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산책

구르미찌니 2020. 4. 21. 10:31




내 삶의 의미

나의 현재 속에는 늘 과거가 따라 다니다.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하다보면 과거의 내가 꼭 입장을 하게 된다.

잘 나가던 때를 말하고 싶어지는 상대가 있는가 하면

주머니 속 깊숙히 숨겨둔 이야기를 꺼내 펼져 보이고 싶은 상대가 있다.

아마도 가족치료학자 였던 보웬의 말대로 분화 수준이 같은 사람을 만나 위로라든지

동지애를 느끼고 싶은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화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이 만난다고 한다.

아마도 끌림의 법칙일지도 모른다.

알코올 중독자 남편이 싫어 이혼을 하고 폭력적인 남편이 싫어 이혼을 하고

다시 다른 남자를 만나 재혼을 하게 되면

왜?

반복되는 삶이 시작 되는 걸까?

아마도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는 나의 무엇이 있지 않아서 일까

아파서 병원엘 가지만 나의 병을 낫게 하는 것은 결국 나라는 것을 잊곤 한다.

좋은 의사 좋은 처방이 있다해도 내가 먹지 않으면 나의 병은 낫지 않는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다 외부 환경이든 나의 잘못이든 고칠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누

군가 날 힘들게 하든 그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를 피하든 내가 마음의 정리를 하든 나 만 할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게 그리 쉬운가 다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약을 먹으면 낫는다는도 굳이 먹지 않는다는건 아픔의 고통을 안고 산다는 것과 같다.

나의 마음이 나로 인한 것이든 타인에 의한 것이든 내가 치유하면 된다.

어떤 사람은 자가치료로 술을 마시거나 담재를 피우거나 약물에 중독 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자가 치료라고 하며 마치 숨통이 순간 트이는 것 같다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며 방어한다.  

자가 치료로 자신을 더 미궁속으로 빠트린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무의식속에 있는 감정들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방패를 자신도 모르게 계속 쓰고 있다. 그리고 정신도 몸도 의식을 잃어간다.

그럼 나를 진심으로 위하고 치료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현재에 충실하는 것 그것이 답이 아닐까 싶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

열심히'는 기준이 없다.

나는 열심히 사는데 남들은 그렇게 보지 않을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정말 열심히 사시네여"

라고 말하면 아니라고 답한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에는 기준이 없다고 본다.

우리가 너무도 잘아는 '나 답게' 사는것이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 아닐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은 삶에 의미를 두는 것에 목적을 둔다고 했다.

밥을 먹는 것에는 맛에 의미를 둘 수도 있고 배고픔에 의미를 둘 수도 있다.

운동을 하는 것에는 운동이 좋아서 또는 건강하고 싶어서 아니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여러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소소한 나의 행동이나 생각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산다면

나의 삶이 의미로 가득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의미 있는 삶을 살다보면 분화 수준이 높아지고 끌어당김의 법칙에 의해

내가 만나는 사람들 또한 분화 수준이 높은 긍정적인 사람들로 둘러싸이지 않을까

나는 이 글을 쓰며 나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내 주머니 속 깊숙히 숨겨둔 무의식 속의 기쁨이나 상처를 나눌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날들만남아 있다고...

인연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에게 오늘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하루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의 하루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