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의 소해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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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이야기

2014. 9. 29.

 - 전투시기 : 1950.9-10월
- 전투지역 : 동해안의 영흥만, 주문진, 진남포 등, 목포 해역, 여수 해역
- 주요지휘관 : 현시학 소령, 허덕화 소령, 이경원 소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1. 한국 해군의 소해작전의 개요

  우리 해군은 UN 해군과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전 해역에 걸쳐 기뢰(機雷)를 제거하는 소해작업에 투입되었다. 특히 아군의 철수기에 동해안의 영흥만, 주문진, 진남포 해역에서 소해 작업을 펼침으로써 아군의 해상철수를 용이하게 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목포 해역, 여수 해역 등 서해지역에서도 소해 작전을 펼침으로써 해상안전을 도모하였다.
  이 과정에서 YMS-516정, 516정 등이 기뢰(機雷)에 의해 침몰당하기도 하였다.



2. 한국 해군의 소해작전의 주요 지휘관

PC-704함장 소령 현시학
YMS-501정장 중위 김정곤
YMS-502정장 중위 채재석
YMS-503정장 대위 이인석
YMS-506정장 소령 허덕화
YMS-507정장 중위 백인기
YMS-509정장 소령 김상도
YMS-510정장 소령 이경원
YMS-513정장 대위 박경철
YMS-516정장 소령 김철웅
일본 소해선단(수 미확인)



3. 한국 해군의 소해작전의 진행과

  (1)소해작전
  PC-704함(함장 소령 현시학)과 YMS-510정(정장 소령 이경원), 그리고 710정(정장 소령 김철웅)으로 편성된 소해정단은 영흥만에서 미 소해정 3척과 협력하여 처음으로 조직적인 소해작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 무렵 원산은 육군 제 2군단에 의하여 탈환되어 있었으므로 함정들은 육상으로부터 적의 공격을 받을 염려가 없었으나, 영흥만 일대에 부설된 적의 기뢰(機雷) 위치를 전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소해작업은 몹시 위험이 뒤따랐으며, 작업의 속도도 또한 느릴 수밖에 없었다.
  10월 14일에서 16까지의 3일 동안에 걸쳐 한?미 소해정들은 영흥만에서 20개의 기뢰(機雷)를 폭발시켰는데, 16일에는 소해작업 중이던 YMS-516정이 기뢰(機雷)에 접촉되어 침몰하였고, 또한 미 소해정 2척도 같은 곳에서 침몰하였다.
  이와 같은 사고가 속출하게 되자 한미 해군은 기뢰(機雷)를 부설한 사람을 찾아내어 기뢰의 위치를 알기 위하여 한국군 제 1군단의 G-2에 협조를 요청하게 되었다.
  그 뒤 10월 23일에 이르러 해군은 제 1소해정대를 편성하고 YMS-501, 502, 503의 3정을 비롯하여 507과 513, 그리고 514의 도합 6정을 제 1소해정대에 배속시키고 진해기지에 사령부를 설치하는 동시에 사령관으로 윤영원 중령을 임명하였다.
  이로부터 3일 뒤인 26일에 이르러 제 1소해정대에 배속된 YMS-501정(정장 중령 김정곤)과 502정(정장 중위 채재석), 503정(정장 대위 이인석)을 비롯하여 507정(정장 중위 백인기)과 512정(정장 중위 박세충), 그리고 514정과 교체된 506정(정장 소령 허덕화)에 FS-김해호의 7척은 소해훈련과 소해장비를 갖추기 위하여 이날 19:30에 부산항을 출발하여 일본 사세호항으로 향하였다.
  그리하여 소해장비 보강과 훈련을 끝마친 다음, YMS-503정은 11월 2일에, 나머지 소해정들은 11월 5일까지 모두 진해기지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10월 27일에 이르러 우리 해군은 진남포의 소해작업을 실시하기 위하여 YMS-513정(정장 대위 박경철)으로 하여금 군산항에 정박 중이던 UN 해군에 임시 고용된 일본 소해정단을 거느리고 진남포항으로 향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미 소해정 3척과 협력하면서 진남포항의 소해를 실시하여 도합 10개의 기뢰(機雷)를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다.
  10월 31일에 우리 해군의 JMS-303, 307의 2정은 군산에 정박하고 있던 일본 소해정단 40척을 거느리고 원산으로 향하여 미 소해정 2척과 협조하면서 소해작업을 실시하여 도합 20여개의 기뢰(機雷)를 제거하였다.
  한편 해군 목포 경비부는 11월 1일 민간선박을 동원하여 목포항 입구의 소해작업을 실시하여 이날 현재로 도합 28개의 지뢰를 폭발시켰다.
  다음 날인 11월 2일에는 일본 사세호에서 소해훈련과 장비보강을 끝마치고 먼저 귀항한 YMS-503정이 미 소해정 3척과 함께 진남포 근해에서 소해작업을 실시하고 있는 Y MS-513과 협력해서 근방의 소해를 실시하였다.
  또한 일본 소해정단은 주문진 근해에서 작업을 실시한 결과, 도합 23개의 기뢰(機雷)를 제거하였다.

