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 자연을 벗하여 이곳저곳 떠돌며 보고 들은 것들

시가 있는 가을로의 초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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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2006. 10. 14.

 

♧ 분위기에 매료되었던 행사

 

2006 우수 문학 행사로 마련된 '시 낭송의 밤'이
어젯밤 한라아트홀 소극장을 낭만이 넘치는 서정의 분위기로 이끌었다.
출연한 시인의 시 낭송에 매료된 관객들은 시종일관 호흡을 가다듬었다.

 

사진은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고
1회만 찍어서 시원치 않은데
이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행사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뒤풀이로 오리고기를 먹었고
다시 단란주점까지 갔는데
역시 운율을 고르는 사람들이라 노래도 맛이 있었다.


 

    

나는
풀잎을 사랑한다.

 

뿌리까지 뽑으려는
바람의 기세에도
눈썹 치켜올리는
그 서리 같은 마음 하나로
참고 버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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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먼저 나와 전부 외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이준관 시인의 '풀잎'을 낭송하는 귀여운 꼬마 일도초등학교 1학년 임희정 양
 

 

진공에 누워 눈감고 동화를 읽는다
가을비 하얀 목화밭 위로 지나간다
무당벌레 한 마리 풀잎이슬을 만지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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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한 제주작가회의 김성주 시인이 자작시 '물방울놀이' 낭송 모습 

 

 

그때, 철판같이 견고한 어둠 한 장이 내렸다
엄마가 내게 나직이 말했다 얘야
누구든지 자기 안에 파란 대문이 있단다 네 안을 들여다보렴.
나는 내 안에 얼굴을 파묻고 날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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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지혜 시인의 '파란대문'을 낭송하는 키가 큰 제주대 국문과 3년 김진희 양
 

 

영화감독은 영화를 생각하고
화가는 그림을 생각하고
학생은 성적을 신부는 신자들을
장사꾼은 돈을 생각하고
나는 당신을 생각하며 큰길까지 걸어 내려와
신작 시집을 사들고 여기와 당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겁나지만 나 당신을 생각하는 것
괜찮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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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작곡한 나기철 시인의 '괜찮지요' 외 3곡을 부른 가수이자 작곡가 최상돈 씨와 노래패 '청춘'. 최상돈 씨는 제주민예총 음악위원회 회원으로 여러 행사의 연출과 음악 감독으로 제주지역에서는 꽤 알려진 분이고, 노래패 '청춘'은 제주지역 노래 모임으로 다양한 예술 현장에서 음악활동을 벌이고 있다. 기타를 치고 있는 분이 최상돈 씨.

 

 

태백선 철도는 티베트선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기차가 서지 않는 풀랫폼이 오백년 된 양은 냄비처럼 빛나는
소맷부리를 햇빛에 고스란히 내놓는 길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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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조정 씨의 자작시 '자미원역' 낭송 모습.

 

 

눈이 수평선을 지우고
바다가마우지 떼를 지우고 온다
소나무 숲을 지나 송림 슈퍼에서 뜨거운 커피를 산다
알루미늄캔 속에 출렁이는 바다
낡은 목도리를 두른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끊어진 길을 위해
낡은 자전거를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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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 씨의 '바다가 나를 구겨서 쥔다'를 작가의 손을 꼭 잡고 낭송하는 제주시사랑회의 김향심 씨와 작가.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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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은교의 시 '우리가 물이 되어'를 얌전하게 낭송하는 한라중학교 3학년 양재혁 군.

 

 

시골길 버스 정류소엔 겨울 바람이 일고
바람이 밀어낸 버스 창 사이로
여리고 조그만 손가락 몇,
뽀얗게 흐르다가 입김처럼 사라지고
나의 기다림도 그렇게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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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시 '내 안의 버스 정류소'를 낭송하는 서귀포문인협회 회장 강중훈 씨.

