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Art

진보통일꿈 2018. 9. 22. 21:42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수준 이하 삼류작품

  미켈란젤로는 나체만 즐기는 노출증 환자


성경에 옷을 입으면 천국 지옥 어디에도 갈수 없다는 구절은 없다.

그런데 그림들은 왼 ? 나체들?

천국 지옥에는 모두 나체로만 갈수 있는가?

만일 나체로만 천국에 갈수 있다면 관속에 시체를 나체로만 넣어야 하는데 

그런 종교예식은 없다.


중세 당시 성직자들 대부분은 남성들이었고

동성연애자 Gay 는 남성의 육체를 보고싶어한다.

미켈란젤로는 동성연애자인가?


사람의 신체부분에서 중요한 부분에는 털이난다.

헌데 나체그림들에는 모두 털이 없다.

바로 아래 다비드 상을 보라.

백보지 백자지는 사람들이 바라는 육체가 아니다.

性器는 한자이고,, 자지 보지는 상소리가 아니라 순수 한글이다.

 

아래 다비드 조각은 자지에 털이 없고, 포경수술도 안한 냄새나는 자지는 매력이 없다.

신체에비해 너무나 작은 자지, 미학에서 보면 낙제점수 이다

윗은 왼손잡이 인가? 아니면 왜 돌을 왼손에 들고 있는가?


매주 많은 관광객들이 이 낙제점수 다비드 상을 보려고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차라리 당신이 옷을 벗고 나체로 거울을 보는게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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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를 모르는 이는 없겠죠. 그는 르네상스 시대를 수놓았던 천재 미술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의 조각상 <다비드상>, <피에타>는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죠.


조각으로 유명한 그이지만 그의 예술성은 조각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같은 그림은 가히 걸작이라고 할 수 있죠.


1508년, 미켈란젤로는 당시 교황이었던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성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장장 4년 5개월에 걸쳐 높이 20미터, 길이 41.2미터, 폭 12.2미터의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렸습니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조수 한 명 두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대작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 천지창조의 원시인들이 어째서 털이 하나도 없는가? 몸을 면도했나? 다리에도 털이 없다. =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후 시스티나 성당 뒤편에 등장할 <최후의 심판>이었죠.


<천지창조>가 세상을 모습을 선보인 지 2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미켈란젤로는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작품 의뢰를 받게 됩니다.

‘반항하는 천사의 추락과 최후의 심판’이라는 주제였죠.


당시 유럽은 신구교로 나뉘어 서로 팽팽한 긴장 상태에 있었습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과 독일 황제 카를 5세의 로마 침공, 뒤이은 영국 왕 헨리 8세가 가톨릭을 버리는 등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와중인 1534년, 클레멘스 7세는 미켈란젤로의 답을 듣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 뒤를 이어 교황 자리에 오른 이가 바오로 3세였습니다.


당시 바오로 3세의 생각은 클레멘스 7세와 같았습니다.

뒤숭숭한 가톨릭 교단과 이교도들에게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전 교황의 유지를 받들어 미켈란젤로에게 의뢰한 것이 요한계시록이었습니다.

신의 말씀을 거역하고, 가톨릭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에게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였죠.


미켈란젤로는 의뢰를 수락했습니다. 단,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 신, 천사 모두 나체 누드로 그린다는 것이었죠!


 전부 모두 나체 드! 미켈란젤로의 폭탄 선언!

성모마리아도 누드로 그린다는 그의 말에 모두 경악했지만 숨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 작가였으니까요.

= 내 눈에는 천재가 아니다 =


이런 상황에서 미켈란젤로에게 반대 의사를 표명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교황의 의전 전담관이었던 비아지오 다 체제나 였습니다. 완강한 반대 의사를 피력했지만 그를 막진 못했습니다.


1535년, 로마는 숨을 죽였고, 미켈란젤로는 붓을 들었습니다. 내일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거장이 혼신의 힘을 다해 <최후의 심판>을 그리는 동안 로마인들은 조용히 노장의 뒷모습을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이 흐르고, 이내 <최후의 심판>은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몸, 다리 어디에도 털이 없는 사람들, 매력이 없다. 털은 건강의 상징이다. =

이 대단한 걸작에 감명 받은 것도 잠시, 이상한 기류가 움직이게 됩니다.

아무리 ‘명작’이지만 역시 모두 누드는 받아들이기 껄끄러웠던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기류도 바오로 3세의 강력한 의지 앞에서는 입을 닫아야 했습니다.

러나 바오로 3세의 죽음 이후 다시 한 번 <최후의 심판>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바오로 3세의 후임으로 장 피에트로 카라파 추기경이 바오로 4세로 교황에 오르게 됩니다.

종교재판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였기에 그의 엄정함은 예술 작품에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당장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저질스러운 누드 그림을 제거하시오!”


바오로 4세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명령! 이 소식을 접한 로마 예술계는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예술가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바티칸의 고위 성직자들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절충안이 나온 것이 예수와 성자들에게 속옷을 입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철거되는 대신에 ‘옷을 입는다’는 조건으로 살아남은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누가 옷을 입히냐는 것이었죠. 미켈란젤로에게 벽화의 수정을 부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자존심도 문제지만, 피에트로 성당 건축 작업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안으로 채택된 것이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다니엘 다 볼테라.

그가 이 ‘속옷 입히기 프로젝트’를 떠맡게 되었습니다.

= 심판을 받으려면 줄을 서야지 이게 무슨 최후의 심판인가? 심판자가 안보이는 심판, 누가 심판을 한다는건지? 심판받는 사람들이 구름 위에 서 있는데 구름이 없으면 심판도 못받는다구? 그럼 구름이 없는날은 심판이 없는가? 만화같은 그림이 명작이라고 ?? =


세상이 인정하는 거장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은 영광이었으나, 그 스승의 작품에 덧칠을 해야 한다는 비애감은 어디서 달래야 했을까요?

= 미켈란젤로 얼굴에는 수염이 보이는데 왜 그림 속의 다른 사람들은 자지에 털이 없는가? 가리기 전 위 사진들 참조 =


비애감과 주위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에 그의 덧칠 작업은 한없이 더뎠고,

결국 참다 못한 교황청이 무명 화가들을 영입해 작업을 마쳤습니다.

= 가운데 있는 넘은 누구? 심판자? 그 옆에 있는 여자는 마누라?

심판자는 왜 마누라가 필요한가? =


세계적인 명작이라 불리는 ‘최후의 심판’은 이렇게 교황청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 시대에 따라 옷을 입었다 벗었다하는 심판, 심판에 옷이 중요한가? 행위가 중요한가? =


 앞서 그의 그림을 맨 처음 반대했던 비아지오의 얼굴을 <최후의 심판>에서 지옥의 가장 밑바닥, 저주받은 자들 속의 얼굴로 그렸던 것이죠.

= 고기만 많이 처먹어서 젖가슴이 나온 남자가 죄를 많이 지었는지 심판을 받는데,, 뱀에 물린다고? 뱀은 깨끗한 동물, 동양에서는 뱀, 용을 좋게 평하고, 서양에서는 나쁘게 평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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