  (2) YMS-509정과 516정의 침몰
  9월 28일 03:00에 동해안을 경비하고 있던 YMS-509정(정장 소령 김상도)은 북쪽에 있는 후포 동쪽 약 4.8마일 북위 36도 24부 24분 동경 129도 29부 26분 해상에서 적이 부설한 기뢰(機雷)에 부딪쳐 함정은 대파되고 미처 탈출을 하지 못한 장병들은 퇴정을 하지 못한 채로 모두 함정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였다.
  이 급보를 저한 YMS-506정은 현장으로 급히 출동하였으나 함정은 이미 완전히 침몰되기 직전의 상태였으므로 구조작업으로 손 댈 방법이 없었다. 그러므로 506정은 승무원의 구조작업에 온갖 힘을 다하였으나, 캄캄한 밤이었으므로 이 작업도 또한 매우 곤란한 형편이었다.
  이 사고로 509정은 침몰되고 38명의 승무원 중에서 전사 25명(행방불명 포함), 부상 5명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 뒤이어 10월 16일 15:50에 이르러 영흥만에서 소해작업을 벌이고 있던 YMS-516정은 북귀 39도 12부 13분, 동경 127도 31부 7분 해상에서 적의 기뢰(機雷)에 접촉되어 함정은 파괴되고 삽시간에 함정 내부는 물바다가 되면서 20분 만에 침목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승무원 35명 중 15명이 전사하고 11명이 부상당했다. 전사자와 부상자는 모두가 기뢰(機雷)에 접촉되는 순간에 생긴 중상자들이었는데, 이때에 정장 김철웅 소령은 마스트에 있었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



4. 한국 해군의 소해작전의 결과

  소해작업에 참가하였던 우리 해군의 함정들은 계속하여 해안 경비에 임하였고 중공군의 침략으로 UN군과 한국군이 원산-흥남-진남포 등지에서 철수하게 되자 병력과 군수물자 수송의 임무와 수많은 민간인 피난민들의 후송임무를 겸하여 수행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하여 우리 해군은 중공군의 침약으로 말미암아 북한으로부터 철수하는 12월 초순까지의 기간 동안에 동해의 포항 북쪽 후포 근해에서 약 30개, 주문진 근해에서 13개, 장전 근해에서 약 20개, 영흥만에서 약 50개, 성진-어대진-나진 근해에서 약 10개의 기뢰(機雷)를 모두 제거하였고, 서해의 대진 근해에서 약 28개, 진남포 근해에서 40개, 초도 근해에의 해상에서 20개 남해안의 여수-삼천포 근해에서 10개의 기뢰(機雷)를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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