sodom And Gomorrah"(1962)등으로 로마시대의 사극 영화음악의 大家라는 명성을
계속 유지하게 되지만 그러나 역시 그에게 세 번째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이 “벤허”의
Theme Music 이야말로 그의 일생일대의 명작이 아닐 수 없다.

 

미국 가정에서 TV시청 문화가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영화계의 일종의 자구책으로
기존의 화면보다 무려 4배나 더 크게 확대를 할 수 있게 개발이 된 65mm, 70mm 의
필름을 이용한 대형 화면의 (기술적인) 발전은 이미 1955년의 “Oklahoma”의 65mm
필름 촬영을 필두로 시작이 되었지만, 이후, 1957년의 “Bridge on The River Kwai”,
"South Pacific"(1958)을 비롯하여 이 영화가 대성공을 거둠으로서
매우 빠른 가속도를 더 붙이게 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 70mm의 영화 상영은 오늘날의 HD 화면에 못지않은 엄청난
문화적인 충격을 주면서 영화를 영화답게 관람할 수 있는 최고의 황금시기를 만들어
주었지만, "King And I"(1956, 70mm로 재 프린트), "Lawrence Of Arabia"(1962),
"Doctor Zhivago"(1965, 70mm로 재 프린트), “The Sound Of Music”(1965),
"Ryan‘s Daughter"(1970)등등의 영화들을 좌우 폭이 50야드는 족히 되어 봄직한
초대형 스크린을 통해 볼 수가 있었던 퇴계로의 “대한 극장”(아래 사진/좌석 수:1,900)
이야말로 참으로 우리들에게 (단체 관람 등의) 많은 추억을 남겨 주기도 하였으며,
또 이 “벤허”는 1980년대까지도 이 명소에서 재 상영을 거듭 거듭하면서
70mm 영화의 대명사 같은 이미지를 아직까지도 깊게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이건 아니건 간에 이 영화를 보고서 명작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한명도 없다. 그리고 “William Wyler“ 제작자겸 감독이 “신이시여 진정 제가
이 작품을 만들었단 말입니까? “라고 시사회 때 그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쉽게 말하는 명작이나 걸작 또는 “블록버스터”라는 영화가 과연
어떻게 시작되고 또 이어져왔는지를 자랑스럽게 고증해주는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The Passion Of The Christ”(2004) 같은 오늘날의 작품들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감히 앞에서 찍지 못하는 (당시로서는 불문율이었던) 우리
인간들의 극히 당연한 겸손함까지 보여준 이 작품은 역시 기독교 영화로서도
최정상의 위치를 아직까지도 고수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도 3개의 영화와 공동으로 최다라는 단어를 비록 같이 쓰기는 하지만,
1997년에 무려 2억 달러의 어마어마한 거금을 투자한 “Titanic”이 나타나기 전
까지는 미국 아카데미상의 최다 수상작(11개)으로서의 영예도 홀로 보유하였던
참으로 자랑스러운 (인류가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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