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이 머무는

그레이스 2020. 7. 27. 07:32

 

 

 

 

 

 

 

 

왕송 연꽃단지도 대단 하네요.
언제 한번 들려 봐야겠네요.
요즘은 가기가 너무 힘들어요 ^^
하늘이 참 좋은 날입니다.
좋은 하늘이 강조되어 감상하기가 참 좋습니다.
여기 연밭도 규모가 상당히 크군요.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공감 2.
하늘도 연꽃밭도 넘 좋습니다.
아름다워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긴 장마와 폭우 코로나와 함께 공존하는 일상은 이어지고
이 와중에 또 새로운 한 주는 시작되고 녹녹지 않은 삶의 연속입니다
마스크 잘 쓰시고 하절기 건강관리에 충실 하시기 바랍니다
포스팅 해주신 좋은 글과 작품에 공감 즐감 합니다
기분 좋은 하루 되십시오


안녕하세요?

┃▶◀1750년 '조선판 코로나19'로 22만명이 떼죽음 당한 사연◀▶◀┃

1750년(영조 26년) 1월5일 <영조실록>은 전국 8도에 전연병 때문에 사망한
백성이 즐비하자 그저 “시신을 묻어주는 것이 왕정(王政)의 큰 일”이라고 했다.

전염병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진다. 두 달 뒤인 3월23일 “전염병 사망자가
전국적으로 10만명이 넘었다”(3월23일)고 했다.

< 영조실록>에 등장하는 9월까지의 월별 사망자수가 맞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1750년 한 해 전염병으로 사망한 백성수는 22만3578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영조에 이어 조선의 중흥군주라는 칭송을 받는 정조의 시대는 어땠을까.
예외가 없었다. 12만8000명에 이르는 전염병 사망자가 나온 해(1799년·정조 23년)가
있었다. 정조는 “굶주린 자와 죽어서도 장사조차 치를 수 없는 자들을 돕도록 하라”는
명을 내리고, “각 지방에서 전염병이 가장 번성한 곳을 골라
여제(려祭·전염병 돌 때 올리는 제사)를 드리라”고 지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각설하고 ‘사회적 거리 2m’를 강조한 작금의 ‘코로나19’ 대책을 보면서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언급을 떠올린다. “전염병은 콧구멍으로 그 병기운을
들이마셨기 때문에 생긴다. 전염병을 피하려면 마땅히 그 병기운을 들이마시지
않도록 환자과 일정한 거리를 지켜야 한다. 환자를 문병할 때는 바람을 등지고 서야
한다.”(<목민심서> ‘관질’)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www.문화재방송.한국
www.tntv.kr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것이 많죠
단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가슴에 품은
가슴이 따뜻한 당신이말로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공감은 추가 하고 갑니다.
왕송저수지에 있나요?
여기서
레일바이크는 타봤는데~
연꽃이 폈네요~^^*
레일바이크 타고 가면서도 볼수있는 연꽃단지랍니다
고운 연꽃들이
하나 둘 피어나는군요...
안녕하세요? 비가내립니다,텃밭등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내일까지 내린다입니다,개개인에게는 모두 각각의 생각이
있습니다,내 생각과 똑같이 맞출필요는 없습니다.
월요일입니다,소중한포스팅 수고하셨습니다,감기조심하세요.
사랑과 늘 건강빕니다.그레이스님.
어떤 목표을 모르고 배를 젓는 사람에게는
순풍이 불어도 결코 순풍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목적. 나의 목표를 분명히 한 사람에게는
태풍이 오히려 강한 순풍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정확한 목표 의식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왕송 연꽃단지를 다녀오셨군요
연꽃과 수련이 예쁘게 피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받고 있나 봅니다
좋은 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셨네요^^
본격적으로 휴가철이 되었고 이번 주말이 국민휴가 기간이 될것같습니다
휴가를 마칠때도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인 방역 잘 하시고
즐거운 시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반갑습니다안녕하세요
오늘도 수고 하셨습니다
즐거운 저녁되시고
시원한 냉 커피 한잔하세요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반갑습니다
주말을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
남부지방은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로 폭염주의보
북상한 장마전선 영향으로 중 북부 지방은 폭우 호우주의보
일상생활은 코로나 주의보 참 어려운 생활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참고 견디면 좋은날이 반드시 오겠지요
주말과 휴일 기력충전 하셔서 즐거운 일상 이어 가십시오
저녁시간에 들려서 좋은 포스팅에 머물며 공감하고 갑니다
편안한 휴식이 있는 좋은 저녁시간 되십시오


묵직한 연잎과 화사한 연꽃의 조화~*
아주 보기 좋아요
왕송 저수지에서 우산 쓰고 걷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한반도엔 없는 돌"…가락국 허황후 '파사석탑의 정체'◀▶◀┃

육당 최남선은 “만약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중 하나를 택하라면
마땅히 삼국유사를 택하겠다”고 하면서 “조선의 생활과 문화의 원두(元頭)이자
고형(古形)은 이 책(<삼국유사>) 만이 있을 따름”이라고 평가한바 있다.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를 어영부영 쓰지 않았다. 정사인 <삼국사기>(142종)보다
훨씬 많은 문헌(185종)을 인용했을 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엔 현장을 직접 답사했다.
그런 일연 스님이 김해지방을 답사하고 “가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허황후 때이지만 파사석탑을 모신 사찰(호계사)과 왕후사를 창건한 시기가 제8대
질지왕 2년(452년)”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게다가 일연 스님은 현장답사 후 다음과
같은 소감시를 남겼다.

“석탑을 실은 붉은 돛대 깃발도 가벼운데, 신령께 빌어서 험한 물결 헤쳐왔다.
어찌 다만 황옥(黃玉)을 도와 건넜을 뿐이겠는가. 1000년 동안 남쪽 왜의 침략을 막았다.”
(<삼국유사> ‘금관성 파사석탑)’
그랬다가 이 평형석은 가야 백성들이 불교를 믿게되면서
언젠가인지는 모르지만 불탑으로 조각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호영 고려대 교수(지구환경과학과)는 “정확한 암석분석을 위해서는 현미경 관찰 등
구성광물의 검증이 요구된다”는 단서를 달면서도 “파사석탑에 사용된 암석의 산출지를
한반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