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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jang999 2017. 6. 27. 13:41



사라져가는 장승문화를 되살리는 칠갑산 장승공원


장승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아 고대의 남근숭배설(男根崇拜說)과

사찰이나 토지의 경계표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그리고 솟대와 선돌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솟대의 기원은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어

여러가지 설이 난무한데 그 중에 가장 신빙성에 무게감을 두는 것 같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보물 제 157호 장흥보림사의 "보조선사탑비 普照禪師塔碑"에

장승에 대한 기록이 보여 탑비의 내용에는 759년 "장생표주 長生標柱"가 처음으로 세워졌다고 하며

그 외에 "용제총화 龍祭銃火"나 "해동가요 海東歌謠" 등에도 장승에 대한 기록이 보여

이를 보아 통일신라나 고려때는 이미 장승이 사찰의 입구에 세워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경계표시를 삼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이는 토속민속신앙에 불교신앙이 수용함으로써 도입된 것이라 볼수 있고

본격적으로 조선시대에 와서 장승이 활성화 되었지 않나 싶다.


장승의 의미는 위치에 따라 목적하는 바가 다르지만

사찰입구에 세워진 것은 신물로서 석가부처가 있는 신성한 불국토이니 사악한 액(厄)함부로 범접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져 있고,

촌락 어귀에 수호신(守護神)으로 세워진 장승은 이곳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부분으로

사람이 어쩌지 못하는 재앙이나 질병, 전염병 등 역신을 겁주어 쫒아내려는 의미와

드나드는 사람들의 무사무탈과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소박한 민중들의 염원이 담겨있고,

서낭당에 돌탑과 함께 세워진 장승은 액운을 물리쳐 달라는  소원을 말하여 의지하는 초자연적인 신앙의 힘이 담겨있다.


근현대사에 산업발전을 이유로 민간토속신앙을 미신타파라는 주제아래 마구잡이로 없애

장승이나 서낭당 등이 많이 소멸되고 훼손되었지만 현재는 전통문화계승이라는 이유로 서서히 되살려지고 있는 싯점이다.

 이에 칠갑산 장승공원은 장승에 대한 각종 전설과 유래가 많은 곳으로

오래 전부터 장승제를 지내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한국 최고의 장승문화로 계승발전시키자는 목적에 부합하여

보존지역으로  개발하여 "1999년 5월"에 칠갑산 장승축제와 아울러 장승테마공원이 조성되었다.

장승공원 내에는 장승을 조각하는 실습장이 있어 장승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한국의 정서상 제일 많이 수호신으로 각광 받는 장승은 누가 뭐래도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다.

이는 하늘과 땅을 제일의 모체로 삼기에 천(天)과 지(地)를 으뜸으로 친다는 뜻이기도 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우주만물이 형성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은  남성상을 나타내고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은 여성상을 나타내어

양기와 음기의 뜻을 담고 있기도 함을 볼 수 있다.

백두대간의 접속구간인 은티마을은 은티마을을 감싸고 있는 구왕봉 암석이 음기가 강한 여궁혈자리라 하여

마을 입구 서낭당에 남근석을 세워 해마다 정월에 제를 지내 음기를 다스린다고 한다.


장승을 우락부락하게 눈이 툭 튀어나와 휘번득거리는 거칠고 험하고 강렬한 표정과 울분을 표현해 조각하여

마을 입구에 수호신을 세우므로서 이 마을의 무사안녕을 위해 감히 역신이나

전염병, 흉년이나 재앙,  사악한 액운이 들지 못하게 쫒아 낸다는 민속신앙의 대상물이 사회상을 엿보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민중의 삶이 무언지를 나타낸다.













서낭당을 대신하여 소원성취장승을 세워 놓았다.

서낭당과 성황당을 분리하여 말하자면 서낭당은 해묵은 범상치 않는 나무를 토대로

돌무더기를 쌓고 신물을 세운것은 서낭당이라하여 시골에서 흔히볼 수 있다.

성황당은 전각을 지어 정식으로 신을 모신 격을 높혀 부르는 신물을 말한다.














장승공원 내에  장승만들기 체험관이다.

장승축제에 장인정신으로 전국에서 모여든 장승조각가의 작품이 더해져

올 때마다 장승의 수가 많아 짐을 볼 수 있다.










