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관

천지인 2014. 1. 24. 21:59

 

 

 

 

<소개글>

 

자부선인(紫府仙人)

 

발귀리 선인의 후손인 자부선인(광성자)께서는,

원래 배달국 치우천황 (BC2707~BC2598) 시대의

국사이시며 대학자로서

문자를 만들고 역법을 제정하는 등

여러부문에 큰 자취를 남겼다. 

 

서쪽으로는 황제 헌원에게

신서(삼황내문경)를 주어 도(道)를 전하였다.

 이에 황제 헌원은 오늘날 중국 도가의 시조가 되었으며

도교의 태상(도교의 최고 신)이 되었다.

 

동쪽으로는 고조선 국자랑(천지화랑)의 스승인 

유위자 (BC1920~BC1727) 에게 학문과 도를 전하였다.

이후 유위자의 선도사상은 수천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선인통치의 기반이었고, 홍익인간하는 치국의 이념이 되었다.  

 

따라서 자부선인은 동양 선도계의 조종이시다.

 

자부선인(紫府仙人)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환단고기에 따르면

자부선인(紫府仙人) 또는 자부선생(紫府先生)은

배달국 치우한웅 시대의 대학자이다.

태호복희(중국 3황5제의 첫번째 인물. BC2800?)씨와 함께 공부한

발귀리 선인(發貴理 仙人)의 후손이다.

후대의 유위자(有爲子)의 학문도 자부선인에게서 나왔다.

 

한단고기》의 〈고구려국본기〉에 따르면

《삼황내문경》은 회계산(會稽山)에 간직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와 달의 운행을 측정하고 오행(五行)의 수리(數理)를 고찰하여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라는 천체 운행 법칙을 그린 도표를 만들었다.

이것이 이른바 칠성력(七星歷)이라는 역법의 시작이 되었다.

 

갈홍의 《포박자(抱朴子)》라는

'옛날에 황제헌원(중국 3황5제의 3번째 인물(BC2704)이 있었다.

그가 동쪽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 자부선생을 뵙고

《삼황내문》을 받아 이를 가지고 온갖 만가지 신을 부렸다'고 기록했다.

《삼황내문경》을 신채호이능화는 '진단백민국의 선경'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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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동이열전은 서기전 268년(中國 戰國時代 魏나라 安釐王 10년)에

중국 곡부(曲阜) 땅의 공빈(孔斌, 孔子의 子孫이라 傳함)이 쓴 글입니다.*

 

*동이열전

 

동쪽에 오래된 나라가 있는데 동이(東夷)라 한다.

방위는 28수(二十八宿)의 기성과 미성의 방향이고, 지역은 조선 태백산에 접해 있다.

처음에 신인(神人)인 "단군"이 계셨는데, 구이(九夷)의 추대를 받아 임금이 되셨다.

요 임금 때의 일이다.

순(舜) 임금은 동이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와서 천자가 되어 지극한 정치를 하였다.

동이에는 자부선인(紫府仙人) 이라 하는 도에 통한 훌륭한 분이 계셨는데

황제 헌원씨가 그 문하에서 내황문(內皇文)을 배워 와서 염제 신농씨의 뒤를 이어

중국의 임금이 되셨다. 하나라 우임금의 도산회의에 동이의 부루(夫婁)께서

친히 와 주셔서 나라의 경계가 정해졌다. 

유위자는 하늘이 낳은 성인으로

그 훌륭한 이름이 중국에까지 넘쳐 흐르니

이윤이 그 제자로 공부해서 은나라 탕 임금의 어진 재상이 되었다.

 

동이는 그 나라가 비록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그 나라의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후(淳厚)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는 것을 서로 양보하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함부로 섞이지 않으니,

가히 동쪽에 사는 예의 바른 군자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은(殷)나라 태사(太師) 기자(箕子)가 주(周)나라 신하가 되지 않고

동이 땅으로 갔고,

나의 할아버지 공자(孔子)께서 동이에 가서 살고 싶어 하셨다.

나의 벗 노중련(魯仲連) 역시 동이로 가고 싶어 한다.

나도 역시 동이에 가서 살고 싶다.

예전에 동이의 사절단이 온 것을 보니, 큰 나라 사람들다운 모습이었다.

동이는 대강 천년 이상 전부터 중국과 우방이었다.

사람들이 서로 왕래했다. 위나라 안리왕 10년 곡부에서 공빈 씀.

 

東夷列傳

 

東方有古國 名曰東夷 星分箕尾 地接鮮白 始有神人 檀君 遂應九夷之推戴而爲君

與堯幷立 虞舜 生於東夷 而入中國 爲天子至治 卓冠百王 紫府仙人 有通之學 過人之智

黃帝受內皇文於門下 代炎帝而爲帝, 小連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年憂 吾先夫子稱之,

夏禹塗山會 夫婁親臨 而定國界,

有爲子 以天生聖人 英名洋溢乎中國 伊尹受業於門 而爲殷湯之賢相

其國雖大 不自驕矜 其兵雖强 不侵人國, 風俗淳厚 行者讓路 食者推飯 男女異處

而不同席 可謂東方禮儀之君子國也, 是故 殷太師箕子有不臣於周朝之心

而避居於東夷地 吾先夫子 欲居東夷 而不以爲陋, 吾友魯仲連亦有欲踏東海之志

余亦欲居東夷之意 往年賦觀東夷使節之入國其儀容有大國人之衿度也,

東夷蓋自千有餘年以來 與吾中華 相有友邦之義 人民互相來居往住者接踵不絶,

吾先夫子 以東夷不以爲陋者 其意亦在乎此也,

故余亦有感而記實情以示後人焉 魏 安釐王 十年 曲阜 孔斌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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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2.