 

 

바다를 사이에 두고
우도와 마주보고 있는
오조리 ‘바다의 집’
바다에다 시를 쓰는 글쟁이와
그 시를 주우러 바다로 나가는
시인의 아내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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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시 '시인의 아내'를 낭송하는 강연옥 시인. 월간 '시사문단'으로 등단한 제주문인협회 회원이다.

 

 

 나는 나무에 묶여 있었다. 숲은 검고 짐승의 울음 뜨거웠다. 마을은 불빛 한 점 내비치지 않았다.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 몸을 뒤틀며 나무를 밀어댔지만 세상모르고 잠들었던 새 떨어져내려 어쩔 줄 몰라 퍼드득인다. 발등에 깃털이 떨어진다. 오, 놀라워라. 보드랍고 따뜻해. 가여워라. 내가 그랬구나. 어서 다시 잠들거라. 착한 아기, 나는 나를 나무에 묶어 놓은 자가 누구인지 생각지 않으련다. 작은 새 놀란 숨소리 가라앉는 것 지키며 나도 그만 잠들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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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시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를 낭송하는 이진명 시인. 1990년 계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
보라.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첫 여자도 첫 키스도 첫 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안 돌아오는 여행을 간 것이다
얼마나 눈부신가
안 돌아오는 것들
다시는 안 돌아오는 한번 똑딱 한 그날의 부엉이 눈 속의 시계점처럼
돌아오지 않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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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명 시인의 '여행'을 작가 옆에서 낭송하는 제주시사랑회 강서정 씨.

 

 

수정동 산비탈 백팔 계단에 서면 통도사 금간 계단이 겹친다

산 복도로 내가 오를 계단 끝엔 가난한 불빛 한 점이 있고,
통도사 금강계단 끝엔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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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의 손택수 시인이 자작시 '수정동 물소리'를 낭송하고 있다.

 

 

오늘 이 해역(海域)을
누가 혼자서 떠나는갑다.

연일 흉어(凶漁)에 지친
마지막 투망을 남겨둔 채

섬보다 더 늙은 어부
질긴 심줄이 풀렸는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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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도 노을'을 낭송하는 시조작가 고정국 씨.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출신으로 제주작가회의 회장을 지냄.

 

 

푸른 이끼 돋은 돌담 아래
수선이 귀를 세워 은종을 치는 날
솔동산 가파른 고갯길이 헉, 숨막히다
서귀동 512번지 중섭(仲燮) 없는데
절여진 온기를 어루만지며 서서히 늙어가는 집
툇마루에 소금기 짠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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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시 '서귀동 512번지'를 낭송하는 정군칠 시인.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한 제주작가회의 회원.

 

 

좌심실을 봉투에 담는다
갇힌 침묵 덩어리들
그대 향한 비밀은 샐 틈이 없다.
어두운 사각을 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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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의 집 제사 때문에 시 '편지 - 잊혀지는 것들'을 열정적으로 대신 낭송하는 한라산문학동인회 회원 김병심 씨.  

 

 

오늘도 걷는다, 유행가처럼
코가 조금 벗겨진 금강구두를 신고
아주 천천히 길이 당기고 있는 내 몸
그러나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네
등 뒤의 길은 내 발목을 끌어당기고
눈앞의 길은 안개의 스펀지로 나를
흡인하려 하네
나는 곧 보이지 않으리
그리하여 골목에서 길을 잃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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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시 '내 안의 골목길'을 작곡한 노래를 열창하고 있는 어제의 히어로 위승희 시인. 1998년 원간 '현대시'로 등단한 위승희 씨는 매체환경에 대한 새로운 시 작업으로 본격 멀티미디어 첫 번째 시(詩) 음반 'Siren Psyche'를 김정란 교수와 함께 출반, 한국문단 초유의 음유시인이 되었다. 어제 두 번째 음반 'love'가 나오는데 보지 못하고 왔다는 위승희 시인. 음악이라는 장르로나마 독자와 가까워지려는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 인사 말씀을 하는 제주작가회의 오영호 회장

 

♣ 시간은 흐르는데 - 시 윤주희 / 낭송 고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