장승은 성문, 병영, 해창, 관로 등에 세운 공공장승이나

 마을 입구에 세운 수호장승 등으로 다양한 형태를 볼 수 있다.

장승이라 부르는 수호신도 지역에 따라 장성, 장신, 벅수, 벅시, 돌하르방, 수살이, 수살목, 수산 등 다양하다.














장승도 돌이나 나무로 조형해 만들어 세우는데

나무를 깍아 만들면 목장승 돌을 다듬어 만들면 석장승이 된다.

석장승에 목장승을 둘레석으로 세워 수호신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장승만 세우는 곳도 있지만 솟대나 돌탑, 서낭당, 신목, 신돌 등과 복합적인 형태를 취하여 세우는 곳도 있다.

솟대는 나무나 돌로 새를 만들어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혀 홀로 세우기도하지만 장승과 함께 많이 세우고,

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형성하여 살던 때부터 솟대를 만들어 세워 솟대의 기원은 아주 오랜 전부터이다.


솟대는 새를 만들어 세우는데 여러가지 새중 오리가 많고 그 이유는

철새이자 물새인 오리에 다양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란다.

오리가 농사에 필요한 물을 가져다 주거나 홍수를 막기도하고 홍수가 나더라도 죽지 않고 살아남게 한다고 믿었으며

오리는 물과 친화적이라 물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여 마을도 물속에 있는 것처럼 보여

화마가 얼씬거리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다양한 동물세계의 장승들.

일상의 삶이 팍팍하고 우환과 근심이 있을 때 남몰래 찾아드는 서낭당은 액을 막아주는 믿음의 기원의 대상이다.

집안의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걱정거리가 늘어 날까봐 가슴알이로 찾아드는 곳이 서낭당 신앙이다.

서낭당은 해묵은 오래 된 서낭나무와 돌무더기가 있고 주위엔 오색천이 나무를 휘휘 감고 있으며

동전이나 액을 대신 소멸하는 신물과 동전, 짚신 등 이 산발하게 늘어져 있다.

(지금 생각하니 티벳과 네팔 사람들이 신성시 하는 곳과 마을이 시작되거나  

높은 고개에 다르초나 룽다나 하다를 걸어 논 것과 같다)

서티벳의 라싸 수미산 코라순례시 수미산을 오르며 고개가 가까와 질수록 본인의 애장품을

돌이나  초르렌 줄을 걸어 매 놓아 깜짝 놀랄정도로 어수선한 곳을 보았었다.

그들은 그곳을 오르며 소장하는 애장품을 걸어 놓으므로 신이 그들의 염원을 들어준다는 생활신앙의 믿음이 강하다.

우리의 서낭당도 그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건

흰종이로 모형을 만들어 걸어 놓는 것은 대신 액을 멸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행운의 기원하는 뜻이 있고,

동전은 가는 길이 고달프지 말라고 여비를 주는 것이며,

오색천을 서낭나무에 감는 것은 신께 드리는 예단이며,

솔가지를 하나 꺽어 올리는 것은 자연의 일부임을 알리는 것이며,

 돌을 하나 올리는 것은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뜻이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제물을 올리는 것 또한 세습이나 풍습에 따라 이뤄지는 토속신앙임을 알 수 있다.














십이지간의 장승을 만들어 세워 놓아 해당하는 수호신을 찾아 소박한 염원을 빌기도하여

보이지 않는 신께 의지함으로 마음의 근원을 다스리며 평화를 찾는다.

사머니즘 신앙이야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에서 신앙적 존재감이 우월함을 보여줄 수 밖에 없음이다.











장승을 통하여 민간신앙에서 말하는 천신, 상황, 일신, 월신, 칠성, 산신, 천사 등의 여러 신은

불교와 혼합하여 생활속 민간신앙이 널리 적용되고 있음을 체득하니

어느새 휴식할 수 있는 장골리 정자각에 닿는다.











장승테마공원과 이어 주민들의 상가가 있다.

다양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취향을 맞추어 찾아들면 된다.

맛도 토속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장곡사로 이어진 대로에 장승이 아닌 해학적 조형물이 있다.

방랑시인 김삿갓 같기도한 범상치 않는 수호신으로 대신하여 칠갑산 장승편을 마감한다.


공간 함 꾸욱 줄러주시는 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