 

자부선생(紫府先生) : 자부선인(紫府仙人)이라고도 한다.

황제헌원(黃帝軒轅)의 스승이다.

복희씨(伏羲氏)와 함께 공부하던 발귀리(發貴理) 선인의 후손이다.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을 지어, 임금께(치우=자오지천왕) 바치니

임금이 이를 가상히 여겨, 청구(靑丘)의 대풍산(大豊山) 양지바른 곳에

삼청궁(三淸宮)을 지어 살게하였다.

해와 달의 운행을 측정하고 오행수리를 고찰하여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를 만들기도 하였다.

황제헌원(黃帝軒轅)에게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을 주는 것을 계기로

우리의 신교문화(神敎文化)가 중국에 전해지게 되었다.

단군왕검(檀君王儉)보다 약 4백년전 사람이다.

 

◐ 복희씨(伏羲氏)는 한웅(桓雄)의 아들이며,

신농씨(神農氏)와 황제헌원(黃帝軒轅)은

한웅씨(桓雄氏)로부터 갈려나간 동이족(東夷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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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3.

유위자

한단고기 단군세기편과 삼한관견본기에 의하면

유위자는 서기전1891년 국자랑의 스승으로 있었으며,

자부선인의 학문을 계승한 분이시다.
서기전1766년경 은나라시조 탕왕이 이윤을 중용하였는데

홍서의 서문에 의하면, 이윤은 바로 "유위자"의 제자였다.
이윤이 유위자의 제자이므로

이윤이 은나라 탕왕의 중신이 되기전에

유위자에게서 학문을 배웠다는 것이 되는데,

유위자는 최소한 서기전1920년경이전에 출생하여

최소한 이윤이 은나라의 재상이 된 때인 서기전1766년 이후

서기전1727년에 돌아가셨다고 적고 있는 바,

유위자는 최소한 190년 이상을 산 것으로 계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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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4.

 

치우천황(자오지 천왕)은 누구인가? 

 

배달국의 14세 환웅이죠. 14세 환웅이신 자오지(치우) 천황께서는

도읍지를 백두산 신시에서 대릉하지역으로 옮기셨습니다.

그 도시 이름이 청구(靑邱)입니다.

그래서 근세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문 좀 하는 양반들은

우리 나라를 ‘청구(靑丘)’라고 즐겨 부른 것입니다.

청구라는 말은 『산해경』, 『회남자』등 중국문헌에도 많이 나오죠.

특히 신선이 사는 나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전쟁이 많았어요. 14세 자오지(치우)환웅천황과

중국 땅에 사는 황제헌원(우리 민족의 방계)과 큰 싸움이 있었죠.

숫적으로는 헌원이 많았지만,

치우천황이 이끄는 청구국은 금속으로 된 신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결국 이 전쟁은 환웅천황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패널에 있는 치우북채(蚩尤北寨: 치우천황께서 쌓은 북쪽 성곽)는,

당시 전쟁이 벌어졌던 지금의 베이징 서쪽 탁록벌판에 있는 비석입니다.
중국문헌 『사기』를 보면

 ‘동두철액(銅頭鐵額: 구리로 된 머리와 철로 된 이마)’이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이 때 벌써 금속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청구국은 동아시아의 선진문명이었던 것이죠.

철(鐵)이라는 글자의 옛날 형태는 ‘g’인데

이것은 쇠 금(金)자에 동이족을 뜻하는 이(夷)자입니다.

글자를 통해서도 우리 민족이 금속문명를 먼저 일으켰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런데 중국 역사가들은 배달국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

‘헌원이 치우를 잡아죽였다’고 역사를 150% 날조했습니다.

이런 것이 대표적인 중독(中毒)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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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5.

 

고조선의 "국자랑(천지화랑)"이란 무엇인가?

 

단군조선의 국자랑(國子郞) 혹은 "천지화랑"제도가

고구려에 와서는 "조의선인" 제도로,

백제에서는 "무절(武節)" -일본의 사무라이(武士)로 이어짐)로 발전했으며,

신라에서는 "화랑도"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신라의 화랑제도가 시작되기 2,500여 년 전인

단군조선 시대에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며

심신을 단련하던 미혼의 자제들을 "국자랑(國子郞)" 이라 했으며

(11대 단군인 도해단제 재위 57년 -단기 3891년, 서기 전 1891년),

그들이 출행할 때에는 머리에 천지화(天指花: 무궁화)를 꽂았기 때문에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단군조선의 국자랑(國子郞) 혹은 "천지화랑"제도가

우리 민족 고유의 행법으로, 기천(氣天)행공이였다.

(無所亭)http://blog.daum.net/hanvak

출처 : 無 所 亭 (무 소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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